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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65화 (65/271)

〈 65화 〉 64화

* * *

우리는 알론이 제안했던 대로 이틀 뒤에 리제르카로 향하는 일행에 합류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동원된 마차는 총 8대이고 그 중에서 짐마차는 2대다.

프랑카에서 거의 일주일을 꼬박 가야하고 그 중에서 사흘이나 나흘 정도는 도시나 마을에 들르지 못하고 야영을 해야 하는 일정이라서 총알도 넉넉하게 준비되었다.

경호원은 20명에 가까웠는데, 거의 여행객 한 명에 경호원이 한 명이 붙어있는 수준이었다.

꽤나 듬직해 보이는 경호원들은 우리가 총을 꺼낼 일이 없도록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부디 계속 그렇게 보호만 받으면서 이동하면 좋겠다.

만약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베로니카 언니가 선물한 경량 마법갑옷을 착용하고 적들과 맞서 싸우면 된다.

마법갑옷은 경량일지라도 대부분의 상황에선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 마족이나 도적떼는 간단하게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가면쟁이나 다리우스 용병단에게 습격을 받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으니 너무 앞으로 나서지는 않을 거다.

‘그나저나 드디어 이걸 손에 넣었구나. 중고라도 너무 좋다. 나중에는 중량 마법갑옷도 꼭 가지고야 말겠어.’

나는 마법갑옷을 받은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고 욕심도 커졌다.

비록 최신형이 아니라 퇴역한 구형이고 그마저도 재고품이 아니라 남들이 실컷 썼던 오래된 중고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고성능 장비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처음 마법갑옷을 받아서 분석스킬을 사용했을 땐, 각 부위별로 정보가 따로 표시되고 세트효과도 함께 나타났다.

지금까지 빌려 입었을 때는 그냥 이름만 나오는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가 있는 이유는 아마 소유권 때문일 것이다.

마법갑옷은 법적으로 기사단과 영주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마법갑옷을 받을 때 마법으로 소유자등록을 했다.

소유자등록은 귀속효과를 발휘하여 내가 받은 마법갑옷을 나만 입을 수 있게 만들었고 이게 마법갑옷에 분석스킬을 쓸 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내가 받은 경량 마법갑옷의 부위별 품질은 모두 C등급이라 추가적인 기능이 없고 퇴역한 장비를 재생한 것이라서 전반적인 성능저하라는 페널티가 있다.

성능저하라고는 하지만 직접 입고 움직여본 결과, 딱히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세트효과로 소음억제기능과 은밀성향상기능이 추가되어서 라우라와 함께 잠입을 시도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만약에 내가 기사단을 창설할 수 있다면 라우라랑 이리스한테도 마법갑옷을 입혀줄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나는 욕심을 넘어서서 거의 헛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기사단 창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영주나 황제처럼 높으신 분들이나 그들이 모인 제국의회 같은 콧대 높은 기관만이 기사단을 창설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신전 쪽에서도 휘하에 기사단을 보유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창설권한까지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 같은 일개 평민에게는 너무나도 먼 세상의 이야기이고 명예기사가 된다 하더라고 달라질 게 없는 일이다.

이미 계층이 굳어져서 신분상승이 어려운 인류연합제국의 체제하에서는 내가 명예기사를 넘어서서 작위가 없는 하급귀족이 되는 것조차도 아주 힘든 일이겠지.

어차피 귀족이 되려고 발버둥 칠 생각은 없었으니 느긋하게 생각하자.

나는 새로운 인생을 마냥 즐기고 싶지 머리를 싸매면서 일을 하거나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다.

“레베카님, 지금 멀미가 나시나요?”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라우라는 날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마차만 타면 멀미를 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오늘도 날 신경써주었다.

다행히 특수상점에서 구매한 멀미약의 효과가 아주 좋아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약을 먹어서 괜찮아. 내가 힘들어 보이니?”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없이 창밖만 보셔서요.”

“아, 그냥 바깥구경을 하고 있었어. 내가 프랑카 말고 다른 지방을 방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 그래서 조금 설레기도 해.”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프랑카는 분명 좋은 도시이지만 평생 거기서만 살기에는 새로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최대한 이 세상을 많이 둘러보면서 멋진 경치를 구경하고 다양한 도시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

“그냥 마음 편히 여행을 가는 거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이번에 결정적인 단서만 잡아내고 일을 마무리 지으면 다시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우리 함께 제대로 여행을 가도록 해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내 목표는 단순히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제국 전체를 모험하는 거야. 이제 제국에 대한 적응도 끝냈으니까 슬슬 프랑카에서 벗어나고 싶어.”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에게 내가 세운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말해주었다.

여태까지 속으로만 생각하거나 지나가면서 했던 말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못 박을 것이다.

특수상점의 워프기능까지 활성화시킨 마당에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여행을 떠나지 못할 일도 없다.

내 목표를 들은 라우라와 이리스는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평생 자기가 태어난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귀족들도 주변 지방이나 수도를 여행하는 게 전부인데 레베카님은 전국일주가 인생의 목표라니 포부가 정말 크세요.”

“맞아요. 전국일주를 달성하시고 책을 내시면 분명 모든 제국사람들이 다 읽어볼 거라고 생각해요. 운이 좋다면 황제폐하를 알현할 수 있을 지도 모르고요.”

내 사랑들은 필요 이상으로 날 치켜세워주었다.

난 아직 실행에도 옮기지 못한 일로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게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별 것 아닌 걸로 크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다음에 아예 여행계획을 짜서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너희들도 함께할 거야. 내가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을 너희들도 느꼈으면 좋겠어.”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의 손을 동시에 잡았고 두 사람의 손등에 차례대로 입을 맞췄다.

그리고 두 사람의 허전한 손가락에 반지를 하나씩 끼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귀는 사이인데 아직도 커플링 하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두 사람이 쭉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 커플링이라는 문화가 없는 것인지는 몰라도 서둘러야할 것 같다.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레베카님이 이리스에 이어서 또 어떤 미녀를 새로운 애인으로 삼을지도 궁금하고요. 후훗.”

“다음에는 귀여운 애로 부탁드려요. 저 예전부터 자매를 가지고 싶었는데 지금은 라우라가 언니 같으니 이번에는 동생 같은 애가 생기면 좋겠어요.”

얘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애인들이 대놓고 다음 하렘멤버를 주문하는 상황이라니 뭔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아니, 물론 나도 하렘멤버를 추가하고 싶은 생각이야 있지만 나를 나눠가지는 입장에서 먼저 요구를 할 줄이야.

라우라는 저번에 허락을 해줬으니 그렇다 치고 이리스는 왜 이렇게 적극적일까?

혹시 라우라에게 교육이라도 받아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보통 이런 일의 배후는 라우라라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의심하게 되었다.

라우라는 언제나처럼 내 속내를 쉽게 눈치 채고는 날 보면서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하자. 아직은 마음에 여유가 없거든.”

“정말요? 그럼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만족시켜드려야겠네요. 그렇지, 이리스?”

“응, 마침 어제 그걸 사기도 했고.”

“쉿! 아직은 비밀로 해야지.”

두 사람은 내게 아직도 어제 산 물건이 무엇인지 비밀로 할 생각인 모양이다.

내가 구매목록을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겠지만 훗날의 재미를 위해서 꾹 참았다.

우리가 어제 특수상점에 갔을 때, 나는 생필품과 총알, 의약품을 사는데 집중하느라 다른 곳은 관심을 주질 않았다.

아마도 그 사이에 뭔가를 산 것 같은데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라도 저렇게까지 숨기는 걸 보니 갈수록 기대가 커진다.

그리고 나는 이리스가 생각보다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했다.

“이리스, 네가 기분이 괜찮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이미 각오를 했던 일이니까요. 그리고 다들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라서 안심했어요.”

“일행들이 모두 친절하긴 했지. 알론을 모시겠다며 고향까지 등지고 그를 따라갔던 사람들이니 충성심도 확실할 테고.”

“실은 예전에 제가 살던 저택에서 일했을 때도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막시안이 작위를 물려받은 뒤로 분위기가 완전히 살벌해졌죠.”

이리스는 막시안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괴로운 듯 했다.

가족을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니 당연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겠지.

하지만 이리스를 위해서라도 막시안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막시안은 어떤 인간이니? 알론은 괴물이라고 하지 정확한 건 가르쳐주지 않던데.”

“항상 밤에만 활동하고 생고기를 즐기는 사람이에요. 남작이 되려고 형제자매들을 모두 죽이고 부모를 감금해서 겁박할 정도로 사악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왠지 굉장히 위험한 느낌이 드는 놈이네.”

“맞아요. 게다가 시체를 사고판다는 소문이 돌아서 강령술사나 악마숭배자가 아니냐는 말도 많았어요.”

“단순한 소문이긴 하지만 남작이나 되는 사람 주변에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 자체가 벌써부터 수상하네.”

“실제로 시체를 매매하는 장면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그 날 바로 실종되었다가 끔찍한 모습을 발견되었어요. 아마도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인 모양이네. 그런 미친놈이라면 분명 곱게 시신을 넘기진 않을 테지.”

“시신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차, 난 바보처럼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민감한 사안이니 거짓말로 대충 넘길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이리스에게 괜한 상처를 줄 것 같고 큰일이다.

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이리스의 진실을 요구하는 시선을 회피하느라 급급하고 있을 때, 고맙게도 라우라가 개입했다.

“레베카님, 이리스를 위한 일이시죠? 분명 이리스에게 직접 말하기 어려운 일이라서 비밀로 하셨고요.”

“응. 다른 뜻은 없었어.”

“말하고 싶으셔도 갑자기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해서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요.”

“맞아.”

나는 거의 변호사를 선임한 기분을 느끼며 라우라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리스의 눈빛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의문에서 걱정으로 바뀌었다.

“레베카님, 혹시 제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아주실 생각이신가요?”

“리제르카로 가는 김에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분명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해.”

“하지만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막시안의 잔악함은 친척들조차도 변호를 포기할 정도로 대단하거든요.”

“걱정 마.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발을 뺄 거야.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널 위해서 네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고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드리고 싶어.”

“감사합니다, 레베카님.”

이리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날 끌어안았다.

어처구니없는 말실수로 내가 남들 몰래 생각하고 있던 것을 들켜버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당사자인 이리스가 나를 이해해주니 너무 고맙다.

이게 다 라우라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그녀가 너무 기특하다.

그래서 나는 라우라도 내 품에 함께 끌어안았다.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향긋한 내음이 내게 황홀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여기가 숙소였다면 바로 섹스로 돌입했을 지도 모를 정도였다.

오늘 밤에는 큰 마을의 여관에서 숙박한다고 했으니 기회를 엿봐야겠다.

“레베카님, 좋은 분위기에 초를 치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다리우스 용병단을 조사하는 와중에 막시안의 저택까지 조사할 시간이 있을까요?”

“우리가 리제르카에 가서 특수상점에 들르기만 한다면 마음껏 두 도시 사이를 오갈 수 있어. 그러니 우선 다리우스 용병단을 조사하는 일에 집중해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 뒤에 막시안을 조사하면 시간이 모자랄 일은 없을 거야.”

“그렇군요. 그런데 순간이동이라는 게 가능할 줄은 몰랐어요.”

“나도 처음에는 상점에 그런 기능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질 못했었어. 정말 다행이지.”

“이것도 레베카님의 고향에서 쓰는 마법과 같은 계통일까요?”

“아마도 그럴 거야. 아마도...”

라우라와 이리스에게 내 비밀을 일부 공유하는 건 좋지만 갈수록 두 사람의 호기심이 커지는 것 같아서 얼버무리는 것도 결국은 한계에 봉착할 것 같다.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나를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로 바라보는 라우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도록 하자.

“항상 너한테 잠입을 맡겨서 미안해. 그래도 이제 마법갑옷이 있으니까 널 곁에서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마법갑옷 때문에 신원이 바로 들통 날 거예요. 기사단에 속하지 않은 마법갑옷 소유자는 극소수니까요.”

“아, 그래. 그런 문제가 생기겠구나. 잠입에 도움이 되는 기능이 있어서 좋아했더니 꽝이었네.”

“실망하기는 일러요. 사람을 상대로는 몰라도 마족이나 다른 괴물들을 상대로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니까요.”

“맞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지.”

나는 눈치껏 나를 위로해주는 라우라의 머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쓰다듬어주었다.

라우라는 갸르릉하는 소리는 내고 귀를 쫑긋쫑긋 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내 손길을 즐겼다.

사람이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걸까? 아, 정말 귀여워서 미치겠다.

“라우라,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고 이리스의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은 뒤에는 너희 고향으로 가자.”

“거긴 가봤자 아무 것도 없는 걸요.”

“하다못해 추모비라도 세워주고 싶어서 그래.”

“레베카님, 감사하지만 부디 그러지 마시고 본인을 우선해서 살아주세요. 저는 그저 레베카님이 주시는 사랑만 있으면 충분한 사람이에요.”

라우라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싫은 모양이다.

저번에 이야기했을 때는 그리워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파괴된 고향을 보면 옛 추억이 떠올라서 견디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라우라의 고향에 직접 들르지는 않아도 그곳을 멸망시켰다는 오크 놈들에게는 대신 복수를 해주고 싶다.

그건 단순히 라우라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만든 설정으로 인해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겪은 일만큼은 책임지고 싶다.

“레베카님, 심각한 표정은 짓지 마시고 그냥 우리에게 키스를 해주세요. 네?”

나는 라우라가 원하는 대로 그녀와 이리스에게 키스를 해주었고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얼른 여관에 도착하기를 고대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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