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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56화 (56/271)

〈 56화 〉 55화

* * *

케케묵은 냄새가 풍기는 낡은 방이 한순간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무수한 총알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창문이 깨져서 생긴 유리파편과 벽이 뚫리며 흙먼지 그리고 가구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베로니카 언니의 밑에 깔린 채로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계속해서 발사되는 총알의 위력을 실감했다.

곧 총성이 멎었고 총에 맞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거나 울부짖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레베카, 괜찮니?”

베로니카 언니는 날카로운 파편에 귀가 찢겨나가는 바람에 피를 철철 흘리는 와중에도 내 안부부터 걱정했다.

다행히 나는 무사했지만 언니가 내 얼굴에 피를 뚝뚝 흘릴 정도로 다쳐서 화가 났다.

어떤 개새끼들인지 몰라도 잡아서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도창을 열고 우리를 공격한 놈들의 정체부터 파악했다.

우리 주변으로 새빨간 적들의 이름들이 나타났고, 나는 그 가증스러운 이름들을 모조리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런 뒤에 라우라와 이리스의 상황도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아무런 문제도 없이 특수상점 안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레베카?”

“지금 적들이 우리가 있는 건물을 포위하고 있어. 무기는 가지고 있지?”

“그래, 마력권총은 항상 들고 다녀.”

“일단 내가 마력소총을 줄 테니까 그것도 쓰도록 해.”

나는 가방에서 마력소총과 탄약을 잔뜩 꼽아둔 탄띠를 꺼내서 베로니카 언니에게 넘겨주었다.

언니는 내 가방의 능력에 흥미를 가질 틈도 없이 총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바로 총알을 장전했다.

그동안 나는 지도창을 보면서 적들의 움직임을 확인했는데 몇 명은 계속 우리가 있는 방을 주시하면서 몇 명은 건물로 들어오려고 하거나 이미 들어와서 1층을 수색하고 있었다.

“언니, 적들이 곧 2층으로 올라올 거야.”

“레베카, 네가 어떻게 적들의 움직임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믿고 따를게.”

“응. 맡겨만 줘.”

나는 자신감 있게 말하기는 했지만 과연 언니와 함께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럴 때 마법갑옷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당장 없는 것을 탓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우리는 몸을 잔뜩 웅크린 상태로 최대한 소리가 저게 나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서 복도에 있는 장식장 뒤에 숨어서 적들을 기다렸다.

출구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일단 건물로 들어온 적들을 죽여서 길을 만들어야 한다.

지도창에는 적들이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고 곧 그들 중에서 6명이 2층 복도로 올라왔다.

나는 언니에게 손짓으로 적들이 왔다는 것을 알렸고 세손가락을 편 뒤에 하나씩 접으며 함께 타이밍을 맞췄다.

‘지금이야!’

우리는 장식장 밖으로 상반신을 살짝 내밀었고, 나는 마력산탄총을, 언니는 마력소총을 복도로 들어선 적들을 향해서 발사했다.

우선 내가 쏜 마력산탄에 얻어맞은 적은 배가 터지면서 내장이 찢겨나갔고 강력한 저지력에 밀려 뒤에 있는 다른 적들을 밀쳐냈다.

그리고 베로니카 언니는 좀 더 뒤에서 대응에 나서려는 적들의 머리통을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적들은 순식간에 모두 죽었고 아래층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도창으로 놈들이 2층으로 올라오지 않고 1층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모습과 방을 쐈던 놈들이 우리가 몸을 숨긴 장식장 쪽을 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언니, 달려!”

나는 언니의 손을 잡고 죽어라고 시체가 쌓여있는 복도의 끝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리고 우리 뒤로 또 다시 어마어마한 양의 총알이 빗발쳤다.

누군가 무고한 이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그 사람의 시체가 바닥을 뒹구는 소리도 들렸다.

“헉, 헉! 씨발! 죽는 줄 알았네.”

“레베카, 너 생각보다 입이 험하구나?”

“언니, 지금 그게 중요해?”

“걱정 마. 우린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베로니카 언니의 과하게 긍정적인 태도에 실소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언니, 항상 마법갑옷을 입어서 지금도 그런 줄 아나본데, 그냥 옷이거든?

“1층에 13명이나 있어. 바리케이드 같은 것을 치고 우릴 기다리는 중이야.”

“제법 실력이 괜찮은 놈들인 모양이네. 숫자로 밀어붙이지 않고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 보면 말이야.”

“그래? 그럼 살아서 나가기 힘들겠는 걸?”

“내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너는 꼭 살려 보낼 거야.”

“난 언니가 죽는 것도 엄청 싫어. 반드시 둘이 함께 돌아가자.”

“알았어. 약속할게.”

베로니카 언니는 이 와중에도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언니의 여유가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부럽기도 했다.

“레베카, 2층을 사격할 수 있는 적은 몇 명이니?”

“5명이야.”

“1층은 내려가자마자 벌집이 될 것 같으니까 위에 있는 놈들을 양동작전으로 모두 처리하고 창문으로 빠져나가자.”

“알았어. 내가 바로 옆방에서 연막탄을 쏴서 적들을 견제를 할 테니까 우리가 있던 방에서 전부 죽여줘.”

“좋은 생각이야. 적들을 제거한 뒤에는 1층에서 눈치 채고 올라오기 전에 바로 창문에서 뛰어내리자. 할 수 있지?”

“응. 이 정도 높이는 문제없어.”

“좋아, 바로 움직이자. 그전에 약간 견제는 하고 가야겠지.”

베로니카 언니는 마력권총을 빼들고서 계단 밑으로 손만 내밀고 마구잡이로 쏴댔다.

그러자 1층에 있던 적들이 총알을 마구 퍼부었고 우리는 그 틈을 타서 작전대로 움직였다.

나는 바로 옆방으로 들어갔고 건너편의 2층짜리 건물옥상에서 술집을 조준하고 있는 적들을 향해서 마력권총으로 연막탄을 쐈다.

그러자 적들은 우왕좌왕하면서도 내가 있는 방을 향해서 총을 난사했다.

다행히 조준사격이 아니라서 아무렇게나 총알이 방을 두들겼지만 화염탄이 섞여있어서 결국 방에 불이 붙어버렸다.

나는 이러다 질식해서 죽겠다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거나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베로니카 언니가 적들을 깔끔하게 처리한 모양이다.

“레베카! 지금!”

나는 베로니카 언니의 외침을 듣자마자 바로 불길이 넘실거리는 창문너머로 뛰어내렸다.

바닥에 착지할 때 어설프게 낙법을 하는 바람에 온 몸이 아팠지만 그래도 다리를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빨리 일어나!”

베로니카 언니는 내 손을 잡고서 나를 벌떡 일으켰고 둘이서 함께 앞에 보이는 골목길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뒤에서 성난 목소리와 함께 우리를 쫓아오는 소리가 내 정신을 한층 더 일깨웠고 나는 지도창을 통해서 적들이 어떻게 추적하는지 살펴보았다.

아, 진짜! 지도창이 시야의 절반 이상을 가려서 너무 불편하다.

어떻게든 미니맵 기능이 필요한 이유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응? 앞에 적이 있잖아!

“언니, 이쪽으로!”

나는 황급히 베로니카 언니의 팔을 잡고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바닥에 연막탄을 쐈다.

우리를 포위하려던 적들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부리나케 우리를 추적했다.

난 언니와 함께 다른 골목 뒤에 숨어서 적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놈들이 아예 병력을 배치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적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났고 구시가지 전체를 뒤져가면서 우리를 찾아낼 기세였다.

대체 어느 높으신 분이 우릴 노리기에 이렇게 많은 병력을 기사단이 통제하는 도시에다 풀어놓을 수 있는 걸까?

“언니, 포위당했어.”

“가장 적이 적은 곳은 어디니?”

“그건... 이쪽이야.”

“그럼 거기를 돌파하도록 하자.”

나는 언니를 데리고 4명의 적이 다가오는 골목으로 달려갔다.

적들은 우릴 보자마자 총을 쐈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고 좀 더 빨랐다.

양옆이 막힌 골목길에서 요란한 총성이 나자 귀가 다 아팠지만 몸에 총구멍이 뚫려서 아픈 것보다야 훨씬 낫다.

“으윽!”

“언니?”

나는 베로니카 언니의 신음소리에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고 쓰러진 언니의 왼쪽 허벅지에서 많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씨발! 미치겠네, 진짜! 좆같은 새끼들이 언니를 다치게 만들어?

난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화풀이를 할 틈도 없이 가방에서 붕대와 막대기부터 꺼냈다.

그리고 총상의 위쪽을 붕대로 강하게 감고 막대기를 넣고 돌려서 강하게 압박하여 최대한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게 조치했다.

그런 뒤에 총상을 입은 부위도 붕대로 감아서 피가 밖으로 되도록 나오지 않게 막았다.

라우라에게서 배웠던 응급조치가 정말 유용하게 쓰였다.

나는 지혈을 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고 신전에서 받은 회복물약을 언니의 상처에 뿌리고 직접 먹였다.

“고마워...”

“인사는 나중에 하고. 얼른 여기서 벗어나자.”

나는 온 힘을 다해서 언니를 등에 업고서 안전한 곳을 향해서 달려갔다.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곳은 일단 기사단 본부와 가까운 신시가지이다.

구시가지라고 기사단이 순찰을 적게 도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상황을 볼 때 어떠한 이유에서 기사단이 구시가지에서 병력을 뺀 게 분명하다.

따라서 기사단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간다면 어떻게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도창을 주시하면서 우리의 앞을 막는 적들을 미리 파악하고 놈들을 향해서 마력권총으로 풍압탄을 쏘았다.

풍압탄은 좁은 골목길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면서 적을 무력화시켰고 나는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서둘러 그 지역을 벗어났다.

아슬아슬하지만 분명 내가 약간 더 유리한 술래잡기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우리 뒤를 쫓아오는 적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난 제발 그게 기분 탓이 아니기를 빌면서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로 이어지는 큰 도로로 빠져나왔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적들이 마구잡이로 총을 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기사단 병사들이 보이질 않았다.

분명 기사단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한 영지의 기사단 전체를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는 권력자가 나를 노린다고 생각하니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베로니카 언니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서 상처를 치료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난 베로니카 언니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실수하거나 붙잡힌다면 베로니카 언니는 과다출혈로 죽을 게 분명하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적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야.’

나는 점점 힘겹게 숨을 쉬면서 몸이 차가워지는 베로니카 언니를 등에 업은 상태로 인파를 빠르게 헤치고 나갔다.

인파는 적들의 공격을 막아주는 것과 동시에 내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어 적들이 더 추격하기 쉽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적들과 서로 눈치싸움을 하면서 겨우 특수상점과 멀지 않은 곳까지 도착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는 인적이 거의 없어서 적들이 마음 놓고 총질을 할 것이라는 거다.

‘연막탄을 쓰자.’

나는 다시 한 번 연막탄을 쓰고 혼란에 빠진 인파를 뒤로 한 채 전력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총성이 들리고 귓가에 총알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무시무시한 느낌을 받으며 제발 베로니카 언니의 등에 총알이 박히지를 않기를 기도했다.

“라우라! 이리스!”

나는 급하게 내 사랑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특수상점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마력권총을 든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리스는 마안을 사용해서 우리를 뒤쫓는 적들을 연막과 관계없이 정확하게 조준사격해서 처리했고 라우라는 아예 단검을 뽑아들고 연막 속으로 들어가서는 곳곳에 피를 뿌려대며 적들을 도살했다.

난 저렇게 무섭게 날뛰는 라우라를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적들의 비명소리는 완전히 끊어졌고 이리스는 사격을 멈췄다.

그리고 걷히기 시작한 연막 속에서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서 이미 죽은 적을 마구잡이로 찔러대는 라우라가 보였다.

“이리스, 언니를 부탁해. 나는 라우라를 데려올게.”

나는 베로니카 언니를 이리스에게 맡기고 바로 라우라를 향해 달려갔다.

라우라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면서 시체를 계속해서 찌르고 있었다.

나는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뒤에서 라우라를 끌어당겼지만 그녀는 계속 내 품에서 벗어나서 시체를 찌르려고 했다.

“진정해! 난 무사하니까 제발 그만해!”

“하지만, 하지만! 이 새끼들이 레베카님을!”

“라우라! 난 괜찮다고!”

내가 단호하게 외치자 그제야 내 말을 알아들은 라우라는 더 이상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

라우라는 전력질주를 한 나보다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더니 다짜고짜 날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분명 나를 잃을 뻔 했다고 생각했을 테지.

또 한 번의 상실을 경험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 라우라 입장에서는 눈이 돌아가서 미쳐 날뛸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내 입장에선 정말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괜찮아, 나 여기에 있어. 그러니 진정하도록 해.”

나는 라우라의 등을 토막이면서 그녀를 진정시켰고 그 와중에도 지도창을 보면서 적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아직 적들은 철수하지 않았고 이쪽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라우라, 위험하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아직 울고 있는 라우라를 데리고 특수상점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 숨어서 적들이 지나치기를 바랐다.

그런데 적들은 특수상점의 코앞까지 다가와서도 전혀 갈피를 잡지를 못하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사히 살아남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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