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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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도 마족도 아닌, 신화 속 하피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쉽사리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팔다리와 꽁지깃은 맹금족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머리와 몸통이 인간여성과 똑같고 그것이 두려움에 떨면서 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방금 새끼 맹금족들을 다 때려죽였던 것처럼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괴물들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는 없다.
그렇게 내가 손가락에 힘을 줘 방아쇠를 당기려고 할 때, 매대가리 맹금족의 품에서 떨고 있던 하피 같은 것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기사님! 제발 쏘지 말아주세요! 저는 모험가길드 소속 D급 모험가인 도로테아입니다!”
“뭐?”
나는 사람의 말을 하는 그것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도로테아라는 이름과 자신을 모험가라고 칭하는 그것의 얼굴은 너무나도 낯이 익었다.
칼스란을 닮아서 미녀이고 미나테린을 닮아서 휴먼족으로 태어난 바로 그 사람.
“너 설마... 칼스란 씨의 딸이야?”
“네! 저희 아버지를 아세요? 혹시 의뢰를 받고 저를 구출하러 오셨나요?”
도로테아는 맹금족의 품에서 뛰쳐나와서는 쇠창살을 붙잡고서 엄청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분명 내가 자신을 살려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희망을 걸어볼만하겠지.
그나저나 도로테아의 변형되지 않은 몸은 말 그대로 알몸이라서 엄청 추워보였다.
팔다리가 깃털로 덮여있어도 몸이 저러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이래서 다른 맹금족이 그녀를 꼭 안아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칼스란 씨에겐 큰 도움을 받았어. 그리고 난 기사가 아니라 너처럼 D급 모험가인 레베카 카론이야.”
“같은 길드원이었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실례지만 혹시 이리스의 주인이라는 그 레베카 씨인가요?”
“맞아. 이리스랑 만난 적이 있니?”
“아니요. 부모님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부모님은 잘 계시나요?”
“네가 죽었다는 통보를 받고 오열하셨어. 그래서 내가 너의 시신이라도 되찾아드리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것 같네.”
난 칼스란 부부에게 도로테아의 시신을 돌려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에 직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차라리 죽어있는 게 더 나을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
나는 도로테아를 상대로 분석스킬을 써서 그녀의 상태를 파악해봤다.
그리고 나는 도로테아가 억지로 만들어진 휴먼족과 맹금족의 혼종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인간과 마족의 혼종이라니?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누구긴 누구겠어. ‘엘’자 돌림을 사용하는 가면 쓴 놈들 짓이겠지.
요새의 창고에서 입수한 거대한 기생유충에 이어서 혼종까지 나타날 줄이야.
그 미친 새끼들이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일까? 새로운 세상이라도 창조할 속셈인 걸까?
“아빠, 엄마 죄송해요. 흑흑...”
도로테아는 맹금족과 같은 손으로 쇠창살을 붙잡은 채로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함께 감방에 갇혀있는 부상당한 맹금족이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해주었다.
마족 주제에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니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로테아는 맹금족 덕분에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아마도 짧은 시간동안 둘 사이에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
하지만 도로테아가 평범한 사람인 상태였다면 저 맹금족은 싸늘한 시체가 된 지 오래일 것이다.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테아, 대체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토벌대와 함께 후퇴를 하다가 포로로 잡혀서 지하에 있는 감옥으로 끌려갔어요. 거기서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들이 저처럼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벌레 알을 삼키게 했어요. 저는 엄청나게 아파서 정신을 잃었었는데 깨어나 보니 제 몸이 이렇게 변해있었어요.”
“이상한 가면? 혹시 특이한 금색 문양이 있는 하얀색 가면이었어?”
“금색 문양은 있었지만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어요.”
“그렇구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데?”
“몸속에서 엄청 큰 벌레가 튀어나와서 죽었어요.”
“혹시 이거야?”
“네! 그거에요. 저 말고는 다 그 벌레 때문에 죽었어요.”
도로테아는 내가 보여준 유리통 속의 벌레를 보더니 맹금족의 비늘 덮인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입수한 유충들은 확률적으로 사람을 마족과의 혼종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여긴 예전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니 깊이 생각하지는 말자.
지금 중요한 건 유충이 신체에 작용하는 원리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강제로 혼종으로 만드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다.
마물을 통제하는 기술과 사람을 혼종으로 만드는 기술이 서로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면을 쓴 놈들의 조직은 그 반인륜적인 기술들로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게 분명하다.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에 라우라와 이리스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쇠창살을 잡고 있는 도로테아를 보자마자 즉시 그녀에게 총을 쏘려고 했다.
“안 돼! 절대로 쏘지 마! 이 사람은 우리가 찾던 사람이야!”
내가 급한 대로 몸으로 막아서자 라우라와 이리스는 황급히 총구를 위로 들어서 실수로라도 내게 마력탄을 쏘지 않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라우라는 마력총 대신 장검을 꺼내들고는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레베카님, 속지 마세요. 저건 그냥 사람처럼 생긴 괴물일 뿐이에요.”
“진정해. 원래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발견한 유충 때문에 몸이 변한 불쌍한 사람이야.”
“증거가 있나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면 레베카님이 위험해져요.”
“단순히 생김새가 똑같은 괴물일 뿐이라면 자기 부모님 생각에 울지 않았겠지.”
내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들자 라우라는 바로 멈춰 섰다.
그녀의 약점을 꺼내 들어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망설였다가는 바로 도로테아를 베어서 죽여 버릴 기세였으니까.
“라우라, 레베카님의 말씀처럼 저 사람은 칼스란 씨와 미라테린 씨의 딸이야. 우리 같이 사진을 봤었잖아. 그리고 난 두 분이 도로테아 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많이 들었어. 본인들의 딸을 정말 사랑하시는 분들이야. 그러니까 죽이지 말아줘. 응?”
이리스도 나를 거들어서 라우라를 말리며 장검을 귀고 있는 그녀의 팔목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러자 라우라는 마지못해서 장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하고 말았다.
“휴우, 우리가 하는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죄송해요.”
“아니야. 나도 처음에는 너처럼 그렇게 반응했었어. 도로테아가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나도 방아쇠를 당겼을 거야.”
나는 라우라를 포옹하며 위로를 해주었다.
그러자 풀이 죽었던 라우라가 조금은 기운을 차렸다.
“레베카님, 그럼 저 맹금족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게... 도로테아랑 친해 보이더라고.”
“친하다고요?”
“응. 내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도로테아를 안아주고 있었고 방금 전에도 도로테아가 우는 걸 달래줬어.”
“하아, 오늘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에요.”
라우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벽에 기대었다.
새벽에 도미닉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유충에, 혼종에, 사람에게 우호적인 마족까지 튀어나왔으니 머리가 아플 만도 하지.
솔직히 나도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우리끼리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하지만 도로테아를 도시로 데려가 봤자 처형당하거나 실험실로 직행하는 결말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자유롭게 풀어주는 게 정답일까? 잘 모르겠다.
일단 도로테아에게 정보를 더 얻어야겠다.
“도로테아, 저 맹금족은 너랑 무슨 관계야?”
“애인이에요. 제가 마르코라는 이름도 붙여줬어요.”
도로테아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고 마르코라는 이름을 가진 맹금족에게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마르코도 사람처럼 풍부한 표정을 짓지는 못해도 그윽한 눈빛으로 화답했다.
나 참, 내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하하... 그래서 사연이 어떻게 되니?”
“저는 몸이 변한 뒤로 맹금족에게 넘겨졌어요. 당연히 강간을 당했고 노예취급을 받았어요. 하지만 마르코는 달랐어요. 이 사람은 서러워서 울고 있던 저를 위로해주고 약과 음식을 챙겨줬어요.”
마족보고 사람이라... 마르코가 도로테아에게 진심으로 잘해줬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도로테아가 혼종이 된 탓에 동족의식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사람이 마족에게 사랑을 느낄 정도로 친절을 베푼 것은 확실하다.
“마르코는 식인과 강간을 거부해서 평생 노예로 살아왔다고 해요. 그래서 저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어서 도와준 거예요. 저한테는 생명의 은인이에요.”
“설마 둘이 서로 말이 통하는 거니?”
“네, 뭐라고 설명은 못 드리겠는데 대화가 가능해요. 아, 마르코가 레베카 씨에게 우리를 죽이지 않아서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도로테아는 마르코가 새처럼 지저귀는 소리를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내게 그의 뜻을 전해주었다.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마르코가 보였던 마족답지 않은 태도를 생각해보면 진실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저 내가 순진하게 구는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감옥의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도로테아, 너희들을 감옥에서 꺼내주도록 할게. 마르코에게는 태도와 행동을 조심해달라고 전해줘.”
“네! 감사합니다, 레베카 씨!”
나는 마법갑옷의 힘으로 자물쇠를 간단하게 부수고 쇠창살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도로테아는 다친 마르코를 부축해서 감옥 밖으로 나왔다.
라우라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탐탁찮게 여겼지만 그녀와 달리 이리스는 아예 도로테아를 도와서 그녀와 함께 마르코를 부축해주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과 혼종, 마족이 모두 놀라서 이리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마르코는 뭐라고 새소리를 냈고 도로테아도 비슷한 소리로 답하더니 이리스에게 마르코가 고마워한다고 전해줬다.
혼종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인간이 마족을 도와주다니 웃지 못 할 일이다.
이리스가 저렇게 나서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컷 맹금족을 때려죽인 뒤라서 그런지 직접 부축해주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방에서 산 회복물약을 꺼냈다.
“이거 마족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역시 신전에서 만든 거라서 안 될까?”
“마족에겐 거의 즉효성이에요.”
“신전에서 만든 건데도?”
“네, 신전에서는 신성한 의식의 결과물이랍시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냥 대대로 전해지는 비법대로 약을 제조해서 팔아먹는 것뿐이에요. 그러니 생명력이 더 강한 마족에게는 효과가 더 좋을 수밖에요.”
라우라는 신랄하게 신전을 비난했다.
이 세상의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종교의 권위가 약한 것인지 라우라가 당돌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라우라를 믿고 도로테아에게 회복물약을 건넸고 그녀는 즉시 그것을 마르코에게 먹였다.
그러자 마르코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더 이상 부축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라우라는 혹시나 마르코가 덤빌까 싶어서 칼자루에 손을 얹었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마르코는 도로테아를 통해서 나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의 눈빛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도로테아,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니?”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마르코랑 둘이서 조용히 살아보려고 해요. 사람과 마족이 살지 않는 곳이라면 당분한 안전하겠죠.”
도로테아는 분명 애정이 담긴 눈으로 마르코를 바라보았고 마르코도 비슷한 눈빛을 도로테아에게 보냈다.
난 두 사람이라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대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보내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레베카님, 둘이서 같이 살면서 새끼를 계속 낳으면 그땐 마족부락이 하나 더 생기는 건 시간문제에요.”
역시 라우라는 반대를 하고 나섰고, 그녀의 말은 당연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도로테아와 마르코 사이에 혼종이든 마족이든 무언가가 태어나면 결국 피해를 볼 사람이 생길 지도 모른다.
여기서 둘 다 적절하게 ‘해방’시켜주는 게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확실한 적도 아닌 상대에게 냉정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걱정 마세요. 전 더 이상 알을 낳을 수 없거든요. 혹시 전망대에 들어왔을 때 알들을 보셨나요? 그건 전부 제가 낳은 알들이에요. 짧은 시간동안 알을 너무 많이 낳아서 자궁이 완전히 망가져버렸죠. 그러니 그 부분은 안심하셔도 돼요.”
갑자기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특히 대놓고 새끼를 낳는다는 말을 꺼냈던 라우라가 투구 너머로도 당혹스러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라우라는 도로테아에게 짧게나마 사과를 했다.
“미안.”
“괜찮아요. 제가 당신의 입장이었다면 똑같은 말을 했을 테니까요. 만약에 다시 알을 낳을 수 있게 되더라도 바로 다 부숴버릴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도로테아는 이미 결심을 단단히 굳힌 상태였다.
끝도 없는 절망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새로운 삶의 각오를 다지는 그녀를 보니 여러 가지로 복잡한 기분이 든다.
마르코는 도로테아의 깃털 덮인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녀의 뜻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저 자식 사실은 마족이 아니라 인형탈을 쓰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도로테아에게 너무 친절하잖아. 역시 자기가 사랑하는 암컷. 아니, 여자라 이건가.
“라우라, 이리스. 너희들은 도로테아를 믿을 수 있니?”
“네, 레베카님. 저는 믿을 수 있어요.”
“라우라, 너는?”
“저는 못 믿어요. 하지만 레베카님의 선택은 전적으로 믿어드릴게요.”
“고마워. 그럼 지금 즉시 도로테아와 마르코를 자유롭게 풀어주기로 하자.”
두 사람의 앞길을 막고 있던 우리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자 잠깐 머뭇거리던 도로테아와 마르코가 서로 손을 잡고서 우리를 지나쳐 위쪽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앞에 섰다.
“도로테아, 네 부모님에게는 어떻게 전해드릴까?”
“제 머리카락을 잘라가서 죽었다고 전해주세요.”
“알았어. 그렇게 해줄게.”
나는 라우라에게서 단검을 받아 기다란 도로테아의 머리카락을 잘라 단발로 만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 밑으로 깃털이 새로 올라오는 게 보였는데 아마 시간이 지나면 머리카락도 결국 모두 깃털로 대체되는 모양이다.
“밖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니까 봉우리 뒤쪽으로 도망치도록 해.”
“다들 정말 고맙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꼭 은혜를 갚아드릴게요.”
“둘이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면 그게 은혜를 갚는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로테아는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며 나를 포옹했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고 포옹이 끝난 뒤에는 가방에서 옷을 몇 벌 꺼내주었다.
도로테아는 알몸이었던 몸통을 따뜻한 옷으로 가렸는데 보고 있는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곧 도로테아와 마르코가 사다리를 타고 바깥으로 나갔고 우리도 둘을 따라갔다.
“잘 가, 도로테아. 부모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릴 테니 걱정 말고.”
“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떠날게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래. 행운을 빌게.”
우리는 도로테아 커플과 작별하고 그들이 날개처럼 생긴 팔을 쭉 펼치고 나란히 봉우리 밑을 활강해서 내려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두 사람의 모습은 빠르게 멀어졌지만 둘이 서로를 향해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둘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디선가 총성이 두 번 연속으로 들렸고, 총에 맞은 도로테아와 마르코가 동시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분노를 느끼며 총성의 근원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기하학적인 금빛 문양이 새겨진 하얀색 가면을 쓴 남자가 있었다.
엘쿠단. 그가 자유로운 삶을 갈망했던 도로테아와 마르코를 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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