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41화
* * *
전투가 끝난 뒤에는 으레 전리품을 챙기는 시간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나는 우리가 구출한 사람들을 먼저 챙겼다.
나는 우선 라우라에게 배운 대로 모닥불을 피웠다.
원래 움집 안에다가 불을 피우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움집을 그냥 땔감으로 써버렸다.
처음에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그들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악몽이 깃든 움집에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추위고 뭐고 그냥 다 태워버렸을까? 당해보지 않으면 어떤 기분인지 모를 거야.’
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가방에서 담요나 겉옷처럼 체온을 유지할만한 것들을 다 꺼내서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사람들을 위해서 물통과 간편식이 들어있는 상자를 꺼냈다.
사람들은 내게 고맙다며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는 모닥불 앞에서 모여앉아 몸을 녹이며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내 호구처럼 보이는 짓에 사람들이 희망을 얻은 모습을 보니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내 손에 해방된 사람들의 시신이 있는 무너진 움집으로 갔다.
‘이 사람들은 묻어주는 게 좋겠지.’
나는 불행한 여성들의 시신을 살덩어리에서 꺼내주려고 했지만 그것과 융합된 상태라서 단순히 잡아당긴다고 분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처에 떨어져있는 야수족의 칼을 이용해서 시신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주변부의 살덩어리를 도려내고 시신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살덩어리가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해내면서 격렬하게 꿈틀거렸고 시신을 완전히 분리해내자 죽은 것처럼 생기가 사라졌다.
나는 이런 걸 설정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볼 때마다 역겨웠다.
분석스킬을 써도 그냥 생체공장이라는 이름만 나올 뿐, 특별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언젠가 분석스킬의 레벨이 오른다면 그때 더 정확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나는 수습한 시신들을 하나씩 등에 업고 움집 밖으로 꺼냈다.
그걸 본 구출된 사람들은 내 곁으로 몰려와서는 시신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부탁을 했다.
“모험가님, 이 사람들은 저희 가족이니 여기서 묻어주는 게 아니라 집으로 데려가서 제대로 장례를 치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물론이죠.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유감이에요.”
“아닙니다. 여기서 끝이 나서 다행이지요. 모험가님 덕분에 나머지 가족들이라도 살아남았으니까요.”
“그렇... 군요.”
나는 씁쓸함을 느끼며 유족들에게 수습한 시신들을 넘겨주었다.
유족들은 사지를 잃고 괴이한 살덩어리와 융합된 시신들을 보며 오열했고 시신을 담요로 덮어서 완전히 모습을 가린 뒤에도 쉽사리 울음을 멈추질 못했다.
특히 부모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울부짖는 모습은 내 양심을 깊게 후벼 팠다.
‘이 사태도 근본적으로 나 때문이겠지.’
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죄책감을 느끼며 뒤돌아섰다.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나도 엄청나게 많이 울어버릴 것 같아서다.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이 부락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야수족의 시체에 발이 걸려서 넘어질 뻔했다.
“씨발! 좆같은 병신새끼!”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차갑게 굳어버린 시체를 마구 걷어차고 발로 짓밟으며 화풀이를 했다.
이런 지랄 맞은 세상의 탄생에 크게 일조한 장본인인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내 사악한 창조물에다가 풀었다.
만약 내게 초능력이 있다면 마족을 세상에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몇몇 게임시스템을 마법처럼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위대한 용사도, 존경받는 대마법사도 될 수 없고 여자만 밝히는 그런 인간이란 말이다!
“쓸모없는 새끼! 또라이 같은 변태새끼!”
“레베카님! 제발 진정하세요. 네?”
“이리스...”
이리스는 내 추태를 참을 수 없었는지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는 번쩍 들어서 야수족의 시체에서 멀리 떼어놓았다.
그녀는 내 거친 욕설에 좀 놀란 눈치였지만 실망보다는 걱정이 더 큰 것 같았다.
이리스는 약간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선한 눈망울을 보고 있으니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미안해. 너한테 못 볼꼴을 보여주고 말았네.”
“아니에요.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니까요. 저도 마음속으로는 저 야수족에게 몇 번이고 욕을 했어요. 그러니 괜찮아요.”
이리스는 내가 야수족이 저지른 만행 그 자체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봤자 이해하지도 못할 말을 이리스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으니 그냥 그녀의 말을 진실인양 받아들이기로 했다.
“맞아. 정말 사악한 놈들이지. 마족이 세상에서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어.”
“레베카님 같은 모험가들이나 기사님들이 열심히 마족들과 싸우고 있으니까 언젠가 세상이 안전해질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이리스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긍정을 따라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의뢰를 맡을 때나, 의뢰를 수행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꼭 일을 다 마무리 짓고 나면 우울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나는 그 우울함을 떨쳐내려고 무턱대고 이리스를 포옹했다.
그러자 이리스는 말없이 내 등을 토닥이며 정성껏 나를 위로해주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서 눈물이 다 날 것 같다.
라우라에 이어서 엄마 같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다.
어쩌면 나는 하렘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일방적인 보살핌을 받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참동안 이리스에게서 위로를 받은 뒤에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이제 괜찮으세요?”
“응.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
“저도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기뻐요.”
이리스는 쑥스러워하면서 씩 웃었다.
난 그게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이리스의 턱을 손으로 잡아서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키스라고 하기엔 살짝 부족했지만 이리스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내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리스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 사이에 라우라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검을 든 채로 미소를 짓고 있어서 괜스레 무섭게 느껴졌다.
“어머나, 분위기가 참 좋네요.”
라우라는 내 볼에 뽀뽀를 하고는 이리스에게 바짝 다가가 뭐라고 귓속말을 하더니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라우라! 그런 거 아니야!”
이리스는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라우라의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대체 무슨 말을 주고받은 걸까? 궁금하네.
“정말? 나는 맞는 것 같은데. 후후후. 레베카님, 제가 마핵을 모아왔어요.”
“어쩐지 네가 안 보이더라. 수고 많았어.”
“원래 이리스랑 같이했었어요. 갑자기 사라져서 저 몰래 레베카님과 애정행각을 벌이긴 했지만요. 순수한 줄 알았는데 꽤나 밝히는 구석이... 이리스, 잠깐만! 꺅! 히히히!”
라우라는 자신을 또 때리려고 드는 이리스를 상대로 도망쳤고 이리스는 라우라의 뒤를 쫓아서 뛰어갔다.
나는 둘이서 귀엽게 노는 걸을 보면서 웃다가 라우라가 준 피 묻은 주머니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해보았다.
총 22개의 마핵이 들어있었고 그 중에서 2개는 다른 것들보다 크기가 더 컸다.
아마도 코뿔소대가리에게서 채취한 마핵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칼스란에게 제법 괜찮은 선물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뿔들은 다 뭐지?
나는 마침 술래잡기를 끝내고 돌아온 라우라에게 뿔의 용도를 물어보기로 했다.
“라우라, 뿔은 어디에 쓰려고?”
“당연히 팔아야죠. 녹용도 짭짤하지만 서각은 훨씬 비싸게 팔려요.”
“진짜 동물이 아니라 마족인데도?”
“네, 크기가 작긴 해도 성분은 똑같거든요.”
“그렇구나. 아주 잘했어! 덕분에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겠는걸.”
“히힛! 더 칭찬해주세요. 얼른요.”
나는 라우라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하는 부탁에 바로 진하게 키스를 해주었다.
몇 마디 말보다는 키스가 훨씬 더 효과가 좋을 것이다.
키스를 하는 도중에 슬쩍 눈을 떠보니 이리스의 부러워하는 눈과 딱 마주쳤다.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곧 네 차례가 올 거라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이리스는 미묘한 미소를 짓더니 종종걸음으로 도망쳤다.
나는 라우라와의 키스를 마무리 짓고 황홀한 표정의 그녀와 시선을 교환했다.
“헤헤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라우라는 이리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서 귀를 수시로 쫑긋거리며 나의 체온을 즐겼다.
얼굴도 귀여운 사람이 하는 행동도 귀여운 게 너무 사랑스럽다.
“자, 그럼 이제 돌아가자. 저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줘야지.”
“네, 레베카님. 저희들이 떠날 채비를 할 테니 잠시 쉬고 계세요.”
라우라는 도망친 이리스를 찾아가서 함께 구출한 사람들을 챙겼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친절을 베푸는 두 사람이 무척 사랑스럽다.
‘그럼 나는 전리품을 챙겨야지. 응? 이거 왜 이래?’
나는 전리품을 가방에 넣으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방벽 같은 것에 막혔다.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달라질 게 없었다.
뭐야? 고장인가? 아참! 주의사항이 있었지.
나는 가방에다가 분석스킬을 써서 설명을 쭉 훑어보았다.
아무래도 마핵을 넣은 주머니는 피가 축축하게 묻어있어서 액체가 흐른다는 이유로 거부되고 방금 자른 뿔은 사체로 인식되어서 거부되는 것 같다.
여차하면 그냥 손으로 들고 가도 되겠지만 방금 떠오른 해결법을 시험해봐야겠다.
일단 나는 가방에서 적당한 크기의 상자를 꺼냈고 거기다가 마핵을 털어 넣고 잘라낸 뿔도 함께 넣은 뒤에 뚜껑을 단단히 닫았다.
그런 뒤에 상자를 다시 가방에 넣었는데 다행히 아무런 문제없이 보관되었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상자에다가 마족에게서 채취한 것들을 모아서 가방에 넣어야겠다.
“레베카님, 떠날 준비를 끝냈어요. 마침 수레가 있어서 시신을 옮기는데 쓰기로 했어요.”
“잘했어. 그럼 출발하자.”
“네, 레베카님. 이리스! 출발이야!”
“응! 여러분, 저희들이 지켜드릴 테니 침착하게 이동하도록 해요.”
우리들은 사람들을 이끌고 부락에서 빠져나왔다.
사람들은 내가 준 담요와 겉옷을 몸에 걸치고서 앞뒤로 수레를 끌고 밀었다.
수레에는 수습된 시신들 말고도 인골이 잔뜩 실려 있었는데 우리가 오기 전부터 꾸준히 희생당했던 사람들의 유해인 것 같다.
우리는 이곳에 올 때처럼 각자 구역을 나누어서 주변을 경계하며 숲을 빠져나왔다.
점점 눈발이 약해지고 이내 그쳤지만 그동안 쌓인 눈이 많아서 수레를 끌고 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가족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이런 식으로라도 져야한다며 도움의 손길을 마다하고 끝까지 직접 수레를 끌었다.
결국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인원이 많고 옮길 수레가 있으니 이동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사람들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숲을 빠져나와 도로변에 이르자 사람들은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하느라 체력이 엄청 떨어진 상태에서도 지독한 죄책감 때문에 애를 쓴 결과였다.
나는 그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행동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여러분,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갈게요.”
나는 사람들에게 휴식시간을 주고는 지도창을 열고서 주변을 지나가는 마차가 없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러다 나는 지도창에 2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모두 이름이 하얀색으로 표시되는 것을 보면 굳이 경계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상단이라면 적당히 돈을 쥐어주고 우리를 태워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레베카님, 북쪽에서 다친 모험가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혹시 토벌대가 아닐까요?”
마안을 써서 주위를 살펴보던 이리스는 내가 지도창에서 발견한 사람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나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다친 모험가들이라니? 뭔가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몇 분 정도 기다리고 있으니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험가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서 프랑카를 향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이 내 눈에 확실히 보였다.
행렬의 맨 앞에는 중상자를 태운 마차 2대가 있고 중간 중간에 짐마차들이 있었는데 맨 뒤에 있는 큰 짐마차에는 시신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전쟁이라도 난 것 같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의문을 해결하고 겸사겸사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그나마 제일 정신이 멀쩡해 보이는 휴먼족 모험가에게로 달려가 사정을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요! 잠시 만요. 혹시 이번에 결성된 토벌대 소속인가요?”
“그랬었죠. 지금은 그만 뒀지만요.”
10대 후반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의 남자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팔에 부목을 대고 있었고 머리를 붕대로 둘둘 감고 있었다.
붕대에는 피가 좀 묻어있었지만 이렇게 걸어 다니는 걸보면 큰 부상은 아닌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산꼭대기에 있는 요새로 갔더니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맹금족과 함께 우리를 공격했어요.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죠.”
“맙소사.”
“그래서 급한 대로 후퇴를 했는데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이 혼자서 우릴 추격하면서 동료들을 엄청나게 죽였어요. 그땐 정말이지 사냥당하는 기분이었죠.”
모험가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비교적 멀쩡히 살아남았는데도 몸을 떨면서 눈물을 훔치는 걸까?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었다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이라니? 혹시 엘카힘이 아닐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은 그 년 밖에 없으니 바로 의심된다.
“혹시 여자였나요?”
“아니요. 남자였어요.”
남자라면 엘카힘이 아니지만 분명 그 년의 동료나 부하 같은 놈일 것이다.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고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그 요새는 지도창에서 파란색으로 표시되는 지역이니 이상한 가면을 쓴 남자는 분명 우리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그 요새로 가서 결판을 내야할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우리 모두 마족과 거래가 하는 사람이 있다는 보고서를 허풍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 대가로 이렇게 패잔병이 되고 말았죠. 우리가 모두 어리석었어요.”
“그런 비상식적인 일은 직접 보지 않고서야 쉽게 믿을 수는 없잖아요. 힘내세요.”
“고마워요. 그런데 저기에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요?”
“아, 근처에 있는 야수족 부락에서 구출한 사람들이에요. 원래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었는데 이래서야 도와달라는 것 자체가 미안할 지경이네요.”
“아니에요. 길드원끼리는 언제든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모험가는 행렬의 맨 앞에 있는 사람에게 달려가서 뭐라고 대화를 주고받더니 작은 짐마차 하나를 끌고서 나에게 돌아왔다.
“다른 마차는 자리가 없어서 여기에 태워야할 것 같아요. 짐이 별로 없어서 자리는 충분하지 싶어요.”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그럼 가서 사람들을 태우도록 할까요?”
“네, 따라오세요.”
나는 친절한 모험가를 데리고 일행과 합류했다.
그리고 우리가 구출한 사람들을 짐마차에 태우고 시신과 유골들도 함께 실었다.
모험가는 담요에 덮인 시신의 윤곽만 보고도 어떤 상태인지 짐작하고는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이런, 자리가 부족하네요. 이걸 어쩌죠? 자신 있게 자리가 충분하다고 했었는데...”
“괜찮아요. 저희들은 걸어가면 되니까요.”
나는 미안해하는 모험가의 어깨를 두드리며 여유를 부렸다.
사실은 걸어가려니 벌써부터 발바닥이 아픈 것 같지만 말이다.
“라우라, 이리스, 우리도 토벌대랑 같이 돌아가자.”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서 토벌대 행렬에 합류했다.
모험가들은 모두 공포와 패배감에 축 처져있었지만 그들의 가족들은 모두 생환을 기뻐할 것이다.
그나저나 마족과 거래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그놈들과 함께 모험가들을 공격하는 놈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 미친 식인종들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이상한 가면남이 엘카힘과 연관이 있다면 마물을 통제하는 기술처럼 상식에서 벗어난 기술로 마족과 소통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레베카님, 혼자 뭘 그렇게 고민하세요?”
“마족과 함께 토벌대를 공격한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일지 생각하고 있었어.”
“저번에 저랑 같이 봤던 그 놈들인 모양이네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단순히 거래만 하는 줄 알았더니 아예 같은 편이었나 봐.”
“인류의 배신자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라우라는 이번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인간성의 바닥을 본 사람이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후우, 괜히 스트레스만 쌓인다.
프랑카로 돌아가면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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