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40화
* * *
우리가 야수족이 살고 있는 숲 언저리에 도착할 즈음에, 갑자기 날이 흐려지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양이 제법 많아서 시야를 방해할 정도였지만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다행히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고 기온도 그렇게 낮지 않아서 이동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우리는 조금씩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숲길을 따라 일렬로 걸었다.
라우라는 오른손에는 마력권총, 왼손에는 베로니카가 준 장검을 쥐고 앞장서면서 전방을 주시했고 그 뒤를 내가 마력산탄총을 들고 따르며 양옆을 경계했다.
그리고 맨 뒤에서는 이리스가 마력소총을 들고서 주기적으로 뒤쪽을 살펴보았다.
마법방어구가 있다 하더라도 숲 속에서는 갑자기 어디서 어떤 식의 습격을 받을지 모르니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인류추적스킬 덕분에 마법방어구로는 막을 수 없는 인간의 기습을 미리 파악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확실히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니까 담당해야할 구역이 줄어들어서 좋네. 앞으로 다른 종류의 추적스킬들을 추가로 더 얻으면 이렇게까지 주의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이리스의 예속퀘스트가 활성화되면 동물을 추적할 수 있는 스킬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의외로 다른 특수스킬을 얻을지도 모르지만 라우라의 선례를 봤을 때 당사자의 경험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이리스는 사냥경험이 풍부하니까 분명 예속퀘스트 활성화로 내가 원하는 스킬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얼른 조건을 채우자.’
일단 이리스를 저주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으로 그녀의 나에 대한 호감도가 3에서 4로 올랐으니 이제 슬슬 키스부터 시작해봐야 할 것 같다.
라우라 때는 그녀가 먼저 나서줘서 편했지만 이리스 성격에 나한테 먼저 구애를 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네.’
숲에 들어올 때부터 띄워놓았던 지도창을 보니 물음표 지역이 가까워졌고 곧 야수족 부락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나는 지도창의 필터기능을 조작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타나도록 바꿨다.
그러자 야수족 부락에 잡혀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맹금족의 요새에서처럼 한쪽에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갇혀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여자들만 있었다.
그 씨받이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이름에 X자가 쳐져있었는데 아마도 사실상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
씨받이가 된 사람은 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죽여주는 게 예의인 세상이니 지도창에도 그렇게 표시가 되는 모양이다.
씨받이는 2명,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5명인데 인신매매를 하는 맹금족의 요새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갇혀있었다.
변수가 없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을 모두 구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지도창을 보는 사이에, 우리는 숲 한가운데에 있는 공터와 그곳에 지어진 크고 작은 움집들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도착했다.
우리는 몸을 낮추고 덤불숲 사이로 몸을 숨긴 채로 이동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포복을 했다.
옷과 얼굴이 눈과 진흙, 마른 이파리로 엉망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선 망원경으로 상황을 살펴보고 작전을 짜서 움직이자.”
나는 가방에서 망원경을 꺼내서 야수족의 부락을 살펴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끼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씨라서 렌즈가 햇빛에 반사될 걱정은 없었지만 나도 시야가 제한되어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부락은 하나의 큰 움집과 4개의 작은 움집으로 이루어져있고 목책으로 둘러싸여있었다.
하지만 야수족의 움직임과 머릿수를 파악하기에는 시야가 너무 좋지 않았다.
“눈 때문에 적들이 제대로 안 보여.”
“그럼 제가 살펴볼게요.”
“아, 맞다. 네 마안이 있었지. 부탁할게.”
“네, 레베카님.”
나는 이리스에게 정찰을 맡겼다.
그녀가 오른쪽 눈에 마력을 집중하자 입원 1일차에 보았던 홀로그램 렌즈 같은 것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리스는 그 신기한 마법이 담긴 눈을 통해서 야수족 부락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는데 렌즈들이 서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배율을 조정하는 듯 했다.
“어때?”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적은 18마리에요. 코뿔소대가리가 달린 족장 하나를 제외하면 특별한 개체는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움집 안에 있는 적들은 제 마안으로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단정 짓지는 못하겠어요.”
“한계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족장이라고?”
“네, 대형초식동물의 대가리가 달린 야수족은 모든 면에서 동족보다 우월해서 족장으로 추대돼요. 피부가 워낙 튼튼해서 마력권총탄은 아예 먹히지 않아요.”
“다른 무기들도 있어서 다행이네. 다른 특이사항은?”
내 질문에 이리스는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돌멩이와 나뭇가지로 상황을 표현해주었다.
덕분에 나와 라우라는 보다 쉽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부락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셋이고 입구마다 둘씩 경비를 서고 있어요. 코뿔소대가리는 부하 2마리와 함께 큰 움집으로 들어갔고 그 위에서 4마리가 눈을 치우다가 내려갔어요. 그리고 나머지 움집을 다른 야수족들이 계속 들락거리고 있어요.”
“마침 눈이 많이 와서 다행이네. 저 많은 수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잖아.”
“저는 날씨와 관계없이 저격이 가능하니 만약에 레베카님께 위험한 일이 생기면 최대한 빨리 처리해드릴게요.”
“정말 믿음직스러운 말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내가 하는 말에 지금까지 조용히 주변을 경계하던 라우라가 나섰다.
그녀는 이리스가 만들어 놓은 일종의 상황판에다 나뭇가지를 이용해 추가적으로 뭔가를 더 그렸다.
“남쪽에 있는 입구가 다른 입구와 거리가 있는 편이고 덤불이 무성하니 그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입구에 있는 경비들을 조용히 처리한 뒤에 부락 안으로 몰래 진입해서 움집에 불을 붙이면 적들이 알아서 튀어나올 거예요. 그때 이리스가 족장을 저격해서 처리하면 지휘체계가 단번에 무너지겠죠.”
라우라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본인이 생각해둔 작전을 술술 늘어놓았다.
현상금사냥꾼 출신 눈표범족이니 이런 폭설이 내리는 날씨 속에서 적을 몰래 죽이는 건 일도 아닌 모양이다.
“나는 뭘 하면 좋을까?”
“저랑 같이 남쪽입구 근처까지 가서 제가 일을 처리하는 동안 엄호해주세요. 만약 제가 경비에게 들키면 바로 화염탄을 큰 움집에 쏴주세요. 그리고 이리스가 족장을 제거하면 저와 함께 다른 야수족들을 처리하면 돼요.”
“알았어. 그렇게 하도록 하자. 아참, 여기에 있는 움집 2개는 사람들이 갇혀있는 곳이니까 공격하면 안 돼.”
이번 작전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이다.
경험이 많은 애들 사이에 있으니 딱히 제안할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있는 움집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지도창 덕분에 알아낸 정보이지만 라우라와 이리스는 내가 망원경으로 알아낸 정보로 생각하는지 출처를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리스는 족장이 나오기 전에는 일단 대기하고 있다가 족장을 처리한 뒤에 자유롭게 적을 저격하고 우리가 부락 안으로 진입하면 그때부턴 엄호해줘.”
“응! 열심히 할게.”
라우라 덕분에 작전이 금방 다 만들어졌으니 남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계획대로만 돌아간다면 어렵지 않게 적을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레베카님, 얼른 출발해요.”
“그래.”
우리는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뒤로 돌아서 내려갔다.
그리고 남쪽입구 앞에 무성하게 펼쳐진 덤불숲 안으로 숨어들어 포복으로 움직였다.
너무 빨리 움직이면 적들이 눈치를 챌 수 있으니 천천히 갑작스럽지 않은 움직임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갈수록 눈발이 더 거세져서 이대로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눈에 파묻혀버릴 것 같았다.
“레베카님, 여기서 대기해주세요.”
“응. 조심해.”
라우라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대각선 방향으로 열심히 기어가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마력권총에 화염탄을 한 발 장전한 다음에 남쪽입구를 지키고 있는 노루대가리와 당나귀대가리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목책을 따라서 살금살금 숨죽여 움직이고 있는 라우라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라우라의 발걸음은 워낙 가볍고 조용해서 야수족 경비들은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질 못했다.
라우라는 내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노루대가리를 향해 훌쩍 뛰어오르더니 위에서 밑으로 내리찍는 식으로 정수리에 내가 선물한 단검을 박아 넣어 죽였다.
그녀는 놈이 바닥에 쓰러지지 않게 붙잡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바닥에 눕힌 다음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당나귀대가리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당나귀대가리가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놈의 뒤로 돌아가 단검으로 뒷목을 찔러서 단숨에 죽여 버렸다.
순식간에 경비들을 처리한 라우라는 부락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상황을 살펴보다가 자연스럽게 입구너머로 진입했다.
침착하게 큰 움집까지 도달한 라우라는 부싯돌을 이용해 그곳에 직접 불을 붙이고 주변에 있는 횃불들에도 불을 붙여서 다른 움집에다 던진 뒤에 유유히 부락을 빠져나왔다.
처음엔 작았던 불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더니 곧 마른 짚더미로 만들어진 움집을 빠르게 집어삼켰다.
불이 거하게 붙은 큰 움집에서 야수족들이 부리나케 뛰쳐나오는 모습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라우라가 내 곁으로 돌아왔다.
“레베카님, 저 어땠나요?”
“엄청 멋있었어.”
나는 라우라와 함께 덤불숲에 숨은 채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라우라는 갸르릉소리를 내면서 귀를 쫑긋거리고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신나는 기분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짧은 칭찬을 끝낸 나는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야수족은 엄청나게 당혹스러워하면서 불을 끄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녔고 부하들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큰 코뿔소대가리를 가진 족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저게 족장인가? 확실히 덩치가 크네.”
“이제 슬슬 이리스가 처리할 거예요. 아, 역시 정확한 솜씨네요.”
라우라는 먼 곳에서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코뿔소대가리에 구멍이 뻥 뚫리는 모습을 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리스는 족장의 몸이 지면에 완전히 닿기도 전에 바로 옆에서 같이 소리를 지르고 있던 들소대가리를 죽였다.
그리고 쓰러진 족장의 머리에서 나온 피가 눈 덮인 땅을 완전히 적시기 전에 약실에 남은 총알 4발로 4마리의 야수족의 미간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족장과 5마리의 동족을 잃은 다른 야수족들은 이리스가 재장전을 하는 동안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아무렇게나 뛰어다니며 숨을 곳을 찾았다.
“이리스의 솜씨가 정말 대단하네.”
“아직 숨은 놈들이 많으니 계획대로 우리가 가서 처리하도록 해요.”
“좋아, 가보자.”
나는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라우라와 함께 남쪽입구를 향해서 뛰어갔다.
불이 붙었던 움집들은 모조리 잿더미로 변해서 주저앉았고 그 주변으로 이리스가 죽인 야수족의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우리가 입구 근처에 도달하니 다시금 멀리서 총성이 들려왔고 어설프게 숨어있던 야수족 몇 마리가 저격당했다.
나는 왠지 모를 용기를 얻으며 부락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왼쪽과 오른쪽으로 각자 흩어져서 숨어있는 야수족들을 찾아 나섰다.
곧 나와 눈을 마주친 멧돼지대가리가 다짜고짜 나를 향해 돌진했지만 이리스가 쏜 마력소총탄에 머리를 관통당해서 죽었다.
나는 멧돼지대가리의 시체를 뒤로하고 부락 깊숙이 들어가다가 젖소대가리와 조우했다.
놈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소대가리에게 목이 졸렸던 기억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내 목을 쓰다듬었다.
나는 놈을 향해서 주저 없이 마력산탄을 쐈지만 단번에 죽이지 못했다.
놈은 내가 쏘는 마력산탄을 피했지만 왼팔이 걸레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내 몸통만큼 굵은 오른팔로 힘껏 양날도끼를 휘둘렀다.
그 충격에 마법방어막이 크게 흔들리며 살짝 뿌옇게 변했다가 다시 투명해졌다.
나는 놈과 거리를 벌리고 다시 한 번 마력산탄을 쐈지만 이번에는 놈이 양날도끼의 넓은 면으로 막는 바람에 그걸 부수는 선에서 끝났다.
무기를 잃고 몸에 도끼파편과 금속알갱이가 잔뜩 박힌 젖소대가리는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뿔로 들이박으려고 미친 듯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려고 침착하게 놈의 머리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젖소대가리의 두개골이 요란하게 터지면서 앞으로 흉하게 고꾸라졌다.
내 발치에 놈의 피와 살점 그리고 눈알이 굴러오는 모습을 보니 엄청 비위가 상했다.
나는 어떻게든 구역질을 참으며 마력산탄총을 재장전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는 씨받이 움집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더니 나를 세차게 들이받았다.
바로 또 다른 코뿔소대가리였다.
“으악!”
나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붕 떴다가 몸에서 떨어진 마력총들과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마법방어막은 코뿔소대가리의 공격이 가하는 충격은 막아주었지만 땅에 떨어지는 충격은 막아주질 않았다.
그래서 온 몸이 아팠고 얼굴은 진흙투성이에다 입에도 온갖 이물질이 들어갔다.
“퉤, 퉤! 씨발, 한 놈이 더 있었을 줄이야.
날려가는 와중에도 사태를 파악한 나는 얼른 일어나서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코뿔소대가리가 훨씬 빨랐다.
놈은 다시 한 번 나를 들이받아서 공중에 날려버렸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마법방어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마법방어구가 2개 더 남아있었지만 두 번이나 땅에 떨어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씨발새끼야! 더럽게 아프잖아!”
나는 코뿔소대가리를 상대로 욕을 하면서 고통을 애써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가까스로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다리가 꼬여서 결국은 넘어지고 말았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력소총을 향해서 달려갔다.
하지만 염소대가리 2마리가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더니 나를 마구 창을 찔러댔다.
이 정도 수준의 공격은 A등급의 품질을 가진 마법방어구라면 간단하게 막아낼 수 있어서 몸이 뒤로 밀리지도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빈틈을 노려서 염소대가리를 피해보려고 했지만 인간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놈들을 상대로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이대로라면 나는 한 번 더 코뿔소대가리에게 치일 게 분명했다.
“라우라!”
내가 급한 대로 라우라를 불렀다.
그러자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염소대가리들 중 한 놈의 가슴팍이 장검에 꿰뚫렸고 다른 한 놈은 마력권총탄을 머리에 맞고 나자빠졌다.
마치 소환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라우라가 즉시 나를 구하러 온 것이다!
온 몸에 야수족의 피를 잔뜩 묻히고 있어서 좀 무서워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여긴 사각지대에요. 제가 저 덩치를 유인할 테니 레베카님은 가서 무기를 챙기세요.”
“부탁할게!”
나는 라우라에게 뒤를 맡기고 마력총을 줍기 위해서 서둘러 뛰어갔다.
우선 급한 대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마력소총부터 챙겼고 라우라에게로 관심을 돌린 코뿔소대가리를 조준했다.
그리고 내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에 갑자기 코뿔소대가리의 머리에 큰 구멍이 뚫리더니 놈이 옆으로 쓰러졌다.
사각지대 밖으로 놈이 나가자마자 이리스가 끝장낸 것이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코뿔소대가리가 죽자 속이 다 시원했다.
저 새끼 때문에 내 꼴이 말이 아니다.
나는 가방에서 물수건을 꺼내서 얼굴을 닦아낸 다음에 물통을 꺼내서 입을 몇 차례나 헹궜지만 찝찝함이 사라지질 않았다.
“레베카님, 다친 곳은 없으세요?”
“아무래도 온 몸에 멍이 든 것 같아.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지 뭐.”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아니야! 딱 좋을 때 도움을 줬어. 라우라, 구해줘서 고마워.”
나는 기쁜 마음에 라우라를 포옹했다.
그녀의 몸에 야수족의 피가 묻어있든 말든 상관없었다.
내가 잠시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이에 눈치 없이 주변에서 접근하던 야수족들의 머리가 모조리 터져나갔다.
이리스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져서 너무 좋다.
“그나저나 이 움집은 씨받이용이었군요.”
“그래. 내가 저 사람들을 해방시켜줘야겠어..”
나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서 씨받이로 희생된 두 여성의 가는 숨통을 끊어주었다.
이 사람들이 지금까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마음이 아프다.
“이제 다른 사람들을 풀어주러 가자.”
“네, 레베카님.”
나는 라우라를 데리고서 사람들이 갇혀있는 또 다른 움집으로 향했다.
혹시 몰라서 내가 마력소총을 조준하고 라우라가 문을 열어젖혔는데 다행히 야수족은 숨어있지 않았고 몰골이 성치 않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만이 보였다.
내가 손을 내밀자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이 기쁨에 겨운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잡거나 내 다리에 매달리며 감사를 표했다.
“레베카님! 라우라!”
“이리스! 하하하!”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우리에게 달려온 이리스는 숨을 가쁘게 헐떡이며 내 품에 안겼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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