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26화
* * *
엘카힘이 거들먹거리는 사이, 상급마물의 급습에 날려갔던 기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누구보다 먼저 커다란 괴물 앞에 선 베로니카를 중심으로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들은 훈련대로 순식간에 대형마법방패를 서로 연결하여 방벽을 전개했다.
나는 분석스킬을 사용해서 상급마물의 강함을 확인해보았다.
레벨 : 80
종족 : 악마기생충
숙주 : 숲 드레이크
감염진행도 : 완전변이
병종 : 돌격괴수
상급마물의 정보는 다른 동물이나 마족에 비하면 적었지만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얼마나 강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대놓고 레벨 80짜리 괴수라고 적혀있는데 누가 저걸 만만하다고 생각하겠어?
이런 상황인데도 베로니카와 기사들에게서는 겁에 질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단순한 용기를 넘어서서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괴물 뒤에 숨어서 잘난 척을 하는 소인배의 모습은 참으로 하찮구나! 당당하게 나와서 프랑카 기사단의 심판을 받아라!”
베로니카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엘카힘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그녀의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당차고 멋있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또한 베로니카는 수신호로 기사 하나를 강당 밖으로 내보냈는데, 아마 지원을 요청하라고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너희들이야말로 그 잘난 마법갑옷 뒤에 숨어있지 않느냐? 마법갑옷이 없으면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주제에 만용을 부리는 군.”
엘카힘은 기사들을 굉장히 깔보는 태도를 보였다.
자기는 고작 갱단 보스면서 뭐가 그리도 잘났다고 기사들을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왠지 나까지 부당한 욕을 먹는 기분이 들어서 정말 불쾌하다.
“평범한 인간이기에! 네 년 같은 사악한 죄악을 저지르지 않고 정의로운 길을 따르는 것이다. 모두 마력철갑탄을 장전하라!”
베로니카의 명령에 기사들은 약실에서 일반탄을 모두 빼내고 마력철갑탄을 장전했다.
워낙에 빠른 속도라서 손가락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기사들의 의연하고 용감한 태도를 보고 있으니 나도 숨어만 있을 수는 없었다.
“라우라, 나도 가서 싸울게. 넌 기회를 봐서 엘카힘을 죽여 버려.”
“아, 안돼요! 너무 위험해요. 우리 그냥 도망쳐요. 네?”
라우라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분명 나도 자기 부모님처럼 죽어버릴까 걱정하는 거겠지.
지금까지 라우라가 내게 보여줬었던, 버려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절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는 라우라의 주인으로서 그녀의 복수를 이루어줄 의무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도망치면 왠지 평생을 후회할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엘카힘을 죽이지 못하면 계속해서 너 같은 피해자가 생겨날 거야. 저런 괴물을 부릴 수 있는데 무슨 짓이든 못하겠어? 그러니 지금은 도망칠 때가 아니야.”
“알겠어요. 대신에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저는 다시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무조건 네 곁으로 돌아올 거야. 돌아와서 너랑 화끈한 밤을 보낼 거라고.”
나 참,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저질러놓고는 엄청 부끄럽다.
죽을 위기가 다가오면 성욕이 솟구친다더니 내가 딱 그 상태인 것 같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무서워하면서도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웅놀이를 끝내고 나면 라우라에게 보상을 받을 생각뿐이었다.
나는 걱정이 한가득인 라우라를 뒤로 하고 기사들의 전열에 합류했다.
그러자 베로니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마력철갑탄이 장전된 마력소총과 여분의 마력철갑탄을 넘겨주었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생각으로 합류했는지 충분히 알아차린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뿌듯함이 느껴졌다.
“하! 얼마나 대단한 대응을 하나 싶어서 구경을 좀 해봤는데 겨우 한 명이 더 늘어나는 수준이라니 참으로 한심하구나. 정말 재미없어! 코코, 저것들을 모두 죽여라.”
코코라는 쓸데없이 귀여운 이름을 가진 상급마물은 엘카힘의 명령을 듣자마자 다시 한 번 크게 포효했다.
놈의 무시무시한 울음소리가 마법갑옷의 진동시키며 파고들어서 내 피부를 직접 자극하자 소름이 쫙 돋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준! 적의 약점을 노려라!”
베로니카의 명령에 나와 기사들은 징그러운 코코를 향해 마력소총을 조준했다.
마법갑옷도 관통할 수 있는 마력철갑탄을 장전했으니 분명 코코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코코는 자신을 위협하는 우리를 향해서 빠르게 다가왔지만 누구도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나는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아플 정도로 세차게 뛰어서 미칠 것 같았다.
돌겠네, 진짜!
만용을 부리는 사람은 바로 나였던 모양이다.
“발사!”
나는 베로니카의 명령을 듣자마자 기사들과 함께 마력소총의 방아쇠를 계속해서 당겼다.
마법소총은 모험가길드 지하의 사격연습장에서 쏴본 것이 전부였지만 총기사격의 스킬레벨 보정과 마침 덩치가 큰 표적 덕분에 쏘는 족족 명중시켰다.
수십 발의 마력철갑탄이 코코에게 쏟아졌고 놈의 머리와 몸통의 갑각이 깊숙이 관통당해 시커먼 생체물질을 꾸역꾸역 토해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코코는 아파서 괴성을 지르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질 않고 곧장 대형마법방패로 만든 방벽을 들이박으려고 했다.
“충격에 대비하라!”
우리들은 베로니카의 명령에 따라서 대형마법방패를 꽉 붙들어 잡고 다리를 지면에 단단히 고정했다.
코코가 육중한 몸으로 방벽을 들이박자 엄청난 충격이 몸으로 직접 전해지고 바닥이 움푹 파였지만 모두와 함께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코코는 몸통박치기가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는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몸을 크게 회전시켜 6개의 꼬리촉수로 경로상의 모든 것을 다 때려 부수며 방벽을 강하게 내려쳤다.
그러자 몸통박치기를 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힘이 방벽을 와해시키며 기사 두 명을 건물 밖으로 던져버렸고 강당의 마룻바닥을 꺼뜨려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렸다.
마법갑옷을 입었는데도 온 몸이 아플 정도로 강력한 힘에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4층으로 떨어졌지만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시 5층으로 뛰어 올라와서 코코와 계속해서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바닥이 무너진 탓에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두 팀으로 나뉘어졌는데 내가 있는 팀은 베로니카가, 다른 팀은 어느 기사가 지휘를 맡았다.
코코는 우리보다 먼저 대열을 갖추고 사격을 시작한 다른 팀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놈은 기사들이 망가진 마법방패로 다시 만든 방벽을 주둥이로 물어뜯어서 완전히 박살낸 뒤에 등촉수로 기사들을 위협했다.
그리고 잠시 재장전을 위해서 멈칫한 기사를 등촉수로 휘감아 들어올렸다.
기사들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등촉수를 향해 마력산탄을 쏴서 그것을 끊어버렸고 후드득 쏟아지는 생체물질과 함께 붙잡혔던 기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코코는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방금 놓친 기사의 다리를 또 다른 등촉수로 휘감더니 바닥과 벽에 몇 번이고 패대기를 치다가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동료들은 그 기사가 던져지기 전에 다시 한 번 구해보려고 노력했었지만 코코가 무지막지한 주둥이와 앞다리로 위협을 가하면서 또 다른 등촉수로 견제하는 바람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기사들은 절망하기 않고 계속해서 코코와 맞서 싸웠다.
한편, 우리 팀은 수는 적어도 훨씬 위험한 꼬리촉수를 상대하고 있었다.
꼬리촉수는 우리가 다시 만들었던 방벽을 간단하게 반으로 갈라버려서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몇몇 기사들의 마법갑옷도 맨살이 드러날 정도로 깊이 파여 버렸다.
그들은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어도 방벽처럼 반으로 갈라져 죽었을 것이다.
방벽을 전개할 능력을 잃은 우리들은 대열을 갖추지 못하고 각자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기거나 계속해서 이동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베로니카가 적재적소에 우리들을 이동시키고 좋은 타이밍에 사격명령을 내려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건물 밖으로 날려간 기사들처럼 모두가 계속 무사하지는 못했다.
바로 내 옆에서 함께 마력소총을 사격하던 기사 한 명이 정면에서 들어오는 꼬리촉수를 피하려다가 뒤로 돌아오는 꼬리촉수에 갈려나가고 말았다.
나는 내 위로 떨어지는 시뻘건 피와 살점 그리고 내장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튼튼한 마법갑옷이 종잇장처럼 간단하게 반으로 찢겨져 사람이 죽어버리다니?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멍청하게 서 있을 수는 없다.
라우라에게 무사히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꼭 그 약속을 지키고야 말겠다.
나는 나를 향해서 빠르게 접근하는 꼬리촉수를 위로 뛰어올라서 피했고 방금 기사를 죽였던 꼬리촉수가 옆구리를 노리고 다가오자 반쯤 남은 대형방패를 비스듬히 들어서 가까스로 공격을 흘려보냈다.
말이 좋아서 공격을 흘려보내는 것이지 방패가 수십 개의 쇳조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만약 내가 직접 꼬리촉수에 맞았더라면 내 몸이 저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바닥으로 착지하자마자 신속하게 움직여서 추가적인 공격을 피했다.
회피스킬이 올랐다는 알림을 뜬 것 같지만 지금은 그걸 자세히 볼 시간이 없었다.
코코는 나를 죽이지 못한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꼬리촉수 공격을 나에게 집중시켰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무지막지한 공격이 퍼부어졌지만 나는 회피를 하는 와중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마력철갑탄을 쏴서 꼬리촉수를 공격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손상을 입은 꼬리촉수들이 물러났고 나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코는 내게 마음 놓고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여자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라우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비명소리의 근원은 무너진 바닥 건너편에 있는 다른 팀이 있는 곳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누군지 모르는 기사가 코코의 아가리 안에서 잘근잘근 씹히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그런 상태에서도 마력소총을 쏘며 항전했지만 결국 마법갑옷과 맨몸이 끔찍한 방식으로 뒤섞이며 그대로 코코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방금 먹힌 기사를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노력하던 또 다른 기사는 사방에서 다가오는 등촉수에 전신이 관통당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코코는 그 기사도 깔끔하게 먹어치웠고 근처의 다른 기사들에게 꼬리촉수를 휘둘러 멀찍이 날려버렸다.
몇 명은 건물 밖으로 날려가고 몇 명은 벽이나 천장에 처박혔다.
코코는 입속에 들어있는 기다란 발사기관으로 기사들을 향해 맹독성 생체물질을 쏘았다.
굉장히 점성이 높은 생체물질은 기사들을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코코는 움직임이 봉쇄된 기사들을 하나씩 다리로 내리눌러서 터뜨리거나, 등촉수로 팔다리와 목을 잡아 찢거나, 주둥이로 몸을 으스러뜨리며 차례대로 죽이고 잡아먹었다.
우리 팀은 계속해서 코코에게 사격을 가했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는 기사들을 잡아먹었다.
코코는 우리가 쏜 마력철갑탄으로 온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였고 이대로 계속해서 사격한다면 쓰러뜨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놈이 기사들을 잡아먹으면서 재생능력이 점점 향상되었고 마지막 기사를 집어삼키자 마력철갑탄을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재생이 시작될 정도가 되었다.
결국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자신이 제압한 기사들을 모조리 잡아먹은 코코는 마치 승리를 자찬하는 것 같은 포효를 한 번 내지르고는 우리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놈의 주둥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가 우리에게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을 상징하는 듯 했지만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정신 바짝 차리고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내라!”
베로니카는 보유하고 있는 마력탄이 다 떨어졌는지 마법대검을 손에 들었다.
마력철갑탄도 이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는데 제대로 쓰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저런 무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베로니카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은 우리 모두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내가 한쪽 다리를 전부 베어낼 테니 그때까지 엄호사격을 부탁한다. 그리고 약점인 배가 드러나면 집중사격을 가해라. 성공할 가능성은 낮지만 희망을 걸어보자.”
베로니카는 우리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한 뒤에 천천히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는 코코의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서 멀리 돌았다.
그동안 우리는 베로니카를 위해서 엄호사격을 실시하여 코코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화가 난 코코는 괴성을 지르며 우리를 향해 돌진하며 앞을 막는 것을 모조리 박살냈지만 다행히 베로니카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놈은 우리가 몸을 숨기고 있는 엄폐물을 등촉수로 깨부수고 꼬리촉수를 마구 휘둘러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난동을 부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촉수들의 현란한 움직임은 물론이고 코코가 쏘는 끈끈한 생체물질에 맞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힘들어서 정신이 잠깐 혼미해졌다가 누군가 생체물질에 맞고 붙잡힌 다음에 코코의 주둥이 안에서 산채로 분쇄되는 모습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베로니카는 우리가 온 힘을 다해서 저항하는 동안 강당의 문을 부술 때처럼 마법대검을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저런 식의 마법무기는 마력총과는 달리 즉각적으로 쓸 수 없으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베로니카가 처음부터 저걸 빼들지 않은 이유도 분명 너무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저런 괴물을 상대로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베로니카가 저런 시도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지금 상황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씨발, 저 개새끼가 눈치도 빠르네!”
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코코가 갑자기 몸을 돌려 베로니카를 거칠게 들이박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욕이 나왔다.
베로니카는 저 멀리 날려가서 건물 밖으로 떨어지는 듯 했지만 다행히도 마침 가까이에 있는 기둥을 잡고 버텨냈다.
그녀는 반동을 이용해서 다시 강당으로 들어와서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보이는 마법대검을 휘둘러 코코의 앞다리 두 개를 한꺼번에 베어냈다.
코코는 잠시 휘청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지기는 했지만 금방 균형을 잡고일어나 베로니카의 몸을 등촉수로 휘감았고 마법대검을 주둥이로 신경질적으로 물어서 분질렀다.
나는 어떻게든 베로니카를 구출하기 위해서 주변의 기사들과 함께 그녀를 붙잡고 있는 등촉수에 사격을 집중했지만 코코의 공격적인 방어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등촉수는 베로니카의 마법갑옷을 쥐어뜯고 그녀를 찢어죽이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코코의 움직임이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서둘러 주변을 살펴보니 어느새 엘카힘을 제압한 라우라의 모습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라우라는 엘카힘의 위에 올라탄 채로 그녀의 목에 검을 들이밀면서 위협하고 있었다.
“당장 베로니카님을 풀어줘!”
“어리석은 현상금사냥꾼의 딸이 용케도 살아 돌아와서 내 목숨을 노리는 군. 정말 재밌어. 하하하하!”
“닥쳐! 죽기 싫으면 빨리 베로니카님을 풀어주라고!”
“오호라, 친하지도 않은 기사를 살려주고 싶다고? 널 붙잡아 노예로 만든 기사를? 참으로 흥미롭군. 코코, 그 멍청한 여자를 놓아줘라.”
코코는 엘카힘의 명령을 고분고분 따르더니 몸을 돌려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라우라는 베로니카가 풀려나자마자 바로 엘카힘의 목을 따버렸다.
엘카힘의 머리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갔고 몸뚱이가 부들부들 떨리며 엄청난 양의 피가 절단면에서 분수처럼 뿜어졌다.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고통을 안겨주고 싶어 했던 라우라였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바로 원수를 죽여 버린 것 같다.
이제 코코도 잠잠해지려나? 보통 조종하는 놈을 죽이면 조종당하는 놈은 얌전해지는 게 정석이잖아.
하지만 코코는 엘카힘이 죽었어도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녀석은 갑작스레 복수를 성취하여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라우라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잠깐만, 이거 뭔가 위험한데.
“라우라! 도망쳐!”
“아...”
라우라는 순식간에 코코의 목구멍에서 튀어나온 대량의 촉수에 붙잡혔고 사람의 손처럼 섬세하게 움직이는 촉수들이 마법갑옷에서 라우라를 억지로 꺼내버렸다.
다행히 그녀는 다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예감이 좋지 않았다.
“겨우 목을 자르는 정도로 내가 죽을 것이라 생각했니?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이구나.”
뭐야? 왜 죽은 년이 말을 하고 지랄이야!
당연히 목을 자르면 죽어야하는 거잖아. 왜 살아있어?
난 급한 대로 엘카힘에게 분석스킬을 사용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뜨질 않았다.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내가 당황하는 동안 엘카힘의 몸과 머리의 절단면에서 동시에 검은색 생체물질로 뒤덮인 촉수다발이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다시 합쳐졌다.
엘카힘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 것 같다.
“네 어미도 그런 식으로 붙잡혀서 실컷 능욕 당했었지. 킥킥킥. 그땐 네가 도망가서 참 아쉬웠어. 모녀가 함께 악마기생충의 씨받이가 되는 모습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거든.”
“씨발년...”
“예쁘장한 입에서 욕이 나오니 별로 어울리지 않는 구나. 감당 못할 쾌락을 경험하면 네 어미처럼 반쯤 미친 상태로 교성을 내지르겠지.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씨받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거야. 그것도 네 어미가 낳은 최고의 걸작에게 말이지. 깔깔깔!”
엘카힘이 라우라에게 어떤 짓을 하려는지 입에 담는 순간, 나는 그 쌍년을 향해서 마력철갑탄을 마구잡이로 쏘아댔지만 코코의 튼튼한 방어 때문에 아무런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씨발! 이러다 라우라가 내가 보는 앞에서 강간당하겠어.
“레베카, 이걸 들고 가시오! 가서 사랑하는 이를 구하시오! 우리가 엄호사격을 하겠소.”
“감사합니다, 베로니카님.”
나는 부상을 입은 베로니카가 던져주는 부러진 대검을 받아들고 무작정 코코의 아가리 속에 붙잡혀있는 라우라를 향해 달려갔다.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을 짓고 잇는 라우라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서 나는 돌격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