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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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갱단원들이 타고 내려왔던 마법승강기에 올라탔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중요한 일을 맡았던 갱단원들이 타고 왔으니 아마도 갱단의 아지트이거나 그곳과 가까운 위치가 아닐까 싶다.
마법승강기는 위로 좀 올라가나 싶더니 옆으로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지하철을 타고 있는 것 같아서 친숙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런 속도라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울음을 그친 뒤로 입을 꾹 닫고 있는 라우라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라우라, 이제 좀 괜찮니?”
“네, 레베카님.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에이, 죄송하기는. 내가 널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고마워요. 꼭 보답해드릴게요.”
라우라는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슬픔에 젖어있었다.
난 살면서 라우라처럼 서럽게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그녀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라우라의 부모님은 어째서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당했어야만 했던 걸까?
역시 갱단의 보스를 잘못 건드렸기 때문일까?
언젠가 라우라가 직접 말해주기 전까지는 먼저 물어보지 말자.
그래도 내가 그녀를 도와서 죽여야할 사람의 이름은 미리 알고 있어야겠지.
“라우라, 네 원수가 정확히는 붉은 고블린 갱단의 보스지?”
“네, ‘엘카힘’이라는 가명을 쓰는 휴먼족 여자에요. 항상 가면을 쓰고 목소리도 변조해서 정체를 숨기죠. 제가 만나본 인간쓰레기 중에 최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라우라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엘카힘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를 갈았다.
상대가 부모님의 원수라면 누구나 저런 식으로 분노를 감추지 못할 것이다.
우는 것보다는 저렇게 적의를 불태우는 게 차라리 더 나은 것 같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 년은 오늘 어떤 식으로든 죽을 거야.”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저희 부모님에게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몇 번을 죽여도 모자라요.”
“똑같은 꼴로 만들어주지 뭐.”
“아니요. 그것보다 더 끔찍하게 죽이고 말겠어요.”
라우라는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며 말했다.
솔직히 마물에게 잡아먹히고 겁탈당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꼴은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라우라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기꺼이 도와줄 자신은 있다.
우리가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한 마법승강기의 문이 열렸다.
햇빛이 밝게 비추는 광장 같은 장소였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건물 1층 내부에 있는 공간이었고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총성과 비명소리가 들렸고 갱단원으로 보이는 놈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기사단의 공격에 대비해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놈들은 얼떨결에 우리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대응사격에 나섰다.
연구시설에서 그랬었던 것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저항에 불과했다.
하지만 적의 수가 훨씬 많아서 그때처럼 무작정 날뛰면 라우라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대형마법방패를 똑바로 세우고 받침대를 내려서 라우라가 쓸 수 있는 엄폐물로 만들었고 그녀에게 마력산탄총을 넘겨 총안구를 이용해서 반격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라우라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마음 놓고 적과 교전할 수 있다.
반면에 나는 방패 뒤에 숨지 않고 당당히 서서 마력권총으로 적의 머리를 정확하게 조준사격을 가했다.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적들은 라우라가 쏜 마력산탄에 터져나갔고 조금 뒤에 있는 적들은 내 마력권총 사격에 미간이나 목이 뚫려서 죽었다.
적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때, 갑자기 건물의 정문 쪽에서 엄청난 양의 총알이 빗발치더니 대부분의 적들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한 무리의 기사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겨우 살아남은 적들의 숨통을 마저 끊어냈다.
기사들은 우리에게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할 일에 집중했고 흉갑에 화려한 문장이 새겨져있는 기사, 그러니까 베로니카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레베카, 그대가 왜 여기에 있소?”
“말씀하셨던 장소에서 정보를 얻은 뒤에 마법승강기를 탔는데 여기로 나왔어요. 그리고 지금 구조대를 빨리 그곳으로 보내 주셔야할 것 같아요.”
“구조대를 말이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믿으시기 어렵겠지만 악마기생충을 인간에게 감염시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일단 위험한 것들은 전부 불에 태우고 왔어요.”
“확실한 증거는 가져왔소?”
“물론이죠. 라우라, 서류가방을 베로니카님께 드리도록 해.”
라우라는 내 지시에 따라서 베로니카에게 튼튼한 서류가방을 공손하게 넘겼다.
베로니카는 그 안에 들어있는 서류를 몇 장 살펴보더니 분을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바리케이드를 발로 걷어차 박살을 내버렸다.
그러자 기사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베로니카에게 쏠렸다.
베로니카는 슬럼가를 방치하는 바람에 벌어진 참상에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동안 말을 하질 못했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서류를 다시 가방 안에 넣고 부관에게 넘겼다.
“후우, 이 또한 우리가 짊어져야할 죄악이겠지. 자네가 단장님께 직접 전해드리도록 하게나.”
“네, 부단장님.”
부관은 깍듯하게 경례를 한 뒤에 서둘러 단장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저 속도면 금방 그 사람 좋은 단장에게 갱단의 어두운 비밀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레베카, 중요한 정보를 가져와주어서 고맙소. 반드시 합당한 보상을 약속하겠소. 그리고 구조가 필요한 사람은 몇 명이오?”
“연구시설 안쪽에 있는 감옥에 50명 정도 있어요. 지하수로에는 마물들이 많으니까 이곳으로 데려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불행 중 다행이구려. 당장 구조대를 파견하도록 하겠소. 그대들은 이만 내 천막으로 돌아가서 쉬도록 하시오.”
베로니카는 진심으로 노예들의 생존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보통 귀족들은 노예의 목숨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텐데 역시 기사는 다른 모양이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희들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말해보시오.”
“라우라의 부모님은 엘카힘이라는 갱단보스에게 살해당했어요. 저희들은 그 여자에게 복수를 할 작정이고요.”
“그게 정말 진심이오?”
“네, 한 치의 거짓도 없어요. 그래서 다른 보상을 전부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복수를 완수해야만 돼요.”
내 말을 들은 베로니카는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분명히 상부로부터는 엘카힘을 생포하라는 식의 명령을 받았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저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
“내 입장이 좀 곤란해지기는 하겠지만 부모님의 복수를 말릴 수는 없지. 분명 위험할 터이니 내가 그대들과 함께 가도록 하겠소.”
다행히도 베로니카가 우리의 복수를 허락해주었다.
다른 복수도 아니고 부모님의 복수라니 차마 거절할 수 없었나보다.
“주목! 기사들은 나를 따르고 나머지는 지하로 내려가 백성들을 구출해서 대피소로 데려간다. 그럼 즉시 움직이도록.”
베로니카가 명령을 내리자 군기가 제대로 잡힌 기사단 병력들이 빠르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기사들은 베로니카 앞에 도열했고 일반병사들은 우리가 타고 온 마법승강기에 올라타서 노예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베로니카가 앞장서서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자 기사들이 뒤를 따랐고 우리는 기사들 다음으로 움직였다.
계단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각 층마다 많은 수의 적들을 지나쳐야했는데 기사들이 알아서 놈들을 처리하니 우리들이 나설 일은 아예 없었다.
적들은 총에 맞아서 나가떨어지거나, 주먹질이나 발길질에 비명횡사하거나, 아예 바깥으로 내던져졌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저항을 왜 저리도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다.
어리석은 것인지, 마약 때문인지, 아니면 보스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들 전부가 원인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렇게 한 층씩 정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꼭대기 층인 5층에 다다랐다.
5층은 다른 층과는 달리 많은 방과 복도 대신에 사람보다 훨씬 커다란 문만 하나 있었다.
“이건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군. 모두 뒤로 물러나라.”
베로니카는 우리들을 멀찍이 물리고는 등에 메고 있는 대검을 꺼내들었다.
검신의 길이만 하더라도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대검에는 특이한 문양이 새겨져있었는데, 신비로운 빛이 감도는 것을 보면 마법검이 분명했다.
베로니카가 자루를 양손으로 잡고 정신을 집중하자 대검이 눈부시게 빛나면서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마력이 충만해진 대검을 힘껏 휘둘러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문을 맹렬하게 후려쳤다.
수많은 유리창이 한꺼번에 깨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어마법이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문도 함께 박살이 나면서 내부의 강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쓰니 피곤하군. 다들 진입해서 안전을 확인하고 엘카힘을 확보하도록.”
베로니카는 약간 지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며 대검을 다시 등에 둘러멨다.
기사들은 명령에 따라서 바리케이드가 잔뜩 쳐진 강당 안으로 줄지어 들어가서 한바탕 소탕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요란한 소리는 대충 무시하고 베로니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조금 지쳤을 뿐이오. 이런 마법무기는 마력을 많이 필요로 하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소. 정리가 다 끝난 것 같으니 우리도 들어가는 게 좋겠소.”
우리는 베로니카를 따라서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시체들이 즐비했는데 그 중에는 무려 마물들의 시체도 골고루 섞여있었다.
이것들이 왜 여기에 있어? 부서진 우리에서 탈출한 건가?
설마 갱단이 마물을 통제하는데 성공한 건가?
계속되는 내 의문은 기사 하나가 그녀에게 임무보고를 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부단장님, 적들이 마물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지. 통제 가능한 마물의 종류는?”
“저기에 보이시는 것처럼 중급마물까지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기랄, 미치겠군.”
베로니카는 호랑이와 비슷한 크기인 중급마물의 시체를 보더니 질색을 했다.
중급마물의 생김새는 낮은 등급의 마물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등과 꼬리에 달린 촉수와 다리가 한 쌍씩 더 많았다.
아무래도 덩치가 더 커지니까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다리가 한 쌍 더 생겨나고 남는 공간에는 촉수가 더 자라난 것 같다.
마법갑옷 없이 저런 덩치를 상대한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 진저리가 난다.
“그나마 중급마물이 한계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 엘카힘은 확보했나?”
“아직 수색 중입니다.”
“그 자를 무조건 잡아야한다. 치밀하게 찾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기사들은 베로니카의 명령에 따라서 강당을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잔뜩 쌓여있는 물건이나 커다란 상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바닥이나 벽까지 뜯어가면서 의심이 된다 싶으면 모조리 뒤졌다.
“라우라, 우리도 기사님들과 같이 찾아보자.”
“네, 레베카님.”
우리들은 기사들을 본 받아서 손이 닿는 곳은 모두 살펴보았다.
난 혹시나 싶어서 시체도 뒤져보았지만 모두 남자였다.
아무리 나쁜 놈들의 시체라도 남의 팬티를 까보는 건 뭔가 기분이 별로다.
“레베카님, 이 벽 뒤가 뭔가 수상해요.”
라우라는 강당의 가장 안쪽에 있는 벽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말했다.
분명히 내부가 비어있는 것 같은 소리가 크게 들렸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관심을 가졌다.
“우리가 확인해보겠소.”
“부탁할게요.”
기사들은 우리를 대신하여 벽을 뜯어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벽이 폭발하듯 부서지면서 우리 모두를 멀찍이 날려버렸다.
마법갑옷이 아니었으면 중상을 입었거나 죽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다.
나는 처음에는 폭탄 같은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욱한 먼지 속에서 보이는 기다란 촉수들이 그 강력한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저건 분명히 마물의 촉수야. 씨발, 존나 길잖아!’
정신을 차린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라우라부터 챙겼다.
다행히 라우라는 다치지 않았고 나는 그녀를 데리고서 서둘러 상자더미 뒤로 몸을 숨기고 빈틈 사이로 상황을 파악했다.
내 떨리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꼬리촉수를 제외한 몸길이가 최소 10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마물이다.
놈의 생김새는 기본적으로 작은 개체들과 비슷했지만 전체적으로 우락부락한 근육질 체형을 가졌고 통나무처럼 두꺼운 8개의 다리로 육중한 몸을 지탱했다.
등촉수는 10개, 꼬리촉수는 6개였고 그 길이도 괴물의 몸길이와 비슷할 정도로 길었다.
등촉수의 끝에는 4갈래로 갈라지는 집게발 같은 것이 달려있었고 꼬리촉수는 전체가 칼날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놈은 불곰도 한 입에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8갈래로 갈라지는 주둥이를 크게 쩍 벌려 괴성을 내지르며 입 속에 있는 촉수와 맹독성 생체물질 발사기관을 과시했다.
하지만 놈은 기사들을 보면서도 즉각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는데 마치 누군가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상급마물의 위용 앞에서는 천하의 기사들도 별 것 없군 그래.”
나는 갑자기 상급마물 근처에서 들려오는 변조된 여자의 목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금빛이 감도는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하얀색 가면을 쓴 여자는 딱 봐도 라우라의 원수 엘카힘이다.
그녀는 전신을 가리는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배색과 디자인이 가면과 정확히 일치했다.
꽤나 시대착오적인, 어쩌면 아주 전통적이고 근본 있는 스타일의 마법사들이 겉옷으로 선택할 법한 것이었다.
엘카힘은 상급마물을 부릴 수 있으니 세상 두려울 게 없는 모양이지만 그래봤자 인간이니 총알 한 방이면 죽을 것이다.
“엘카힘!”
라우라는 여자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증오를 불태우며 마력권총을 꺼내들었지만 상급마물 때문에 함부로 총을 쏘질 못했다.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도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짓을 하지 않고 꾹 참아냈다.
난 그런 라우라가 너무나도 대견했다.
문제는 상급마물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엘카힘에게 복수를 하기 전에 우리가 끝장난다는 것이다.
대체 저 괴물을 어쩌면 좋을까? 환장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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