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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5화 (25/271)

〈 25화 〉 24화

* * *

붉은 물음표가 있는 곳은 녹슨 철문으로 막혀있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길함이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듯 하다.

왠지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나에겐 받아야할 보상이 있고 이 안에 들어있을 지도 모를 전리품이 가지고 싶다.

“레베카님, 적들이 더 오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네 말이 맞아. 더 이상 마력탄을 낭비할 수는 없지.”

나는 라우라의 제안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법갑옷의 힘을 이용해 잠겨있는 문을 간단하게 부수고 들어갔다.

철문 너머에 있는 공간은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이었다.

회중시계로 조명을 비추니 수십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갇혀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도창을 확인해보니 붉은색 물음표는 어느새 붉은 고블린 갱단 지하연구시설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무슨 연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등골이 서늘하다.

나는 사람들과 접촉하기 전에 라우라와 함께 부서진 문부터 막기로 했다.

마물들이 이 안으로 들어왔다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죽을 테니 놈들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완전히 틀어막았다.

“기사님! 살려주세요!”

“제발 저희를 구해주세요!”

“기사님!”

갇혀있는 사람들은 뒤늦게 나를 기사님이라고 부르며 절박하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상태로 차가운 쇠창살에 매달려 우리를 향해 팔을 뻗었다.

분석스킬을 사용해보니 전부 노예들이었는데 그나마 영양 상태는 모두 양호했다.

“너희들은 왜 여기에 갇혀있는 거야?”

“여기로 팔려 와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디 저희들을 살려주십시오!”

“진정해. 지금은 우리 두 명이 전부라서 너희들을 제대로 보호해줄 수가 없어. 임무를 마친 뒤에 바로 구조대를 데려올게. 그러니 조금만 더 견디도록 해.”

“감사합니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기사님!”

노예들은 고분고분한 태도로 내 말을 들어주었다.

흥분해서 난동을 피우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본인들의 신분에 대한 자각은 물론이고 기사단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는 듯하다.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 있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몇 명씩 저기 있는 문으로 끌려갔습니다.”

“알겠어. 일단 너희들을 감옥에서 꺼내줄 테니 여기서 조용히 대기하도록 해. 바깥은 마물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니 절대로 소란을 피우면 안 돼. 알아들었지?”

“네, 기사님! 저희들은 기사님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겠습니다.”

노예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내게 복종을 맹세했다.

난 진짜 기사가 아니라서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라우라, 난 왼쪽을 맡을 테니 넌 오른쪽을 맡아.”

“네, 레베카님.”

우리는 총 6개나 되는 감옥의 문을 열고 대략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꺼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고 싶지만 지하수로에는 마물들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근처의 맨홀로 바로 올려 보내자니 한창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 한복판이라서 위험하다.

지금으로서는 노예들을 여기서 대기시켰다가 구조대를 이끌고 오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일 것이다.

설마 기사단이 이 사람들이 노예라고 그냥 포기하지는 않겠지.

“가자, 라우라. 얼른 일을 마쳐야 구조대를 데려오지.”

“저 사람들을 여기 내버려두어도 괜찮을까요?”

“난 그렇게 믿어.”

“그럼 저도 레베카님을 믿을게요.”

“고마워.”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서 라우라의 머리가 아닌 투구를 쓰다듬었다.

라우라가 귀엽고 사랑스러울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줬더니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도 손을 뻗고 말았다.

“레베카님, 저기가 사람들이 말한 입구인 것 같아요.”

“그런 것 같네. 얼른 가보자.”

나는 라우라가 가리킨 문으로 다가가 손으로 밀어 활짝 열어젖혔다.

기다란 복도가 우리를 반겼는데 감옥이 있는 곳과는 달리 굉장히 깔끔하고 밝았다.

마치 현대적인 분위기가 날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복도를 쭉 걸어가서 또 다른 문과 마주했는데 이건 제법 두꺼워서 발로 몇 번 걷어차서 부숴버렸다.

그리고 나는 진짜 연구시설과 마주했다.

지도창을 확인해보니 붉은색 물음표도 붉은 고블린 갱단 지하연구시설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체감상 축구장만큼 넓은 연구시설에는 다양한 크기의 물탱크 같은 것들이 줄지어 늘어서있고 그 안에는 벌거벗은 사람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그스름한 액체와 함께 들어있었다.

또한 곳곳에 크고 작은 우리들이 놓여있었는데 그 안에는 각종 짐승들이 갇힌 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다들 나에게 꺼내달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는데 분석스킬을 사용하니 악마기생충에 감염된 상태라서 전부 죽일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동물들을 죽이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왠지 모를 사명감이 날 이끌었다.

동물들의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는 곧 잦아들었고 나는 미련 없이 뒤를 돌아섰다.

맞은편에 있는 더 튼튼한 우리에는 최하급마물과 하급마물이 한 마리씩 따로 갇혀있었다.

놈들은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을 뜯어먹으며 변이를 하는 와중이거나 완전히 변이가 끝난 상태였다.

나는 미친 듯이 날뛰는 마물들도 모조리 쏴 죽이려다 문득 우리 너머로 보이는 유리벽으로 밀폐된 방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 안에는 기생버섯이 대량으로 자라나고 있었고 숙주로 사용된 사람들의 시체가 바닥에 잔뜩 깔려있었다.

마물과 기생버섯이 한 자리에 있다니 굉장히 불길하다.

이래서 지도창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걸까?

대체 여기서는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 건지 몰라도 절대로 좋은 의도는 아닐 거다.

“레베카님! 이것 좀 보세요!”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말고 라우라의 외침에 서둘러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손바닥 크기의 새까만 알들이 잔뜩 들어있는 커다란 수조가 있었다.

꼭 수영장에 물을 적당히 채우고 플라스틱 공을 무더기로 부어놓은 것 같다.

나는 알을 상대로 분석스킬을 쓰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많은 양의 알들이 전부 악마기생충의 알이고 거의 다 살아있었다.

이것들이 가사상태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연구시설은 지옥으로 변했을 것이다.

“갱단 주제에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시설에서 이런 막나가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거지?”

“분명 강력한 귀족의 지원을 받았을 거예요. 아무리 갱단이 돈을 많이 벌어봤자 권력자의 도움 없이는 이런 대규모 연구시설 같은 것을 몰래 운영할 수는 없으니까요.”

“악마기생충을 이렇게 많이 번식시켜서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잠깐, 저 사람들 몸에 붙어있는 것도 이것들 같은데?”

나는 물탱크 안에 둥실둥실 떠있는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들의 몸에는 한 뼘 크기의 악마기생충들이 잔뜩 붙어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은 몸의 절반이 그 놈들에게 파 먹힌 상태로도 숨이 붙어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상대로 분석스킬을 써봤지만 특별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노예 신분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악마기생충은 사람을 숙주로 삼지 않는데 왜 같이 넣어둔 걸까요?”

“저쪽에 기생버섯이 있었어. 그걸 연구해서 악마기생충의 특성을 바꾸려는 게 아닐까?”

“맙소사! 그런 일이 생긴다면 세상이 멸망할 거예요.”

라우라는 내 억측에 많이 놀란 기색이었다.

완전히 다른 생물종의 특성을 적용하는 것은 거의 마법의 영역이니 놀랄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야.

아니지. 마법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거잖아?

그래, 마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을 거야.

라우라가 크게 놀라는 이유도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으니까 정보를 더 찾아보자. 책상이나 서랍장을 뒤져보면 서류 같은 게 나올지도 몰라.”

“네, 레베카님.”

우리는 연구시설에 있는 모든 수납공간을 열어서 여기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마법승강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구석에 잔뜩 쌓여있는 상자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나는 상자의 빈틈으로 몰래 바깥을 살펴보았고 붉은 고블린 갱단 소속 조직원들이 마법승강기에서 내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10명에 달하는 놈들은 여기를 불태울 속셈인지 기름통과 횃불을 들고 있었다.

“여긴 올 때마다 좆같아. 보스는 왜 이런 쓸데없는 연구를 하는 거야?”

“닥치고 기름이나 뿌려. 여길 들키면 우린 다 끝장이야.”

“이미 기사단이 우릴 다 족치고 있는데 여기서 더 끝장날 게 뭐가 있어?”

“병신아! 이게 들키면 무조건 화형당한다고!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지랄하네. 저번에 여자 하나에 털려서 튀었던 주제에 무슨.”

“아이, 씨발! 좆같아서 진짜.”

지금 열심히 주둥이를 놀리고 있는 놈들 중에서 마지막에 욕을 한 놈은 내 앞에서 좆을 흔들면서 도발했다가 죽어라고 도망갔던 놈이다.

그땐 놓쳐서 아쉬웠었는데 이번 기회에게 제대로 앙갚음을 할 수 있겠는 걸.

나는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다가 갱단원들을 처리하려다 의도치 않게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야, 너희들 마물이 여자 따먹는 거 본적 있냐?”

“잡아먹는 게 아니라 따먹었다고? 그 새끼들도 좆이 있어?”

“네가 가입하기 며칠 전에 보스가 우리한테 재밌는 걸 보여준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딱 그걸 보여주더라고. 남편새끼가 산채로 잡아먹히는 와중에 마누라는 따먹히는 개쩌는 쇼였지! 눈표범족 딸내미가 우리한테 돌림빵 당하기 전에 도망친 건 존나 아쉬웠어.”

내 귀가 잘못됐나? 마물에게 사람이 강간을 당했는데 어마어마한 쇼라고? 미친 새끼들이네 이거.

나는 지금 좆같은 개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을 모두 박살낼 생각으로 라우라에게 협조를 요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라우라의 상태가 뭔가 이상했다.

라우라는 경량 마법갑옷이 눈에 띄게 흔들릴 정도로몸을 떨었고 억지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울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설마?

나는 불현듯 뇌리를 스쳐가는 소름 돋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난 그 생각을 차마 라우라에게 직접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걸 내 입에 담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 같다.

다행히 라우라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레베카님, 평생의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뭐든지 말해봐.”

“부모님의 원수를 죽이게 도와주세요. 도저히 못 참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라우라는 마치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을 삼키듯 힘들어하며 내게 애원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불행한 과거를 숨기고 내게 밝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던 라우라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다 났다.

내 추측은 불행하게도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었다.

라우라의 부모님은 붉은 고블린 갱단의 보스에 의해서 너무나도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다.

나는 라우라가 그녀의 부모님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꺼낼 수는 없었다.

이럴 땐 복수를 도와주는 것이 최선의 위로일 것이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감사합니다, 레베카님. 진심으로 사랑해요.”

“나도 널 정말, 정말 사랑해.”

나는 라우라를 한 번 안아준 뒤에 갱단원들을 끝장내기 위해서 전면에 나섰다.

내 목표는 라우라의 부모님에 대해서 신나게 언급한 새끼를 제압하고 나머지를 모두 쳐 죽이는 것이다.

나는 증오로 들끓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 분노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적의 머리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해소하기 시작했다.

마력산탄에 얻어맞은 갱단원은 찍소리도 못하고 머리가 터져서 죽었다.

역겨워야할 그 장면이 지금은 통쾌하게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몸을 숨기는 갱단원의 머리 위로 높이 뛰어올라 놈을 밟아서 터뜨려 죽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갱단원에게 주먹을 휘둘러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렸다.

아직 남아있는 7명의 갱단원들은 나에게 마력탄을 퍼부었지만 당연히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마력탄이 튕겨나가거나 으스러지는 소리가 마치 팝콘을 튀기는 소리처럼 요란했다.

마력소총을 든 놈도 있었지만 일반 마력소총탄으로는 슬쩍 미는 수준의 저지력을 발휘하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마력소총을 든 놈에게 성큼성큼 달려가며 경로에 있는 한 놈을 마력산탄으로 찢어버리고다른 한 놈을 어깨로 부딪쳐 상반신의 뼈를 모조리 으스러뜨리며 저 멀리 날려버렸다.

그리고 마력소총을 든 놈을 발로 걷어차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4명이고 약실에 남은 마력산탄도 4발이다.

하지만 굳이 마력산탄을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한 번 더 뛰어올라서 나에게 마력산탄총을 난사하고 있는 놈을 발로 짓이겼고 내 코앞에서 도망치려는 놈을 마법방패를이용해 벽까지 밀어붙여 압사시켰다.

그리고 이제야 횃불로 불을 붙이려는 놈에게 달려가서 횃불을 든 팔을 몸에서 뽑아버리고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쳐 몸통으로 집어넣었다.

내가 이성을 되찾았을 때는, 제압이 목표인 놈을 제외한 모든 갱단원들이 볼품없는 고깃덩어리로 변한 뒤였다.

눈먼 마력산탄에 맞은 물탱크들이 터져서 끈적끈적하고 미끄러운 젤리 같은 액체가 연구시설 바닥에 뿌려졌던 기름과 뒤섞였고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도 죽었다.

예전에 고블린 산란굴에서 발견했던 사람들처럼 이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밖에 해방시켜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는 두 번 정도 재장전을 하면서 남아있는 물탱크들에 사격을 가해서 희생자들의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기, 기, 기사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씨발, 씨발!”

이미 날 본 적이 있는 갱단원은 노예들처럼 나를 기사로 착각하고는 잔뜩 겁에 질린 채로 정체불명의 액체 위에서 허우적거렸다.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사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 새끼도 나를 보면서 오줌까지 지리면서 겁을 내고 있는 거고.

나한테 좆을 까고 흔들던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다.

“시끄러워.”

나는 마력권총으로 놈의 발목을 쏴버렸다.

놈은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발목을 감싸려고 했지만 내가 먼저 놈의 발목을 밟아서 더 많은 고통을 주었다.

“레베카님, 그러다 죽겠어요. 정보를 캐야지요.”

“후우, 내가 너무 흥분한 모양이야. 심문은 네게 맡길게.”

“네, 레베카님.”

나는 라우라에게 갱단원을 떠넘기고 마물들이 갇혀있는 우리로 향했다.

그리고 나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인 놈들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전부 쏴 죽였다.

무고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죽일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마물을 상대로는 갱단원을 죽일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쓰레기를 치우는 기분이었다.

약간 지친 나는 라우라가 갱단원을 고문, 그러니까 심문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라우라의 심문 솜씨는 실로 훌륭해서 피를 조금 봤을 뿐인데 갱단원이 굉장히 고분고분한 태도로 변해서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 그녀에게 불어버렸다.

“레베카님, 제 부모님의 원수가 숨어있는 위치를 알아냈어요. 여기서 무엇을 연구했었는지도 알아냈고요. 저 금고 안에 가장 중요한 증거들이 들어있다고 해요.”

“수고했어. 뒤처리는 나에게 맡기고 넌 증거부터 챙겨.”

나는 일부러 갱단원의 다친 발목을 잡고 놈을 질질 끌었다.

놈이 용서해달라고 비명을 지르든 말든 상관없었다.

이건 그저 불필요한 소음을 내는 살덩이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마물의 알들이 들어있는 수조의 물을 빼고 그 안에 갱단원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기름을 뿌리고 살려고 허우적거리는 갱단원을 향해 횃불을 던져서 불을 붙였다.

마물의 알들과 갱단원은 함께 비명을 지르며 활활 타들어갔고 곧 잠잠해졌다.

하지만 내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기생버섯이 들어있는 유리벽을 주먹질 몇 번으로 깨부수고 들어가 마찬가지로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마법갑옷이 기생버섯의 포자를 완전히 막아주니 굳이 불을 뿜으며 공기 중의 포자부터 태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마물과 짐승, 사람들의 시체를 모아서 싹 불태우는 것을 끝으로 자체적인 정화임무를 끝마쳤다.

역시 정화라는 단어는 불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숨 돌리는 겸해서 지도창을 열어보니 빨간색 글씨가 다른 것과 같은 하얀색 글씨로 변했고 가까운 곳에 또 다른 빨간색 물음표가 나타났다.

나는 하필 빨간색이라서 일종의 보스전을 걱정했었는데 이제 보니 특별한 이벤트에 대한 힌트인 것 같다.

여기서 생각지도 못했던 라우라의 불행한 과거를 알게 되었고 그것과 관련된 일을 진행하게 된 뒤에 하얀색 글씨로 변했으니까.

‘그나저나 단순히 정보를 캐오는 일이 갑자기 라우라의 원수를 갚아주는 일로 커져버렸네. 원래라면 당장 돌아가서 돈을 받아야겠지만 지금은 라우라를 돕는 게 우선이야.’

나는 마법승강기 옆에서 다소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라우라에게로 다가갔다.

금고에서 꺼낸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그녀는 서럽게 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슬픔과 고통이 라우라를 괴롭히고 있을 테지.

그래서 나는 라우라를 안아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위로의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라우라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줄 수 없을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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