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22화
* * *
베로니카의 저택에서 지낸 지가 벌써 일주일째다.
말이 좋아서 보호조치이지 사실상 감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라우라는 바깥이 갱단이 일으킨 폭력사태로 혼란스럽다는 소식을 듣고는 차라리 여기에 갇혀있는 게 낫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난 갇혀있는 느낌이 싫다.
아, 물론 훌륭한 방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항상 대접을 받는 건 정말 좋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좋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저택 안에만 있으라고 하는 바람에 정원에서 잠깐 바람도 쐴 수 없으니 너무 심심했다.
결국 나는 딱 반나절 만에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베로니카는 그런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남편을 설득하여 사격연습장을 개방해주었다.
거기다 나에게 하루에 240발이나 되는 마력탄을 무상으로 제공해주기로 약속했다.
덕분에 나는 스킬레벨을 올리는데 공을 들일 수 있었고 겸사겸사 체력단련도 병행했다.
체력단련은 전직 현상금사냥꾼인 라우라의 도움을 받았다.
베로니카는 직접 단련시켜주고 싶어 했지만 바빠서 어쩔 수 없다며 아쉬워했었다.
하지만 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베로니카의 훈련은 엄청나게 힘들어서 현직 기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라우라가 편하게 훈련을 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예상보다 나를 험하게 굴리는 바람에 밤에 섹스를 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거의 졸면서 씻은 뒤에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라우라의 욕구불만은 갈수록 커져서 이제는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런 상황인데도 라우라는 여전히 내가 내린 자위금지 명령을 잘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라우라가 가끔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손을 가랑이 사이로 넣으려다 억지로 참는 모습을 보는 게 은근히 꼴렸기 때문이다.
존나 변태스러운 짓이지만 라우라가 싫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 이상, 그녀의 보지를 자유롭게 만들지 않을 거다.
그리고 가끔 꼬리와 엉덩이 사이를 살짝 때려주는 것만으로도 당장은 어느 정도 진정을 시킬 수 있으니 피곤한 와중에도 그건 해주었다.
‘당분간은 이걸로 참아주면 좋겠네.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가 없어. 아, 그동안 바빠서 내 변화를 확인해보지도 못했네. 지금이라도 확인해보자.’
나는 티타임에 우리 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베로니카를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의 성과를 확인하려고 분석스킬을 사용했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레벨과 인적사항이지만 최근에 확인해본 것과 똑같다.
레벨이 여전히 15인 것으로 봐서 레벨은 훈련만으로는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레벨상승을 위한 경험치는 오로지 적을 제압하거나 처치해야 획득할 수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다음으로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스테이터스는 내가 저번에 D랭크로 올렸던 마력을 제외하면 역시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각 스테이터스 밑에 경험치가 차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힘과 지구력, 민첩성이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하니 뿌듯했다.
건강도 경험치가 차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찔끔 올랐다.
그리고 내가 혈관이 막힐 것 같은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니 경험치가 살짝 깎이는 것이 확인되었다.
아무래도 건강은 마력처럼 특수 포인트를 사용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빠를 것 같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성장이 기대되는 스킬레벨을 살펴보았다.
패시브스킬은 역시나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고통내성의 스킬레벨이 3으로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비전투스킬은 오르지 않았지만 고통내성은 라우라가 시키는 체력단련에서 비롯된 고통 때문에 오른 것 같다.
무식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얻어맞으면 레벨이 오를 스킬이긴 하지만 내가 무슨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그런 방법은 절대로 쓰고 싶지 않다.
그리고 저번에 멀미로 상승했던 것을 생각하면 다양하게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 계속 얻어맞는 것보다 효율이 훨씬 좋을 게 분명하다.
전투스킬은 내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모두 스킬레벨이 올랐다.
사실 제압사격은 고아원에서의 전투로 스킬레벨이 4로 올라서 최근의 훈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래도 보고 있으니 뿌듯하다.
아마도 마력산탄총으로 양아치들의 손과 마력권총을 한꺼번에 분쇄한 덕에 스킬레벨이 오른 듯하다.
그 다음에 바로 죽여 버리기는 했지만 뭐, 그건 양아치들의 잘못 아니겠어.
그리고 총기사격과 신속조준의 스킬레벨이 각각 4와 5로 상승했다.
베로니카의 배려 덕에 사격연습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얻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는 고속장전의 스킬레벨이 6으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다른 스킬들이 1단계씩 오를 때 혼자서 3단계나 오른 것이다.
고속장전만 유독 빠른 성장속도를 보인 이유는 손가락과 팔이 아파서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하루 종일 장전연습을 해서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사격연습을 하는 시간과 체력단련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장전연습만 했다.
꿈에서도 장전연습을 할 정도로 집중한 덕분에 확실한 성과를 낸 것 같다.
스킬레벨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라우라는 나의 집착이나 마찬가지인 장전연습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6발의 마력탄을 약실에 장전하는 모습을 보더니 박수까지 치면서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평생 들어본 칭찬을 그때 다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스킬레벨이 계속해서 순조롭게 오른다면 모든 전투스킬이 최대레벨인 10레벨에 도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스킬레벨을 올리는 효율성만 생각한다면 10레벨이 될 때까지 베로니카의 저택에서 지내는 게 좋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게임에서 순위를 올리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게 목표니까.
새로운 인생이라고 해봤자, 아직까지는 그냥 닥치는 대로 사는 기분이 들지만 말이다.
조만간에 목표를 하나 세우는 게 좋지 않을까싶다.
“안녕하시오, 레베카. 오늘은 내가 약속시간에 늦지 않아서 다행이오. 그런데 왜 그렇게 벽을 집중해서 보는 것이오? 뭐라도 있소?”
어느새 우리가 사용하는 방으로 들어온 베로니카는 내게 호기심을 보였다.
확실히 남들이 보기에는 허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일 테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로니카는 마법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마도 일하는 와중에 잠깐 시간을 내서 약속을 잡은 것 같다.
마법갑옷은 그 뛰어난 성능만큼 부피가 크다보니 괜히 방이 좁게 느껴졌다.
“그냥 개인적으로 생각할 게 있어서요.”
“아, 그렇소? 누구나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니 이해하오.”
다행히 베로니카는 내 변명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언젠가 따지고 드는 사람이 생기면 엄청 피곤할 것 같다.
어떻게 설명해서 납득시킬 방법도 딱히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오늘 그대에게 만나자고 요청한 이유는 그대의 선택에 대해서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오. 결론은 내렸소?”
“네, 베로니카님. 저희들은 기사단의 작전에 기꺼이 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반가운 소식이구려! 솔직히 말해서 그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그대의 배짱과 선의를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이오.”
“아직도 조금 겁이 나기는 하지만 저와 라우라를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용감한 자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이오. 그래서 난 그대가 참 마음에 드오.”
베로니카는 내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그저 내 이득을 위해서 작전에 참가하는 건데 베로니카는 엄청나게 좋아했다.
혹시 내가 대의를 위해서 나서는 건데 겸손을 떠느라 다른 이유를 들먹인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그렇게까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그래서 베로니카가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갈수록 부담스러워진다.
“작전은 사흘 뒤 새벽 5시에 개시되니 미리 알고 있으시오. 어차피 나와 동행할 것이니 늦을 리는 없을 것이오.”
“혹시 기사단 차원에서의 지원 같은 건 없나요?”
“그대에게는 마법갑옷이 대여될 것이오. 오늘 안에 치수를 잴 사람들이 그대를 찾아갈 테니 기다려주시오.”
마법갑옷이라?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물건을 직접 입어볼 수 있다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사격연습장에 표적으로 걸어두었던 폐기처분된 마법갑옷조차도 온갖 마력탄을 다 막아냈었는데 실전배치 중인 마법갑옷은 얼마나 튼튼한지 궁금하다.
“라우라에게도 마법갑옷을 빌려주시나요?”
“기사단의 규정상 노예에게는 기사단이 소유한 마법갑옷을 대여해줄 수 없소. 하지만 내가 사적으로 빌려줄 수 있으니 걱정 마시오.”
이번에도 노예 신분이 발목을 잡는다.
베로니카가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라우라는 사실상 맨몸으로 갱단과 싸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라우라는 나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에야 해방되고 싶지 않다니 골치가 아프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라우라를 돌봐주는 수밖에 없지 싶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오. 그리고 이번 작전이 잘 마무리된다면 영주님께서 그대를 직접 초대하실 것이오.”
“저를요? 어째서요?”
“그대의 활약 덕분이오.”
“전 프랑카에 와서 자잘한 의뢰를 몇 개 수행한 게 전부인 E급 모험가일 뿐인 걸요.”
“그대는 목숨을 걸고서 야수족으로부터 마을사람들을 구해주었고, 겁에 질린 고아들을 갱단으로부터 지켜주었소. 난 그것만으로도 자격이 넘친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시오.”
“그것 참 영광이군요. 하하하...”
상상만 해도 거북한 자리에 초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니 벌써부터 속이 안 좋다.
예전 세상에서는 직장상사랑 회식하는 것조차도 끔찍했었는데 귀족, 그것도 영주가 상대방이라니 환장하겠다.
정말 가고 싶지 않지만 이 세상에서 멋대로 그런 짓을 했다가는 귀족을 모욕했다면서 벌을 받을 게 분명하다.
“너무 그렇게 겁을 먹을 필요는 없소. 영주님께서는 사람 좋으신 분이오. 지켜야할 예법에 대해서는 내가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 줄 테니 안심하시오.”
“가, 감사합니다.”
영주를 잠깐 만나는데 예법까지 따로 배워야하니 참 귀찮다.
그냥 영주가 변덕이 생겨서 안 불렀으면 좋겠다.
‘아 씨발, 내가 애새끼도 아니고 그만 징징거려야지.’
그래, 도망치고 싶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영주가 나에게 좋은 이유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했으면 예전보다 더 낫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답답하게 굴지 말자.
“라우라는 같이 갈 수 없겠죠?”
“상관없소. 노예가 주인을 수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 다만, 영주님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함께할 수 없을 것이오.”
“그건 이미 경험해봐서 적응시간이 필요하진 않겠어요.”
나는 알론 덕분에 익숙해진 차별대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노예는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내가 없는 동안 다른 사람이 라우라에게 공개적으로 해를 끼칠 수는 없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시오.”
“모험가길드에서 저보고 뭐라고 하지는 않던가요?”
“엠마라는 접수원이 그대를 보고 싶어 하는 것과 그대 몫으로 나온 보상금이 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없소.”
보상금? 아, 저번에 펜던트를 수거한 대가로 준다던 보상금인가보네.
액수가 적은 탓에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어서 깜빡 잊어버렸었다.
이미 베네사로 추정되는 사람 덕분에 10만 라기르를 벌었으니 다소 적어도 상관없다.
그런데 베네사의 유산은 누구에게로 가는 걸까?
고아원에 기부를 부탁했던 사람이 베네사 본인이라면 유산도 고아원에 기부할 가능성이 높을 거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은 고아원이 기사단 본부 안에 있으니 베네사의 유산은 기사단으로 가겠지.
“베로니카님. 굳이 엠마 씨에 대한 이야기는 하실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
“정말이오? 난 그대와 엠마 사이에 무언가가 오가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 보오.”
“엠마 씨가 귀엽기는 하지만 지금은 라우라만 있어도 충분해요.”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요즘은 노예를 한두 명 더 구입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통 모험가들이 최소 3인으로 파티를 구성하는데, 처음에는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고아원에서의 전투를 겪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처럼 2명보다는 3명이 더 좋을 것 같고 4명이면 2명씩 조를 짤 수가 있으니 더욱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하렘을 꾸려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걸 새로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를 사랑해주는 미녀들과 함께 판타지 세상을 여행하는 건 어릴 적부터 품고 있던 로망이다.
이런 내 로망을 라우라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호감도가 5에 도달한다면 조금 질투를 하더라도 거부하지는 않겠지.
“그렇군요. 더 이상은 궁금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알겠소. 그리고 이건 그대 몫의 판매금이오. 그대가 기사단본부에 들를 수 없는 상황이니 내가 대신 받아왔소. 총 17만 3200 라기르이니 확인해보시오.”
베로니카는 묵직한 동전주머니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냉큼 그것을 받아서 내용물을 확인했는데 정확히 17만 3200 라기르였다.
수수료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찰스의 따까리 년들이 제법 괜찮은 값을 받은 모양이다.
이로서 내 전 재산은 거의 30만 라기르에 가까워졌다.
내가 처음 이 세상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하더라도 고작 1백 라기르가 전부였는데 벌써 3백배 가까이나 벌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돈이 벌려서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번 돈은 그만큼 쉽게 빠져나간다는 말이 떠올라서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번 돈은 대부분 여행자금으로 쓰일 테니 한꺼번에 날릴 일은 없겠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비상금을 따로 마련해두고 일부는 라우라에게 맡기기로 하자.
그리고 내 치트아이템에 대한 간수도 더욱 철저히 해야겠다.
이건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하면 답이 없으니까.
“이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소. 퇴근한 게 아니라서 말이오.”
베로니카는 조금 남아있던 차를 마저 마신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이제 좀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라우라가 무섭게 한 마디 던졌다.
“레베카님, 이제 다시 체력단련을 하러갈 시간이에요.”
아무래도 라우라가 날 죽일 셈인 것 같다. 혹시 하렘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들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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