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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0화 (20/271)

〈 20화 〉 19화

* * *

유언에 언급된 고아원은 프랑카의 구시가지와 슬럼가의 경계에 위치해있었다.

아무리 봐도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길거리에는 쓰레기와 오물이 널려있고 그걸 파먹는 온갖 더러운 짐승과 해충들이 들끓었다.

아무리 청결설정을 최대로 올려도 관리가 되지 않는 지역은 어쩔 수 없나보다.

술과 약물에 절어서 맛이 간 사람들이 탁한 눈빛으로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은 최악이다.

내가 고아원 원장이라면 절대로 아이들을 고아원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정말 최악이네.”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에요.”

“이게?”

“네, 적어도 부패한 시체나 죽어가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라우라는 듣기만 해도 거북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걸까?

난 라우라를 성노예로 만든 주제에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레베카님, 혹시 제 걱정을 해주시는 건가요?”

“조금.”

“고마워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전 보기보다 정신력이 강하니까요.”

“그런 것 같아. 아, 도착했다.”

라우라와 잠깐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고아원의 녹슨 대문 앞에 도달했다.

대문의 쇠창살 너머로 아이들이 신나게 웃으면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고아원의 상태는 왜 기부를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낡았다.

건축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내가 보기에도 수리가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곳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자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애들이 많이 말랐네요. 불쌍해라.”

“그러게.”

우리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몸은 비쩍 마른 아이들을 보면서 동시에 안타까워했다.

한편으로는 이 추운 날씨에 저렇게 살기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니 대견했다.

‘이거 기부를 하라고 멱살을 잡고 흔드는 수준이네.’

난 고아원의 상태가 좋으면 기부를 하지 않을 생각도 했었다.

고생해서 얻은 돈인데 굳이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유언을 따를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고아원과 아이들의 상태를 보니 그냥 가지는 못하겠다.

실제로 고생한 건 라우라니까 그녀의 뜻도 물어보자.

“라우라, 넌 어떻게 하고 싶니?”

“일단 고아원의 사정을 먼저 파악한 뒤에 결정하도록 해요.”

“그게 좋겠지. 무턱대고 기부했다가 그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이면 곤란하잖아.”

“맞아요. 마침 저기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오니 직접 물어보도록 해요.”

라우라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휴먼족 아주머니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아이들보다 더 말라서 피골이 상접했고 여러모로 상태가 좋지 않아보였다.

고아원 운영이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을 먼저 챙기다가 건강을 해친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저희 고아원에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게...”

나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실대로 말하려니 약점이 드러나는 기분이고 거짓말을 하려니 그럴싸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또 베네사 씨 때문에 오셨나요?”

“베네사 씨요?”

“네, 저희 고아원의 유일한 후원자이셨는데 행방불명되신 뒤로 여러 사람들이 조사를 나왔었거든요. 그래서 손님도 그런 분이신 줄 알았어요.”

“유감스럽게도 베네사 씨는 돌아가셨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아무런 보답도 해드리지 못했었는데. 아아...”

베네사의 죽음에 대해서 전해들은 아주머니는 고통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마음 아파했다.

난 그 모습을 보면서 베네사가 어떤 과정으로 배신을 당해서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는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했다.

“베네사 씨가 돌아가셨으니 이 고아원도 올해를 버티지 못 할 것 같네요.”

“돈 때문인가요?”

“돈도 돈이지만 갱단 때문이에요.”

역시 슬럼가와 가까우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구나.

대체 갱단이 이런 가난한 고아원에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괴롭히는 걸까?

“그 놈들에게 협박을 당하시는 건가요?”

“아이들이 15살이 되면 즉각 상납하라고 하더군요. 아마 조직원이나 매춘부로 써먹을 생각이겠죠.

“뭐라고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보호비를 받을 생각이거나 고아원을 뺏어서 부지를 다른 용도로 쓸 작정일 줄 알았더니 고아들 자체가 목적이었다니 말이다.

난 너무 화가 나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는데 라우라가 내 손을 잡아주자 분노가 금방 가라앉았다.

하지만 노예를 구입해놓고는 이런 일로 분노하고 있는 내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도 난 적어도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았어! 그건 어른으로서 너무 치사한 짓이잖아.

“원래 베네사 씨가 저희 고아원을 보호해주셨어요. 하지만 베네사 씨가 행방불명되신 뒤로 갱단원들이 점점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베네사 씨가 돌아가셨다니 더 이상 희망이 없어요.”

아주머니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지만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줄였다.

이런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전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 갱단으로부터 고아원을 지켜줄 수 있을까?

괜한 동정심 때문에 내 새로운 삶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어.

잠깐, 이런 문제는 기사단에 알리면 되잖아?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기사단에 보호요청은 해봤나요?”

“제가 고아원을 비우면 갱단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아무리 막나가는 갱단이라도 다짜고짜 절 죽이고 아이들을 데려가지는 못하니까요. 이런 상황이니 아이들을 대신 보낼 수도 없고요.”

“주변에 도와줄 사람은 없나요?”

“이 주변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믿을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저희 고아원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먹을 걸 훔쳐가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랍니다.”

이건 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수준이네.

죽으라고 판을 깔아놓고 억지로 밀어 넣는 거랑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부해봤자 갱단 배만 채워주는 꼴이 될 게 분명하다.

“제가 모험가길드 소속이니 기사단에 대신 갈게요. 아니면 제가 고아원을 지키고 있을 테니 아주머니께서 다녀오실래요?”

나는 모험가길드 펜던트를 아주머니에게 보여주며 신분을 증명했다.

이거라면 아주머니도 날 믿고 움직일 수 있겠지.

대놓고 모험가길드의 이름을 대면서 갱단의 편을 드는 배신을 할 수 있는 놈은 없으니까.

“역시 제가 가는 편이 설명하기가 좋을 것 같아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뭘요. 라우라, 같이 가드려.”

난 아주머니가 가다가 쓰러져 죽을까 싶어서 라우라를 붙여주었다.

하지만 라우라는 내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했다.

분명 날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내 걱정은 하지 마. 고작 양아치들 몇 명한테 당할 사람도 아니잖아.”

“위험하면 바로 도망치세요. 전 레베카님이 다치거나 돌아가시는 건 죽어도 싫으니까요.”

“알았어. 얼른 다녀와.”

“네, 레베카님.”

라우라는 나에게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아주머니를 데리고 기사단 본부로 향했다.

기사단 본부는 여기서 거리가 좀 있는 편이니 느긋하게 기다려야겠다.

나는 고아원 마당의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건 다 달라도 하늘만큼은 원래 살던 세상과 똑같아서 정겹다.

‘결국 애들이 몰려왔네.’

난 어느새 내 주변에 모여서 날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애들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놀아주는 건 귀찮아서 슬쩍 눈길을 피했다.

그러자 나에 대한 품평이 이어졌다.

“우와! 예쁜 언니다.”

“나도 저렇게 예뻐지고 싶어.”

“나도! 나도! 헤헤헤.”

여자애들은 내 외모를 보면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자존감이 팍팍 차올랐다.

그런데 이어지는 남자애들의 평가는 좀 달랐다.

“이 누나는 누구야?”

“몰라, 베네사처럼 모험가겠지.”

“누나가 아니라 아줌마 같은데.”

뭐? 아줌마?

내가 다른 건 다 참아도 저건 못 참겠다.

나중에 과자를 사주면 다른 애들은 2개씩 나눠줄 때 너 만큼은 먹다 남은 것 반쪽만 줄 테다!

“아줌마라고 한 사람 누구야!”

“난데? 메롱!”

“거기서!”

난 나에게 혓바닥을 내밀면서 조롱을 아끼지 않는 건방진 꼬마. 아니, 애새끼의 뒤를 쫓았다.

아, 진짜! 존나 빨라! 무슨 원숭이 새끼도 아니고.

금방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도저히 못 잡겠다.

결국 지쳐버린 나는 벤치로 돌아와 드러누웠다.

죽을 맛이다. 나중에 방심할 때 잡아다 엉덩이를 때려줘야지.

나는 지친 몸으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야! 원장! 빨리 문 열어!”

이건 또 뭐야?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깜짝 놀랐다.

누군가 대문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

내가 근처로 다가가니 한 무리의 양아치들이 담배인지 대마초인지 모를 것들을 뻑뻑 피워대면서 대문을 흔들거나 발로 차는 모습이 보였다.

다 큰 어른이란 새끼들이 고아들이 사는 곳에서 저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얘들아, 위험하니까 건물 안에 들어가 있어.”

나는 우선 아이들부터 대피시켰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아이들은 서둘러 고아원 안으로 도망쳤고 나를 놀리고 도망쳤던 녀석이 솔선수범해서 뒤쳐지는 아이들을 챙겼다.

짜식, 엉덩이를 맞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네.

나는 대문 앞으로 가지는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심어진 나무 옆에서 양아치들과 대면했다.

“무슨 일이지?”

“뭐야? 이렇게 젖탱이 큰 년이 고아원에 있을 줄은 몰랐네. 얼마주면 나랑 자줄래?”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용건이나 말해.”

나는 제일 앞에 있는 놈의 대가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자 양아치들은 낄낄거리면서 나를 말로 희롱하기 시작했다.

“이야! 씨발. 벌써부터 총을 쏠 생각부터 하다니 개꼴리는 년이네. 야, 이것 좀 봐라. 벌써 발딱발딱 선다.”

“이런 년들이 꼭 후장 한 번 제대로 뚫어주면 질질 싸면서 앙탈이나 부리더라. 쌍년아, 그냥 곱게 말로 할 때 우리한테 한 번 대주는 게 좋을 거다.”

씨발! 이 등신새끼들 그냥 다 죽일까?

특히 저 좆도 아닌 좆을 꺼내서 흔드는 저 새끼부터 말이야.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고 쏠지 말지 고민했다.

여기서 쏘면 다 죽일 수는 있겠지만 뒷감당이 문제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면 내 자존심에 금이 간다.

내 고민은 누군가 나에게 총을 쏘면서 끝났다.

“미친 새끼들!”

난 서둘러 옆에 있는 나무 뒤로 피했다.

다행히 총에 제대로 맞지는 않았지만 허벅지에 총알이 스친 자국을 보니 놀란 가슴이 쉽게 진정되질 않는다.

다짜고짜 총을 쏠 줄은 몰랐다.

역시 베네사가 죽었다는 소문이 쫙 퍼져서 눈에 뵐 게 없어진 모양이다.

이러면 정당방위니까 다 죽여도 되겠지? 분명 그럴 거야. 당장 내가 죽게 생겼다고!

그렇다면 '훌륭한 대화수단'인 마력산탄총을 써야겠어.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마력산탄총을 손에 들고 장전했다.

정말이지 오기 전에 미리 마력산탄을 구입하기를 잘했다.

“병신아! 그것도 제대로 못 맞춰? 나가 뒤져 이 개새끼야!”

대문 쪽에서 양아치가 양아치를 탓하는 소리가 들린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보니 누군가 발길질을 당하며 쇠창살로 굴러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놈의 머리를 조준하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곧 놈의 머리가 퍽하고 터지면서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쏟아졌다.

“덤벼봐! 좆도 아닌 새끼들아!”

내 도발에 놈들은 벽 뒤에 숨어서 손만 내밀고 마력권총을 쏘기 시작했다.

눈 먼 총알이라 내가 맞을 일은 없었지만 건물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얼른 끝내지 않으면 누군가 한 명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난 손이라도 쏴서 무력화시킬 생각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귀가 따가운 소리와 함께 적들의 마력권총과 손이 함께 박살났다.

고통에 찬 비명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고꾸라진 놈들은 쇠창살 쪽으로 머리를 내밀었고 나는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겨 그 못생긴 얼굴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씨발! 씨발! 저 쌍년이 우릴 다 죽이겠어. 튀자!”

분명 나에게 좆을 까서 보여주던 새끼의 목소리다.

놈은 욕을 퍼붓고는 급하게 도망쳤고 그 뒤를 따르는 몇 명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게 속임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무 뒤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한참동안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나와 보니 전부 도망간 지 오래였다.

“후우, 한 발도 안 맞고 끝나서 다행이다. 그런데 이거 어떡하지?”

대문 앞에는 비참한 꼴로 죽어있는 사람의 시체가 4구가 있었다.

전부 머리가 날아가서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역겨워서 구역질이 날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다 후련하다.

“잠깐, 애들은 괜찮나? 들어가서 확인해보자.”

나는 서둘러 고아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들은 총격전이 익숙한지 알아서들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그 뒤에 꼭꼭 숨어있었다.

그리고 다들 나를 보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다짜고짜 생판 남인 나에게 달려들어 위로를 받으려 하는 걸까?

“괜찮아, 이제 무서운 사람들 다 도망쳤어. 울지 않아도 돼.”

나는 아이들을 위로해주면서도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었다.

기사단에게 조사를 받는 것도 그렇지만 갱단이 어떤 식으로 보복할지 모르는데다 모험가길드의 중요한 규정을 어겼을 지도 모른다.

뭐,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으니 잘 풀리겠지. 지금은 애들이나 달래주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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