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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9화 (19/271)

〈 19화 〉 18화

* * *

어제 완수한 의뢰는 과정이 좀 역겨워서 그렇지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우선 할머니께 비비를 해방시켜줬다는 말을 전해드렸을 때는 어찌나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던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할머니께서 자꾸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시려고 하시는 바람에 애를 먹었는데 결국 그 애틋한 태도에 감동을 받아버렸다.

또한 이번처럼 의뢰인과 직접 만난 뒤에 진행되는 의뢰는 평범한 의뢰보다 보수가 많아서 고생한 보람이 느껴졌다.

하지만 모험가들이 마물퇴치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알았다.

마물이라는 건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끔찍한 괴물이었다.

거기다 최하급인데도 마력탄을 20발이나 맞아야 겨우 죽을 정도니 손해가 크다.

그것보다 등급이 높은 마물들은 얼마나 생명력이 질긴 놈들일지는 생각도 하기 싫다.

하여간에 사람의 돈을 빨아먹기 위해서 태어난 괴물이 분명하다.

뭐, 이미 죽은 놈은 이제 그만 생각하고 오늘 할 일에나 신경 쓰자.

오늘은 수리를 맡긴 마법검을 찾아서 고대하던 베네사의 보물을 손에 넣는 날이다.

이틀 만에 다시 찾은 마법무기점은 오늘도 금속을 두드리고 담금질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마침 수리가 다 끝났는데 잘 찾아오셨네요.”

아내를 너무 사랑하는 인큐버스 아저씨는 이틀 전처럼 잘생긴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그의 손에는 내가 맡긴 것과 같은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새것 같은 마법검이 들려있었다.

녹슬었을 때는 평범해보였던 마법검의 검신에는 붉은 기운이 흘렀고 자루를 잡아보니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법으로 움직인다는 것 말고는 익숙한 마력총과는 달리 진짜 마법무기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이런 신기한 물건이 마력총보다 나을 게 거의 없다는 게 좀 아쉽기도 하다.

“화염방사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총 7분15초이고 그 이후에는 완전히 파괴됩니다. 그 점을 유의해주세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수리비는 어떻게 되나요?”

“220 라기르입니다.”

“저번에 아내분이 말했던 것과 비슷하네요. 여기 있어요.”

“감사합니다. 물건을 써보시고 마음에 드신다면 저희들이 만든 물건을 한 번 생각해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나는 인큐버스 아저씨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종종 이곳에 들를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마침 라우라에게 검을 선물해주고 싶기도 하고.

“제 이름은 칼스란입니다. 아내는 미나테린이고요.”

좀 특이한 이름이다. 약간 영양제나 화장품 이름 같기도 하다.

덕분에 외우기는 쉬울 것 같다.

“저는 레베카 카론이에요. 이 귀여운 애는 라우라고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희들이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또 들를게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칼스란에게 인사를 한 뒤에 그의 배웅을 받으며 상점에서 나왔다.

이 세상에서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라우라, 이건 네가 들고 있어. 나는 이런 거 전혀 다룰 줄 모르니까.”

나는 라우라에게 마법검을 넘겼다.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도 그랬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근접전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그쪽으로 경험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 라우라에게 맡기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라우라는 마법검을 받더니 나보다 훨씬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어차피 보물을 얻는 과정에서 파괴될 물건인데도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이런 좋은 검이 마법을 다 쓰면 그대로 끝이라니 너무 아쉬워요.”

“그게 그렇게 좋아?”

“네, 이건 기사들이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검이에요. 뛰어난 실력의 대장장이와 마법공학자들이 우수한 품질의 재료로 만들어내죠.”

라우라가 아쉬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선물이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단검의 자루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라우라, 앞으로 이 단검은 네가 쓰도록 해.”

“이렇게 좋은 물건을 저에게 주신다고요? 이건 레베카님에게 소중한 물건이잖아요.”

“그래서 너한테 선물하는 거야. 너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니까.”

“고맙습니다, 레베카님! 소중히 사용할게요!”

라우라는 크게 기뻐하면서 답례로 나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는 마치 생일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과장 좀 보태면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으면서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녀의 눈표범 귀와 꼬리도 열심히 움직이며 신나는 감정을 드러냈다.

“네가 그렇게까지 좋아할 줄 알았더라면 진작 줄 걸 그랬네.”

“그야 엄청나게 좋은 단검이고 레베카님이 주시는 선물이니까요. 그리고...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헤헤헤.”

나는 귀엽게 웃는 라우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라우라는 나를 포옹하면서 내 가슴에다 얼굴을 파묻고 도리도리 움직였다.

아, 정말 너무 귀여워서 미칠 것 같다.

“제가 너무 시간을 끌어버렸네요.”

“내가 즐거웠으니 괜찮아. 그럼 출발하자.”

나는 라우라와 손을 잡고서 북적북적한 길을 걸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프랑카를 지키는 성문을 빠져나왔고 그대로 버려진 오두막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찰스가 안내했던 길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어서 굳이 지도창을 펼쳐볼 필요는 없었다.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오두막에서는 여전히 보라색 연기 같은 것이 풀풀 피어오르고 있었고 내가 끝장을 내버린 찰스는 말라죽은 기생버섯으로 뒤덮여있었다.

기생버섯들은 찰스를 먹이로 삼아서 자라났다가 날씨가 추워져서 얼어 죽은 것 같다.

“레베카님, 방독면 쓰셔야지요.”

“아, 그래. 가장 중요한 일이지.”

나는 어제 모험가길드 2층에서 마법으로 작동하는 필터가 있는 방독면을 구매했다.

방독면은 내가 아는 것보다는 허접스럽게 생겼지만 마법 덕분에 성능은 확실했다.

그래서 가격이 좀 비싸기는 했지만 기생버섯에 당해서 허무하게 죽지 않으려면 필수다.

방독면을 쓴 우리들의 모습은 어제 복면을 썼던 것에 비하면 제법 양호했다.

그래서 서로를 보고 웃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라우라, 이제 마법검을 나에게 줘. 라우라?”

“레베카님, 이번 일은 제게 맡겨주세요.”

“너에게?”

“네, 저는 레베카님이 위험해지는 건 싫어요.”

라우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이 이번 일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나도 라우라가 위험해지는 건 싫지만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그녀를 설득하느라 시간만 낭비할 것 같다.

“알았어. 정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저 녀석부터 태워버려. 기생버섯이 죄다 죽긴 했지만 혹시 모르잖아.”

“네, 레베카님.”

라우라는 내 명령에 따라서 기생버섯에 파 먹힌 찰스의 시체에다 불을 뿜었다.

녀석의 시체는 기생버섯이 얼어 죽기 전에 발악하느라 이미 수분을 죄다 빨아 먹혀서 바싹 말라버려서 그런지 정말 잘 타올랐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생버섯을 퇴치해보자. 분명 값진 보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우리는 지붕도 없이 형태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지하실로 향하는 문을 찾았다.

그 문은 아마도 식품창고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방의 마룻바닥에서 발견되었다.

두꺼운 금속 재질의 문은 나 혼자 힘으로 겨우 열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웠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보라색 포자가 꾸역꾸역 밖으로 튀어나왔고 라우라는 내 손짓에 따라서 지하실을 향해 불을 뿜었다.

그러자 안개처럼 빽빽하게 뿜어져 나오던 포자들이 순식간에 사그라졌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붙어있던 기생버섯들도 모조리 타죽었다.

“이제 계단에 가까운 버섯들만 정리하고 다시 나와.”

“네, 레베카님.”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라우라의 한쪽 손을 잡아주었다.

라우라는 내 지시대로 계단에서 가까이에 자라나있는 기생버섯들을 향해서 마법검을 조준하고 불을 내뿜어 주변을 싹 태워버렸다.

희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내가 맡긴 일을 끝낸 라우라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잘했어. 한 번에 없애려다가는 질식할 게 분명하니까 이런 식으로 조금씩 정리해나가자.”

나는 라우라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를 격려했고 그녀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리고 나는 라우라의 허리에 밧줄을 묶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끌어당겨서 라우라를 지상으로 데려올 작정이다.

원래 내가 하려던 일인데 라우라가 대신하고 있으니 그녀의 안전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했다.

내 손에 라우라의 목숨이 달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진땀이 난다.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뛰어나오든가 밧줄을 힘껏 당겨. 알았지?”

“네, 걱정 마세요. 화재현장에서도 현상범들을 몇 번 잡아봤으니까요.”

“그래도 네가 위험한 일을 하는데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잖아. 아무튼 조심해.”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레베카님.”

라우라는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짓더니 다시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지하실에서 나오는 연기뿐이고 내 귀에 들리는 것은 무언가가 잔뜩 불타오르는 소리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라우라가 밖으로 나왔다.

“한 번만 더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생각보다 지하실이 그렇게 넓지 않더라고요.”

“충분히 쉬었다가 들어가.”

나는 라우라를 내 무릎 위에 앉혔다.

라우라는 나에게 기대어서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남은 기생버섯을 모조리 불태우려고 지하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녀는 할 일이 있으면 일단 거기에 몰두해서 빨리 끝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밧줄을 잡고서 긴장했었지만 이번에도 라우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어쩜 이리도 귀여우면서도 믿음직한 사람이 다 있나 싶다.

“기생버섯은 모두 태웠어요. 하지만 포자가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직 방독면은 벗지 마세요.”

“그럼 조금 있다가 같이 들어가 보자.”

“네, 레베카님.”

이번에도 우리들은 아까 전과 같이 바닥에 앉아서 쉬었다.

나는 라우라의 머리카락이나 귀나 꼬리의 털이 상하지나 않았을까 잘 살펴봤지만 재가 묻은 것을 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보물을 찾고 나면 내 손으로 직접 씻겨줘야 할 것 같다. 거기에 맛있는 것도 사줘야지!

우리는 더 이상 연기가 나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실은 온통 새카맣게 그을려있었다.

라우라는 허공에 불을 뿜어서 아직 남아있을 지도 모를 포자를 제거하려 했는데 곧 한계에 도달한 마법검이 힘없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지하실을 전부 소독하고 난 뒤에 부서져서 참 다행이다.

그런데 대체 보물이 어디에 있다는 거지?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이 인생의 보물이라는 헛소리를 하지는 않겠지?

“레베카님, 아마도 이 관 안에 보물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나는 라우라가 찾아낸 커다란 석관 앞에서 망설였다.

아무리 그래도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건 좀 마음에 걸렸다.

다른 상자 같은 게 있나 찾아봤지만 지하실에는 오직 이 석관뿐이다.

“레베카님, 관을 열었어요.”

맙소사. 라우라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냥 관 뚜껑을 옆으로 밀어서 열어버렸다.

이러면 내가 쓸데없는 고민을 해버린 꼴이잖아?

애초에 실컷 남의 무덤을 불태운 주제에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레베카님! 안에 마력산탄총이 있어요.”

“뭐라고?”

나는 라우라의 외침을 듣자마자 얼른 관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시체나 다른 돈이나 보석 같은 하나도 없었고 마력산탄총 한 정만 들어있었다.

나는 즉시 마력산탄총에 분석스킬을 사용했다.

명칭 : 버려진 모험가의 마력산탄총

품질 : B등급

기능 : 반동 25%감소, 화력 25%증가

마침 개머리판이 있는 마력산탄총이 가지고 싶었는데 이렇게 딱 나와 주니 정말 기분이 좋다.

거기다 달려있는 기능도 준수해서 더 좋은 품질이나 기능을 가진 것을 얻기 전까지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보물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거라도 나온 게 어디인가 싶다.

만약 허탕을 쳤더라면 화가 나서 당분간 일도 하기 싫었을 것이다.

“이건 마법무기점에 가져가서 점검을 해달라고 해야겠다. 응? 이건 뭐지?”

나는 마력산탄총을 들러 올리다가 그 밑에 떨어져있는 편지를 발견했다.

무슨 내용인지 너무 궁금해서 펼쳐봤더니 오두막 주변을 그린 약도가 나왔다.

보통 이런 건 보물의 위치를 가리키는 단서지.

“아무래도 여기에 뭔가가 숨겨져 있나봐. 얼른 가보자.”

우리는 서둘러 지하실을 빠져나와서 약도에 표시된 곳으로 뛰어갔다.

거기엔 큰 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있었는데 굵은 뿌리들 사이로 작은 돌탑이 하나 보였다.

나는 삽이 없어서 손으로 그곳을 파헤쳤고 라우라가 옆에서 거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땅을 판 결과, 한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상자가 하나 튀어나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았고 그 안에는 대은화가 10닢이나 들어있었다.

“어쩌면 이게 진짜 보물일지도 모르겠어. 한 번에 10만 라기르나 벌었어!”

“축하드려요. 아까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는데 다행이네요.”

“그러게. 네가 고생한 보람이 있었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라우라와 포옹했고 그녀도 나를 꼭 안아주었다.

10만 라기르가 엄청나게 큰돈은 아니지만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당분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돈이다.

“레베카님, 여기에 쪽지가 있어요.”

“쪽지? 어디보자. 당신이 이 상자를 찾으셨다면 전 이미 죽은 사람이겠지요. 총과 돈 모두 가지셔도 됩니다만 선하신 분이시라면 부디 프랑카의 고아원에 일부를 기부해주시기 바랍니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면서 모은 돈이지만 죽어서나마 좋은 일에 쓰고 싶습니다.”

이게 베네사가 쓴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못 들어줄 것도 없는 부탁이었다.

어쩌면 약간의 기부가 좋은 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이 사람의 유언 정도는 들어줘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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