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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5화 (15/271)

〈 15화 〉 14화

* * *

우리가 프랑카로 돌아왔을 땐 점심시간쯤이었다.

모험가길드로 돌아가서 끼니를 해결해도 되지만 기왕 밖에 나왔으니 외식을 하고 싶다.

결정을 내린 나는 라우라와 함께 길거리를 걸으며 식당을 찾아 나섰다.

언제나 인파로 북적이는 번화가와 인접한 식당들은 역시나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유명해도 줄까지 서서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더 걸어가서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여기는 주로 커플들이 찾는 곳인 모양이다.

다들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거나 서로 손을 만지작거렸다.

“라우라,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얼마든지 다 시켜도 돼.”

“감사합니다. 저는 먹물파스타랑 감자튀김을 시킬게요.”

“그럼 나는 리소토 먹어야겠다.”

서로 먹고 싶은 게 결정되자 나는 종업원을 불러다 음식을 주문한 뒤에 뭔가 답답한 속을 시원한 물로 달랬다.

죽어도 싼 놈을 죽였는데 이제 와서 왜 이렇게 기분이 별로인지 모르겠다.

“레베카님, 혹시 그 일이 신경 쓰이시나요?”

“솔직히 좀 그래.”

첫 만남부터 느끼는 거지만 라우라는 눈치가 참 빠른 것 같다.

내가 고민을 한다 싶으면 바로 저렇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런 라우라의 눈과 마주할 때면 그녀가 나를 배신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절로 생겼다.

“레베카님은 옳은 일은 하신 거예요. 분명 베네사라는 분도 레베카님에게 고마워하실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고마워.”

라우라의 친절한 배려 덕분에 답답했던 기분이 확 풀렸다.

그래, 나쁜 놈을 죽인 일로 괜히 고민하고 있을 이유는 없어.

애초에 나도 작정하고 벌인 일이니까 바보처럼 얽매이지 말자.

“레베카님이 기운을 차리셔서 다행이에요. 아! 식사가 나왔어요. 맛있게 드세요.”

라우라는 요리를 보자마자 신나하면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동안 얼마나 못 먹고 지냈으면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 저렇게 기뻐하나 모르겠다.

아무튼 라우라의 순수한 미소를 보고 있으니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할라.”

나는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라우라에게 물까지 줘가면서 진정시켰다.

어제 피자를 먹었을 때도 그렇지만 라우라는 정말 복스럽게 잘 먹는다.

세상 모든 할머니들이 참 좋아할 인재다.

“레베카님, 이 파스타 한 번 드셔보세요. 엄청 맛있어요.”

수줍은 표정의 라우라는 먹물파스타 몇 가닥을 포크로 감아서 나에게 내밀었다.

난 왜 이런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감동을 받는 건지 모르겠다.

그만큼 원래의 삶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정말이네. 엄청 맛있어.”

파스타 자체는 평범한 맛이었지만 라우라가 먹여주니 굉장히 맛있게 느껴졌다.

집에서 혼자 해먹던 파스타보다 훨씬 더 맛있다.

나중에 요리할 일이 생기면 내가 직접 라우라를 배불리 먹여주고 싶다.

우리는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주거나 잡담을 나누면서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냈는데 주변에서 보내는 부러워하는 시선이 기분 좋았다.

“레베카님, 후식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간단하게 커피 한 잔 마실래. 너는?”

“저는 레몬에이드요.”

이번에는 라우라가 주문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쁜 머그컵에 담긴 진한 커피와 시원한 유리잔에 담긴 새콤한 레몬에이드가 나왔다.

라우라는 레몬에이드를 빨대로 쭉 들이키더니 귀를 열심히 쫑긋거리며 좋아했다.

“라우라, 넌 커피는 별로 안 좋아해?”

“제 고향은 북쪽이라서 커피가 귀했어요. 그러다 부모님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왔을 때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봤었는데 부모님은 아주 좋아하셨지만 저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아쉽네. 너랑 커피를 마시는 것도 참 좋을 텐데 말이야.”

“노력해볼게요.”

“아니야. 못 먹는 걸 억지로 입에 넣을 필요 없어.”

“그치만 레베카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은 걸요.”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네 몸에는 커피가 안 좋을지도 모르잖아.”

난 라우라가 날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싫다.

어제도 라우라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녀의 몸을 탐닉했었고 앞으로도 반드시 그럴 것이다.

라우라의 신뢰를 깨뜨리는 건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는 레베카님을 만난 지 겨우 하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제가 노예에서 해방되더라도 레베카님과 함께 살고 싶어요. 레베카님의 곁이라면 분명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나는 라우라가 하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서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다행히 나는 억지로 커피를 삼켰고 라우라에게 되물었다.

“그, 그게 정말이야? 해방되어도 내 곁에 있고 싶다는 게 진심이야?”

“네, 레베카님. 진심이에요. 전 레베카님이 좋아요.”

“고마워, 라우라! 정말 고마워!”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라우라를 와락 껴안았다.

라우라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뜨거운 감정이 다시 한 번 내 몸을 지배했다.

내 새로운 삶에 있어서 라우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그런 라우라가 나와 평생을 함께 살고 싶다는 말을 해줬다.

정말 기쁘다! 너무 신이 나서 눈물이 다 날 정도다.

“라우라, 네가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게.”

“네, 레베카님. 저도 정성을 다해서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라우라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하는 말을 들으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나와 라우라는 주변의 연인들처럼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손을 어루만지거나 종종 입을 맞추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했다.

그렇게 기쁨을 만끽하면서 여유를 부리다 무심코 창문 밖을 내다보니 식당 건너편에 있는 마법무기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마침 대장간 같은 곳에 들러서 마법검을 수리할 생각이었는데 일단 저기로 가봐야겠다.

“라우라, 이제 슬슬 나가보자. 너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좋지만 오늘 할 일은 다 끝마치고 싶어.”

“네, 레베카님.”

나는 식당에 값을 지불한 뒤에 라우라를 데리고 곧장 길을 건너 마법무기점으로 향했다.

상점 안으로 들어가니 다양한 마법무기들이 벽면에 잔뜩 걸려있었고 유리로 된 판매대 안에는 작은 마법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계산대 너머로 보이는 공간에는 대장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누군가 열심히 금속을 담금질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우리를 반기는 사람은 큐버스족 중년남자다.

미중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잘생겼고 잘 다듬은 수염과 세련된 안경이 인상적이다.

이런 상점의 주인보다는 귀족의 집사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참고로 큐버스족 남자는 인큐버스, 여자는 서큐버스라고 불리는데 종족 전체가 흑발에 붉은 눈을 가졌다.

또한 검은색 뿔이 있는 게 특징인데 머리 양옆에서 자라나 위를 향해 솟아난 원뿔 형태이고 아주 매끄럽다.

큐버스족은 뿔보다는 젊은 여성들이 노출이 많은 옷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에는 얌전한 옷을 입지만 대략 15살부터 슬슬 노출하는 면적을 늘리기 시작하다가 성인이 되면 파격적인 수준으로 노출 면적이 많은 옷을 입고 다닌다.

그래서 서큐버스는 문란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지만 실제로는 순정파가 많고 결혼을 하면 다시 얌전한 옷을 입곤 한다.

아무튼 서큐버스는 다음에 만나보기로 하고 지금은 인큐버스 아저씨의 환영인사에 답할 때다.

“이걸 수리할 수 있나 싶어서요.”

나는 녹슨 검을 아저씨 앞에 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인큐버스 아저씨는 녹슨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대장간에서 한창 금속을 두드리고 있던 휴먼족 아줌마를 불렀다.

그녀의 굵은 팔은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덩치도 인큐버스 아저씨의 두 배는 될 것 같았다.

“여보, 이거 제대로 고칠 수 있을까? 녹슨 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검 자체는 이틀이면 고칠 수 있어. 당신 분야인 마법 쪽이 문제지. 그런데 이거 아가씨 물건이야?”

둘이 부부였구나! 아저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바람피우면 안 되겠다.

분명히 아줌마에게 척추가 뽑혀서 죽어버릴 테니까.

그런데 저 아줌마는 왜 저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

“고블린 소굴에서 전리품으로 얻었어요.”

“어쩐지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어. 마족들은 마법무기를 함부로 다루거든. 이건 제대로 고치더라도 앞으로 5분 정도 불을 뿜으면 부서질 거야.”

다행히 아줌마는 그저 내게 검의 상태를 가르쳐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단지 얼굴이 험악하게 생겨서 나도 모르게 오해를 한 모양이다.

“아마도 그 정도 쓸 수 있으면 충분할 거예요. 수리비는 얼마인가요?”

“정말 수리하려고? 알았어. 수리비는 대충 2백 라기르면 될 것 같은데 후불이니까 나중에 다시 정산해줄게. 이틀 뒤에 다시 찾아오도록 해. 그럼 여보, 난 다시 일하러 갈게.”

아줌마는 아저씨를 힘껏 포옹하고는 다시 일터로 돌아갔는데 나는 아저씨가 터져서 죽을까봐 걱정이었다.

다행히 아저씨는 무사했고 오히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부 사이가 좋은 것 같아서 참 다행이네.

이쯤 되니 언젠가 나도 라우라와 결혼을 하는 날이 올 지 궁금하다.

만약 라우라가 섹시한 웨딩드레스를 입고서 나를 향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 난 그 즉시 코피를 흘리며 기절할 자신이 있다.

“하하, 이거 참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원하시는 만큼 둘러보시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뭐든 물어보세요.”

뭐든 물어보라는 말에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

“마법사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나요?”

“마법사는 총이 발명된 뒤로 묻혀버린 옛말이고 요즘에는 저처럼 마법으로 움직이는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을 마법공학자라고 부르지요.”

“아, 그렇군요.”

정말 아쉬운 대답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전형적인 마법사가 아예 없는 세상이라니 말이다.

만약 내가 총기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설정했거나 마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정했더라면 그런 마법사들을 제법 많이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뭐,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자.

내가 마법사를 찾은 이유도 마법을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미니맵 역할을 할 수 있는 마법도구 때문이었으니까.

“손님께서는 마법사를 왜 찾으셨나요? 마법과 관련된 도움이 필요하신 가요?”

“주변의 상황이나 적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마법도구가 있나 궁금해서요. 그런 게 존재하긴 하나요?”

“음...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런 개념을 연구 중이라는 소식은 몇 번 정도 들어봤습니다. 아마 수도에 가시면 시제품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정도면 딱히 나쁜 상황은 아니다.

시제품이라도 그것을 사용할 기회만 얻을 수 있다면 미니맵 기능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문제는 그 시제품을 찾더라도 개발한 측에서 나에게 잠깐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해줄 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수도로 갈 수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여기서 수도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마차를 타고 쉬지 않고 간다 치면 아마 빨라도 한 달은 넘게 걸릴 겁니다. 젊었을 때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자세하게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

수도로 가는 여정에 대해서 들으니 벌써부터 힘들다.

당분간은 프랑카에서 지내면서 돈을 모아 남의 마차를 얻어 타든 내 마차를 사서 가든해야겠다.

“그리고 이건 마지막 질문인데요. 마력이 강해지면 어떤 부분이 좋아지나요?”

“마력은 타고나는 거라서 더 강해질 방법은 없어요.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저 같은 마법공학자는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진 마법도구를 만들 수 있고, 손님 같은 모험가는 마법무기의 위력이나 전체적인 신체능력이 약간씩 향상될 겁니다.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지요.”

아저씨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말했지만 나에게는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나는 꿈만 같은 이야기를 실현하기 위해서 스테이터스창을 열고 마력에 특수 포인트를 투자해서 D랭크로 올렸다.

그러자 온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다가 사라졌는데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손님, 방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괜찮으신가요?”

“아, 네. 괜찮아요. 제가 좀 질문이 많았는데 전부 다 친절하게 답변해주셔서 고마워요.”

“그게 제가 할 일이니까요.”

아저씨는 멋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괜히 라우라가 아저씨에게 반하면 어쩌나하는 걱정까지 생겼지만 지금 라우라는 무기를 구경하느라 바빴다.

그녀는 총기만큼이나 도검류에 관심을 많이 보였는데 검술스킬이 있으니 당연한 행동으로 보인다.

수리를 맡긴 마법검은 기생버섯을 정리하면 못 쓰게 될 것 같으니까 새로 검을 사서 선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제 나도 구경 좀 해볼까나?’

나는 상점 안에 있는 모든 마법무기들에 일일이 분석스킬을 사용하면서 구경했다.

내가 수리를 맡긴 것과 동일한 기능을 가진 마법무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마법사에게서 보고 싶었던 다양한 공격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마력총보다 효율적인 마법무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각종 마력총에 분석스킬을 써보니 마법사라는 직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마력총의 긴 사거리와 강력한 화력은 어떠한 전통적인 마법무기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는 게 현실이었다.

‘지금부터 산탄총이나 소총을 살 돈을 조금씩 모아야겠다. 싼 게 5만 라기르씩이나 하니까 말이야.’

나는 이번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의뢰는 마력권총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방금 마력을 D랭크로 올려서 총기의 위력도 약간 향상되었을 테니 보다 강력한 화력을 가진 무기를 우선순위로 둘 필요는 없다.

대충 구경을 끝낸 나는 라우라와 함께 상점에서 나왔다.

물론 잘생기고 친절한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수리하는데 이틀이 걸린다고 하니 그동안 의뢰를 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

아참, 사격훈련장에도 가기로 했었지?

오늘 빼먹으면 계속 안 갈 것 같으니까 의뢰를 받기 전에 거기부터 가봐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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