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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4화 (14/271)

〈 14화 〉 13화

* * *

난 협박이나 심문에는 재능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범죄와는 거리가 아주 먼 삶을 살아왔으니 당연한 거겠지.

내가 그 사자족 모험가들을 끌고 온 곳은 인적이 없는 골목의 막다른 길이다.

곳곳에 쓰레기와 오물이 널려있는 곳에 그것들을 처박아두니 참 잘 어울린다.

내가 놈들에게 원하는 것은 배상금이다.

어차피 진심으로 사과를 할 놈들도 아니고 죽여 봤자 나만 손해이니 돈으로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을 거다.

마음 같아서는 다 죽여 버리고 싶지만 접수원이 말해준 것처럼 이런 쓰레기들 때문에 나의 새로운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다.

도시 바깥에서 우연히 ‘사고’를 당하면 몰라도 간단하게 가해자가 나로 특정될 수 있는 지금은 아니다.

“너 이름이 뭐야?”

“찰스입니다.”

본인을 찰스라고 소개한 사자족 모험가는 여전히 아픈 불알을 손으로 붙잡은 채로 내 질문에 고분고분하게 답했다.

방금 전까지 내 가슴과 엉덩이를 탐하고 싶었던 녀석이 고분고분 나오니 기분은 좋네.

나머지의 이름은 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을 테니까.

“펜던트 내놔봐.”

나는 찰스의 펜던트를 거의 뺏는 수준으로 받아내서 모험가 등급을 확인했다.

나보다 한 단계 높은 D급 모험가이면서 이런 꼴이라니 참 한심하다.

“베네사와 무슨 관계야?”

“올해부터 같이 일했던 파티원입니다. 한 달 전에 실종되었고요.”

“그러니까 너희들이랑 일하다가 갑자기 실종되어서는 고블린의 번신굴에서 발견되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D급 모험가가 고작 고블린도 못 이기고 번식굴에서 발견된 것은 다시 말해서 배신을 당했다는 말인데 혹시 아는 거 있어?”

“그, 그건...”

역시나 찰스는 정곡을 찔렸는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라우라에게 손짓을 하자 그녀는 바로 찰스의 턱밑에 총구를 들이댔다.

그러자 잔뜩 겁에 질린 찰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누, 누, 누, 누님 말씀이 맞습니다! 돈이 부족해서 베네사의 유산을... 으아악!”

난 찰스의 역겨운 변명을 다 들어줄 생각이 없었고 다시 한 번 놈의 가랑이 사이를 힘껏 걷어차서 고통으로 울부짖게 만들었다.

내가 목격했었던 그 불쌍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더 화가 난다.

이런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들 때문에 그런 최후를 맞이한 베네사라는 사람이 너무 안쓰러웠다.

“개씨발! 좆같은 새끼! 너 같은 병신새끼들 때문에! 씨발!”

난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찰스를 마구 짓밟고 걷어차다가 아예 라우라가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각목으로 놈을 구타했다.

배상금만 받아내고 곱게 보내주려고 했더니 도저히 못 참겠다!

나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찰스는 감히 날 올려다보지 못했다.

“야! 대가리 들어. 베네사는 돈 때문에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치자, 마법검은 왜 달라고 한 거야?”

“마법검은 그냥 저 년들이 가지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특별한 것도 없는데 굳이 가지고 싶다고 말해서 그만...”

찰스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여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진짜인지 남 탓을 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 마법검은 내가 분석스킬을 사용했을 때도 특별할 것은 없었으니 단순한 물욕 때문에 달라고 한 것 같다.

“배상금을 낼 능력은 있어?”

“죄송하지만 지금은 돈이 별로 없습니다.”

“나한테 술 사준다더니 허세였네? 응? 병신새끼!”

난 다시 찰스를 구타했고 라우라는 뒤에서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정말이지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한 쌍이 분명하다.

나는 지칠 때까지 찰스를 때렸지만 튼튼한 찰스는 이번에도 잘 버텨주었다.

그리고 질려버린 내가 마력권총을 꺼내들자 놈이 황급히 내 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사실은 베네사가 보물을 숨겨둔 장소를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방치해두고 있습니다.”

“보물? 거기가 어딘데?”

“그게... 말로는 설명을 드리기 어렵고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 새끼가 우릴 함정에 빠뜨릴 생각인가?

어차피 나한테는 지도창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여차하면 바로 뒤에서 쏴버리면 되니까 일단은 안내를 시켜보자.

난 라우라와 눈을 마주치며 그녀의 동의를 구했고 라우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년들을 기사단에 넘긴 뒤에 너는 안내를 해줘야겠어.”

“알겠습니다.”

찰스는 동료들을 기사단에 넘긴다는 말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긴 베네사를 일부러 죽게 만들어서 위로금과 유산을 받아 챙기려고 했던 놈들이니 서로 간에 의리가 있을 리가 없지.

“그럼 네가 저것들을 옮겨.”

나는 찰스에게 귀찮은 일을 떠넘기고는 라우라의 손을 잡고 놈의 뒤를 따라 기사단 본부로 향했다.

아직도 분노로 떨리는 내 손을 라우라가 두 손으로 꼭 잡아주었다.

라우라 앞에서 욕을 퍼붓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때렸다고 생각하니 뒤늦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라우라는 나를 전혀 탓하지 않고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이런 라우라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금방 기사단 본부에 도착한 우리는 찰스가 옮긴 여자들을 폭행과 살인미수로 고발했다.

그러자 모험가길드로부터 일찌감치 사건에 대해서 전해들은 기사단 측에서 사자족 여자들을 지하 감옥으로 연행했다.

나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감상한 뒤에 기사단 본부를 떠나기 전에 궁금한 것들을 가까이에 있는 엘프족 기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녀는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를 가진 미녀였는데 미소가 예쁜 사람이다.

“기사님. 저 사람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나요?”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노예 신분이 되고 그 즉시 그대에게 소유권이 생긴다오.”

“제가 거부할 수는 없나요?”

“그대가 인수를 거부하면 노예들은 검투경기장으로 팔려가게 되오. 이럴 경우엔 수수료를 제외한 판매금은 모두 그대의 것이오. 이 서류를 작성해서 저기 앉아있는 공무원에게 접수하면 판결이 난 이후에 원하는 대로 처리될 거요.”

나는 친절한 기사의 말에 따라서 서류를 작성했다.

그 재수 없는 년들이 노예가 되는 것도 모자라 나에게 돈이 되어준다니 기분이 좋아진다.

기왕이면 비싸게 팔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저런 실력으로 검투노예로 팔렸으니 금방 죽어버리겠지만 저지른 잘못들이 있으니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

그런데 서류를 제출하고 돌아오니 재판이라는 말이 괜히 마음에 걸린다.

“기사님. 설마 법정에 저도 나가야하나요?”

“법정에서 사용되는 마법수정구가 피고의 기억과 생각을 완벽하게 읽어내기 때문에 그대가 출석할 필요는 없소.”

와! 그거 정말 편하고 공정한 방식이네.

적어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풀려나지는 않겠어.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고 신분제도까지 있으니까 돈과 권력으로 무마하거나 아예 법정에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겠지.

“그거 다행이네요. 왠지 법정은 거북해서 말이죠.”

“대신 기사단 본부에는 조만간에 또 들러야할 거요.”

기사가 갑자기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혹시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겠지? 설마 쌍방폭행?

“네? 어, 어째서요?”

“나중에 판매금을 받아가야 하니 말이오.”

기사는 약간 겁을 먹었던 나를 보더니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이 예쁜 귀쟁이가 사람을 놀리고 있네.

야! 씨발 네가 예뻐서 봐준다.

“그런데 그 남자는 고발하지 않는 거요? 딱 봐도 방금 그 여자들과 한패인 것 같은데.”

“제 노예의 머리를 잡아당겼는데 그것도 처벌할 수 있나요?”

“그건 재물손괴에 해당되는데 노예가 다치거나 하지 않았으니 약간의 벌금만 내면 끝이오.”

“그럼 그냥 넘어갈래요. 마침 같이 할 일이 생기기도 했고요.”

“처벌의사가 없다니 잘 알겠소. 이 서류를 작성해서 방금처럼 전해주시오. 아무튼 모든 일처리가 끝나면 모험가길드에 통보가 갈 테니, 그때 기사단 본부로 와서 보관 중인 판매금을 받아가시오. 참고로 보관기간은 길어야 한 달이니 유의하시오.”

기사는 중간에 장난을 치긴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저번에 만났던 기사단장을 생각하면 그런 사람 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대부분 이렇게 평민들에게 친절하지 않을까 싶다.

“자, 그럼 보석을 찾으러 가자! 빨리 앞장서.”

우리는 찰스를 앞장세워서 도시를 빠져나왔다.

오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고 기분 나쁜 일도 있었지만 조만간에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나는 찰스를 따라가는 와중에도 지도창을 보면서 놈이 이상한 길이나 함정으로 우리를 안내하지는 않는지 주의를 기울였다.

다행히 찰스는 정상적인 길로 우리를 안내하긴 했지만 나는 혹시 모르니 라우라에게 언제든지 찰스를 제압할 준비를 하도록 명령했다.

찰스가 우리를 최종적으로 안내한 곳은 지도창에서 물음표로 표시된 곳 중에 하나였다.

지도에 표시되는 이름은 바로 ‘버려진 모험가의 오두막’이다.

“누님, 저 오두막 지하실에 보석이 있습니다.”

찰스는 보라색 연기 같은 것이 아주 조금씩 피어오르는 오두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연기는 양이 너무 적어서 오두막 근처를 전혀 벗어나질 못했지만 찰스는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그래서 왜 여태까지 방치했어?”

“기생버섯 때문입니다. 저기 갈라진 벽 쪽에서 포자가 나오는 것 좀 보세요.”

기생버섯이라? 하필이면 그 위험한 버섯이 보석이 있는 곳에 피어있을 줄은 몰랐네.

내가 설정한 바에 따르면 기생버섯은 포자를 통해서 호흡기로 들어와 인간과 마족으로 한정된 숙주의 뇌를 잠식하고 습하고 어두운 곳으로 유도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숙주는 그대로 즉사하고 죽은 숙주를 양분삼아 자라난 기생버섯은 다시 포자를 퍼뜨려 숙주를 감염시키는 번식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약간의 포자를 마신다고 바로 감염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한꺼번에 많은 양의 포자를 방출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재미로 만든 생물을 직접 마주하니 꽤나 머리가 아프다.

게임이면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지만 지금의 나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난 절대로 베네사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생각이 없다.

‘다행인 점은 내가 만든 생물의 약점은 알고 있다는 거야.’

기생버섯의 약점은 간단하게 말해서 불이다.

일정한 거리 밖에서 넓은 범위로 불을 지속적으로 뿜어낼 수 있는 화염방사기 같은 물건이나 마법이 있다면 안전하게 포자와 기생버섯을 처리할 수 있다.

이제야 찰스일당이 내가 전리품으로 챙긴 마법검을 가지고 싶어 한 진짜 이유를 알겠다.

오두막에 불을 붙여도 지하실까지 태울 수는 없으니 단거리 화염방사 기능이 있는 마법검으로 지하실을 제압하려했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 당장은 마법검을 쓸 수 없으니 수리해서 다시 돌아와야겠다.

하지만 그 전에 여기서 끝장을 봐야할 일이 하나있다.

“이제 넌 필요 없어. 여기서 베네사에게 저지른 일을 반성하면서 죽으라고.”

나는 쓸모를 다한 찰스의 사지를 총으로 쏴버렸다.

찰스는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며 날 저주했지만 알게 뭐람.

난 놈을 포자가 피어오르는 갈라진 벽으로 끌고가서 거기에 대가리를 처박아버렸다.

한 사람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든 놈에게 자비 따윈 필요 없다.

나는 찰스가 살고 싶어서 발악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라우라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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