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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9화 (9/271)

〈 9화 〉 8화

* * *

나는 바로 1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3층에 있는 식당으로 왔다.

라우라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귀여운 소리가 들려서다.

난 부끄러워하는 라우라를 데리고 식당에 와서 피자를 한 판 시켰다.

그리고 기뻐하는 그녀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즐겼다.

정작 내 입으로는 뭐가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걱정이 많지만 말이다.

‘하아, 음식은 싸서 다행이다.’

난 이 세계로 와서는 웬만하면 돈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르카디아도 결국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서 돈이 필요하다.

나 혼자 살고 있다면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모험가길드에서 의뢰를 수행해서 그때그때 돈을 벌어도 된다.

하지만 이젠 내가 책임져야할 사람이 생겼다.

라우라가 풍족하진 못해도 부족함을 느낄 일이 없도록 해주고 싶다.

처음 설정했었던 자금무한치트만 제대로 동작했어도 이런 걱정을 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무슨 숨겨진 조건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레베카님,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 가요?”

“별 것 아니니 걱정 마.”

나는 차마 라우라에게 돈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을 수 없었다.

자존심 버리고 솔직해져봤자 분명 라우라가 나에게 실망하거나 나를 한심하게 생각할 거다.

그래도 라우라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저기, 라우라.”

“네, 레베카님.”

“만약에 너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면 꼭 나한테 말해줘야 해. 알았지?”

“뭐든지 말씀인가요?”

“예를 들어서 불편한 점이나 고민이 있다면 내게 상담하고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 같으면 바로 말해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우라는 내가 하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는지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가끔 저게 진짜 미소가 맞는지 궁금했다.

확인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혹시 호감도 시스템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난 피자를 먹다말고 라우라의 스테이터스 창을 꼼꼼하게 확인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라우라를 사는 일에 집중했고 그 다음에는 라우라를 구입한 것 자체만으로 기뻐서 라우라의 스테이터스를 자세히 보지 않았었다.

라우라는 힘과 지구력, 건강은 D랭크이고 마력은 나랑 같은 E랭크, 민첩성은 B랭크다.

그녀는 레벨뿐만 아니라 기본 스테이터스도 지금의 나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라우라, 훈련 같은 걸 받은 적이 있니?”

“네, 레베카님.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싸우는 법을 조금 배웠어요.”

“그래서 총도 쏠 줄 알고 고블린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거구나.”

“레베카님은 배우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거짓말은 아니다. 리볼버 쏘는 법은 가상현실 FPS게임을 하면서 배웠으니까.

옛날처럼 징병제를 하는 시대라면 좀 더 제대로 배웠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말고.

아, 그런데 대체 다른 정보는 어디서 볼 수 있는 거야? 아예 없나? 어? 이건...

스테이터스 창을 밑으로 내리니 상세개인정보 창으로 넘어가는 버튼이 보였다.

분명 다른 사람이나 생물, 물건에 분석스킬을 썼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상세개인정보 창으로 넘어가니 내가 찾던 호감도 뿐만 아니라 보유스킬과 건강상태, 소지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지품 창에는 내가 라우라에게 사준 물건들이 한눈에 보였다.

역시나 돈은 한 푼도 없었는데 이번 의뢰를 끝내면 용돈을 좀 줘야겠어.

‘건강상태는 양호해서 다행이네. 그리고 보유하고 있는 스킬은... 나보다 많네.’

난 라우라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을 살펴보았다.

전투스킬은 총기사격, 신속조준, 제압사격, 고속장전에 한손검술이 있다.

나중에 한손검을 사주면 좋아할 것 같다.

그리고 비전투스킬은 고통내성과 회피, 높이뛰기, 멀리뛰기, 은신, 나무타기, 암벽등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역시 눈표범족다운 스킬구성이다.

특이한 점은 라우라는 전반적으로 스킬레벨이 나보다 높지만 나와 달리 스킬레벨에 상한이 있거나 아예 스킬레벨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설명을 보니 종족이나 부족 혹은 개인마다 이러한 제한이 다양하게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즉, 여러 가지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의 레벨을 올려서 꾸준히 강해질 수는 있지만 스킬성장에는 한계가 있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초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난 그런 제한이 있다는 설명은 없었는데 이상하네. 혹시 나만 한계를 뛰어넘어서 강해질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이것 역시 일종의 치트겠지? 좋았어!’

적용 중인 치트를 확인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은 돈도 없고 약한 편이지만 노력하면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고 그걸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니까.

설마 총이 죽창처럼 작용해서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으로 끝나지는 않겠지?

혹시 모르니 조심하자. 괜히 까불다가 죽으면 쪽팔리잖아!

“레베카님, 이번에는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그냥 네가 잘 먹으니까 기분이 좋아서.”

내가 하는 말을 들은 라우라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졌다.

귀엽기는. 난 라우라의 볼에 묻은 토마토소스를 닦아주었다.

그럼 이제 호감도를 살펴보자.

설명부터 읽어보니 호감도는 0을 기준으로 최소 ­5, 최대 5라고 한다.

0은 무관심, 1은 지인, 2는 친구, 3은 친한 친구, 4는 연인, 5는 맹목적 사랑이다.

그리고 ­1은 귀찮은 사람, ­2는 싫은 사람, ­3은 미운 사람, ­4는 적, ­5는 원수다.

지금 라우라의 호감도는 2인데 최소한 호감도가 4는 되어야 라우라가 날 사랑해줄 테니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

“레베카님, 피자 좀 드세요. 다 식겠어요.”

“아, 고마워.”

라우라는 기특하게도 내가 먹을 것을 따로 챙겨두었다. 노예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라우라의 미모를 감상하며 남은 피자 반쪽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모험가길드에 오자마자 이것저것 한 일이 많아서 배가 고픈 줄도 몰랐던 것 같다.

“음, 잘 먹었다. 그럼 1층에 가보자.”

“네, 레베카님.”

라우라는 내 입 주변을 정성스럽게 닦아주며 말했다.

벌써 나에게 적응이 된 걸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라우라를 데리고 1층으로 내려가서 그 드워프 접수원에게로 갔다.

오늘로 벌써 3번째 만남이지만 접수원은 고맙게도 귀찮아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혹시 노예도 길드에 등록해야하나요?”

“길드원이 될 수는 없지만 해당 길드원의 소유물로 등록할 수는 있어요.”

“등록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예를 들어 분실이나 상속문제를 해결해드린답니다.”

분실? 상속? 둘 다 전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태다.

하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라우라를 등록해두자.

나는 접수원에게 서류를 하나 받아서 라우라를 나의 전투노예로 등록했다.

아무리 그래도 성노예라고 대놓고 등록하기는 좀 그렇잖아.

그러고 나서 라우라에게 분석스킬을 사용해보니 직업이 무직에서 전투노예로 바뀐 것이 보였다.

확실히 지금의 나보다는 전반적으로 강하니 전투노예가 어울리긴 해.

“그리고 지도를 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지도는 구매하거나 통째로 복사하는 게 불법이라서 길드에서는 약도를 제공해드리고 있어요. 가끔 천재이신 분들은 아예 지도를 통째로 외우기도 하더라고요. 이 경우는 불법이 아니라 괜찮다고 해요.”

유감스럽지만 난 천재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지.

아무튼 지도는 통째로 못 외운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머리가 터져서 죽을 거다.

“그럼 도시 주변의 약도를 주세요. 아참, 약도에서 마족이 사는 곳 같은 건 확인할 수 있나요?”

“약도에는 대략적인 주변의 지리와 의뢰대상의 서식지가 표기되어 있어서 의뢰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큰 문제가 없어요. 그래도 진짜 지도를 한 번 보고 가는 게 좋겠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접수원은 말 그대로 잠시만 자리를 비웠다가 자기 몸보다 큰 지도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건 프랑카 시와 인근 지역을 그린 지도예요. 한 번 확인해보세요.”

지도를 보니 내가 처음 눈을 뜬 곳은 도시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이었다.

프랑카는 서쪽으로 농지가, 동쪽에는 목초지가 펼쳐지고 작은 마을들이 곳곳에 있는데 그 너머는 숲으로 둘러싸여있다.

그리고 북쪽과 남쪽은 숲이 깊어서 마을이 없지만 다른 도시와 이어지는 주요도로가 있고 곳곳에 작은 요새나 망루 같은 것들이 건설되어 있다.

­알림­

프랑카 지방 잠금 해제

뭐야 이거? 갑자기 내 눈 앞에 웬 알람이 뜨더니 내 앞에 접수원이 보여준 지도와 똑같이 생긴 지도 창이 나타났다.

주변의 실시간 변화 같은 건 알 수 없지만 마족의 서식지가 약도보다 훨씬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고 지역에 들어가기 적절한 레벨까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물음표로 표기된 지역들이 제법 많았는데 직접 찾아가지 않는 이상에야 알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보물 상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다 확인하셨나요?”

“아, 네. 감사합니다. 혹시 다른 지역의 지도도 볼 수 있을까요?”

“그건 불법이라서 불가능해요. 대륙전도를 보고 싶으시다면 수도로 가셔야하고요.”

이 세상은 지도를 정말 까다롭게 다루는 구나. 역시 마족들 때문이겠지?

마족들에게 상세한 지도가 넘어가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테니 말이야.

“그렇군요.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의뢰를 완수하고 돌아올게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나는 친절한 접수원의 배웅을 받으며 라우라와 함께 모험가길드 건물에서 나왔다.

여전히 거리에 사람들이 많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말이나 다른 짐승들도 많이 보인다.

생각해보니까 나 목적지까지 걸어가야 하는 구나? 목적지까지 2시간이 넘게 걸리네.

얼른 돈 벌어서 말이든 마차든 뭐든 탈 것을 사야겠다.

“레베카님, 실례지만 이대로 가는 건가요?”

“응. 왜?”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서요. 물과 식량, 응급치료키트, 담요, 부싯돌은 기본이거든요.”

씨발. 라우라가 아니었으면 개고생을 할 뻔 했다.

그런 기본적인 생각도 못하다니! 내가 너무 마음이 급했다.

아직 게임감각으로 이 세상을 받아들여서 그런가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

“다시 들어가야겠네. 하하하.”

난 쪽팔림을 감수하며 다시 길드의 2층으로 올라가서 라우라가 언급한 것들을 구입했다.

다행히 물건들은 별로 비싸지는 않았지만 한꺼번에 사니까 은근히 돈이 많이 들었다.

이번 의뢰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적자로 마무리 될 것 같지만 당장 필요한 생활비는 벌 수 있을 것 같다. 반드시 그래야한다.

“고마워, 라우라. 아직 너랑 함께한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많은 도움을 받았어.”

“노예는 주인님께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하는 걸요. 저도 레베카님께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잘 지내보자.”

“네, 레베카님.”

라우라는 나한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쁜지 환하게 웃었다.

이대로 쭉 좋은 분위기가 유지되어서 호감도가 빨리 오르면 좋겠다.

“그럼 이제 진짜로 출발하자. 여기서 또 빼먹은 게 있으면 정말 부끄러울 것 같아.”

난 라우라와 함께 도시를 나와서 나만 보이는 지도 창을 보면서 고블린 서식지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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