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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8화 (8/271)

〈 8화 〉 7화

* * *

난 라우라를 숙소로 데려왔다.

모험가길드에서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듣자하니 모험가가 노예를 데리고 다니는 건 흔한 일이라고 한다.

주로 전투노예나 가사노예로 많이 쓰고 극소수의 성노예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내가 바로 그 극소수 성노예의 주인님이시다.

난 방석 위에 다소곳이 앉아 꼬리를 살랑거리며 주변을 훑어보고 있는 라우라에게 한 번 더 분석스킬을 썼다.

레벨 : 20

이름 : 라우라

성별 : 여성

종족 : 눈표범족

나이 : 20세

신분 : 레베카 카론의 성노예

직업 : 무직

라우라의 신분이 바뀌었다. 확실히 내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런데 노예는 무조건 직업이 무직으로 고정되는 건가?

내가 아무런 일도 할당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참에 라우라의 특기를 알아두자.

“라우라, 네가 잘하는 일은 뭐니?”

“저는 주인님께서 의뢰를 수행하실 때 곁에서 전투와 잡일을 거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청소나 빨래도 가능하지만 요리는 최악입니다. 그리고 섹스는 경험이 없어서 주인님을 만족시켜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걱정 마. 여기서 지내는 동안엔 집안일을 할 일 없거든. 섹스야... 나도 해본 적 없어. 그건 나중에 천천히 시도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요?”

“나랑 같이 고블린 잡으러가자. 그게 지금 내가 맡은 의뢰거든. 그런데 너한테 무기나 갑옷이 없어서 문제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블린 정도는 맨몸으로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역시 레벨 20이다. 고블린은 E급 의뢰목록에 있는 마족이고 최대 레벨이 20이니까 거의 다 라우라의 사냥감인 셈이다.

“그렇구나. 대단하네. 난 이 마력권총이 없으면 엄청 약하거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너한테도 사줄게.”

“노예에게 총을 사주시는 주인은 없습니다. 거리가 멀어지면 예속각인이 발동하는 시간보다 총알이 더 빠릅니다.”

“너도 날 죽이고 싶어?”

“처음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니야?”

“노예는 주인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젠 날 죽일 생각이 없어서 다행이네. 난 너랑 그런 식으로 헤어지기 싫거든. 기껏 이 세계에서 처음 얻은 동료라고.”

“이 세계라고요?”

아, 실수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제국에서 처음 얻은 동료라는 뜻이야. 난 제국에서 아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왔거든.”

“그렇군요. 제국 밖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라우라는 쉽게 납득하는 분위기다. 다행이네.

신분제도가 없는 곳에서 온 사람이 노예를 샀다는 사실을 알면 엄청 실망할 것 같다.

“넌 보기보다 레벨이 높더라.”

“레벨은 뭔가요?”

“그럼 스킬도 뭔지 몰라?”

“전혀 들어본 적이 없어요. 혹시 고향에서 쓰시던 말인가요?”

“그, 그래. 개인의 강함과 능력을 표현하는 말 같은 거야. 그러니까 넌 보기보다 강하다는 거지. 고블린도 맨손으로 때려잡고. 하하하.”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난 분명히 능력을 수치화하는 설정을 사용했었고 분석스킬로 그걸 직접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야할 라우라는 아예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라우라가 무식하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기사단장이나 다른 기사들도 나를 상대로 분석스킬을 써서 신분을 알아내지 않고 대화로 파악하려고 했었다.

즉, 레벨과 스킬은 나만 아는 것이고 아르카디아의 사람들은 경험과 통계를 바탕으로 모험가 등급을 나누고 그 등급에 맞는 의뢰대상을 책정한 것이다.

“라우라, 레벨과 스킬이라는 말은 절대로 꺼내지 말아줘. 고향에 대해서 들키면 안 되거든.”

“네, 주인님.”

“그럼 슬슬 나가서 네 갑옷과 무기를 사자. 아무리 그래도 맨몸으로 싸우게 할 수는 없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아, 그래. 주인님보다 이름으로 불러줘. 그게 더 좋아.”

“알겠습니다. 레베카님.”

“훨씬 듣기 좋네.”

난 나도 모르게 라우라를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라우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대략 한 시간 전쯤에 날 경멸했던 사람이 맞나 싶다.

예쁘다는 말이 이 정도로 효과가 좋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혹시 날 속이려고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니겠지?

노예는 주인에게 거짓말을 못 한다니까 나중에 슬쩍 떠봐야겠다.

“따라와.”

나는 라우라를 데리고 모험가길드 2층으로 향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라우라는 역시 총포상에 눈길을 고정했다.

말을 그렇게 해도 총을 가지고 싶은 모양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마력권총을 한 자루 사줘야겠다.

“댁의 노예가 총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구경이라도 하는 게 어떻소?”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줬던 종업원 아저씨는 돈을 벌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래, 속는 셈치고 구경이나 해보자.

“노예에게 총을 사주는 주인은 없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댁은 사줄 것 같단 말이지. 내 직감은 틀리는 법이 없소.”

“이번에도 직감이 들어맞았어요.”

“하하핫! 그럼 그렇지. 아직 소총이나 산탄총을 살 자금은 없을 것 같으니 마력권총을 몇 자루 보여주겠소.”

“그것도 비싸서 못 살 것 같은데요.”

난 가격표를 보고 솔직하게 말했다.

최소 2만 라기르부터 시작하는데 지금 내 재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쉬지 않고 의뢰를 완수해서 바짝 벌면 되겠지만 여기서도 일에 파묻혀 살기는 싫다.

그냥 라우라를 전투에서 배제하고 잡일만 시키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라우라가 싫어하려나? 난 노예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이 없는 게 문제인 것 같다.

“걱정 마시오. 연식이 오래된 제품들을 저가로 넘겨줄 테니.”

“그거 악성재고처리는 아니죠?”

“난 절대로 손님에게 불량품을 팔지 않는다오.”

아저씨의 표정이 무섭다. 총포상에서는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던데 괜히 떠본 것 같다.

“이것들은 10년 전에 우리 가게로 들어오자마자 신형이 나와서 손님들에게 외면을 받았지 뭔가. 성능차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도 전부 신형만 찾더군.”

“얼마죠?”

“3천 라기르만 주시오.”

“잠깐만요. 고민 좀 해보고요.”

전 재산이 1만 라기르도 안 되는 나에게는 부담되는 가격이다.

하지만 그 돈으로 라우라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다.

“3천 라기르...”

라우라는 자기 몸값보다 세 배는 비싼 총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라우라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고 꼬리가 살랑살랑 거렸다. 아, 너무 귀여워.

“할부로 살 수 있나요? 한 번에 1천 라기르씩 나눠서 드릴게요.”

“원래는 안 되지만 댁에게는 특별히 허용해주겠소.”

“감사합니다. 여기 1천 라기르요.”

“잘 받았소. 그건 그렇고 노예에게 잘해주고 싶어서 안달인 사람은 정말 처음이구려. 신기한 것을 구경시켜준 대가로 마력탄 몇 발을 선물로 주겠소.”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몇 발을 준다더니 30발이나 주셨다.

라우라를 사자마자 행운이 따라주니까 기분이 좋았다.

역시 라우라는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어.

“자, 라우라. 이건 이제부터 네 총이야. 네가 나를 믿어줘서 나도 너를 믿고 총을 사주는 거야. 그러니까 날 배신하지 말아줘.”

“저는 레베카님께서 제게 해주신 약속을 저버리지만 않는다면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라우라는 내가 태도에 따라서 해방시켜준다고 했던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역시 그래서 고분고분한 태도로 변했구나. 그럴 만도 하지.

만약 내가 라우라를 계속 노예로 방치한다면 내 머리에 구멍이 뚫릴 것이다.

하지만 난 어차피 약속을 지킬 생각이라 걱정되지 않았다.

“연애는 나가서 하시오.”

아저씨는 나와 라우라를 총포상 밖으로 쫓아냈다.

얼떨결에 등이 떠밀려 나온 우리 둘은 서로 마주보고 웃다가 갑옷을 사러 방어구상점으로 향했다.

방어구상점에 진열된 상품은 내 예상과는 좀 달랐다.

당연히 금속과 가죽으로 만들어진 멋진 갑옷들이 즐비할 줄 알았는데 무슨 장신구 같은 것들만 잔뜩 있었다.

난 혹시나 싶어서 간판을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역시나 방어구상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분석스킬을 사용해봤더니 놀라운 걸 발견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장신구 같은 것들이 전부 마법이 걸린 방어구들이었다.

품질은 최소 D등급에서 최대 A등급이었고 공통적으로 마법방어막을 전개하는 기능과 체온유지기능이 달려있는 게 특징이다.

‘생각해보니 모험가들 중에서 갑옷 같은 것을 입은 사람은 거의 없었어. 대부분 그냥 옷을 입고 있었지. 이런 게 있으니까 그렇구나. 그럼 왜 기사들은 갑옷을 입는 걸까? 그냥 멋있어서 그러진 않을 테고.’

난 뒤늦게 모험가들의 복장이 떠올랐다.

모두 자유분방한 복장이고 간혹 노출이 많은 복장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이 방어구인지 장신구인지 모를 것들을 사면 아무 옷이나 입어도 되겠다.

여기서 조금 노출도를 올려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살쾡이족 점원이 보였다.

그는 아직 10대였지만 판매경험이 아주 많아보였다.

“우리 둘이 사용할 방어구가 필요해서요. 어떤 게 있는지 보여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언제나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여기 보이는 반지나 팔찌 형태입니다. 그리고 이쪽에 있는 목걸이나 귀걸이 혹은 이런 초커 형태도 인기가 많습니다. 상품들은 가격을 기준으로 정렬되어있고 특별히 원하시는 제품이 있으시다면 주문제작도 가능합니다.”

점원은 정말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난 간단하게 팔찌를 할 생각이다.

하지만 라우라에게는 무엇을 선물 해주어야할 지 모르겠다.

전부 액세서리처럼 생겨서 그냥 원하는 것을 골라보라고 방치하기가 껄끄럽게 느껴졌다.

“그렇군요. 잠시 돌아볼게요.”

나는 점원을 물리고 열심히 분석스킬을 써서 가성비 좋은 방어구를 찾아보았다.

A등급 품질은 모두 가격이 비싸서 엄두도 나질 않아서 B, C등급을 위주로 살폈다.

“레베카님, 노예는 이런 초커만 착용할 수 있습니다.”

잠깐 따로 떨어져서 상점을 구경하던 라우라는 나에게 가죽벨트처럼 생긴 초커를 보여주었다.

분석스킬을 써보니 품질이 B등급이고 기본적인 기능인 방어막기능과 체온유지기능만 달려있다.

난 초커를 라우라의 가느다란 목에 채워보았는데 역시 잘 어울린다.

여기다 목줄만 채우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이거면 충분하겠어?”

“네, 레베카님.”

나는 초커를 채운 라우라의 목을 쓰다듬은 뒤에 아까 봐두었던 C등급짜리 팔찌를 골라서 계산대로 향했다.

“이것들 계산해주세요.”

내 말을 들은 점원은 초커와 팔찌를 계산했다.

다 합쳐서 거의 5천 라기르다. 생각보다 초커가 비싸서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할부는...”

“죄송하지만 마법도구는 할부가 불가능합니다.”

나는 가차 없는 점원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돈을 한꺼번에 내고 나왔다.

이제는 진짜 돈을 아껴야겠다. 이러다 거지가 되겠어.

얼른 의뢰를 완수하고 돈을 벌어야지. 여기서조차 돈, 돈이 문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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