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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7화 (7/271)

〈 7화 〉 6화

* * *

노예를 사겠다고 다짐하긴 했지만 정작 노예시장이 어딘지도 모른다.

접수원에게 물어보기는 좀 그렇고 직접 발품을 팔아야겠다.

난 서둘러 방에서 뛰쳐나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노예의 행렬을 뒤따라갔다.

노예들은 다들 무감정한 얼굴로 걷고 있었는데 출근하는 내 표정이 겹쳐 보인다.

지구에서는 역사적으로 노예팔자가 생각보다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자유가 없는 삶이라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노예를 산다는 사람이 무슨 자유타령을 하나 몰라.’

내가 생각하기에도 웃기긴 하다.

어느새 노예의 행진은 끝이 났고 그들은 넒은 공터에 마련된 노예시장의 경매장 근처에 줄을 섰다.

노예시장은 생각보다 개방적인 곳에 위치해있었는데 바로 내가 신분증을 발급받은 관공서 앞이다.

아무래도 노예매매는 다른 물건을 거래하는 것처럼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업인 모양이다.

노예시장에는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노예를 사려고 온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분석스킬을 사용해보니 대부분이 평민들이고 노예를 살 정도로 여유가 있는 부유층이나 귀족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우리 라우라는 어디에 있을까?’

난 분석스킬을 사용해서 노예들 사이에서 라우라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벌써 팔려간 건 아니겠지?

라우라처럼 미인이라면 미리 예약한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지금부터 노예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사로 추정되는 덩치 큰 사자족 남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아직 라우라를 찾지도 못했는데 벌써 경매가 시작되다니 골치가 아팠다.

‘아! 라우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처음 나오는 노예가 바로 라우라다.

라우라는 누더기 옷을 입어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새파란 눈동자가 도도한 인상과 함께 빛을 발했다.

거기에 눈표범 특유의 귀와 복슬복슬한 기다란 꼬리가 달려있어서 귀여움을 더했다.

라우라가 진짜 눈표범처럼 입에 꼬리를 물고 있으면 그 귀여움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할 자신이 있다.

내 마음을 알리가 없는 라우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청중들을 쏘아보았는데 그녀의 눈빛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신중한 눈으로 라우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면서 품평하느라 바빴다.

그래, 저게 진짜 노예를 사는 태도겠지. 손해를 보면 안 되니깐.

“첫 번째 상품은 희귀한 눈표범족 여자입니다! 나이는 20살이고 처녀입니다. 보시다시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절도범 출신이지만 철저히 교육했으니 안심하십시오.”

경매사의 말처럼 라우라는 나만큼은 아니라도 충분히 예쁜 사람이다.

아, 너무 잘난 척을 했나? 그런데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어.

아무튼 라우라는 예쁜데다가 처녀라서 엄청 비쌀 것 같아서 걱정이다.

“대체 저런 약골을 어디에 쓴단 말이야? 항상 처음에는 얼굴만 반반한 싸구려를 내놓는다니까!”

내 옆에 있는 휴먼족 할아버지가 갑자기 라우라에 대한 불평을 내뱉었고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보기엔 최고로 좋은 상품이란 말이야!

“뭐라고요? 쟤가 싸구려라고요?”

“그래. 하여간 젊은 것들은 보는 눈이 너무 없단 말이지. 노예라는 건 말이다. 무조건 순종적이고 일을 잘 해야 하는데 저런 범죄자 출신에 말라깽이인 여자는 사봤자 무조건 손해야. 저건 아무리 많이 쳐줘도 2천 라기르도 안 될 거다. 보통은 10만 라기르는 줘야 겨우 밥값을 하는 노예를 살 수 있어.”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친절한 사람이었다. 나 같은 초짜가 돈을 날리지 않도록 조언을 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절대로 돈을 날리는 게 아니다. 나에게는 무조건 라우라가 필요하다!

“그럼 1천 라기르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뭐? 고작 1천? 저요! 저요!

난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열심히 손을 들었다.

주변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리고 옆자리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었지만 상관없었다.

난 반드시 라우라를 내 것으로 만들 거라고! 다 꺼져!

“1천 라기르 입찰입니다! 상위입찰이 없으십니까? 아무도 상위입찰을 하지 않으시면 이대로 낙찰하겠습니다. 5, 4, 3, 2, 1! 낙찰!”

“좋았어!”

난 기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옆자리 할아버지를 끌어안았다.

할아버지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서 내가 놓아줄 때까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상품을 낙찰 받으신 고객님께서는 뒤로 오셔서 인도절차를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모르시는 게 있다면 저희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드릴 겁니다.”

경매사는 내가 초짜라는 사실을 훤히 꿰뚫었는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 저 표정은 분명히 호구를 잡았을 때 짓는 그 표정이네.

그래! 난 예쁜 여자에 미친 호구다!

난 라우라를 만날 생각에 서둘러 경매장을 빠져나와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쇠사슬에서 풀려난 라우라와 날 안내해준다는 직원으로 보이는 늑대족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늑대족도 제법 마음에 드는 걸? 아, 아니 지금은 라우라에게 집중해야지.

라우라는 나를 노려보았지만 그 모습마저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고객님, 저희 상단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지만 고객님께서는 노예를 구입하신 적이 없으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이번이 처음이에요. 티가 많이 나지요?”

“괜찮습니다. 누구나 처음은 있으니까요. 우선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여기요.”

“감사합니다. 이제 대금을 지불하시고 노예를 상대로 예속각인을 새기면 됩니다.”

난 동전주머니에서 1천 라기르에 해당하는 소은화 10닢을 직원에게 내어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돈을 소중히 받아서 금고에 넣고 내게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돈을 내고 보니 라우라가 너무 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분명 할아버지는 노예는 최소한 10만 라기르는 되어야 된다고 했었지.

혹시 라우라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라도 있는 걸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직원은 고민하고 있던 나를 라우라 곁으로 데려가더니 갑자기 그녀에게 발가벗을 것을 명령했다.

라우라는 직원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결국 명령대로 누더기 옷을 벗었다.

뭐야? 속옷도 안 입고 있었구나. 하지만 그것보다는 라우라의 알몸이 더 중요하다.

손에 딱 들어오는 아담한 가슴, 내 코에 정수리가 닿을 정도의 키, 조금 말랐지만 복근이 슬쩍 보이는 날씬한 몸매 그리고 무엇보다 예쁜 얼굴.

존나 좋아! 존나 좋다고!

그리고 이걸 말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입을 꼭 다문 매끄러운 보지가 처녀임을 증명하는 듯 했다. 아, 씨발 좀 부끄럽네.

아무튼 나는 너무 좋아서 바보처럼 실실 웃었고 그걸 본 라우라는 질색을 했다.

“지금부터 마법으로 예속각인을 새길 겁니다. 고객님께서 노예를 구입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목적이라? 난 솔직히 말해서 게임 캐릭터 뽑는 기분으로 달려들었다.

지금 딱 꽂히는 예쁜 사람을 노예로 사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진정한 목적을 말하라니 고민이다.

딱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실례지만 혹시 성노예로 쓰실 생각이십니까?”

아, 아니 난 전투노예를 생각했어! 그런 게 아니라고.

하지만 직원의 눈은 진실을 요구했고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제 자지도 없는 주제에 성노예를 만들어서 뭘 하겠다는 걸까? 보빔?

“그렇다면 배꼽 밑에 예속각인을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성노예를 보유하고 계신 분들 사이에서 유행중인 일명 자궁문신이라는 것이지요.”

자궁문신이라는 말을 대놓고 들으니 겁나게 부끄럽다.

아니, 난 그런 것까지 설정한 적 없다고!

양심에 손을 얹고 솔직히 말해보라고?

당연히 싫지는 않다. 오히려 꼴려서 좋지.

마음대로 살기로 했다며? 진짜 선만 안 넘으면 될 거 아니야.

아, 몰라! 될 대로 되라지.

“고객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보다 못한 직원은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는 내 손을 잡아다 라우라의 따뜻한 하복부에 가져다대었다.

나를 바라보는 라우라의 새파란 눈동자는 경멸과 수치심으로 가득했다.

조금 죄책감이 생기려는 찰나에 밝은 빛이 번쩍이더니 진짜로 자궁문신이 새겨졌다.

분홍색으로 빛나는 하트모양이고 쓸데없이 멋진 장식 같은 게 그려졌다.

절차가 모두 끝나자 직원은 라우라에게 다시 옷을 입을 것을 명령했다.

라우라는 누더기 같은 옷을 입으며 세상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내가 나쁜 년이 된 것 같잖아. 아, 나쁜 년 맞지.

“예속각인이 있는 한, 노예는 절대로 고객님께 저항하지 못합니다. 만약에 노예를 해방시키고 싶으시다면 관공서를 찾아가셔서 법적인 절차를 밟으시기 바랍니다.”

“고마워요. 그럼 가도 될까요?”

“모든 절차는 확실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저희 상단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다음에도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직원을 굉장히 정중하게 인사하며 나를 배웅했다.

미안하지만 또 오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난 라우라를 데리고 시끌벅적한 노예시장을 빠져나왔다.

간혹 나를 알아보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노예는 사지 말자. 이거 은근히 피곤해. 그래도 라우라를 내 것으로 만드니까 기분은 좋다.’

난 라우라에게 애정을 담은 눈빛을 보냈지만 라우라는 눈을 마주치질 않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난 웬만하면 강압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평화롭게 라우라와 친해지고 싶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얼마든지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

“라우라, 내 이름은 레베카 카론이야. 만나서 반가워.”

“반갑습니다, 주인님.”

이번에도 차가운 반응이다. 하긴 자기를 성노예로 만든 내가 좋을 리가 없겠지.

“네가 절도범이었다고 들었어. 사실이야?”

“부모님의 유품을 돌려받으려고 했을 뿐인데 죄인으로 몰렸습니다.”

“그, 그렇구나.”

뭐야? 단순한 절도범이 아닌데? 그리고 난 이 불쌍한 사람을 성노예로 만들었고?

우와! 누군지는 몰라도 진짜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다.

“주인님께서는 왜 저 같은 싸구려를 사셨나요?

“난 네가 너무 예뻐서 널 꼭 가지고 싶었어.”

라우라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래, 내가 나쁘고 이상한 년이지.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녀석 뭐야? 왜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귀엽게 웃어?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 미소란 말인가? 아! 날 죽일 생각이구나!

직접 죽일 수 없다면 내 심장을 공격해서 죽일 셈이야!

“흠흠. 난 널 성노예로 사기는 했지만 함부로 대할 생각은 없어. 네 태도에 따라서 노예에서 해방시켜줄 수도 있고. 대신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배신하지는 마. 알았지? 나 보기보다 무서운 사람이라고.”

“명심하겠습니다. 주인님.”

라우라는 이번에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보기보다 무섭다는 말이 웃긴 모양이다.

그런데 고작 예쁘다는 말 한 마디로 사람이 그런 식으로 태도를 바꿀 수가 있나?

혹시 예속각인 때문인가?

난 누더기 옷 사이로 슬쩍 보이는 라우라의 알몸에 새겨진 자궁문신을 봤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애초에 그 직원이 특별한 기능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냥 주종관계를 확실히 하는 수단에 불과하겠지.

“일단 옷부터 제대로 입자. 저기로 가면 되겠다.”

난 라우라를 데리고 가까운 옷가게로 향했다.

언제까지고 누더기 옷을 입힌 채로 데리고 다닐 수도 없다.

좋은 옷을 입혀주면 분명 또 미소를 지어줄 거야.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여우족 점원이 다가와 우리를 응대했다.

뭐야? 여우족도 엄청 귀엽네.

정신 차리자! 노예 하나를 일단 제대로 돌봐주고 나서 다른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든 말든 해야 할 거 아니야!

“제 노예의 옷을 사려고 하는데 적당한 것으로 몇 벌 골라주세요.”

라우라, 미안하다. 내가 여자 옷은 볼 줄 모른단다.

그렇다고 남자 옷을 잘 보는 것도 아니지만.

“고객님, 법적으로 노예는 주인이거나 같은 주인을 섬기는 노예가 아니면 아무도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고객님께서 옷을 골라주시거나 노예가 직접 선택해야 합니다.”

뭐 그런 귀찮은 법이 다 있어? 그냥 일하기 싫어서 내빼는 건 아니겠지?

“그래요? 라우라, 네가 원하는 옷을 마음 놓고 골라봐.”

내 명령에 라우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근처의 옷걸이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점원은 노예가 옷을 막 만지는 게 싫은 눈치였지만 내가 기분 나빠하는 눈길을 한 번 주자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주인님. 저는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게 정말 마음에 들어?”

“네, 주인님.”

라우라는 자기가 고른 옷을 엄청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치마를 입히고 싶긴 한데 본인이 바지가 좋다니 어쩔 수 없지.

“계산하고 있을 테니까 갈아입고 와.”

난 점원에게 옷값을 준 뒤에 탈의실 앞에서 라우라를 기다렸다.

곧 라우라는 누더기 옷을 대신 새 옷을 입고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난 좀 화사한 디자인을 기대했지만 라우라는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했다.

우리 라우라는 무슨 옷을 입어도 예쁘니 괜찮다.

“진짜 잘 어울린다! 신발도 멋지고. 다음에 또 옷 사러 오자.”

“감사합니다, 주인님.”

라우라는 내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심장에 해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 아름다운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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