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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4화 (4/271)

〈 4화 〉 3화

* * *

나는 이대로 죽는가 싶었지만 갑자기 소대가리가 터졌고 나는 자유를 되찾았다.

“커억! 켁, 켁!”

난 꼴사나운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내 허벅지만큼 굵은 소대가리의 팔을 신경질적으로 집어치우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도 전에 허무하게 죽는 건 너무 싫어서 눈물이 찔끔 난다.

“이보게, 괜찮은가?”

나는 누가 날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러자 말을 타고서 날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독특한 디자인의 판금갑옷을 입고 있었고 마력소총과 장검, 둥근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다.

말에서 내린 남자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난 그 친절한 손을 잡고서 부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죽을 맛이었는데 다행히 남자가 날 부축해주었다.

목숨을 살려준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배려를 해주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무사한 것 같아 다행일세. 내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 했어.”

“살려줘서 감사합니다.”

난 사극 같은 말투를 쓰는 남자에게 일단 인사부터 했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끝장이 났을 것이다.

난 여유가 생기자마자 호기심을 이기질 못하고 남자에게 분석스킬을 썼다.

레벨 : 57

이름 : 케인 데마트란

성별 : 남성

종족 : 엘프족

나이 : 42세

신분 : 귀족

직업 : 기사단장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높으신 분이다.

아르카디아에선 기사는 신분이 아니라 군인처럼 직업으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정치나 사회 부분은 자동으로 설정해서 이런 건 모두 생소하다.

그래도 엘프족에 대한 건 어느 정도 안다. 내가 설정을 건드렸으니까.

엘프족은 휴먼족처럼 인류에 속하는 종족이다.

귀가 위쪽으로 길고 뾰족하며 모두 금발과 녹색 눈을 가졌으며 평균 신장이 제일 크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인류종족과 생물학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엘프족은 식물을 좋아해서 집은 목재로 만들고 마당에 꽃과 나무를 많이 심는다.

그래서 엘프족이 많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는 멀리서보면 마치 잘 가꾸어진 숲처럼 보여서 엘프가 숲에서 살아간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내가 설정한 세계에서 숲은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진짜로 숲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마을 같은 건 존재할 수 없다.

실제로 숲으로 이주하더라도 마족이나 다른 괴물들 때문에 금방 멸망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고마워해야할 사람은 바로 나일세. 자네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필시 많은 백성들이 죽었을 테니 말이야. 고맙네, 부디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는가?”

케인은 귀족이면서도 평민인 내게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진심으로 사람들을 아끼는 것 같다.

이런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니 목숨을 걸고 싸운 보람이 느껴졌다.

그런데 내 이름? 현실이름은 아르카디아랑 안 어울리니까 캐릭터 이름을 쓰자.

“레베카 카론입니다.”

“좋은 이름이군. 자네의 금색 눈이 참으로 이국적인데 어디 출신인가?”

“사실은 기억상실증이 심해서 기억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이게 그 사람들 마을이라서 도와주려고 싸웠습니다.”

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보탠 연기를 했다.

귀족처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하는 것보다 최대한 선량한 백성인 척을 하는 게 안전한 방법이다.

“내가 실례되는 질문을 했구먼. 미안하네. 신분증이나 마법무기소지허가증이 있다면 정확한 신분이라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혹시 그것도 없는가?”

“가지고 있는 짐과 옷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군. 만약에 프랑카에 갈 일이 있으면 관공서에 먼저 들러서 신분증을 새로 발급 받게나. 내가 미리 말을 해둘 테니 걱정 말게.”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았어! 케인도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나처럼 의심스러운 사람이 하는 말을 믿어주고 신분을 보증해주겠다니 말이다.

잠깐만, 이거 혹시 나한테 은혜를 입힌 다음에 부려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야. 설마 그런 사람은 아닐 거야.

애초에 내가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잖아.

“자네가 지켜준 생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세.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케인은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기사들은 케인의 명령에 따라서 집에 붙은 불을 끄고 주민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시신은 곧바로 유족들에게 인계되었고 곳곳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쌍한 사람들.’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니 동정심이 든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싸움에 끼어들었다면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는데 자꾸만 미련이 생긴다.

“힘드네.”

난 아직 쓰라린 목을 만지며 벽에 기대었다.

그리고 텅 빈 약실에 마력탄을 장전했다.

이번 전투에서 18발의 마력탄을 소모했다.

생각보다 소모량이 적었지만 가지고 있는 돈이 적으니 괜히 불안하다.

나는 장전하는 사이에 마을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분석스킬을 써보니 모두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아이들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존함을 알려주십시오.”

“레베카 카론이라고 해요.”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자 마을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찬사를 보냈다.

모두를 구해주지 못했는데도 고맙다는 말을 해주는 마을사람들 덕분에 눈물이 다 났다.

“괜찮으세요?”

웬 꼬마가 내게 다가와 걱정을 해준다. 자기도 엄청 무서웠을 텐데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니야. 고마워.”

난 급하게 눈물을 닦아냈고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정말 귀여운 녀석이다.

“레베카 씨, 이건 당신이 처치한 야수족들의 마핵입니다. 단장님께서 레베카님께 직접 챙겨주시라 명하셨습니다.”

기사단 소속 일반병사가 내게 마핵이 담긴 작은 자루를 건네주었다.

마핵이라는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푸른빛이 감도는 투명한 광물처럼 보인다.

“마핵이요?”

“마핵은 모든 생물의 몸속에 들어있는 마나덩어리 같은 건데 인간이 아닌 생물의 마핵은 모험가길드에서 매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난 인간의 마핵은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뭔가 무시무시한 상상이 들거든.

어쨌든 돈을 벌 수 있다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럼 나도 마을을 위해서 뭔가 도움을 줘볼까?

“뒷정리는 우리 기사단이 할 테니 레베카 씨는 쉬고 계세요.”

난 바로 병사에게 제지당했다.

아무래도 케인이 날 엄청 배려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기사들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야수족 시체들을 한군데 모아서 불태우고 무너진 건물들과 목책을 보수했다.

듣자하니 기사단은 주둔하고 있는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고 주기적으로 주변지역을 순찰하면서 마족을 물리치고 대민지원을 하는 군사조직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기사단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고 기사단도 주민들에게 친절했다.

위험한 세상이라도 서로에 대한 배려가 살아있어서 보기가 좋다.

일을 끝낸 기사단은 마을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련한 숙영지로 향했고 난 촌장 할아버지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사는 집은 마을에서 제일 크고 튼튼한데다 지하실에 비밀공간이 있어서 오늘처럼 마을이 습격을 받으면 피난처로 사용했다고 한다.

촌장 할아버지보다 먼저 집에 가있던 할머니는 내게 먼저 목욕을 권했다.

어수선한 와중에도 날 위해서 물을 데워두었다고 한다.

마침 온 몸이 땀과 피로 젖어서 찝찝했었는데 좋은 타이밍이다.

“좋다, 좋아. 몸이 녹는 것 같아.”

난 더러운 걸 정말 싫어해서 청결도를 시대를 초월하는 수준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이런 시골에도 상하수도 설비가 있고 수도꼭지에서 깨끗한 물이 나온다.

내 덕분에 이 세상 사람들은 깨끗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니 정말 만족스러운 결과다.

다 씻고 나니 진수성찬이 날 기다렸다.

내가 설정한 풍요로움이 제대로 느껴졌다.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훌륭한 음식을 먹게 되니까 너무 행복하다.

난 할머니의 뛰어난 손맛을 느낄 수 있었던 식사를 끝낸 뒤로는 혼자서 방에 누워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내가 살아갈 새로운 세상 아르카디아가 얼마나 살벌한 곳인지 경험하고 나니 두려움과 도전정신이 동시에 생겼다.

“뭔가 졸리네. 바로 잘까?”

난 조금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심신이 지친 모양이다.

부디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면 좋겠다.

아침이다. 출근해야지.

아니. 출근은 무슨. 새로운 삶을 즐겨야지!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여기는 아르카디아!

내가 앞으로 쭉 살아갈 세상이다.

난 일어나서 세수부터 했다. 낡은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은 정말이지 최고다.

미모를 타고나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는지 알 것 같다.

“아침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잠자리는 어떠셨는지요?”

촌장 할아버지는 내가 방에서 나오자마자 날 챙겨줬다.

내 덕분에 마을이 살아남았다며 간이며 쓸개며 다 내줄 기세였다.

마을사람들은 내게 사례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절반만 받았다.

내가 정식의뢰를 받고 온 사람도 아닌데 마을이 파괴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돈을 전부 받기는 미안했다.

대신에 여러모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손해도 아니다.

“덕분에 잘 잤어요. 그런데 프랑카라는 도시는 가깝나요?”

“짐마차를 타면 12시간정도 걸립니다. 우리 마을이 영지 끄트머리에 있어서 좀 멉니다.”

시간개념과 도량형 같은 걸 내가 익숙한 걸로 설정하니 역시 편하다. 괜히 옛날 기준이나 별난 기준을 설정했다만 머리만 아팠을 것이다.

“생각보다 멀리 있네요. 가르쳐주셔서 고마워요.”

“혹시 필요한 게 더 있으시면 언제든 저희를 찾아주십시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촌장 할아버지는 내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혼자 집에 남게 된 나는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지금까지 얻은 스킬은 총 7개다.

전투스킬은 총기사격과 신속조준, 제압사격, 고속장전이고 비전투스킬은 고통내성과 분석, 회피이다.

전투스킬 중에서 총기사격과 제압사격은 마력탄을 소모해야 올릴 수 있는 스킬이고 제압사격은 마력탄에 적도 필요해서 당장 올리기는 힘들 것 같다.

프랑카에 가서 마핵을 처분해서 돈을 벌고 마력탄의 가격을 본 뒤에 어떤 식으로 스킬레벨을 올릴지 결정할 생각이다.

고통내성은 지금 스킬레벨을 올리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이런 시골에서 부상을 당하면 치료가 곤란하고 자칫 감염으로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것도 보류다.

분석은 지금까지 마을을 돌아보면서 느낀 건데 단순히 다른 생명체나 사물을 분석해본다고 해서 레벨이 오르는 게 아닌 것 같다.

이것도 역시 프랑카에 가서 방법을 모색해봐야 할 것 같다.

회피도 나 혼자서는 레벨을 올릴 수 없는 스킬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거나 제압사격처럼 직접 적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스킬레벨이 올라가는 구조라서 어쩔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신속조준과 고속장전은 돈을 들이지 않고 당장 수련할 수 있는 스킬이다.

신속조준은 가축이나 야생동물을 목표로 삼아서 연습하면 되고 고속장전은 최대한 빠르게 마력탄을 장전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스킬레벨이 오를 것이다.

정리하자면 평소에도 꾸준히 노력해야하는 스킬은 신속조준과 고속장전이다.

그리고 스테이터스를 올리는 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과연 내가 제대로 올릴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하지만 기껏 얻은 새로운 삶이니 포기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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