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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화 (2/271)

〈 2화 〉 1화

* * *

눈부신 햇살, 시원하게 부는 산들바람,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말랑말랑한 가슴? 가슴이다!

“현실감 죽이는데?”

난 완전한 여자 목소리를 내며 색다른 무게감이 느껴지는 가슴을 마음껏 만졌다.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참고로 난 게임을 하면 무조건 여자캐릭터만 한다.

현실에서 남자로 실컷 살았는데 굳이 또 남자를 고를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여자캐릭터를 골랐다.

난 게임의 인공지능으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 사진과 신체적 특징을 설정해서 자동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낸 캐릭터는 복장은 평범해도 외모는 이상형 그 자체였다.

175cm의 큰 키에 늘씬한 몸매,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칭송하며 호감을 표시할 정도로 우월한 외모, 까맣고 윤기가 흐르는 장발, 황금빛 눈동자. 하나같이 정말 마음에 든다.

아, 가슴은 너무 크면 불편하니 적당히 보기 좋을 정도로 설정했다.

내가 보는 것과 나한테 달려있는 것은 다르니깐.

“있던 게 없으니깐 어색하다. 달아놓을 걸 그랬나?”

난 호기심에 팬티 속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역시 달려있지 않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은 기분이 들었지만 게임인데 상관없겠지.

쓸데없는 생리와 임신옵션은 애초부터 끈 상태다.

게임을 하는데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경험하기는 싫다.

그리고 정신은 분명히 이성애자 남자인데 다른 남자에게 박힐 순 없잖아.

아무튼 성적인 부분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도는 좀 대단한 것 같다.

“출근해야하니까 로그아웃하자. 뭐야? 왜 안 돼?”

씨발,메뉴창이 안 뜬다.

지각하면 과장새끼가 날 죽이려고 들 텐데.

내 가상현실 게임 경험을 모두 살려서 메뉴를 열어보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뭐 이딴 버그가 있어? 강제종료도 안 돼.

설마 게임 속에 갇힌 거야? 9시 뉴스에 게임중독 직장인의 최후랍시고 나오겠네.

“아! 씨발! 으아악!”

난 홧김에 바닥에 있는 배낭을 걷어찼는데 겁나게 아파서 눈물이 날 정도다.

분명 통증은 최소로 설정했었는데 현실과 똑같은 수준의 어마어마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거 멍들었겠다.

근데 배낭에 뭐가 들었기에 꿈쩍도 하질 않는 거야?

­스킬획득­

고통내성 레벨1

뭔데 이건? 아, 그거구나. 능력을 수치화하는 설정.

그보다 이제 어쩌지? 에라, 씨발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우선 버그가 해결될 때까지 가상현실에서 무사히 지낼 방법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현실과 거의 같은 수준의 고통을 느끼는 걸 보면 생명과 관련된 다른 설정들도 그런 식으로 설정이 바뀌었을 지도 몰라.

여기서 죽으면 현실에서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스킬이라도 확인해봐야겠다. 씨발, 전투스킬은 하나도 없네.”

스킬창을 열어보니 욕부터 나온다.

방금 배운 고통내성스킬과 분석스킬이 전부다.

분명히 자금무한이나 무적 같은 치트도 몇 개 설정했었는데 이상하다.

아마 이것도 고통이 제대로 느껴지는 것과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일어난 현실은 돌이킬 수 없으니 주어진 스킬이라도 잘 활용해야겠지.

고통내성스킬이야 뭔지 아니까 분석스킬을 보자.

분석스킬은 스킬레벨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즉, 성능이 고정된 스킬이라는 것이다.

난 나를 상대로 분석스킬을 사용했다.

레벨 : 1

이름 : 레베카카론

성별 : 여성

종족 : 휴먼족

나이 : 24세

신분 : 평민

직업 : 무직

기본적인 인적사항은 내가 설정한 그대로 나오네.

그럼 스테이터스도 볼까? 스테이터스에 HP나 MP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힘, 지구력, 민첩성, 마력, 건강으로 나뉘는데 모두 최저인 E랭크이다.

설명을 보니 스테이터스는 기본적으로 A랭크까지 올릴 수 있고 특정한 계기를 통해 최고랭크인 S랭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E랭크라고 엄청 약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수준이다.

스킬과 스테이터스를 확인했으니 이젠 아이템을 확인할 차례다.

아이템이라도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좋겠지만 아이템창은 열리지 않는다.

스킬창 말고는 유저인터페이스를 사용할 수 없는 것 같다.

“일단 이거라도 살펴보자. 좋은 물건이 들었을 지도 모르잖아.”

명칭 : 특별한 탐험가의 배낭

품질 : S등급

기능 : 파괴불가, 자동세척, 무게고정, 분류, 상태유지, 용량무제한

난 배낭에 분석스킬을 사용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이거 완전히 치트 아이템이잖아!

배낭의 기능은 사실상 아이템창이나 마찬가지다.

아까 전에 걷어차서 미안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치 있는 물건이다.

배낭은 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 물건은 뭐든지 무제한을 넣을 수 있으면서 무게는 변하지 않는데다 보관한 물건이 변질될 염려도 없다.

그리고 분류기능으로 가방 안에 있는 물건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필요한 양만큼 즉시 꺼낼 수 있다.

주의사항도 있다.

액체나 가루처럼 손에서 흘러내리는 것들이나 그것이 포함된 식품 같은 것들은 반드시 적합한 용기에 봉인한 뒤에 배낭에 넣어야 하고 살아있는 생물이나 사체 같은 것들도 보관할 수 없다.

애초에 그런 건 넣고 다니고 싶지 않다.

“그럼 배낭을 뒤져볼 까나?”

배낭을 열고 분류기능을 사용하니 가방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의 목록이 눈앞에 나타났다.

종류는 많지 않아도 모두 필수적인 것들로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바로 특별한 탐험가라는 명칭이 붙은 단검과 칼집, 마력권총과 권총집이다.

분석스킬 사용결과, 모두 S등급 품질과 자동수복기능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별도로 관리를 해줄 필요는 없지만 배낭과 달리 파괴 가능한 물건이기 때문에 너무 험하게 사용했다간 크게 후회할 것이다.

“옷에도 한 번 써보자. 흠, 역시 옷은 평범한 것들이네.”

난 혹시나 싶어서 내가 입고 있는 옷에도 분석스킬을 써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

아쉬운 마음에 스킬설명을 제대로 읽어보니 생물체와 내 배낭처럼 특별한 기능을 가진 물건을 상대로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라고 한다.

난 분석스킬의 한계를 확인한 뒤에 마력권총을 살펴보기로 했다.

마력권총은 여러모로 현대 리볼버권총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공이가 없다.

화약을 사용하는 총기가 아닌 것이다.

원래 공이가 움직이는 부분이 막혀있는 대신 그 자리에 마법진 같은 게 그려져 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게 공이를 대신해서 총알을 발사하는 것 같다.

단검은... 그냥 평범한 단검이다.

“그런데 총알은 없나? 아, 여기 있네.”

난 배낭 안에서 소구경 일반마력탄 120발이 들어있는 파우치를 찾아냈다.

명칭 : 특별한 탐험가의 마력탄파우치

품질 : S등급

기능 : 파괴불가, 자동세척, 무게고정, 분류, 용량무제한

마력탄파우치는 배낭 못지않게 훌륭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마력탄만 보관할 수 있지만 구경이나 종류에 관계없이 보관이 가능하고 분류기능 덕분에 마력탄을 필요한 만큼 즉시 꺼낼 수 있어서 평상시에나 전투시에나 아주 유용하게 사용가능할 것이다.

마력탄은 모양 자체는 현대식 총알과 비슷하지만 반투명한 푸른색 광물 같은 것을 깎아서 만들었고 탄피가 없으며 뇌관이 있어야할 곳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제법 무게감이 있고 질감도 충분히 단단하다.

‘그러니까 마법진이 공이와 뇌관 역할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마법진이 발동해서 마력탄을 발사하는 원리 같네. 한 번 시범사격을 해보는 게 좋겠어.’

난 가상현실 슈팅게임에서 배운 대로 약실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탄창멈치였던가? 아무튼 그게 없다.

그것이 있어야할 자리엔 역시나 작은 마법진이 있다.이름값을 하는구나.

일단 마법진을 살짝 터치해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강한 의지를 가지고 1초 정도 마법진을 눌러보자 약한 빛이 났다.

그와 동시에 찰칵 소리가 나면서 실린더의 구속이 풀렸고 자동으로 약실이 개방되었다.

난 파우치에서 마력탄 여섯 발을 꺼내 약실에 장전하고 실린더를 제자리로 되돌렸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찰칵하는 소리가 나더니 실린더가 고정되었고 자동으로 공이마법진과 뇌관마법진이 일직선으로 정렬되었다.

“좋아, 이제 한 번 쏴보자.”

난 10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나무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어라? 왜 발사가 안 돼? 장전할 때처럼 정신을 집중하면 되려나?

난 확실히 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맑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마력탄이 발사되었고 나무에 깊이 박혔다.

마력총의 장점은 총성이 훨씬 작은 편이고 사격시 반동이 거의 없는데다 발열도 체온 수준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력탄의 위력이 현대식 총알에 비해서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간단히 죽일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발포 시에 총기 자체의 마법진에서 빛이 나는 건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격에 방해될 정도로 강하지는 않지만 야간이나 어두운 곳에서 싸울 때 위치를 들킬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말이다.

“다른 게임이었으면 밸런스파괴라면서 난리가 났을 거야. 하지만 이건 싱글게임이니까 상관없어. 그런데 누가 나한테 이걸 쏜다고 생각하니까 좀 무섭긴 하네.”

난 연습 삼아서 남은 다섯 발을 마저 쏘았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 명중률이 높지 않다.

반동이 거의 없는데도 조준이 자꾸 흔들리는 것을 보면 총기나 마력탄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사격실력이 문제인 것 같다.

­스킬획득­

총기사격 레벨1

내 추측이 맞았다.

내 사격실력은 명백하게 좋지 않다.

S등급 마력권총 덕분에 형편없는 사격스킬을 무마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내가 아니라 무기가 잘난 것이라고 생각하니 좀 서글프다.

스킬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니 스킬레벨이 올라갈수록 전반적인 사격실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스킬이라고 한다.

총기나 마력탄의 종류에 구애를 받지 않는 스킬이지만 마력탄이 공짜일 리가 없으니 올리는데 돈이 제법 들지 싶다.

난 마력권총에 마력탄을 여섯 발 재장전한 후에 권총집에 넣었다.

무기를 확인했으니 이제 돈을 확인할 차례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난 배낭의 분류기능으로는 돈을 찾을 수 없었지만 대신 특별한 탐험가의 동전주머니를 발견했다.

명칭 : 특별한 탐험가의 동전주머니

품질 : S등급

기능 : 파괴불가, 자동세척, 무게고정, 분류, 용량무제한, 회수

동전주머니도 엄청난 기능을 가진 물건이다.

화폐와 보석만 넣을 수 있지만 잃어버리거나 도난을 당하더라도 회수기능 덕분에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전주머니를 열어보니 분류기능 덕에 안에 뭐가 얼마나 들었는지 바로 보였다.

소동화 100닢이다.

소동화 하나의 가치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부터 큰 가치는 없어보였다.

그래, 이렇게 좋은 아이템을 퍼주는데 돈도 많이 줄 리가 없지.

“이게 끝이네. 먹을 거라도 들어있으면 좋았을 텐데.”

배낭 안에 마지막으로 들어있는 물건은 특별한 탐험가의 회중시계다.

시간을 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인데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명칭 : 특별한 탐험가의 회중시계

품질 : S등급

기능 : 파괴불가, 자동세척, 회수, 자동시간맞춤, 반영구가동, 조명

회중시계도 나름 대단한 물건이지만 꽤나 심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조명기능에는 관심이 갔다.

손바닥만 한 회중시계의 뒷면에 마법진이 하나 있는데 정신을 집중하고 꾹 누르니 굉장히 밝은 빛이 났다.

웬만한 손전등보다 더 성능이 좋은 것 같다.

“좋아. 내용물을 모두 확인했으니까 이동하자.”

난 권총집과 파우치를 각각 오른쪽과 왼쪽 허리춤에 찼다.

마침 허리띠에 고리 같은 것이 있어서 착용하기가 수월했다.

파우치에는 108발의 마력탄이 들어있어도 무게고정기능 덕분에 무겁지 않았다.

칼집은 왼쪽 허벅지에 고정했다. 웬만하면 이걸 뽑아서 싸울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멀리서 총을 쏘는 건 몰라도 단검을 손에 들고 근접전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동전주머니는 단추가 있는 바지주머니에 넣고 회중시계를 목에 걸었다.

마지막으로 텅 빈 배낭을 등에 멨다.

무게고정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무게가 바뀌지 않는 기능이라서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배낭에서도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하지?”

고민이다.

우호적인 마을을 찾으면 좋겠지만 식수와 식량이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이동할 수는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주변을 살펴볼 수 있겠지만 여긴 평지인데다 난 나무를 탈 줄 모른다.

혹시 나무를 타려고 노력하다보면 스킬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난 낑낑거리면서 나무에 매달렸지만 한참을 지나도 스킬을 획득했다는 알림이 오질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잠깐, 무슨 소리가 나는데?

“사람 목소리야.”

난 일단 수풀 뒤에 숨었다.

산적이나 악마숭배자 같은 무법자일지도 몰랐다.

난 잔뜩 긴장하며 마력권총을 빼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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