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전쟁의 시작
* * *
생명이 죽으면, 그 존재의 격에 맞는 에너지가 흘러나온다. 몸 안에 쌓여있던 마력일 수도 있고, 생전의 업일 수도 있고, 흑마법사들이 다루는 역천의 힘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그것이 영혼의 영역과 맞닿아있다는 것이었다.
“천문(?文)과 차원좌표의 이동에 따라 주술식과 마법진은 역위를 반복합니다. 그 무한한 변화 속에서 위상을 유지하는 방식은 한없이 복잡하지만, 목적은 명확해요.”
생각에 빠져있던 유천은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느 때보다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아르벨라가 있었다.
“격리, 포박, 저장, 수축, 이완, 합성, 방출.”
“그곳에 깔린 그건 명계로 흘러가야 할 영혼의 강을 막고 포박하여 내부에 저장한 후, 걸레 쥐어짜듯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영혼을 쥐어짜요.”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진 후, 엉망진창이 된 영혼을 합리성이라는 명목으로 뭉쳐 합성한 후 쓰레기 던지듯 밖에 버린답니다.”
“그건...”
아르벨라가 자조하듯 내뱉는 말에 유천은 할 말을 잃었다.
명계로 영혼들이 흘러들어 가 혼에 묻은 찌꺼기들을 씻어낸 후 윤회하고, 현계에 남은 육신은 쌓아온 모든 것들을 세상으로 환원하는 게 당연한 순환이며, 세상의 이치다.
그러나 저건 다르다.
도축업자들도 가축이 죽은 후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며, 다음 생에서는 삶을 살아가길 기원한다. 명계의 존재가 밝혀진 세상에서 그건 최소한의 도리.
그런데 저 방식에는 괴수로부터 차원을 지켜온 전사에 대한 존중도 인간에 대한 명예도 생명에 대한 도리도 무엇도 없다. 절대방위선에서 생을 마감한 자들은 영혼이 쥐어짜지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그야말로 가축 이하로 전락한다는 말이다.
“13석에 올라 그 진실에 대해 듣고 저는 분노했어요. 그럴 수밖에요 그곳은...모두의 애도를 모욕하는 공간이니까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눈물을, 약혼자를 잃은 여인의 울부짖음을 절대방위선이라는 공간은 그 모든 걸 수만 년간 모독하고 땅에 떨어뜨려 짓밟아 온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르벨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술잔을 나누던 동료가 목이 베였다.
함께 불침번을 서며 간식을 쥐여주던 친구의 사지가 잘렸다.
돌아가면 결혼하겠다던 웃으며 말하던 부하 둘. 제법 선남선녀로 기억하던 그들 중 여자는 간살당하고, 남자는 그 앞에서 피눈물과 내장을 흘린 채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아무리 아르벨라에게 유천말고는 중요한 게 없다고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절대방위선은 아르벨라에게도 비참의 역사가 서린 지옥이었다.
그런데...그런 지옥을 거쳐 죽음을 맞이한 동료들이 도달한 곳이 주술과 마법을 위한 제단이라는 건...이미 없어진 역사라고 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마모된 그녀를 격노하게 하였다.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저를 포함한 누구도 심지어 외차원의 군주들도 그걸 건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네 맞아요. 창조주의 유산이 없어진 세상에서 그건 유일한 생명줄이니까요. 그리고...그 때문에 놈들을 찾고 싶은 거고요.”
“복수심인가?”
“그보다는 묻고 싶은 거죠. 너희들이 그랬느냐? 그럼 왜 그랬냐? 그렇게도 신을 만들고 싶었느냐? 그런데 그 실패의 원죄를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냐? 하지만 동시에 대답을 예상하고 있어요. 대의랍시고 한 일을 실패한 패배자들의 변명은 거기서 거기거든요.”
파스스슷....
아르벨라에게서 솟구치는 노을과 같은 핏빛 살기에 유천과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죽어갔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아르벨라의 눈이 유천을 향했고 바다와 같은 심상에도 넘쳐흐르는 복잡한 감정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곳에 오기 전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조급함에 저지른 실수로 부하들이 죽었어요...제가 이렇게 즐기고 동안에도 그 녀석들의 영혼은 고통 속에 갈려나가고 있겠지요.”
“.........”
“그렇다고 그런 눈으로 저를 보지 말아주세요. 지금의 제게 부하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은 있을지 몰라도 죄책감은 크지 않답니다. 그보단...오랜 시간 뒤에서 개수작 부린 놈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런 원죄를 저질러 놓고 꽁꽁 숨어 지금도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을 놈들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짜증, 이전의 삶에서 놈들에게 영혼을 농락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굴욕.
실제로 아르벨라와 같이 진실을 아는 초월자들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집단에 가진 맹목적 살의는 그러한 자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의 꼭두각시 역할을 한다는 걸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나를 미끼로 하겠다는 거네?”
숨어있는 놈들을 끄집어내어 목줄을 뜯어버리려면 미끼가 필요하다. 그리고 위원회의 초월자들이 선택한 미끼는 바로 지구, 정확히는 유천이었다. 그 또한 놈들을 잡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이용당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대신 메리트도 많을 거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메리트?”
“그곳에서는 유물단이다 뭐다 위협했지만, 위원회는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모른 척할 겁니다. 설령 그게 아티팩트 이상의 소지금지 병기가 있다 하더라도.”
“일부러 외면하는 척하겠다?”
“그래야 놈들이 굴에서 기어나올 테니까요. 녀석들은 위원회의 눈에 띄고 싶어하지 않아요.”
결국 위원회 내부에서 지구에 대해 말이 흘러나와도 묵살시켜주겠다는 거다. 저 의견이 Top5에서 나왔다는 걸 고려하면 나쁜 일은 아니었다. 뭐가 어쨌든 중앙세계에서 그들은 가장 강력한 연합체이고, 그러면서도 유천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거니까.
“거기에 이걸로 유천님이 신경을 써야 할 큰 부분들이 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당신과 여러 갈등을 낳은 반고는 지구에서 눈을 돌릴 것이며, 건실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드라고니아는 더욱 깊게 지구와 연결고리를 만들겠지요.”
공정성이나 반고라는 차원의 위상을 고려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르벨라의 눈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 이외 위원회와 관련된 귀찮은 것들은 제가 처리해 드리죠. 그러니...”
유천에게 다가온 아르벨라가 천천히 손을 뻗어 유천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건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 같기도, 경외의 대상에 대한 숭배 같기도 했으며, 연인을 향한 사랑 같기도 했다.
“모든 걸 먹어치우고 제가 있는 곳까지 와 주세요.”
그 과정과 결과는 분명 한쪽에 일방적으로 잔혹할 테지만, 유천은 져가는 노을 속에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미소는 아름다웠고 간절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
미국의 저명한 전쟁학 교수 제이슨 홀큠버는 마나의 발견과 중앙세계와의 교류의 시작이 모든 무력변화의 시작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그의 저서 ‘폭력의 격변’은 한 가지 논제를 담으며 글을 시작한다.
현재 지구에서 가장 살의와 갈등이 넘쳐흐르는 곳은 어디인가?
괴수, 인간을 가리지 않고 만물의 투쟁을 권유하는 완성된 디스토피아인 아프리카 민족 연합체 AMCU?
중화연맹과 천황국 그리고 한국을 중심으로 미묘한 균형을 이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어버린 동아시아?
본래도 인권이 바닥이었지만, 모든 정부가 무너지고, 이슬람을 내세운 수백 개의 테러단체로 분열된 중앙아시아?
강성 귀족 세력과 마피아 세력이 카르텔을 형성한 러시아?
그 외에도 남미의 카르텔과 동남아시아의 괴수림(???) 등 대격변 후 수많은 전쟁지역이 존재했지만, 그가 자신의 저서 말미에 최고의 분쟁지역으로 단언한 곳은 그들 중 어디도 아니었다.
먼 과거의 중국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수천 년 역사에 이어 현재까지 전국시대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그 원한과 혐오를 사상과 교육으로 억눌러 연합체를 유지했던 대륙.
유럽(Europe).
과거 미국 등과 같은 강대국들을 견제하기 위해 설립한 EU는 대격변 후 마나와 괴수가 등장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괴수라는 재앙으로 인해 그들은 대양 너머를 신경 쓰지 못했고, 마나로 한 개인이 군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자, 잠들어 있던 타민족에 대한 혐오와 멸시가 깨어나면서 유럽은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난전이 펼쳐지는 지옥으로 변모했다.
그중에서도 같은 국가로 엮여있지만 사실상 서로를 타인으로 여겼던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바다 건너 아일랜드. 이렇게 총 네 개로 쪼개져, 서로를 죽이는 전쟁이 근 30년간 이어져 오고 있었다.
다른 국가들이 그래도 국가 내부에서는 서로 뭉치는 것을 고려하면 유럽에서도 그들의 상황은 가장 치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영국을 가장 싫어하는 프랑스조차 저놈들은 내버려두면 알아서 자멸하겠구나 하면서 무시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 예전에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최대 접전지인 오그나클로이(Aughnacloy).
본래 다른 깃발을 내건 채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던 두 국가의 군인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총을 돌려 갈겼다.
두두두두두!!!
“크에엑...!!”
“젠장 저게 도대체 뭐야?!!”
“닥치고 총이나 쏴라 빌어먹을 IRA 테러리스트!”
“역겨운 해적 새끼들이! 너희나 잘해!”
하지만 그건 화합을 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같은 섬에서 서로 나뉜 두 국가는 여전히 서로를 혐오했고 증오했다. 그럼에도 서로 동맹을 맺은 건 쓰레기와 건물의 벽 너머에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이물들을 도저히 한쪽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키르르르그아아!!”
팔다리를 길게 늘어뜨린 이물이 손톱을 박아 벽을 타고 오르자, 아일랜드 국기가 새겨진 군복을 입은 군인이 그 머리를 밟고 소총을 갈겼다.
“뒈져어어어!!!”
두두두두두!!
탄창 하나를 통째로 비운 군인은 거친 숨을 흘리며 축 늘어진 이물의 머리에서 발을 뗐지만, 그대로 뒤로 풀썩 주저앉았다.
“큭...”
긴장감에 다리가 풀렸다기에는 이런 상황은 지겹도록 겪고 있었다. 어째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보기 위해 고개를 당긴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영국국기를 입은 군인과 눈이 마주치고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잠깐...이 새끼...?”
그러나 영국군인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아, 아냐! 나, 나나 아니라고!!!”
저 괴물들을 괴수가 아닌 이물이라고 부른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였으며, 동시에 비틀리기도 하였지만, 이물들에게는 사지가 달려있었고, 하나같이 사람이 입는 옷을 입고 있었다.
“너 바지 걷어...”
“아니라고 시바알!!!”
즉, 이물은 본디 사람에서 비롯된 감염체라는 것. 감염의 트리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피해를 낳은 건 기생체로 인한 유전변이.
“아니면 보이라고 이 개자식아!”
이나 손톱에 의한 변이 현상이 얼마나 빠르고 위험한지 경험상 알고 있던 영국 군인은 소총을 쓰러진 아일랜드 군인의 머리에 쑤셔 박았다.
“아, 아니 아니라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고...크르륵...”
우드드득!!
그때 아일랜드 군인이 눈깔을 뒤로 뒤집으며 팔다리가 부풀어 오른다. 내부에서 가스가 차는 듯 혈관이 도드라지며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은 영국 군인은 경악에 차 주변을 향해 외쳤다.
“젠장!! 모두 피해!!”
이물은 감염된다고 무조건 탄생하는 게 아니다. 저 실패 현상이 뭘 뜻하는지 알았던 그는 은폐막을 찾았지만,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런 썅!!!”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떨어져 짐으로 급소를 가리고 땅에 최대한 붙었지만, 이걸로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이 스치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속으로 외쳤다.
펑!
콰광!!
최소한 목숨이라도 부지하길 바라던 그때 바람이 몰아치고 가죽을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멀리 공중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어...?”
“살아있나 군인?”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깨달은 그는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경악과 환희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올백으로 넘긴 흰색 머리와 덥수룩하게 난 수염, 푸른 색 눈. 그리고 그 색에 맞춘 듯 푸르고 하얀 빛이 넘실거리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 저런 눈에 띄는 존재감을 지닌 집단과 그 집단을 이끄는 사람을 그는 알고 있었다.
“미, 미스터 패더슨!”
“허허! 목소리가 우렁찬 걸 보니 멀쩡한 모양이군.”
중앙세계의 랭커이자, 영국왕실의 기사. 패더슨 올리버.
영국인이 아닌 중앙세계 출신임에도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남은 공으로 영국왕실에서는 그에게 기사의 명예를 부여했다.
랭커급 각성자가 없는 영국에서 기사의 자리를 받은 랭커인 만큼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건 당연한 거다.
“군인 친구 이름이 뭔가?”
“부, 북아일래드 트라이던트 부대 소속 병장 매, 맥스 하운드입니다. 패더슨 경!”
영국군인 맥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 대답했다. 맥스 또한 영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그를 동경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 맥스 병장 저기 있는 병사들은 그대 부하들인가?”
맥스는 은페물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이곳을 동경과 경계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자들을 쳐다봤다. 동경은 알겠지만, 경계라니, 비록 자신들과 적이라지만 맥스는 자신들을 구해준 영국의 영웅에게 불순한 눈빛을 보내는 아일래드 군에 대한 불만을 담은 채 입을 열었다.
“절반은 아일랜드쪽 녀석들입니다!”
“허허...그 심정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괴물들과의 전쟁에서 소속이 뭐가 중요하겠나? 안 그런가 병장?”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아니네.”
병사의 어깨를 두드린 패더슨은 자신의 등장에 일순간 정지한 전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부탁 하나 해도 되겠는가? 병장?”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일반 병사들을 전부 뒤로 물리게 이제부터는 각성자들이 나서야 할 것 같으니.”
“네?”
“껄쩍찌근한 녀석이 있어서 말이야...아무래도 우리가 그대들을 지켜주면서 싸우기에 무리가 있을 듯싶어.”
이물들이 진격을 멈춘 건 패더슨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살기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전장을 살폈다. 그리고 곧이어 입꼬리를 끌어올려 사납게 웃었다.
“흐...! 숨지 않겠다는 건가?”
“예? 그게 무슨...? 헉!”
손대신 낫 같은 칼날을 양손에 달고 있는 괴물. 가운데 거대한 눈깔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얼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팔은 땅에 끌릴 정도로 길고 얇았으며, 다른 이물들처럼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하얀 몸뚱이에는 튀어나온 부분 하나 없이 매끈했다.
지금까지 맥스와 군인들이 상대해온 이물들이 그래도 최소한 인간의 흔적을 남겼던 것에 비해 저건 괴물 그 자체였다.
“저, 저게 도대체 뭐...”
“맥스병장 내 한 가지 충고해주지. 정체 모를 것에 너무 집중하지 말게나. 이 빌어먹을 세상은 너무 넓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천지에 깔려있으니.”
중앙세계 출신인 패더슨은 저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싸워온 것들 중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은 넘치고 넘쳤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그리고 지금 그대가 할 수 있는 건 병사들을 멀쩡히 유지한 채 대열에서 벗어나는 것밖에 없다네. 이해했나 병장?”
그리고 그렇게 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패더슨 올리버의 삶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자신이 살아남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채 용감한 웃음을 지었다.
“Yes Sir!”
그 믿음직한 모습에 감동받은 맥스는 자세를 바로하고 척! 경례하고는 곧바로 뒤로 돌아 달렸다. 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본 패더슨은 점차 짙어지는 괴수 특유의 질척한 살기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크킥!
입이 없는 괴물에게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쓰잘데기없는 아이의 발악을 보는 것 같은 비웃음에 패더슨 또한 흉흉한 미소를 지으며 등에 멘 거대한 대검을 꺼내들었다. 그에 맞춰 뒤에 정렬한 푸른 기사들 또한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럼 이제 방해 요소도 사라졌으니 한 번 놀아보도록 하지 괴물.”
군인들을 뒤로 물린 이유는 단 하나.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인 그들은 살의로 물든 마력의 폭풍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나라를 넘어 이 땅을 할 그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져 이물들에게 물려 새로운 적이 되는 건 결코 옳지 않았다.
우드득...
돌격을 위해 상체를 숙인 패더슨의 발이 땅을 파고들자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기사단!!”
““예!!!””
칼, 창, 도, 총 등 온갖 무구로 땅을 두드리며 자신의 부름에 우렁찬 목소리로 답한 부하들의 모습에 패더슨은 더욱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힘과 힘의 싸움에서 사기가 높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
“적을 사멸하라!!”
우오오오!!!
군인들의 총기 난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력파의 향연에 이물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쓸려나간다.
과연 랭커다운 기세에 이물들은 약해빠진 이물들은 접근하지 못했고, 설령 접근했다 해도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베리어에 갈려나갔다.
크킥크크킥!!
그럼에도 그들의 중심에 선 하얀 괴물은 여전히 기괴한 웃음을 지은 채 정면에서 달려오는 패더슨을 쳐다보고는 천천히 발을 떼고 걸어 나갔다.
드르륵...드르륵...
땅을 끄는 칼날괴물과 패더슨 주변으로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물들은 괴물의 명령을 들었고, 기사들은 저 싸움이 자신들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언제까지 처 웃을 수 있나 내 확인하마!”
넘실거리는 검기가 휩싸인 대검이 머리를 찢고자 내려오고, 괴물은 그에 맞춰 낫 같은 칼날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그렇게 땅을 부수는 폭격음이 울려 퍼지면서 유럽의 향방을 선택할 첫 번째 싸움이 아일랜드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