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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이 마법이다-114화 (114/116)

〈 114화 〉 예기치 못한 위험(7)

* * *

아르벨라와 유천이 이만성의 안내를 받아 협회 건물을 나서 세 명의 여인만이 남은 회의장에는 싸늘한 공기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저 여자는 누구일까요오...?”

엘리스는 협회 유리벽 아래로 유천과 어깨를 마주하며 걸어가는 아르벨라를 내려다봤다. 양하연은 지금도 공포에 절어 덜덜 떠는 바람의 정령 윈디와 그를 걱정하며 윙윙거리며 맴도는 다른 정령들을 어두운 표정으로 쓰다듬으며 답했다.

“글쎄요. 하지만 마지막 그 표정...예사롭지 않았지요?”

“그 이전에 저 둘 무슨 관계인지 알아야겠네요오...”

웃지만 웃는 게 아니라는 것이 그걸 말하는 걸 테다. 유천에게는 가리면서도 자신들에게 인위적으로 드러낸 살의는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의미했다.

거기에 금령이라. 굳이 다른 이들을 물리지 않고 그것을 들려준 이유를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몽롱했던 유천은 몰랐던 거 같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았다.

전부를 합치면 그 의사는 간단하며 명료했다.

너희와 나의 격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러니 기어오르지도 개기지 마라.

죽고 싶지 않다면...

“마음에 안 드네요.”

“네 맞아요오...”

본인의 개성과 정체성을 가진 여럿이 한 남성을 마음에 두는 건 실제로는 결코 만화나 애니메이션처럼 아름다울 수 없다. 누구 하나가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았을 때 어느 역사에서나 그렇듯 그 끝은 한정된 애정과 관심을 두고 싸우는 파이게임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아르벨라는 자신을 제외한 여인들에게 너희들이 양보하라고, 자존심을 내려놓으라고 말한 것이다.

“킬리언씨...당신은 왜 아무 말도 없죠오...?”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내를 억누른 엘리스의 말에 킬리언은 다리를 꼰 채 앉아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네게 유천의 사생활을 알 권리가 있나? 너는 유천에게 무엇이지?

“그건...”

­나중에 라면 모를까...지금은 아니지 않나? 정작 열받아야하는 건 나일텐데 왜 너희가 안절부절 못하는 거지?

“.........”

­선 넘지 마라. 안 그래도 나 또한 열 받는 건 마찬가지니까.

문명과 사회를 배운 괴수는 권리란 실체하지 않는 관념적 영역이라 정의 내렸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킬리언은 자신의 영역이 아무렇지 않게 침탈당했다는 것에 이미 열 받은 상황이었다.

킬리언의 생각보다 논리정연하고 냉정한 말에 엘리스가 침묵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를 만난 건 당신이죠. 그리고 데려온 사람도 당신이고요.”

­빙빙 꼬지 마라. 양하연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킬리언의 이해력과 습득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복잡한 걸 싫어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양하연의 저 말이 문명인 특유의 돌려 말한 질문이라는 걸 깨달은 그녀는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그럼 직설적으로 묻도록 하죠.”

양하연은 그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되물었다.

“그녀는 누구인가요?”

*

유천과 아르벨라는 대피가 완료된 텅 빈 도로를 걸었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건 아니었다. 혹시나 빌런이 틈을 노리고 들어오지 않을까 돌아다니며 수색하는 협회소속의 각성자들과 걸어 잠근 상점과 집들 사이 곳곳에 몸을 숨긴 채 각성자들을 눈에 담으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그런 거야?”

“예?”

“왜 그렇게 날카롭게 군거냐고.”

“...알고 계셨군요.”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지만, 내가 너를 언제부터 봐왔다고 생각해?”

그녀들의 예상과 다르게 유천은 아르벨라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그 이전에 모니터 너머로 봐왔던 게 있다. 유천은 아르벨라가 기분 나쁠 때 나오는 특징들을 알고 있었으며, 그녀의 웃음에서 그걸 발견했었다.

유천이 알아차렸다는 걸 몰랐던 아르벨라는 훅 들어온 질문에 말문이 막혀 침묵했다. 그러다 그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냥 불안해서 그랬어요...”

“뭐가?”

“어찌 되었든 저들은 저에 대해 알게 될 것이고, 유천님께 제 험담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경고하고 싶었어요.”

“그녀들은 그렇게 치졸한 사람이 아니야.”

“여심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아르벨라의 올곧은 눈이 유천을 향했지만, 그 올곧음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뒤틀린 광기라는 걸 알아채고는 발을 멈췄다.

“제가...그들 때문에 유천님께 부정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진다면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참지 않을 거예요.”

“......내가 그로 인해 너를 싫어하게 되더라도?”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에 경고를 한 거죠.”

“.........”

이 세상에 들어와, 전생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애정과 관심이 가벼웠던 적은 없지만, 아르벨라와 같은 초월자의 그것은 정도가 달랐다.

그녀는 알까? 자신의 모순과 역설을 비틀어버릴 힘과 존재감이 알게 모르게 유천을 붙잡고 흔들려고 한다는 걸.

초월자라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기에 사랑도 연애도 해보지 않은 아르벨라에게 그건 완전한 미지와 같다.

“그 얘기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하도록 하고, 그래서 왜 시간을 내어달라 한 거야?”

“아 그건 별 거 아니에요. 곧 가야 하는데 단둘이 있던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거 같아서...혹시 민폐였나요?”

“아니...그렇다기보다는 유라를 데려왔다며 어떻게 할 거야? 내 기억에 걔 성격 장난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그녀에 대해서 알고 계셨네요?”

“어. 알고 있지.”

회귀 후 지금의 아르벨라가 아닌 이전의 그녀에게 동료가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유라였고. 과거 그녀의 죽음은 꽤 끔찍했지만...없어진 기분 나쁜 과거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좀 떽떽거리기는 했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별일 아니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니까요.”

“...그 말을 들을까?”

“제가 어째서 그 많은 사람 중 유라를 데리고 다니는지 아시나요?”

“글쎄...유능해서? 내 기억에 걔 다방면에서 일을 잘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흠...그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답니다.”

“그럼? 걔가 무력은 뛰어나도 네 기준에서는 탈락일 텐데?”

유라가 하이랭커에 오를 정도로 강하고 재능이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위원회 13석 일인인 아르벨라의 측근이라기에는 무력 면에서 부족한 점이 분명 존재한다.

실제로 13석의 수장들은 하나같이 측근으로 라스트원 급의 강자들을 곁에 두고 있었다. 유천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아르벨라를 쳐다봤다.

“충성스러워요.”

“응...? 그게 다야? 너에게 충성하는 강자를 뽑으려면 얼마든지 넘칠 텐데?”

그녀가 이끄는 집단인 흑경은 충성심으로 중앙세계에서 유명하다. 그 안에는 당연히 유라를 뛰어넘는 강자들도 존재할 것이고 아니 그 정도도 안 되었다면 베렌듀크를 무너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충성스러운 놈들을 곁에 두려면 얼마든지 둘 수 있었죠. 하지만 하나같이 제 기준에는 안 맞았어요.”

“기준?”

“평상시에 충언을 고집할 수 있는 자.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군의 말을 묵묵히 따르고 수행하는 자. 그게 제 기준이고 거기에 맞는 건 당장에 유라밖에 없었어요.”

유천과 함께 길을 걷던 그녀가 그때 멈춰 서서 유천을 진지한 눈으로 쳐다봤다.

“유천님도 한 집단의 수장이 되기를 선택하셨다면 기억해 두셔야 할 거에요.”

“.........”

“집단이 중요한 국면에 처했을 때 유천님의 생각과 엇나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그때 꼭 그 원흉을 찾으세요.”

“찾으면?”

“죽이세요.”

“!!!”

“아니면 저 아래로 보내던가, 어쨌든 나중에라면 모를까 지금은 곁에 두지 마세요.”

“어째서?”

“신생집단에 중요한 거는 그 집단 자체가 아닌 머리에요. 근데 머리의 의사를 알지 못하는 측근이라...언젠가 발목을 잡을 겁니다.”

그때 유천의 머리로는 이지연이 독단으로 벌인 작전이 떠올랐다. 아르벨라의 말대로라면 그녀를 죽이든가 좌천시켜야 한단 말인가? 그에 유천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자 아차한 아르벨라가 손을 저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이에요. 누군가는 바꿔서 써먹을 수도 있겠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나 보네.”

“그게 싫으시다면 유천님 본인이 바뀌면 돼요.”

본인이 바뀌어야한다라...

생각이 많아지는 말이었다. 유천 또한 아직 스스로 한 집단의 수장에 어울리는 그릇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사람을 죽이고 담이 세졌다고 은둔형 외톨이가 리더로 탈바꿈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뭐 이런 우중충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까요?”

“여긴?”

“헤헤...오면서 봤는데 좋아 보이더라고요. 알아보니까 과거에 던전이 폭발한 곳이기도 하고요”

“북한산 국립공원...직접 와보는 건 처음이네.”

북한산 국립공원은 과거 던전 폭발로 사라졌지만, 다른 방면으로 그 주변 지역에 밀도 높은 순수한 마나가 스며들어 매우 아름다운 식생이 조성되었다.

“말로만 들었지 장관이구나...”

그걸 꾸미고 다듬어 서울시와 협회가 합작해 지은 새로운 북한산 국립공원이 바로 이곳이다. 입구부터 계절에 안 어울리는 화사한 생화들로 구성된 거대한 문을 보고 유천은 놀라 입을 살짝 벌렸다.

“거기에 사람도 없어서 좋아요.”

“지금은 사람이 있을 수 없지...그나저나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

“음...싫어하지는 않지만, 평소 제 주변에 사람이든 괴수든 너무 많아서 그런지 어느새 조용한 곳을 원하게 되더라고요.”

중앙세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아르스바그에 사람이, 절대방위선에 괴수가 넘쳐흐르는 건 당연하다. 그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아르벨라의 삶을 떠올린 유천은 그녀에게 오늘 하루가 얼마나 특별할지 짐작이 갔다.

‘아마 돌아가면 다시 그런 생활을 보내야겠지...’

안타까웠지만 연민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르벨라 그녀도 그걸 좋아하지 않을 게 뻔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르벨라가 무엇을 원할지를 생각해낸 유천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랑 같이 걸을까?”

그에 얼굴을 붉힌 아르벨라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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