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113화 (113/116)

〈 113화 〉 예기치 못한 위험(6)

* * *

가라앉아있던 정신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두 눈이 떠진다. 아르벨라에 의해 시간도 잊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유천은 지금 자신이 왜 이곳에 있으며, 어째서 눈앞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모든 걸 통틀어 현재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천씨...!”

“유천씨 괜찮으세요?”

“아...예. 괜찮습니다.”

양하연과 엘리스의 부름에 멍했던 정신을 차린 유천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와의 만남은 꿈이었던 걸까? 그러나 곧 뒤에서 이곳을 미묘한 미소를 지은 채 쳐다보고 있는 검은 머리 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왜 나하고 아르벨라가 여기에 있는 거지?’

‘아르벨라가 데려온 거겠지만, 그런데 어째서 이곳으로 온 거야?’

‘킬리? 킬리도 와 있네? 그런데...왜 저렇게 심통 나 있어??’

그렇지만 현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여전했다. 통유리 너머의 도시풍경을 봤을 때 이곳이 몇 번 와 봤던 협회 회의장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익숙한 장소고 유천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은 맞지만, 그곳에 아르벨라가 서 있자 현실감이 없어진다. 마치 집 안방에 연예인이 들어 앉아있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건 일단 그녀의 정체가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천은 오랜만에 사고가속이라는 자신의 재능에 감사함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몸에 아픈 곳은 단 하나도 없었고, 설령 다쳤다고 해도 잠든 사이에 다 나았을 것이다. 여전히 몸 안에서 요동치는 폭발적인 힘을 느끼며 유천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다.

“킬리언 양과 저 여성분이 그대를 데리고 오셨소. 발토 내부이사.”

유천의 의문과 당혹에 답하듯 이만성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건 우리가 할 말이에요. 유천씨.”

걱정이 가시자, 양하연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유천을 노려봤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수습하고 모진 대우를 받은 게 떠오르자, 입에서 자연스럽게 쏘는 말투가 새어나왔다.

“미국과 드라고니아와 공모하여 부산을 정리하는 것도 복잡한데, 국가 비상사태를 만들어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만...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연씨.”

“헥사곤 타블릿이 떠올랐어요.”

“......!!”

“그리고 그걸 모두가 봤을 거고요. 능력입증은 했지만...많은 관심을 사겠지요.”

당장에 유천을 데리고 온 여인은 그것이 아티팩트를 중심으로 만든 거라는 걸 당장에 파악했다. 일반적인 여인이 아니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그녀의 말대로 위원회 직속 유물대가 지구로 난입해 올지 모른다. 그들에게 차원보호법 따위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얘기를 들어봐야겠네요.”

자신이 기절하고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그 짧다면 짧은 이야기를 들은 유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해에서 불을 휘감은 금빛 나무가 치솟았다라...’

이들은 유천이 불과 관련된 힘을 다룬다는 건 안다. 그로 인해 일의 전말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을 테고. 유천 또한 맞아 들어가는 연결고리에 의문은 해결했지만, 머리는 더욱 아파졌음을 느꼈다.

‘킬리언과 유르힘...괜찮은 인선이지만...운이 안 좋네...’

킬리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있었고, 아르벨라는 여전히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유천은 그녀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낙관하지 않았고, 자신 앞에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일지라도 착각하지 않았다.

아르벨라는 무의 초월자.

그런 존재의 직관은 잔가지 안의 본질을 들여다보며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길을 선지(??)한다.

킬리언의 정체와 유르힘의 검술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이곳 협회에 본 모습은 아니지만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 또한 모든 걸 정리하기에 그게 가장 빠르고 정확해서일 것이다.

“...먼저 저분과 단둘이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설명해주지 않으시나요?”

유천은 양하연의 서운한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나중에 말씀드리죠.”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신이 있던 곳에서 밀려난다는 기분은 좋은 게 아니니까. 하지만 아르벨라는 중앙세계의 정점 중 하나. 존재만으로 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에 대해 알릴 수는 없다.

“그럼 회의장은 내어 드리면 되겠소?”

“...감사합니다.”

“허허...아니오.”

유천은 이 건물에서 누구보다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할 협회장 이만성이 가장 쓰릴 거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그는 후련한 표정으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쁜 일은 아닌 거 같으니...”

“예? 방금 뭐라고...?”

“자자 나머지 레이디들께서 잠시 머물 곳을 내어드려야 하니 이 늙은이는 빠지도록....”

“됐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조용히 유천을 관망하던 아르벨라가 탁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유천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오만할 거라 여겼던 여인의 공손한 발언에 둘이 무슨 관계인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상상을 떠올렸다.

“...하지만 너는...”

“괜찮아요. 이미 늦었으니까.”

“아마 전 오늘내일 중으로 떠나야 할 거 같아요...”

“뭐...?! 아니 왜?”

“여학천이 제가 여기 있는 걸 알아차렸으니까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금령(??)이 걸려있습니다.”

“아...”

라스트 레거시라는 게임의 본격적인 시작은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의 혼돈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유천은 아르벨라를 제외한 나머지 Top 4가 지배하고 있던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불려 오기 전 일개 게이머였을 때는 금령이라는 것의 존재만 알고 있었지 그 이상에 대해서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게임이 아닌 본인의 일이 되고 나서야 그는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억제제인지 알 수 있었다.

금령은 ‘더 원’ 아드릭센이 자신을 비롯한 일부 특별한 존재들이 날뛰는 것을 막기 위해, 그 행동을 강제하고, 억제하는 율령(??).

아드릭센 본인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아르스바그를 떠나지 않기에 법도의 명분과 힘은 엄중하며 강력하다.

그리고 위원회 제1 기사단장이자, 13석의 일인인 아르벨라가 금제를 받고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천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안타까움과 죄책감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걸리지 않았으면 모를까. 걸려버린 이상 그녀가 받을 문책이 결코 가볍지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그녀는 유천의 미안한 기색에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하지만...”

“괜찮아요. 그들은 절 처단할 수 없으니까.”

카트레나와는 서로 입을 맞추었고, 유천의 권능 때문에 여학천에게 발각되었다. 그리고 여학천이 13 위원회의 본부가 있는 아르스바그로 오라 했다는 것은 즉, 아르벨라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Top 5들 앞에서 지구에 그녀가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압박질의를 하기 위해서일 테다.

Top 5들 모두가 배심원이며, 검사이며, 판사인 심판장. 누구나 두려워 공포에 떨 자리였지만, 아르벨라는 카트레나와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정한 선을 명확히 알았고, 자신이 그것을 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마 몇몇 전장에 나서라는 심부름에 가까운 명령 몇 가지 하고 말겠지. 여학천 그 영감한테 받은 건...잘하면 배 째라 하고 넘어갈 수 있을 거 같기도 한데...’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는 유천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괜히 가슴이 쓰렸다.

“설명해 드리자면 할 수 있지만...너무 말이 길어질 거 같으니 넘어갈게요. 그냥 저를 믿어주세요.”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감사해요.”

아르벨라는 자신을 신뢰하는 유천에게 감사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뒤로 돌았다. 의구심, 질투, 경계, 투지까지. 그와 함께 해왔고, 해올 여인들에게서 호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눈빛은 뜬금없이 옆자리에 자리 잡은 동종업계 종사자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경쟁자라.’

아르벨라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베렌듀크를 꺾으면서 초월자에 오른 자신을 저렇게 쳐다보는 자들은 거의 없었기에.

‘본래라면 쥐어팼을 건데...’

그렇게 짜증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슬리기는 했다. 저 경계심이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아르벨라는 그런 생각을 할수록 본인이 떠난 사이 저 여우같은 년들이 유천을 꾀어 사이를 이간질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불처럼 치솟았다.

‘그래도 협박은 해놨어.’

처음의 무력시위뿐만이 아니다. 랭커라면 알 거다. 금령을 받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저 은발 머리 킬리언이라는 마족은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저들 간의 사이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같은 편으로 묶인 이상 그 정도의 정보 교류는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선을 넘어 건방진 짓을 한다면...

‘여태후라고 했던가? 그 여자의 심정이 나와 비슷했겠지.’

아르벨라는 가슴 깊이 살의를 숨긴 기계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경계하는 그녀들을 눈에 담겠다는 듯 한차례 둘러보고는 유천을 향해 고개를 돌려 화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유천님 오늘만 저랑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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