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사냥개들의 밤(2)
* * *
“너희 아카데미 출신이라고 했으니, 괴수식별코드는 알고 있나?”
“예? 아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실전에서는 잘 쓰지 않습니다.”
특출난 몇몇 괴수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에게는 계열에 따라 이름 대신 식별코드가 붙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아카데미 출신이 아니므로 실전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그 분류체계 또한 예외가 많을뿐더러 거기에 더해 종류가 워낙 많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제대로 된 군사교육을 받지 못한 일반 각성자가 코드를 알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예외도 있다네. 이 대륙을 차지하고 있던 나라는 과거 벌레들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고 많은 벌레가 존재했지.”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하나 이름 지어줄 정도로 그 수나 종류가 적지 않다는 소리네. 아마 A6 계열 중 이곳에 없는 놈들을 보기 힘들 정도로 말이야.”
악마(Devil), 짐승(Animal), 인간(Human), 현상(Phenomenon), 지형(Terrain), 식물(Plant).
예외도 있지만, 괴수들은 기본적으로 이 여섯 가지 계통으로 분류하고 그 아래로 여러 가지 항목들이 가지 치듯 뻗어 나온다. A는 짐승계열 그 중 6는 절지동물을 의미한다. 거기서부터 정말 복잡한 코드명이 이어져야 하는데 이 오크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한 마디로...
“그러니까 저곳에 좆 같은 벌레들이 존나 많다는 소리 아닙니까?”
이강우는 온갖 초목으로 뒤덮인 과거 거대 도시의 흔적을 손으로 가리키며 내가 들은 게 사실이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에서야 눈치챈 거지만 자신들이 있는 곳은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외곽지역. 중심부 안쪽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과 수풀 그리고 건물 사이사이를 연결한 거대한 넝쿨들. 거기에 저 안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괴수들이 존재한다는 알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몸을 떨게 하였다.
“그렇지 너희가 마주한 사마귀는 그저 일부 정찰대에 불과하다. 진짜 군단은 저 안에 모여 너희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을 거고.”
“...저희를 죽이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시지 왜 일을 그렇게 어렵게 하십니까...?”
그때 조용히 이강우와 오크 간의 대화를 관망하고 전 화룡길드장 강승훈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병력도 아닌 일개 정찰대에 모조리 죽을 뻔했다. 아니 이 오크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필히 절반 이상은 죽었을 거다. 그런데 놈들의 진짜 벌레 군대가 존재하는 본거지로 기어들어가라니.
정말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전쟁의 판도를 흔드는 건 한 개인의 무력이 아니다. 정보, 물자, 병력, 지형지물, 날씨 등 대국적인 차원에서 결정되는 사안이란 말이다.
병력은 말할 것도 없고, 호주가 멸망하고 버려진 이 땅에 알려진 정보가 있을 리 없다. 물자? 저곳에 난 풀 중 뭐가 독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단도 없고 수원조차 믿을 수 없다. 꿉꿉한 날씨와 얽히고설킨 넝쿨과 나무들은 벌레 괴수들에게는 압도적인 버프를 이곳에 있는 인원들에게는 디버프를 먹일 거다.
상상이 간다. 저곳을 지배하는 아르카샤인지 뭔지를 발견하기도 전에 전부 먹이로 전락하고 마는 그런 상황이. 산 채로 내장을 뜯기다 서서히 죽어가는 친우들과 함께 시체 한 점 남기지 못하고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저물어가는 그런 상상을 말이다.
“유원...그 자는 우리에게 그런 비참을 선사하고 싶은 것이오...? 민경이의 실수가...그 정도의 잘못이란 말이오...?”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저리 몸을 떠는 소중한 후배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다. 평생을 가슴 깊이 속죄할 녀석에게 고작 하루 전의 트라우마를 되새기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유원이 뭘 원하는지 만큼은 알아야 했으니까.
“너희는 착각하고 있군.”
그러나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엘테론은 너희들의 고민 따위 가당찮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분은 아마 너희 따위는 잊으셨을 거다. 아마 나중에 가서 보고할 때쯤이 되어서야 아 그런 녀석들도 있었느냐고 떠올리시겠지.”
“그럼 이게 뭐란 말이오? 나중에 우리를 병력으로 부려 먹을 거라면, 당신 정도 되는 자까지 써가면서 우리를 훈련시키는 거라면, 분명 우리에게 어떠한 이득을 뽑아먹으려고 하는 게 당연하지 않소?”
“그래서 결론은?”
“내 말은 모순된다는 말이오.”
길드를 운영해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투자를 했으면 그만한 이득을 회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걸. 엘테론 같이 비범한 랭커를 붙여서 자신들을 훈련시켰으면 살려서 부려 먹는 게 당연함에도 어째서 이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몰려고 하는 것인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분은 군인을 원하는 게 아니다. 더욱이 길드원을 원하는 것도 아니시지.”
“그럼...”
“사냥개, 주인의 명령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상대를 물어뜯는 짐승, 필요할 때 꺼내쓸 만한 비수를 원하신다는 거다. 그리고 종자가 글러 먹은 사냥개가 가마솥에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고.”
일일이 보살펴줄 사냥개는 필요하지 않다. 엘테론이 생각하기를 유천에게 필요한 것은 사지에 풀어놔도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절어서라도 먹이를 물어 집까지 돌아오는 그런 개새끼가 필요한 거였다.
“그걸 어찌 아시오...?”
“나도 그 신세니까.”
“뭣...?”
“아니 오히려 더한 처지라고 할 수 있겠군. 그래도 너희는 노예 인장까지 박지는 않았잖은가?”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유천을 따를 생각이었다. 한 달 전 감옥에 갇혀있을 때 그가 해준 말이 사실이라면... 거기에 더해진 자신의 염원을 읊으며 그걸 이뤄주겠다는 달콤한 악마의 제안, 그걸 실현할 능력을 지닌 그 남자가 정말 그렇게 해주기만 한다면, 이미 모든 걸 잃은 이 목숨 따위, 얼마든지 바칠 생각이었으니까.
“그래...그렇다면 이해가 가지. 하지만 한 가지 더 해결해야 할 것이 남지 않았소?”
“뭔가?”
“사냥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소? 충성심. 우리가 정말 그에게 충성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아니 설령 충성한다고 해도 그가 그것을 믿기야 하겠소?”
명분과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는 자신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린 자. 이성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마음의 응어리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충성심에 과분한 망상을 가지고 있군. 허나 그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국가와 황실을 위해 신념을 바쳤던 기사였던 엘테론은 신념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고 있었으나, 동시에 거기서 벗어나 좀 더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금의 자신에게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것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개새끼는 먹이를 잘 주는 주인에게 충성하는 법이지.”
“...돈으로 매수하겠다는 것이오...?”
“너희에게 준다는 게 아니다. 한국에 너희들의 가족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은가?”
유경하처럼 애초에 고아인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피로 이어진 가족들이 지금도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최고의 복지를 누릴 거다. 너희의 파견이라는 명목하에서 말이다.”
의식주 모든 걸 발토에서 책임질 것이고, 가족 중 각성자가 있다면 아카데미에 입학을 원한다면 특례로 넣어줄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원하는 교육을 받고 싶다면 어느 대학이든 입학시켜줄 수 있었다.
수호계약 길드가 국내의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그저 명시된 사안에 불과한 것. 드라고니아만 해도 미국을 지원하면서 암암리에 개입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발토가 저런 적폐를 누린다고 해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있는 자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누구도 받지 못할 최고의 복지를 약속받았음에도 그 안에 깃든 속뜻을 파악한 그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협박이오...?”
“물론 그것도 겸해서지. 하지만 너희가 어둠 속의 들개를 자처한다면, 네 가족 전부 얼마든지 원하는 걸 누리며 살 수 있게 될 거다.”
“뭐, 알겠소. 순순히 처지를 받아들이겠소.”
“...이것저것 물은 거에 비해 생각보다 납득이 빠르군?”
“어쩔 수 있겠소?”
강승훈은 웃은 후 주변 동료들을 쳐다본 후 다들 순순히 처지를 받아들이는 표정들을 보고 만족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약하다고는 하지만 각성자들의 세상이 지닌 냉혹함은 몸소 느껴왔소. 그리고 다가온 위기를 넘기는 것 또한 각자의 재량에 따른다는 것도 말이오.”
“오호? 표정이 달라졌어. 아까는 처형대를 오르는 죄수 같아 보였는데 무슨 심경 변화인가?”
“당신의 말로 확신을 했으니까.”
“무엇을?”
“우리들을 정말로 쉽게 버려질 도구로 판단했다면, 이렇게 길게 말할 필요가 있었겠소? 그냥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겠지.”
눈앞의 오크기사는 결코 말이 많은 성격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귀찮은 질문에 일일이 답변해 준 성실한 태도는 상대를 어느 정도 인정해준다는 걸 의미한다고 그는 판단했다.
이전의 싸움으로 쓸 만한 전력으로 판단했다. 그러면 죽으러 가는 길에 무작정 집어넣지는 않을 테고, 어째서 시간을 끌 듯 대화를 주고받았을까. 어째서 같이 있던 랭커는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그 끝에서 한 가지 가정이 나온다.
“당신과 같이 있던 랭커께서 수고가 많으시군. 우리 같은 놈들을 위해 길을 닦아주시고.”
저 확정된 지옥을 정신을 바짝 차리면 살아 돌아갈 수 있는 험지로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거나,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많은 괴수들의 수를 일부 줄여놓는다거나 말이다.
“제법이네.”
“...과찬이오. 그래도 이렇게 접근하지는 말아주시겠소? 심장이 떨어질 거 같으니.”
그때 꾀꼬리 같은 아름다운 미성이 옆에서 들려오자 흠칫 놀랐지만, 가만히 있는 엘테론의 모습이나, 한 번 들어본 목소리에 아군이라고 판단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백발에 짐승과 같은 샛노란 동공을 지닌 미인 카렌이 온몸을 피로 적신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무표정함에 서린 불만을
“내 기준에서 너희는 자격미달이야.”
“어떤 의미로 말이오...”
“나 정도의 인력이 이런 노동을 해서까지 얻을 가치가 너희에게 없다는 거야.”
눈치는 제법 빠르지만, 카렌의 눈에 그들이 지닌 자질이나 재능, 정신력은 낙제점이었다.
“하지만 그분이 이 일을 맡긴 건 내가 아닌 선배님이지. 그리고 선배님은 나와 달리 너희가 쓸모 있다고 판단하셨고.”
“...칭찬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칭찬 아니야. 내가 존중하는 건 선배님이지 너희가 아니니까. 즉 내가 선배님을 못 미덥다고 여겼다면.”
“큭!”
카렌의 그 몸에서 흘러나온 거칠고 난폭한, 맹수의 그것과 유사한 샛노란 살기가 강승훈 일행들의 목을 감싸 쥐고 발톱을 세우며 짐승같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자, 하나둘 목을 부여잡고 무너져갔다.
“너희는 내가 직접 죽였을 거란 말이야. 알아들어?”
전사로서의 엘테론을 존중하지만 않았다면 유천의 사냥개로는 한없이 부족다고 결론을 내리고 죽음을 확인한 후 그대로 돌아갔을 것이다.
“카렌 거기까지 해라.”
엘테론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강승훈 일행을 압박하고 있는 자신의 살기를 흩어버리자 카렌은 그를 노려봤다.
“선배도 마찬가지예요. 그분이 내어준 것의 가치를 안다면 이렇게 쉽게 1차 테스트를 통과시켜주면 안 되었어요.”
“어차피 규모는 늘어나야 한다. 이 기회에 미리 교육 매뉴얼을 만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거기에 녀석들의 실력은 그렇게 낮지 않다. 이건 과거 기사였던 나의 판단이야.”
“...책임은 선배가 지셔야 할 거에요. 전...그분이 두렵거든요.”
그녀는 아직 잊을 수 없었다. 그 강대한 파멸의 형상을 한 힘의 덩어리가 자신을 훑었던 그때를. 마치 벌레를 내려다보듯 한 무감정한 황금빛 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하복부가 풀려버릴 공포를 느꼈지만, 이런 곳에서 무너지기에는 체면이 상했기에 이를 악물고 기억을 머리에서 쫓아냈다.
“문제가 생겨서 받을 문책은 내가 받도록 하지. 그러니 이제 슬슬 내놓지 않겠나. 카렌.”
“...진짜 전 몰라요.”
그렇게 한숨을 쉬고는 여섯 개의 목함을 품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기억을 넘어 심령에 각인된 공포는 고작 머릿속에서 쫓아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아니 그녀의 손으로 유천을 직접 죽이지 않는 이상 영원히 함께할 것이었다. 그리고 상리를 벗어난 무력을 생각하면...죽는 날까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하지만...그것보다 당장에 더 급한 건 발작적인 생리활동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씨이...이 카렌 오스텐이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명가의 영예가 오줌보를 참지 못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낀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미친 듯이 달렸다.
“음...아직 여전하군.”
“헉...헉...저분 왜 갑자기...”
“몰라도 된다.”
전사로서의 명예를 중요시하는 그녀의 치부를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지. 그는 그녀가 어떤 이유로 뛰쳐나갔는지 예상은 가지만 이 이상은 그녀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목함을 가리켰다.
“각자 하나씩 먹어라.”
“저게 뭡니까?”
“귀한 거지. 카렌의 말대로 지금의 너희에게는 한없이 아까운 물건이다.”
영약. 최상급이 아닌 보급형이었지만 카이안의 자산을 털어서 나온 만큼 중앙세계에서도 최소 중급 정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영약이었다. 그리고 중앙세계에서 중급 영약이라는 건 지구에서는 감히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는 말과 같았다.
“섭취한 후 이 자리에서 운기조식을 취해라. 내가 직접 호위를 봐주지.”
“방생하는 개새끼에게 하는 것치고는 생각보다 대우가 좋다고 생각되오만...?”
“너희를 애지중지할 생각은 없으니 착각 마라. 이것 또한 시험이다. 카렌이 정리를 했다고 하지만 저곳은 지금의 너희가 살아 돌아올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니야.”
기회를 온전히 흡수하는 것. 그것 또한 능력이다. 숲에서 흘러나오는 질척한 살기. 그의 계산상 이 중 단 한 명이라도 영약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면 살아남기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부터 단 반나절. 그걸 섭취하고 휴식하는 시간은 딱 반나절을 주마. 그 이후 곧바로 너희를 사지(死?)로 집어넣을 거다. 과연 얼마나...”
“그러니까 이걸 먹으면 강해질 수 있다는 거죠?”
“민경아!”
“호오...가장 멍청한 것이 이제야 정신을 차렸군.”
그때 여전히 힘없이 조용히 주저앉아있던 김민경이 벌떡 일어나 목함을 집어 들어 핏발 선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자 엘테론은 씨익 웃었다.
자책에서 일어나게 한 것이 독기인지 죄책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쁘지 않았다. 저런 마음을 지닌 자는 정도(??)가 아니더라도 금방 성장하게 되니까.
“그래서 강해질 수 있는 거죠? 이걸 먹으면.”
“그래 너희가 그건 너희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영약일 테니까.”
“그럼 됐어요.”
김민경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목함을 열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조그마한 단약 쏴아아 독한 한약의 냄새가 풍겨왔다. 영약이 외부 공기와 오래 접촉하면 기운이 흩어진다는 말을 기억한 그녀는 뒤에서 뭐라 소리 지르는 동료들을 무시하고 그대로 그걸 입에 넣고 가부좌를 틀고 주저앉았다.
쓰디쓴 맛, 그리고 강대한 마력이 마력회로를 들쑤시는 고통에도 단 하나라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숨을 참고 입을 갈았다.
‘전부...살릴 거야.’
나의 죄악으로 소중한 동료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이대로라면 분명 우리 중 누군가가 죽게 될 테고, 그건 모두 자신의 탓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살려서 보낼 거야...’
그녀는 이런 타지에서 동료들의 시체를 묻을 생각이 없었다. 아니 나중에 유원 그 공포스러운 남자 아래에서 지옥 같은 임무를 맡는다고 해도 누구 하나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살의에 가까운 의지는 점차 광기와 집념으로 변질되고.
‘설령 내 팔다리, 아니 목숨을 앗아간다고 해도 살린다...!’
극한에 달한 정신력을 뛰어넘어 시뻘건 투기를 내뿜는 김민경을 다른 운명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