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사냥개들의 밤
* * *
키에에엑!!
“이 빌어먹을 시험은 언제 끝나는 거야!!”
“소리 지르지 마시지요. 선배님 머리 아픕니다.”
“하지만 이제 한계라고!”
촤아아악!
온몸에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초록색 피를 뒤집어쓴 이강우는 전민호를 등지고 두 개의 쌍검을 미친 듯이 휘둘러 괴수들을 베어나갔다.
“빌어먹을 진형도 끊겼어! 이대로라면 각개격파 당해!”
하지만 한 방위를 지켜야 할 둘이 등을 맞댔다는 건 서포트를 받아야 할 중심으로부터 고립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말로는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 뚫렸다는 의미.
이대로 놔두면 나머지 동료들의 후방이 위험해진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전민호가 둔기로 곤충형 괴수들을 으깨면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
“선배.”
“왜!”
“선배라면 홀로 빠져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너...설마!”
“선배는 지금 같은 스타일의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전민호는 방패를 좌에서 우로 휘두르고 둔기를 하늘로 들어 올려 마력을 실은 후 땅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땅을 울리는 파동에 멘티스 계열의 괴수들의 1열이 전멸했다. 그리고 뒤의 놈들이 일순간 물러나면서 그와 함께 중앙으로의 길이 뚫린 곳을 향해 전민호가 손을 뻗었다.
“가세요. 가셔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십시오.”
이강우는 도적계열의 각성자. 속도와 은밀성에 특화된 그가 진정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은 불리한 국면을 뒤집을 날카롭고 예리한 비수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이지, 민정수 같은 검사 같이 전방에서 칼질하는 건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 넌 이 빌어먹을 새끼야!”
혼자 빠진다는 건 둘이서도 벅찼던 이 자리를 오로지 홀로 메꿔야 한다는 것. 멀쩡했다면 모를까. 그 두꺼웠던 갑주가 이리저리 부서지고 언제나 가볍게 들었던 방패와 둔기가 무거워 보이는 시점에서 녀석 또한 한계에 도달했음에 틀림이 없었다.
“저는 탱커입니다.”
“그래서 뭐?!”
“제 역할은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가장 위험한 곳에서 아득바득 버티는 거란 말입니다.”
두 명이 있음에도 가장 그들이 가장 밀리는 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있는 방위가 가장 위험한 곳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이야말로 탱커가 묵묵히 지켜야 할 위치였다.
“가세요. 곧 길이 막힙니다.”
수십을 죽였지만, 그 잠깐 사이에 괴수들이 빈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전민호가 무리한 이유가 사라짐을 깨닫고 속으로 빌어먹을 소리를 내지른 이강우가 이를 빠득 갈고는 땅을 박찼다.
“새끼야 버텨! 뒈지면 진짜 내 손에 죽어 너!”
“지금 그딴 걸 응원이라고 합니까?”
이강우의 걱정 아닌 걱정에 무표정한 얼굴로 피식 웃은 후 떨리는 양팔에 힘을 줬다. 이미 마력은 거의 고갈되었고, 근육은 언제라도 터질 것처럼 뻠핑되었지만, 전민호는 담담히 전투태세를 갖추고는 사방에서 달려들 준비를 마친 괴수들을 노려봤다.
“와라! 이 더러운 새끼들아!”
키에에에엑!
*
끼에엑!
“꺼져!”
이강우는 전방에서 톱날같이 삐죽한 앞발이 들이닥치자 역수로 쥔 검날을 가져다 대 힘을 역이용해 한 바퀴 돌아 목을 썰고는 그대로 중앙으로 달렸다.
“죽지 마라! 죽지 마!”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초록색 괴수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중앙에 가까운 전방으로는 미친 듯 불을 휘두르는 강승훈과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유경하가 보였지만 그렇다 해도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그 개자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릴 여기 던져놓은 거야!’
오크와 수인 여자가 싸워서 살아남으라고 던져놓은 곳은 애초에 제대로 된 공간이 아니었다. 소수로 다수와 싸우기 위해서는 한정된 공간과 엄폐물들이 있어야 하는 데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거기에 언제까지 버티라고 정해놓은 시간 또한 없었다.
그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10시간이나 견딘 것도 새롭게 개화한 유경하의 재능과 오랜 시간 맞춰온 팀워크가 만들어낸 기적.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 앞에서 치솟는 강승훈의 불길은 점차 옅어지고 있었고, 두고 온 전민호는 티를 안 내려고 한 것 같아 보였지만 떨리는 팔을 숨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거기에 더해 도적 계열인 자신이 활동하기에 더없이 최악인 환경이었다.
‘아니다...사실 그게 아니야...’
모든 면에서 불리한 상황에 던져진 것에 분통을 터뜨렸지만, 결국 전부 변명.
전민호를 버리고 와야 했던 죄책감.
이런 상황을 타개할 힘이 없는 스스로의 나약함에 대한 혐오.
그리고... 이런 지옥에 던져놓은 근원에 대한 분노까지.
자신은 그것들을 어떻게든 가리기 위해 변명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빠직
극한의 상황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여 넘어서기 시작하자, 자신만의 세상을 깨기 시작했고, 이강우의 칼날에 점차 흐릿하지만, 검의 형(?)이라고 불리는 검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유원!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거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던가. 웃기지 마라. 전부 데려갈 거다. 그리고 그자 앞에서 보여줄 거다. 우리들은 당신이 판단한 것만큼 쓸모없는 자들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전부 죽...!”
“합격이다.”
온갖 괴수들의 울음소리와 폭음들을 짓누르고 중후한 음성이 이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전장 가운데 유성이 추락했다.
콰아아아앙!!
“큭!”
자신을 덮치는 풍압을 손을 들어 막은 이강우는 눈을 힐끔 뜨고 그 유성의 정체를 확인했다. 자신들을 이곳에 데리고 온 거구의 오크. 그가 흥미로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여자 말고는 죄다 버러지들인 줄 알았더니...제법이로군.”
“뭐라고요?”
“거기에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나? 그것 또한 재능의 편린. 허...이 차원은 참 재밌는 것이 많군.”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어쨌든 시험은 끝난 겁니까...?”
분명 들었다. 합격이라고. 그렇다면 안심해도 될 거 같았다. 이 괴수 무리가 아무리 많다고 그래 봤자 D등급. 랭커일 거로 추정되는 이 괴물 같은 오크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
실제로도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규격 외 강자의 기세에 의해 괴수들은 싸움을 덤비는 것을 멈추고 슬금슬금 몸을 빼기 시작했으니까.
“그래 시험은 합격이다. 몇 놈 죽거나 전멸할 줄 알았더니, 생각 이상으로 실력이 제법이더군.”
“흐으으...다행입니다. 그려.”
죽거나 전멸할 줄 알았다는 건, 반대로 전부 살았다는 말. 긴장감이 풀려 녹초가 된 몸을 풀썩 주저앉힌 이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담담하군. 복잡해 보이던데 말이지.”
“뭘 다 끝났는데 맘 복잡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비장함과 죄책감 그리고 자기혐오. 그것들을 잊지는 않을 것이지만, 거기에 짓눌려서도 안 된다.
“여유는 가질 수 있을 때 가져야죠. 복잡한 것들은...나중으로 미루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짐이 되어 목숨을 옥죄어올 테니까.
“하하! 너는 오래 살겠어.”
오크 엘테론은 그런 그를 보며 어금니를 내밀며 웃었다. 품격과 격식을 중요시하는 기사였을 때의 자신이라면 저 경박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절대 방위선에서 겪은 죽음의 간극과 제국의 배신을 넘어 더 이상 기사가 아니게 된 그는 오히려 저런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과거의 자신이 저런 부드러움을 지녔더라면...
‘아니...이미 지나간 일이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평생을 지니고 살 업이자 악몽을 되새긴 엘테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일단 자리를 정리하도록 할까.”
엘테론의 손안에 나타난 반투명한 초록빛 구체. 그 안에 압축된 힘과 검의 묘리에 이강우의 안색은 파리해졌다.
“그건...”
“잘 보아라. 언젠가 네놈도 도달해야 할 영역이니까.”
구체에서 수십 수백 개의 줄기가 자라나며 꽃을 피우고 흩어지더니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검구(??) 녹화풍궤(??風?)
카가가가각!!!
흩어진 수천 개의 녹색 꽃잎 아니 검기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하는 사방의 괴수들을 찢어발겼다.
크레레레렉!!
“이 무슨...”
태풍에는 규율이 없음에도 그 꽃잎의 폭풍은 사람을 피해 오로지 괴수들만을 죽였다. 그리고 폭풍이 지나간 곳에 남은 건 썩은 괴수의 피와 살점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나머지 상처투성이 동료들뿐이었다.
“집합.”
엘테론은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박수를 짝 치며 입을 열었다.
“살아남은 너희들의 앞에 어떤 미래가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 말에 홀린 듯 그를 향해 지친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걷는 그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것이...랭커...’
압도적이다. 그리고 기억해 냈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내용을, 랭커가 어떤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지를.
‘이게 시작점에 선 자들이라고...?’
세상을 구성하는 마나.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그제야 하나의 전사로서의 몫을 다하는 자들 그것이 랭커라고 배웠다. 허나 와 닿지 않았다. 랭커의 싸움을 본 적이 없을뿐더러, 지구에는 그 수도 적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본 그것은...뭐라 말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보는 것 같이 격이 달랐다. 저것이 진정한 초인이라면 자신들은 글쎄...그냥 힘 좀 센 일반인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자신들이 사는 이 지구라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 우물이었는지를. 아카데미를 꽤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해서 나름 잘 나간다고 우쭐된 자신들이 얼마나 한심스러운지를 말이다.
‘시펄...졸라 무서운 아저씨였구마이...’
이강우는 눈앞에 당당히 서 있는 오크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에 자신이 무슨 말실수를 한 건 없을까 식은땀이 흐르는 목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후우. 어떻게든 살았군요.”
“민호야! 이 시발놈아! 살아있었구나!”
“그럼 뒈지기를 바랐습니까?”
“아니 쓰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살아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평상시 사전준비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무구를 소중히 관리하는 전민호가 방패와 둔기를 질질 끌고 오는 모습에 가슴이 아릿해졌다.
“어떻게든 살아남았군...”
“다들 정말 고생 많았어요.”
마력고갈로 창백해진 강승훈과 흐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유경하 엘테론의 무위를 골똘히 생각하는 검사 민정수. 그리고.
“.........”
그 모습을 떨어진 곳에서 미안함과 죄책감에 얼룩진 얼굴로 창을 껴안은 채 지켜보는 김민경까지 모였다. 도란도란 모여 생존을 축하하는 그들 중 누구 하나 심지어 친구인 유경하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허나 그건 미워서가 아니었다. 길드를 잃은 강승훈도, 눈을 잃은 유경하도, 그 외의 누구도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누군가에 의해 모두의 목숨을 잃게 할 뻔한 실수를 저지른 경험은 이들 모두에게 존재했으니까. 그 정도의 위기로 이들 사이에 연결된 피와 같은 인연을 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저건 본인만이 짊어질 수 있으니까...’
이강우는 살짝 눈을 돌려 무릎을 껴안고 있는 김민경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녀의 마음속에 묶인 죄책감은 아까 전 자신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클 테니까.
저건 누군가 괜찮다고 말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피하지 않고 제대로 마주 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까 자신처럼 말이다.
“자 다 떠들었으면 이제 내 말에 집중해줬으면 좋겠군.”
엘테론의 중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생존을 자축하던 그들과 떨어져 있던 김민경도 조용히 그를 쳐다봤다. 그 눈에는 각자 다른 느낌의 감정이 담겨 있었지만, 경외하는 것 같은 분위기만큼은 일치했다.
“전략이나 협동 그리고 무력적인 면에서도 너희는 우리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사실 몇은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말이지.”
“......”
“그럼 여기서 하나 묻지. 너희가 상대한 괴수. 놈들에게 어떤 특이점이 존재한다. 그것이 뭔지 아는 사람 있는가?”
“하나 의문인 점이 있었습니다...”
“뭔가?”
엘테론의 질문에 손을 올린 건 그들 사이에서 탱커역할을 맡고 있는 전민호였다. 그는 담담함에도 피로를 감추지 못한 얼굴로 잠시 생각을 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놈들의 행동은 무차별적인 걸로 보였지만...일정 부분에서만큼은 철저히 일관성을 띠었습니다. 예를 들면 부대 단위로 군집 행동을 한다거나, 당신이 나타났을 때 동시에 공격을 멈추고 물러나는 것 같이 말입니다. 그건 마치...”
“맞다. 녀석들에게는 명령을 내리는 상위개체가 존재한다. 제법이군. 전열을 맡은 자다운 관찰력이야.”
보면 볼수록 뛰어난 자들이다. 이런 외곽차원이 아닌 중앙세계에 있는 거대세력의 지원을 받았다면, 이들은 꽤 이름 날리는 자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엘테론은 입을 열었다.
“놈의 이름은 ‘아르카샤’ 곤충형 괴수들에 체내에서 기른 기생 벌레를 집어넣어 통제하는 군주형 괴수다.”
“...이름이 붙었군요.”
“그래 놈은 그 수가 많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그 악명 높은 ‘몽키’와 비견되는 오염체로 취급받는다.”
괴수는 워낙에 그 종류나 수가 많아 계열만 나누고 하나하나 이름 붙이지 않지만, 몽키와 같이 엄청난 피해를 끼치는 종에 한해서는 특정한 종명을 부여한다. 그리고 아르카샤 또한 그러한 것 중 하나다.
“카렌, 그러니까 나와 같이 있던 수인, 그녀가 몰래 침투해 알아본바 놈의 등급은 AA+, 기본 등급 B임에도 거기까지 성장했다. 네임드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한 녀석이지. 그러니 미리 싹을 잘라 내야 한다.”
“설마...”
“그래.”
엘테론은 저 말의 의미를 알아챈 그들이 설마 아니겠지 라는 표정을 보며 그에 배신하듯 잔인하게 웃었다.
“이제부터 너희만으로 놈을 사냥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