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점차 집중되는 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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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그룹의 경영단과 해원 길드의 주요전력이 몰살당했다. 거기에 다른 외국의 각성자들까지. 분명 굉장히 케이스가 굉장히 커졌지만 유천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협회나 경찰 그리고 군부쪽 각성자들은 오지 않을 거다.’
이만성이 이쪽 사람인 만큼 협회는 이쪽을 외면할 거고, 부산의 경찰과 군부는 해원 길드와 동양 그룹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다.
부산의 기득권이 천황국과 손을 잡은 것은 알려질 대로 알려진 비밀이지만, 거기에 더해 현재 한국의 상층부와 민감해진 중화연맹이, 그것도 랭커급 각성자들이 낀 큰 판을 외부에 최대한 비밀로 하고 싶었을 거니 철저히 홀드 시켰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오려고 하지 않았을 거지만.’
부산 전체에 보였을 거고 들렸을 거다. 유천과 라만의 전투가. 그토록 강렬한 힘의 충돌을 일반인이라도 못 느꼈을 리가 없으니까. 아직 한국은 민주주의를 표명하고 있지만, 한 개인이 수천수만을 죽일 수 있는 시대에 힘 있는 자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자 말고는 함부로 진실을 알고 적대하고자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앙을 보는 심정으로 대부분 두려움에 침을 삼키며 저것이 자신들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빌기만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스스로 힘이 있다고 착각하는 천황국과 중화연맹은 좀 귀찮을 수 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봐도 될 일이다.
‘일단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왔어?”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던 유천은 기다리던 두 개의 기척, 엘리스와 킬리언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두 여자를 향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라만을 상대한다고 놓친 일부 전력들을 제거했는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피 칠갑이 되어있었지만, 그 빛나는 외모는 이 어둠 속에서도 바래지지 않았다.
일단 여기.
무언가 불만에 찬 뚱한 표정을 한 킬리언 툭 동그란 무언가를 던졌다.
“머리? 아!”
데굴데굴 굴러 오는 광학망원경을 낀 머리통을 본 유천은 나중에 죽이려고 마음먹은 저격수를 떠올리고 머리를 탁 쳤다.
까먹고 있었지?
“하하...”
눈을 반개해서 자신을 노려보는 킬리언의 시선에 유천은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어쩐지...총질은 더 이상 없더라...’
너무 보잘것없는 공격이었던지라 까먹고 있었다. 아직 처리해야 할 놈이 하나 더 있었다는 걸.
하아...다 좋은데 마무리가 어설퍼.
“하하...미안미안.”
‘이제 그래도 인간 생활에 익숙해졌나 보네.’
킬리언은 탈피자. 괴수였던 여자다. 외차원에서 교육을 받았더라도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했던 나쁘게 말하면 반쯤 야인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그 타고난 적응력으로 지금에 와서는 금방 인간을 따라 하는 것에서 어색함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과 달리 훨씬 자연스러워진 말투나 저런 한숨을 쉬는 행위 등이 그 증거다. 처음에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 앞에서 딱딱한 말투를 쓴 것과 비교하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모습에 유천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여기 완전 개판이네요오...”
완전히 분쇄된 항만을 둘러보고 킬리언과 멀리서 본 유천과 라만의 전투를 떠올린 엘리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중앙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강자들...’
전투가 종결되었음에도 이 공간을 술렁이는 힘의 흔적들은 엘리스의 예민한 역린을 곤두세웠고 몸을 떨게 하였다.
“그래 그러니 엘리스 나중에 지원 좀 해달라고.”
“......이럴 줄 알고 저한테 부산을 맡기시려고 한 건가요오...?”
“설마 그럴 리가 나라고 이런 놈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유천의 뻔뻔한 요구에 엘리스는 골치 아픈 듯 머리를 짚었으나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상관없어요오... 이번에 견식을 넓힌 것만 해도 충분하니까요.”
하이랭커 클래스의 강자들이 생사를 건 전투는 엘리스라도 처음 본 광경이었다. 그것을 안전이 보장된 장소에서 본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더욱 의미 있던 건 다른 데에 있지만요오...’
짧은 전투였지만, 엘리스가 느끼기에는 여기서 느껴지는 힘과 마력의 잔흔들은 부산 전체를 불태우기 충분해 보였다. 그럼에도 멀쩡하다는 건 누군가 그것들을 짓눌러 이 항만 안으로 한정시켰다는 뜻. 그리고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있는 자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에요오...”
‘도대체 얼마나 강한건지...’
유천의 옷은 찢기고 탔으며 혈흔 또한 낭자했지만, 그 안으로 보이는 속살은 흉터 자국 하나 없었다. 싸움이 아닌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짓눌렀다는 거다. 그것도 자신의 스승과 동등해 보였던 강자를 상대로.
‘정말 운이 좋네요오...’
스승님의 랭킹을 떠올리고, 유천이 어느 정도의 강자인지 대강 감을 잡은 엘리스는 자신이 택한 일생일대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속으로 싱긋 웃었다.
‘하이랭커 그중에서도 최상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천은 드라고니아의 수장인 용왕과 같은 경지에 서 있는 자라는걸.
‘좋네요오~♥’
저 정도의 남자에게 파트너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엘리스는 다리 사이로 슬금슬금 올라오는 열기를 참지 못하고 허벅지를 비비며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곧이어 옆에서 들려온 말에 엘리스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
쯧...발정난 년.
“...당신 아까부터 말을 막 하시네요오...?”
내가 틀린 말을 했어?
‘마음에 안 드는 년.’
킬리언 자신이 아무리 괴수였다고 하지만 여자다. 그리고 여자인 만큼 같은 여자의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수컷을 꼬시기 위한 야한 암컷의 향기를 저렇게 풍기는데 모를 리 없었다.
‘어디서 꼬리를 쳐?’
킬리언은 꼬리 친다는 말 이 나라에 들어와서 처음 들은 말이었지만, 굉장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감히 연인이라고 대놓고 말했는데도 그 앞에서 자신의 남자를 꼬시는 그 행태가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도 오늘 처음 봤으면서 말이다.
첫 만남에 유천과 잠자리를 가진 킬리언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그건 이미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실 유천이 여러 여자를 들인다고 해도 그다지 그녀는 거슬리지 않았다. 강한 자가 여러 이성을 거느리는 건 당연한 거였으니까.
이지연과 양하연 그 두 여자도 유천을 마음에 두는 건 알고 있는데도 자신이 그 둘이나 유천에게 뭐라고 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 여자는 그 둘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언니는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
누가 네 언니야?
“어머 아니었나요오...? 딱 봐도 저보다 성숙해 보이셔서 그런 줄 알았죠오~”
너...
성숙하다. 좋은 말이지만, 적응력이 뛰어난 킬리언은 저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조오금 더 오래 산 건 사실이었고 저 년이 아아주우우 조금더 어려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이 모습으로 산 건 얼마 안 되었으니 난 어리다!'
그렇게 정신승리를 했지만 이미 타격을 받은 킬리언이 주먹을 꽉 쥐자, 엘리스는 과장되고 입을 손으로 막으며 놀리듯 입을 열었다.
“설마 사실을 말했다고 폭력을 쓰실 거는 아니시죠오...?”
이...개...
킬리언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욕을 틀어막고 표독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보며 미묘한 표정으로 웃는 엘리스를 노려봤다.
저것이 그 둘과는 결정적인 차이점.
한낱 괴수나 짐승 새끼도 첩실은 정실의 눈치를 본다. 양하연과 이지연은 킬리언 본인이 첫 번째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눈치를 보지만 이 년은 마치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 도저히 그런 게 없었다. 영역을 중요시하는 그녀에게 엘리스는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쟁자로 비쳤다.
‘진짜 패고 싶은 년이군...’
그렇다고 정말 팰 수는 없다. 문명을 습득해온 킬리언은 그랬다가는 여성체로서 잃으면 안 되는 것을 잃을 것만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치하는 두 여자를 난처한 듯 보던 유천이 둘을 말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킬리언. 그만해”
큭! 하지만!
“엘리스 너도 킬리언에게 함부로 말하지마. 그녀는 너가 함부로 대할 상대가 아니야.”
킬리언이 연인인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의 편을 들어 설움이 폭발하기 전에 유천은 재빨리 엘리스를 향해 정색하며 다그쳤다.
“네에에...”
흥...!
혼이 나 축 처진 분홍 머리의 여자와 그럼에도 마음에 안 드는지 자신을 원망하듯 흘기며 콧김을 내뿜는 은발 머리의 여자를 보며 유천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존나 어렵네...’
하렘. 말로만 듣던, 남자에게는 판타지이자 전설과 같은 것이지만, 유천은 직접 제대로 경험하니 그것이 생각 이상으로 피가 바짝 마르는 거라는 걸 알고 마른 침을 삼켰다.
‘저 둘...비슷해.’
일종의 동족 혐오일까?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지연과 양하연은 앞에서는 얌전하지만, 엘리스나 킬리언은 반대로 앞에서나 뒤에서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쟁취하려는 적극적이면서 탐욕적인 타입이었다.
‘골치 아프네.’
치고박고 싸우는 거라면 모를까 아직 일부일처에 익숙한 유천에게 이런 상황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영역이었다. 가장 현명한 거는 한 여자만 보고 사는 거지만.
‘아 시발 그건 안 되지.’
세상은 언제나 현명하게만 살 수는 없다. 유천은 자기 좋다고 오는 여자를 곤란하다고 쳐내고 남 주는 병신쪼다가 아니었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3처 4첩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모르겠으면 대처법을 찾으면 된다.
‘타 세계까지 와서 멸망을 막기 위해 애쓰는데 이 정도 호사는 누려도 되잖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유천은 뾰로통한 두 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돌아가자고 집으로.”
*
용병의 격은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한가? 귀족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가문과 품격 있는 어투와 행동거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명예 등 많은 요소들이 어우러져 그 격을 표현한다면 용병은 단 하나만 있으면 된다.
금(Gold), 다른 말로는 돈.
그리고 중앙세계 카르발디 군도 인근, 최상위 용병 길드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용병국가 드룬 왕국의 수도. 그곳에서도 화려한 금색, 아니 정말 금으로 칠한 거대한 저택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 주인이 용병 사이에서 어떠한 위상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방 안. 금발에 금색 수염을 기른 기골이 장대하고 거친 삶을 산 듯 선이 굵은 중년인이 목욕 가운을 입은 채 온더록스에 금빛 술을 쪼르륵 따르고 있었다.
버윅 엔 듀엘(Berwick N Dueell) 47년산 스페셜 에디션(Edition).
없어서 못 구한다는, 어지간한 왕실에서도 정말 반갑거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야 꺼낼까 말까 한다는, 오뮬레 지방에서 1년에 채 한 통이 간신히 나오는 명주를 거칠게 들이켰다.
그 남자는 독한 양주를 들이켰으면서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 액체를 손등으로 닦으며 하아 한숨을 쉬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라만...죽었는가?”
가운 사이로 비치는 수많은 흉터를 지닌 남자.
용병들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Legend of Legend).
어느 때부터 모든 금을 탐하기 시작한 금귀(??).
공식 네임 마군(??), 마사크레의 회장, 호벨 골디언은 과거를 되새김했다.
먼 과거 중립지대에서 주워온 두 꼬맹이. 굳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은 하지 않았다. 그저 어리면 어린 대로 쓸만한 구석이 있어서 데려온 것이었기에.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 자란 둘은 호벨의 예상을 벗어났다. 한 명은 랭커로서 팀을 이끌었고, 하나는 마사크레라는 용병기업의 커다란 기둥이 되었으니까.
“로먼 그놈이 죽고 얼마 안 있어서 가다니 너희 두 형제는 죽음조차 함께 하는군.”
하지만 그 둘 모두 채 1년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죽었다.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외곽차원에서.
“피해가 크군.”
공식 의뢰가 아니었던 만큼 용병기업으로서의 이름값에는 문제가 없었다. 지킬 명예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명예도 버렸기에.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한(??).”
“이대로 넘길 수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회장님.”
호벨의 건너편에 서 있는, 어깨 너머로 길게 기른 꽁지머리를 한 미형의 남자. 라만이 호벨의 오른팔이었다면 그는 호벨의 왼팔로 알려진 마사크레 부회장이었다.
“라만이 죽었다.”
빈 술잔을 새로 채우며 호벨은 금색으로 빛나는 눈을 번뜩이며 가한을 쳐다봤다.
“녀석의 실력은 네놈도 알고 있을 텐데?”
“회장님 용병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돈이지. 지금 감히 이 나 호벨 골디언에게 그것을 묻는가 가한?”
쿠구궁...
안 그래도 심란한데 거기에 더해 자존심을 긁는 부회장의 말에 호벨의 기세가 저택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법 한다는 각성자들도 똥오줌을 지릴 기세에도 가한은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그럼 용병기업에 아니 정확히는 저희 기업 직원들의 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아십니까?”
“......”
“소속감과 자존심, 그리고 명예입니다.”
마사크레에 들어올 정도의 실력자라면 어디를 들어가도 밥 벌어먹을 실력이 된다는 뜻. 생계의 고민에서 벗어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이상의 것을 원하게 된다.
그리고 전설이라고 불리는 용병인 호벨 골디언 아래에서 일한다는 건 그 다른 것들을 충족시켜준다. 실제로도 일을 가리지 않고 받는 마사크레를 뒤에서 욕하는 자들은 많지만, 그 앞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회장님과 마찬가지로 마사크레 직원들의 존경과 선망 그리고 경의의 대상인 존재가 죽었지요.”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회사 내부에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는, 마사크레의 위기에만 등장하는 최고의 해결사 라만 몬드릴이 죽었다.
지금 당장은 마사크레 고위직들의 생사를 알기 위해 심장에 박은 문장이 사라진 걸로 호벨과 가한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곧 위에서 아래로 서서히 의문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전무이사 라만 몬드릴은 어디로 갔는가 하고 말이다.
“배신이라고 조작하기에도 여의치 않습니다.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니 복수를 해야 합니다.”
“그 지구라는 곳에 라만을 죽일 정도의 실력자가 있는데도 말인가? 전부 파멸할지도 모르는데도?”
“우린 적이 많습니다. 회장님.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결국 마사크레는 파멸합니다.”
자신의 오른팔이 잘렸는데도 가만히 외면하는 자는 강함을 떠나 병신 취급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가한은 마사크레의 지독한 행보에 원한을 가진 자들이 그 빈틈을 노릴 거라고 판단했다.
“설마...잃는 게 두려우신 겁니까? 그 호벨 골디언이?”
“허허! 많이 컸구나 가한. 감히 나를 도발하기도 하고 말이야.”
가한이 한 생각은 호벨 또한 당연히 한 생각들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가한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거기까지 나를 도발했으니 네 나름 상책을 준비해왔겠지?”
호벨이 기대에 응답하지 못하면 좋지 못한 꼴을 당할 거라는 듯 야수와 같은 포악한 웃음을 지었지만, 가한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아보니 그 지구. 저희만 노리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
“호오? 그 차원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놓은 것이더냐? 실종된 베렌듀크의 애송이 후계자 말고도 거기를 노리는 놈들이 있다고?”
“예.”
“누구냐?”
“직접 들어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설마 내 집 주변을 서성이는 저 짜증 나는 놈들이냐?”
호벨은 나중에 직접 나가서 화풀이 겸 쳐 죽이려고 했던 익숙하면서도 기분 나쁜 기운들에 인상을 찌푸렸다.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용병기업의 회장이라도 저놈들은 그다지 엮이고 싶지 않은 종류의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저 역겨운 놈들이라니 그 지구라는 차원도 운이 코볼트 좆같은 곳이구나.”
“어떻게...데려올까요?”
“쯧...그래 데려와라.”
라만이 죽었다. 그렇다면 호벨 자신이라도 절대 방심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는 뜻.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야 했다.
“오랜만에 역겨운 빌런새끼들 면상이나 한번 보자.”
그것이 설령 빌런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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