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하이랭커(3)
* * *
빛은 물리법칙의 극한에 존재하는 힘. 그 끝에는 차원과 시간조차 개입하고, 완전히 상반된 영역에는 공허(??)가 존재한다.
전기는 그 빛과 관련된 마법 계파나 사이킥 메뉴얼 중 가장 공격적이면서 사납고 빠르며 불규칙하다. 통제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불태우는, 그야말로 양날의 검과 같은 힘이란 소리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그 정점에 가까운 남자가 존재하고 있다.
파지지직!!
보이지 않는, 인지조차 불허하는 수십 수백의 전격의 광선들이 유천을 향해 내려찍어온다.
끄드득...
그것을 오로지 압도적인 힘으로 공간을 비틀어 밖으로 흘리는 유천의 모습은 마치 천둥을 막는 피뢰침 같았다.
‘어디냐?’
화명안(火??), 거대한 컨테이너들과 크레인들이 타들어 가고 부서지는 광경 사이로 유천은 황금빛 눈을 한 채 재빠르게 위치를 바꾸는 라만의 힘을 관측했다.
‘찾았다!’
무릎을 굽히고 땅을 박찰 시간은 없다. 그렇기에 유천은 엄지발가락의 힘만으로 놈이 포착된 곳으로 날아들었다. 녀석을 눈으로 관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안력을 뛰어넘어 힘의 흐름을 관측하는 화명안에 의존해 그곳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콰아아앙!
“뭣?!”
타격감이 없다. 정면에 보이는 거라고는 풍압에 휩쓸려 날아다니는 콘크리트와 철의 파편들뿐.
“역시 눈으로 보는 게 아니군. 힘을 관측하는 건가?”
“씨발...”
뒤에서 들려오는 삭막한 음성, 거기에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힘의 울림에 유천은 이것이 함정이었음을 깨닫고는 뒤로 돌며 손을 내저었다.
“느리다.”
라만은 유천의 손을 피해 상체를 숙이고 허리와 하체를 회전시켜 아래에서 위로 창을 그었다.
뇌명창 16무류(??) 1무 3선(?) 시궤(??)
촤아악
“크윽!”
유천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음에도 왼쪽 상단에 있던 라만이 손에 쥔 블루 스케일은 오른쪽 하단에 와 있었다. 분명 휘둘러졌음에도 창의 궤적은 보이지 않는다.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그 궤적은 시간마저 비틀어버리기에.
‘그래도 분명히 막았는데 말이지...’
애초에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허나 찰나의 힘의 유동을 읽고 전방의 공간을 잡아서 뒤틀었다. 하지만 하나로 집중된 전력은 그 뒤틀린 공간마저 뚫고 유천의 상체를 베었다.
‘피...’
유천이 몸에 새겨진, 파지직 튀어 오르는 전류의 궤적을 손으로 훑자. 옅게나마 피가 묻어났다.
‘처음...’
스스로의 힘 탓에 자해에 가까운 상처를 입은 게 아닌, 타인의 공격으로 인해 입은 최초의 경험은 유천에게는 낯설기만 한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말도 안 되는군...”
그러나 그런 상념을 느낀 건 유천뿐 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같은 존재들의 전투는 며칠 밤낮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일순간에 끝이 날 수도 있다.
그리고 라만은 전투 초반부에 내지른 최신속의 일격을 유천이 막지 못했을 때 이걸로 끝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몸에 창날이 닿기 전에는 말이다.
“뭐냐...? 네놈의 그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몸뚱이는...?”
피부를 뚫고 근육에 창날이 닿았을 때, 느껴진 반발력. 이 정도의 공격으로는 벨 수 없다는, 그 일순간의 판단으로 창의 궤도를 비틀지 않았다면, 베인 유천보다 자신의 팔이 박살 날 뻔했다는 사실에 라만은 조용히 경악했다.
“더럽게 빠르군.”
“그런 너는 더럽게 단단하구나.”
“붙잡을 수 없다면...! 공간 채로 짓눌러주마!”
저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게 공간을 한정시킨다.
유천은 화명안으로 관측한 힘의 축을 붙잡아 그물 당기듯 잡아당겼다.
“큭!”
“죽어라!”
유천이 그물에 붙잡힌 물고기 같이 딸려오는 라만을 향해 왼쪽 주먹을 내지르려는 찰나.
“잊었나? 이곳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곧바로 자신의 라만을 돕기 위해 달려드는 마사크레의 아홉 명의 랭커들이 유천을 공격했다.
콰가가가강!!
치명적인 공격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관절부위들을 집중해서 타격 당하자 미약하지만 유천의 몸이 흐트러졌다.
“이 새끼들이!”
한 번이면 충분하다. 이 귀찮은 벌레들을 죽이는 건. 그렇게 랭커들부터 죽이기 위해 왼손의 주먹을 뻗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신경을 팔리면 어떻게 하나?”
“뭐?!”
찰나의 흐트러짐을 놓치지 않고, 자신을 붙잡은 힘의 흐름을 풀어헤친 라만이 상체를 땅에 가까이 붙인 채 유천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철컥
블루 스케일 2형(?) 블루 네일(Blue Nail)
넓은 마름모꼴의 창이 순식간에 분해 압축되어 얇고 뾰족한 원뿔모양 말뚝의 형태가 되었다.
파지지직!!
전성(??) 16중첩.
동시에 청색을 띠던 전기가 창극에 압축되어 백색을 띠기 시작한다.
뇌명창 1무 1선 뇌흉(雪?)
블루 스케일 전용 융합기(?)
라만식(?) 개(?) 흉천이신(??理?),
일순간에 이루어진, 마치 과정을 건너뛰고 만들어진 것만 같은 파멸적인 백색의 일선(一?)이 아무런 소리 없이 내질러졌다.
보이지 않는다.
인식되지 않는다.
전의 공격이 단순히 보이지 않는 ‘빛과 같은’ 빠르기였다면, 이 유천의 목을 향해 오로지 일점을 노리는 백색은 그야말로 빛이었다.
그렇기에 막을 수도, 피할 수도, 흘릴 수도 없다.
피잉!!
“흐읍!”
하지만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려오고 창극은 유천의 어깨를 관통했다.
“무슨...!”
아까 유천이 경악했다면 이번에는 라만이 놀랄 차례. 라만은 세상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았을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벌렸다.
“시간선을 비틀었다고?!”
유천은 생각했다. 막을 수 있는 찰나조차 없다면, 시간을 만들면 된다고. 그렇게 오로지 밖의 세상에서 관측하는 화명안에 의지해 중력의 결을 붙잡고 당겨 시간선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만들어진 찰나, 유천은 상체를 뒤틀고 어깨를 들어 올렸다.
“씨발 아프네?”
유천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고 사납게 웃었다.
‘못 막았으면...죽었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죽일 수도 있다는 말. 그렇다면 심장이 뛰는 이유 또한 죽음의 공포 때문일까?
‘아니. 그건 아니다.’
유천은 이 고조된 감정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고,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나도 미쳤군...이게 재밌다니...’
외줄타기 같은 생사의 간극 사이를 걷는 흥분감.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밀리고 있다는 분노.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뺏을 수 있는 눈앞의 적을 먹어치운다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짐승 같은 희열.
그것들이 한 줌조차 안 되는 공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난 물러서지 않는다.’
유천은 미친놈처럼 입꼬리를 올린 채, 왼쪽 어깨를 관통당한 상태 그대로 한발을 앞으로 내밀고 라만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큭!”
공세에 앞서는 라만이었지만 비상식적인 싸움을 이끌어가는 유천의 행태에 그는 오히려 얼굴을 구기고 재빨리 창을 뽑고 뒤로 물러났다.
파가가각!
직격은 아니었지만 유천의 주먹으로부터 나온 풍압과 파동에 항시 펼쳐둔 몸 주위의 자기장이 경련하듯 흔들리자 라만은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유천은 그런 라만의 모습에서 조금의 위안도 얻지 못했다.
‘이걸로는 안 돼. 부족하다.’
자신이 아무리 빨라도 빛처럼 움직이는 라만을 붙잡는 건 쉽지 않다. 거기에 주변에서 때를 기다리며 수족처럼 움직이는 수하 랭커들 까지. 둘 중 하나를 완전히 배제할 방법이 없다면 라만을 붙잡을 수 없다.
‘거기에 그것뿐이 아니지. 놈은 초일류 초능력자이면서, 뛰어난 사냥꾼이다.’
라만은 초능에만 기대는 어중이떠중이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흩뿌리는 전기와 부하들을 수단 삼아 시선을 분산시킨 후, 틈을 노리고 예리하고 빠르게 들어오는 저 창질이 더욱 문제였다.
단 두 번에 불과했지만, 자신의 초능인 전기와 융합한 라만의 창술은 유천의 목숨줄을 노리기에 충분했으니까.
강력한 광범위의 공격에 전기를 타고 기척 없이 빠르게 이동하는 회피기, 실낱같은 틈을 노리는 풍부한 경험, 수적 우위를 이용하는 데에 한 점 망설임도 가지지 않는 마음가짐, 거기에 어지간한 창술사들에 밀리지 않는 뛰어난 무위까지.
‘사기네 시발...’
유천은 이 이기적인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서, 처음으로 상대에게 불합리하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놈의 부하들부터 죽인다.’
놈의 부하들만 없다면 라만을 붙잡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유천은 손안으로 파동을 응집시킨 후 사방으로 터뜨렸다.
파아아아앙!
유천은 으깨지고 비틀리며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철근들과 컨테이너 사이로 라만의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어딜!”
라만 또한 유천의 의도를 깨닫고 그를 뒤쫓아 앞을 막듯 창을 휘둘렀다.
“비켜!”
이번에는 라만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기에 유천은 그 방향으로 요새 부수기의 묘리를 담은 파동을 회축(回?)시켜 일점으로 내질렀다.
“이제 전부 파악했다!”
하지만 라만은 하이랭커. 즉 세기의 천재다. 그는 그렇게 외치며 회전하는, 송곳처럼 압축된 파동의 덩어리를 향해 역방향으로 창을 돌리며 창극을 찔러 넣었다. 그와 동시에 상체부터 발끝까지 몸을 돌리며 창극에 집중된 힘을 흩어버린 후 유천에게 돌려보냈다.
“이런 미친!”
콰아아앙!
고스란히 자신의 힘을 받은 유천은 그대로 컨테이너와 콘크리트를 부수고 나아가 땅에 처박혔다.
“씨발!”
쉴 틈이 없다. 먼지 위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상치 않은 힘의 유동을 느낀 유천은 곧장 일어섰다.
“이것도 막아 보아라!”
라만의 외침과 함께 먼지를 가르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대검.
처음 변형시킨 말뚝같이 얇고 뾰족했던 외형은 사라지고, 성인 남성의 세배 크기의 파지직 소리를 내는 푸른 대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블루 스케일 3형(?) 드래곤 슬레이어.
뇌명창 4무 2선 일휘(一?).
블루 스케일 전용 융합기 천룡지승(????).
아까와 같은 압도적인 빠름은 없었지만, 공간을 짓누르는 둔중함과 모든 걸 가르는 번개의 예리함이 공존하는 모순(??)이 유천을 좌우로 가르기 위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개 같은!”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공간을 짓누르는 저 기묘한 전기의 장막을 비틀기에는 시간이 없다.
‘아니! 내가 언제는 피한 적이 있었나?!’
정답은 언제나 같다. 정면. 이 힘을, 이 몸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것은 정해진 천명이었다. 막겠다거나 피하겠다거나 하는 고민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감히 건방지게 힘으로 도전해온 도전자를 그 힘과 함께 짓눌러 으깨리라.
유천은 오른손을 바짝 세운 후 손날에 가공할 힘을 압축시킨 후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쇠 긁는 소리와 함께 쓰러져 내리던 거대한 크레인과 부둣가의 배들이 굉음과 함께 터져나갔다.
촤아악!
예리하고 깊게 베인 오른손이 거대한 힘의 충돌로 떨려왔지만, 유천은 그대로 멈추지 않고 공처럼 튕기면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로드롤러를 붙잡았다.
“이거나 처먹어라!”
거기에 충격을 받은 건 유천뿐만이 아니었다. 유천은 힘의 반동에 움찔 멈춰선 라만을 향해 붙잡은 거대한 로드롤러를 집어 던졌다.
“이 무식한 놈이!!”
고작 몇 톤에 불과한 중장비라고 해도 마치 중력을 역전한 듯 들이닥치는 고철 덩어리는 메테오와 같다. 라만은 자신이 항시 펼쳐둔 방어막인 자기장으로 저걸 막을 수 없다 판단하고,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땅을 굴렀다.
“그래 사람이라면 땅에 발을 내딛고 살아야지!”
이곳의 환경이 놈에게 유리하다면 억지로라도 그것을 바꾸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유천은 오른손으로 라만이 있는 공간을 묶고, 달려가 왼손을 내질렀다.
“이 멧돼지 같은 새끼가!”
용병으로서 품위있는 싸움을 고집하는 건 아니었지만, 하이랭커에 걸맞지 않은 이런 개싸움이 될 줄 몰랐던 라만은 자신의 주변을 묶은 힘을 파훼하기도 전에 다가온 유천을 향해 이를 갈며 대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청색 대검과 인간의 맨주먹이 순식간에 수십 차례 부딪치자, 퍼져 나간 힘이 천지를 울렸다.
“쿨럭!”
“시발 이래도 안 죽나?”
“이딴 걸로 죽을 거 같나? 그리고 이미 네놈에 대한 파악은 끝마쳤다.”
라만은 내부를 강타한 충격에 피가 섞인 침을 퉤 내뱉으며 유천을 노려봤다.
“이제 슬슬 그 무지막지한 힘에 익숙해져 가는군.”
제대로 정면에서 부딪쳤다면 아무리 라만이라도 유천의 힘을 견디지 못했을 거다. 그럼에도 저 정도의 자잘한 부상만을 입은 이유는 그의 천재성과 직관력이 그 대부분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파악이 끝났으니 남은 건 사냥뿐이지. 더 이상 네놈과 정면에서 부딪쳐 줄 이유는 없다.”
“어딜!”
파악했다지만, 그렇다고 정면에서 싸워줄 이유는 없었던 라만은 그 사이 공간을 막던 힘을 베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자 유천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라만은 그 모습을 비릿하게 웃으며 쳐다봤다.
“말했지 않았나? 나한테만 신경 쓰면 안 될 거라고.”
‘아차!’
잊고 있던 다른 랭커들을 떠올린 순간 유천의 발밑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아직 멀쩡히 남은 컨테이너, 그 중 하나가 중력마법으로 훨씬 빠르게 유천의 머리 위로 수직 낙하했다.
유천은 쿠웅땅을 울리며 떨어진 컨테이너에 어떠한 피해도 보지 않은 채 금방 찢고 나왔지만. 이미 그때는 용병 랭커들은 사방으로 흩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라만은 멀리 떨어진 곳 공중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놈은 가공할 힘과 저 특이한 눈 말고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러니 내가 주는 신호에 따라 결코 놈의 정면에 서지 말고 후방을 노려라.”
““예!””
기껏 찾은 이점을 빼앗기고, 서서히 공략당하기 시작하자 유천은 ‘젠장할...’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철컥 창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한 차례 빙글 회전시킨 후 라만은 유천을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자 그럼...맹수 사냥을 시작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