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87화 (87/116)

〈 87화 〉 하이랭커(2)

* * *

마사크레라는 용병기업이 중앙세계의 용병업계에서 커다란 입지를 차지하는 만큼. 라스트 레거시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그들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나 마사크레라는 기업이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걸 생각하면 당연히 관계 대부분은 게임 내에서 적대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리고 그 갈등과 살육의 끝에서 만나는, 수많은 플레이어의 캐릭터들을 삭제시켜온 한 남자가 이곳에 있었다.

회색머리에 칙칙하게 말라버린 파란 눈을 한 젊은 외형을 한 남자. 그 피가 흐르는 사막과 같은 눈으로 유천 자신을 담는 남자를 유천은 부둣가에 서서 쳐다봤다.

‘라만 몬드릴...’

청()의 기수(?手) 라만 몬드릴, 회장을 제외한 마사크레의 최강자, 지금보다 후이기는 하지만 두 자릿수 랭킹을 지닌 하이랭커들 중 ‘라스트 원.’과 비견되는 실력자.

‘언제나 이렇군...’

세상은 언제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유천이 이 세상으로 오고 난 이후 항상 생각한 것이었다.

그럴싸한 작전과 대계를 세우더라도 이 빌어먹을 정도로 거대한 세계관은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이변을 만들어왔다. 그저 힘, 오로지 그 강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그것으로 극복해 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럴듯한 계획을 세웠다. 어지간한 이변은 충분히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세계는 유천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불러왔다.

“네놈이 유원인가?”

“...너는 누구지?”

녀석을 알지만 아는 척할 수는 없다. 저 정도의 상대에게 그런 자잘한 정보 하나조차 넘길 수 없으니까.

“그래 맞군. 프로필에서 본 얼굴과 같아.”

라만은 혀를 차며 부하들 손에 죽어가는 회장 경영진들을 흘겨봤다.

“너 정도의 남자를 남창이라고 하다니. 중앙세계의 속성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하면서 추측성 정보를 확신했단 말이지. 한심할 정도의 쓰레기들이야. 아 이런 내가 누군지 물었던가?”

탁­

라만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유천에게 던졌다. 그리고 유천은 그걸 얌전히 받았다.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라만도 유천도 서로를 죽이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마사크레라...그럼 이들은 의뢰자들일 텐데 저래도 되나?”

“상관없다. 어차피 정상적인 의뢰도 아니었으니. 그리고 내 감이 말한다. 내가 궁금한 것들 대부분을 네가 알고 있을...”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겐가?!”

살아남은 중화연맹과 천황국의 랭커들이 말을 끊자 라만은 눈을 찌푸렸다.

“네놈은 동양그룹이 고용한 용병들 아닌가?! 어째서­!”

“...이거 실례 아직 청소가 덜 되었군.”

탁­

고통의 비명과 절규가 가득한 이곳에서 놈의 박수 소리가 선명히 울려 퍼졌다.

파지직­!!

동시에, 구름이 달과 별을 가린 지금, 하늘과 땅이 뒤집어진 듯, 지상에 시퍼런 별들이 무수히 떠오른다.

“무슨?!!”

일렉트릭볼(Electric Ball). 전기 계통 마법이나 초능력에서도 기초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힘과 그 수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도, 도망쳐!"

눈앞의 남자가 얼마나 비범한 존재인지 깨달은 그들은 경악성을 토하며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면 우선 도망갔어야지 멍청한 것들아.”

사방으로 퍼진 전기의 구체들이 선을 뻗어 별자리를 그리며 나와, 그 끝에는 항만 선착장 전체를 덮는 돔의 형태로 엮여 간다. 그리고 이 기술이 뭔지 아는 유천은 오른손으로 공간을 움켜쥐고 뒤틀었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한탄하며...죽어라.”

라만 식(?) 군중 제어기 ­ 전궁(??)

카지지지지­­!!!

청색의 궁전 내부 수천수만의 낙뢰가 내려치자 순식간에 빛으로 둘러싸 져 평범한 자들은 시야를 잃고 청력을 잃었으며 최후에는 목숨도 잃었다.

­­­­­­!!

그리고 그 평범한 자들에는 랭커들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자들에는 유천이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참혹하기 그지없군.’

유천은 시야를 가리는 빛의 장막을 뚫고 이 전류의 폭풍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번개의 굉음에 집어삼켜 져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마도공학의 산물인 마도구들이 폭주해 터져나가는 소리도, 고압 전류로 차량들이 폭발하는 소리도, 근육과 뼈 핏줄이 터져나가는 인간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절규조차 말이다.

“흠...이제 됐군.”

아무런 기색도 전조도 없었다.

이 자리에 유천을 포함해 라만과 그 휘하의 부하들 말고 살아 숨 쉬는 자들이 없게 되자 라만은 빛과 같이 번개를 회수했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러웠던 공간이 고요해졌지만,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기고 말라비틀어진 시체들과 진한 이온 향이 피어오르는 이곳은 현세에 내린 지옥을 연상하게 했다.

“그럼 시끄러운 쓰레기들을 모조리 치웠으니 이제 대화를 나눠볼까?”

소리조차 없이 자신의 앞으로 거리를 좁히고 다가온 라만을 유천은 가만히 쳐다봤다.

‘과연 전기 계통 초능력자인가?’

아니 전기계통의 능력자라서가 아니다. 녀석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소도시 하나를 몰살시킬 전류의 폭풍을 시간이 단절된 듯 회수한 것도, 유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할 속도로 다가온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기교가 아니다. 누구보다 전기를 이해하고 그 개념에 가까이 다가간 라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 일방적으로 공격해놓고 할 말이 아니지 않나?”

“공격? 무슨 말을 하는 겐가?”

라만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같은 자들에게 이런 건 인사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

그래 이게 하이랭커다. 살육의 땅에서 그 정점에 도달한 괴물들. 일부 지역에서는 신으로도 추앙받는 절대자들. 자신이 지금까지 드잡이질을 했던, 시작점에 올랐다는 자격을 부여받은 랭커와는 그 격이 다르다.

‘그리고 앞으로 나와 발토가 진짜로 싸워나가야 할 자들.’

“우리가 그런 잡소리를 한 관계도 아니고,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지. 로먼이라고 아나?”

“로먼이라...”

라만, 로먼 이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건 내 착각일까?

‘한번 떠봐야겠군.’

“그게 누군지 모르겠군. 그런데 너와 무슨 관계지?”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온 형제다.”

‘과연 그런 건가...’

이제 이해가 갔다. 랭커와 그에 비견될 만한 자들로 이루어진 팀이 마사크레 내부에서도 꽤 주요한 전력이지만, 그게 이 라만이 올 정도의 사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형제라면...이해가 간다.

“복수인가?”

“복수라...맞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뜨뜻미지근한 건 아니야.”

“그럼 너 정도나 되는 놈이 왜 직접 온 거지?”

“의무이기 때문이다. 나와 로먼은 어렸을 때 죽게 된다면 꼭 서로의 복수를 이뤄주자고 했었지. 그게 비록 치기 어린 시절의 일이지만...맹약임은 분명해. 그 이후는 말할 필요 없을 테지?”

“과연...심령이 엮여있나?”

랭커들 중에 괴팍한 자들이 많다고 하지만 하이랭커와는 비교할 수는 없다. 하이랭커의 대부분은 사람이 지녀야 할 무언가가 결여된 존재들이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나머지를 버려나가는 구도자들.

아마 라만은 로먼을 거슬려했을 거다. 고작 어렸을 때의 맹약 하나에 저렇게 메여있을 정도니. 그러나 저리도 메여있을 정도로 로먼이 소중한 형제라는 의미가 된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런 눈빛으로 보는데 모를 수가 있나?’

뜨뜻미지근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한 것치고는, 라만의 식어버린 눈은 유천이 알아챌 정도로 점점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자 이제 말해라. 너 유원은 로먼을 알고 있는가?”

“흠...글쎄...?”

유천은 주변을 둘러봤다. 하늘을 가린 구름, 짠 내를 풍기는 바다, 근처 노심시설로부터 부산 전체로 흘러드는 마력을 변환시킨 전류까지. 라만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이었지만 유천은 씨익 웃었다.

“내가 그런 버러지 새끼 하나하나 기억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 않아서 말이다.”

위대한 하이랭커.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인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제대로 된 적수. 오히려 고맙다. 그것뿐인가? 약해진 맹수의 목줄을 물어뜯는 건 당연하다. 이제 유천의 미래에 남은 적 중에서 그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높은 확률로 마사크레가 될 것이다.

피해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상정한 것 이상으로 시설들이 부서지겠지만, 전투의 규모를 확인한 엘리스가 주요시설들의 기동을 정지할 것이니까.

“흐...흐하하하하하­­!!”

라만은 유천의 말에 온몸으로 전류를 뿜어대며 미친 듯이 웃는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의념은 결코 달가운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흘러나오는 녀석의 의념에서는 전기와 같이 외견의 차가움 아래에 숨겨진 뜨거우면서도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유천은 자신이 비틀어버린 공간의 막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목을 우둑 좌우로 꺾었다.

이제 둘에게 대화는 필요 없었다. 둘이 소망하는 건 오로지 단 하나 이 자리에 단 하나만이 서 있는 것.

뚝­

웃음소리가 놈의 전기와 같이 일순간에 걷혀간다. 시퍼런 전기를 몸에 두른 라만에게서 오로지 시뻘겋게 타들어 가는 눈동자만이 보였다.

“시원하게 말해줘서 아주 고마워.”

철컥­!

라만이 푸른색의 방패처럼 넓게 생긴 창을 아공간에서 꺼냈다.

‘역시 가지고 있었나?’

블루 스케일(Blue Scale). 기다란 마름모꼴로 생긴, 수없이 교차하는 푸른 전기가 흐르는 겁공(??)급 마도구. 아르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저걸 만든 장인조차 대단했지만, 그 이상으로 들어간 재료가 말이 안 된다.

‘드래곤의 비늘...’

“사연은 궁금하지 않다. 그러니...”

파지직...!!

창조주가 탄생시킨 최초의 생물 중 하나인 드래곤, 그 존재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오로지 전기계통의 능력자, 그것도 하이랭커를 사용자로 가정한 시동무기가 시린 빛을 발하며 현현한다.

“이곳에서 죽여주마.”

라만의 그 말을 끝으로 세상은 푸른색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

“헉...!헉...!”

그때 도갑수는 해안가를 벗어나 컨테이너 사이를 질주하며 도망치고 있었다.

“빌어 처먹을...!!!”

강함이 모든 걸 지배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깨달은 도갑수는 힘에 집착했다. 재능도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질투했다. 랭커라 불리는 자들을. 이 나라에서 자신 또래면서도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도달한 이만성과 이도경을 증오했다.

자신의 특별함과는 차원이 다른 빛들이 그들에게 머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등진 이 뒤에 등장한 두 괴물에 비하면, 그들이 지닌 빛도 바래진다.

발토의 내부이사 유원.

마사크레의 전무이사 라만.

운 좋게 손에 넣은 풍로(風?)로 랭커 수준에 도달했을 때 세상을 얻은 줄 알았으나, 숨겨둔 존재감을 발하기 시작하는 이 둘은 도갑수의 추악한 질투조차 짓눌러 으깨버렸다.

“젠장 할­!! 이런 개 좆 같은!!!”

세상을 잠식하기 시작하는 푸른 빛 그리고 그 안에서 요동치며 뒤틀고 으깨는 힘의 결집이 그 범위를 넓히며 서서히 다가온다. 오랜 삶을 살았기에 알 수 있다. 저건 어떻게든 닿은 랭커라는 경지조차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라는 걸.

동시에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것이 하이랭커라고 불리는 천외천의 존재들이라는 걸.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다!!!”

언젠가는 닿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 경지에. 그렇기에 친구조차 배신해서 길드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저 이 나라에 안주하기를 선택한 친구를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그가, 특별한 존재로 태어난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자신보다 빛나는 그를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추하게 살아남아, 지금 이 자리에까지 닿았다. 그렇게 친구의 무덤 앞에서 자신이 옳았음을 읊으며 침이나 뱉어주려고 했는데...

“나는 이렇게 도망 다니기 위해 살아간 게 아니란 말이다!!”

죽음의 공포 이전에 자신이 목도한, 진정으로 경계를 넘은 자들의 편린에 절망이 마음을 잠식한다.

그래서 저 파멸의 형상이 어느 범위를 넘어 다가오지 않음에도 도갑수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달렸다.

카가각­­!!

그러나 필사적으로 질주하는 그의 무념조차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도갑수의 앞길에 날카로운 바람이 들이닥쳐 선을 그었다.

‘이건 또 뭐냐?!’

이곳을 벗어날 출구 앞에서 자신을 가로막는 바람은 랭커에 오른 도갑수 자신이라도 경시할 수 없었기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 근원지를 핏발 솟은 눈으로 노려봤다.

“멈추세요오...”

감미로운 목소리에 비현실적인 분홍빛 머리를 한 여자. 도갑수 또한 알고 있는 자였다.

“엘리스 파셀...”

양하연과 함께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두 명의 여성 각성자 중 하나. 그리고... 자신의 또래인 이만성과 이도경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랭커에 오른 여자.

옛 버릇은 버릴 수 없다는 듯 생사의 갈림길에서 벗어나자마자 추악한 질투가 다시 치솟는다. 저 흠 없이 빛나는 재능을 더럽히고 싶다. 저 아름다움에 자신의 추악함을 칠해 자신이 있는 바닥에 떨어뜨리고 싶다.

“어째서 당신이 지금 그것도 부산에 있는 것입니까?”

“...그걸 도갑수 당신이 알 필요가 있습니까...?”

“허허...저는 해원의 길드장입니다. 당연히 알아야지요.”

도갑수는 무해하고 인자한 늙은이를 연기하며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재능은 비교도 안 되지만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다르다. 비록 나중에는 그 모든 걸 이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금방 추월할지라도 지금은 아니다.

‘난처해하고 있다.’

그녀가 이곳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뒤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재해가 벌어지고 있는 곳을 떨리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엘리스 파셀 이곳은 지금 당신이 있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거기에 당신에게도 보이겠지만...뒤에서 굉장히 위험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요...”

‘나는 도달할 수 없다.’

도갑수는 입을 다문 채 자신을 냉정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의 새하얀 다리에, 그 위로 풍만한 흉부에 눈길이 갔다. 한 번 치솟은 생존 욕구가 번식 욕을 자극한다.

‘그러나 내가 낳은 자식이라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저 경지에.’

엘리스의 새하얀 다리 사이에 숨겨진 비고를 백탁으로 더럽히고자 하는 욕망을 자신만의 대계로 감추며 서서히 힘을 끌어올렸다. 걸릴 걱정은 없었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가 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풍로와 거기에 ‘토굴의 가호’까지 합쳐진 은밀성은 바람을 다루는 화이트 일족이라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니까.

“그러니 일단은 제가 아는 비처로 가시죠. 나중에 모든 걸 알려 드린 뒤 때에 맞춰 서울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여자는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 이틀 뒤에 한국에 와야 할 그녀가 어째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공식적인 이유로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처는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있으며 누구도 자신에게 엘리스 파셀의 실종에 대해 추궁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여자는 평생 빛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

‘아이는 그래 고아원에서 입양했다는 말이면 충분하겠어.’

아이의 업적은 부모의 영광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재능 있는 아이를 알아보고 입양해 키운 것만으로도 세상은 자신을 위대한 교육자로 칭송할 것이다. 그러면 힘이 아니더라도 권력을, 영광을 취할 수 있다!

이제 고작 다섯 발자국.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어리다. 자신이 고개 숙이고 들어온다고 해도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다니.

도갑수는 고개 숙인 채 비릿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 귀하신 몸이 상하면 부산의 대표길드장으로서 면목이...”

“시끄러워요오...”

“예...?”

도갑수가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경멸 어린 눈빛을 한 엘리스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숨기려면 제대로 숨기던가. 그런 추악한 욕망. 제가 평상시에 얼마나 많이 겪는지 알았다면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오...”

“그게 무...”

촤아악­!

“커억­!”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기 전. 느닷없이 나타난 예리하게 재단된 바람이, 억지로 도달한 랭커 수준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는 방식으로 도갑수의 목을 갈랐다.

“끄르륵...어, 어떻게...?”

“그딴 허술한 바람. 그렇게 추잡하면서, 재능의 편린이라고는 일말도 보이지 않는 형식과 힘으로 억지로 이어 붙여놓고 화이트의 자식인 제게 숨기려고 했습니까...?”

‘재능! 또 그 빌어먹을 재능이라고?!!’

도갑수는 목의 절반이 끊어져 선혈을 폭포 쏟듯 쏟으며 엘리스를 노려봤다.

“바람이 지녀야 할 자유로움을 억지로 짓눌러서 밖에 다루지 못하는 당신은 바람과 함께할 자격이 없습니다...거기에 악취까지...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훤히 보이는 군요오...”

“끅..끄르륵...! 이,이이...개 같은 년이...!!”

“이만 죽으세요오...”

엘리스는 도갑수의 유언이나 저주조차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그대로 목을 잘라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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