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81화 (81/116)

〈 81화 〉 변화(10)

* * *

‘저건 뭐야?’

유천은 피눈물을 흘리는 경하라는 여자와 안경은 어디다 뒀는지 엉망이 된 몰골을 한 이들의 팀장으로 보이는 남자를 삐뚜름하게 쳐다봤다.

‘어떻게 움직일 수 있지?’

유천은 몸이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둘을 보고 눈을 좁혔다.

유천의 힘은 지금 호텔을 비롯한 이곳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일정 경지를 넘은 각성자들이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저 둘도 당연히 거기에 포함되어있었다. 유천이 이곳에서 움직일 수 있게 허락한 자는 동료인 양하연과 그리고 목이 붙잡힌 이 병신 같은 여자 단 둘뿐이다.

유천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허...이것 봐라?”

유천은 기가 막힌다는 듯 유경하를 노려봤다.

화명안으로 관측되는 이 공간 전체의 마나를 뒤틀고 있는 유천의 힘이 유일하게 그녀와 민정수만은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피하는 게 아니다.’

반사된 빛만을 받아들이는 안력을 넘어 또 다른 세상을 보는 화명안은 저 현상이 단순히 흘려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인식했다. 개념의 영역에 속한 이 힘은 고작 심상의 발현에도 닿지 못한 저 정도 수준의 연놈이 흘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과연 특수한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거군?’

놀랍지만 경악하지는 않다. 드물지만 존재했으니까. 경지가 아닌 특수한 무언가에 훨씬 깊은 심층에 닿을 자격을 지닌 이레귤러들이.

“찾아갈 수고를 덜었어.”

그러니까 꼭 살려서 전력으로 부릴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래 봤자 그의 기준에서는 하찮은 수준이었으니. 유천은 반쯤 기어서 자신의 앞에 도달한 두 남녀를 무심히 내려다봤다.

“허억...허억...”

“끄어어어...”

“겨,경하야...선배...”

김민경은 그 둘을 애절함과 미안함, 후회 등의 감정을 담아 쳐다봤다.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본다면 한번쯤은 용서를 고려할지 몰랐지만... 이미 여러 가지를 내려놓고 초월의 길을 걷기 시작한 유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굳이 왔으니 거기서 기다려라. 너희는 이 멍청한 것과 저 뒤의 시건방진 둘을 죽인 다음이다.”

“커억­!”

“아...!”

“뭐냐”

유경하는 김민경을 죽이려고 아귀에 힘을 주는 유천을 향해 기어와 바지를 붙잡았다. 그녀의 몰골은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과 팔다리가 땅에 긁히고 찢겨나가 피범벅이었다.

“호오...”

하지만 피딱지 사이로 보이는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에 유천은 호기심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지껄여봐 무슨 소리를 할지 궁금하네.”

“......”

‘어떻게...어떻게 하지...’

유경하는 이 냉혹한 절대자의 눈에 서린 단호한 의지를 엿봤다. 두려움에 떠는 민경이나 땅을 헤집으며 몸을 뒤트는 민호, 그리고 정신을 잃은 강우 선배까지. 아마 자신의 가족과 다름없는 저들을 살려달라고 빈다고 해도 코웃음 한 번 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시간을 끌어야 해...’

이 존재에게서 자신들을 구해줄 누군가 나타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이라도 알아야 했다. 그래야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으니까.

“미, 민경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그리고 민정수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질 수 있는 책임이라면 뭐든지...”

“아니 너희는 못 진다.”

“커억­!”

유천은 김민경의 모가지를 비틀어 쥔 채 몸을 세웠다.

“이 버러지 같은 년이 감히 내게 남창이라고 했지. 그것도 나름 이 나라 상류층이라는 것들 앞에서 말이야.”

“......”

“너도 나름 이 바닥에서 굴러봤으면 이해할 테지? 이런 거 하나하나 봐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이 바보 같은 기집애가...!’

민정수를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저 둘은 폭주하는 민경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 이유는 또 뭐고?

“물론 억울하겠지. 안타깝기는 해. 진심이야. 허나 나는 사소한 원한 따위를 남길 생각이 없어. 딱히 살려둘 메리트도 없고 말이야. 그러니 얌전히 가라.”

“잠시만요!”

유경하가 또다시 자신을 막자 유천은 인상을 썼다.

“......두 번째야. 한 번만 더 쓰잘데기 없는 이유로 막으면 너희부터다.”

“메, 메리트! 메리트가 있다면 살려주시는 건가요?”

“그래서?”

메리트라고 했다. 지나가듯 말한 것에 불과하지만, 분명 그 뜻은 죽이는 것보다 낫다면 살려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긴 말. 그리고 유경하 자신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 이걸로 설득해야 해!’

“제, 제가!”

“네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웃기는군. 내가 그걸 모르겠나?”

“......”

유천 본인이 강한 만큼 쓸 만하다 여기는 기준 또한 지구에서는 아득한 경지다. 고작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는 특별한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잠재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최소한의 선에도 도달하지 못한 수준의 특별함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카렌, 아니 적어도 티보치나 정도는 되어야지.’

다양한 고위주술을 다루는 티보치나의 능력은 어지간한 랭커 이상으로 유용하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네...?”

“너와 네 친구들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건 너만이 할 수 있는 거고 말이지.”

“뭐, 뭘 하면 될까요?!”

유천은 자신의 말에 절망했다가 희망을 가졌다가 하는 이 여자의 모습이 우습다 여기며 어느새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김민경을 휙 집어 던졌다. 그리고 이 공간을 짓누르던 유천의 힘이 사라졌다.

“미, 민경아!”

“이봐 포커스. 이쪽에 집중해.”

억지로 멈춰져 있던 세상이 돌아오고 몸의 자유가 돌아온 고위 각성자들의 격한 호흡음과 갑자기 풀려버린 긴장감에 풀썩 쓰러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뭔지 모르겠는데, 너는 내 힘을 아슬아슬하게라도 막고 있었어. 그건 분명 신기해. 그러니 나랑 게임 한판 하자고.”

“게임이요...?”

“그래 게임. 저 위에 있는 버러지들이 보이나?”

유천의 말에 유경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이질적 존재를 향한 두려움.

압도적인 강자에 대한 경외와 선망.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초조함까지.

이 나라에서 날고 기는 자들이 단 한 명에게 향한다고 하기에는 과분한 감정들이었지만, 발토의 유일한 내부이사 유원이라는 존재의 격을 아는 유경하 입장에서는 오히려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이 자리에서는 너희는 죽어야 해. 안 그러면 저것들은 뒤에서 딴 짓거리를 할 테지. 아 나도 까불어도 한번은 살 수 있겠구나 하면서 말이야. 근데 유일하게 죽지 않는 방법이 있어.”

“그게 무슨...”

유천은 호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어딘가로 문자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단 한번, 나는 네게 딱 한 번만 공격할 거다. 만약 네가 거기서 살아난다면 넌 능력을 스스로 입증한 게 된다. 나에게도 그리고 저들에게도.”

“......”

“기적적으로 살아난다고 해도 너희는 나에게 귀속될 테지만...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하지만 기회를 주는 만큼 패널티도 있어야 정당하겠지. 만약 네가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면...네 동료들은 중앙세계의 방식으로 처분할 거다.”

유경하는 중앙세계의 방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흘러내린 피로 잘 보이지 않는 시야로도 보이는 저 잔인한 미소를 보면 그 끝이 죽음만도 못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받아들일 거면 당사자들 모두를 모아야겠지. 생을 걸어볼 마음을 먹었다면 네 길드장을 불러라.”

‘어떻게 해야 할까...?’

유경하는 생각했다. 김민경이 일을 저질렀지만, 이번 일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혈족을 알 수 없는 그녀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들을 죽음의 위기에 빠뜨렸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모든 걸 걸어서라도 살려야 해...’

동료들이, 친구들이 무언가 소리치지만 들리지 않았다. 이 신과 같은 남자가 막고 있는 거겠지. 이런 잔인한 선택을 오롯이 자신에게만 맡기는 모습에 두려움이 치솟았지만 결심한 그녀의 손은 바지 주머니를 향했다.

*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호숫가. 그 고요하기 그지없는 곳에서 30여 분간 유천이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을 때, 그가 티보치나를 통해 불러낸 카렌과 엘테론 그리고 유경하가 불러낸 화룡길드장 강승훈이 나타났다.

“그럼 배우도, 관객도 전부 모였군.”

유천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면서 발토 정규 복을 입은 채 꼿꼿이 서 있는 카렌과 엘테론을 지나 사정을 듣고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승훈에게로 향했다.

“잘 선택했어.”

“...무엇을 말이오?”

“혼자 온 거 말이야. 너희 길드원들을 끌고 왔다면 기회고 뭐고 죄다 죽여 버리려 했거든.”

“......”

고개를 푹 숙이는 그를 지나친 유천은 몸을 수습한 유경하 앞에 섰다.

“그래 준비는 됐어?”

“그 전에...중앙세계의 방식이란 건 뭐죠?”

유경하는 저 꺼림칙한 걸 먼저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아 그거? 별거 없어.”

지구에는 노예제도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불법이지만 중앙세계는 아니었다. 13 위원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 운영되는 노예상인도 버젓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네가 죽으면 나머지는 내가 데려온 저 둘이 중앙세계로 가서 팔아넘길 거야.”

“무, 무슨...”

“꽤나 다양한 용도로 쓰일 거다. 죽지 못해 살아갈 것이고.”

“......”

그 말에 유경하의 숨통이 막혀왔다. 정말 이걸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내가 죽으면...내 동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 거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온갖 끔찍한 상상과 자신이 고른 선택의 무게가 점차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포기해도 된다. 나야 네 힘에 흥미를 느껴서 제안한 것뿐. 너희가 죽든 아니면 살려서 써먹든 상관없으니.”

그녀는 인간의 목숨이 저런 가벼운 말 한마디에 결정된다는 사실에 올라온 토악질을 억지로 삼켰다.

“......할게요.”

유천의 힘에 가로막혀 동료들이 듣지 못해서 인지 아니면 이후 모든 업을 짊어질 자신이 있던 건지 유경하는 일생일대의 용기를 냈다.

“그래? 알겠다. 그럼.”

꾸드득...

시작부터 전력을 발휘한 유경하의 무지갯빛 눈동자에 유천의 주먹을 중심으로 공간이 블랙홀처럼 모여드는 것이 비쳤다.

터무니없는 힘의 집중. 닿는 순간 먼지로 화하리라.

‘닿지 않으면 돼...’

이곳까지 오면서 새롭게 개화한 이 안력에 대해 유경하는 조금이나마 파악했다. 경계 밖의 세상을 보는 걸 넘어 개입할 수 있는 이 힘은 궁극적으로 운명조차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인과를 조율하는 신과 같은 아득할 정도로 머나먼 경지. 지금은 엿볼 수조차 없는 허상과 같다. 하지만 원인을 손댈 수는 없어도 확률과 결과에는 개입할 수 있다.

‘저 힘이 ‘닿는다’를 ‘닿지 않는다’로 바꿔야 해.’

저 무지막지한 힘에 개입하기 위해, 유경하는 터질 듯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떨리는 눈으로 유천의 주먹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막아봐라.”

‘온다!’

무덤덤한 유천의 말과 함께 주먹이 흔들렸다. 소리를 앞서는 공격을 그녀가 볼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보이는 무한한 색으로 이루어진 세상 속 송곳처럼 다가오는 무형무색의 무언가는 느껴진다.

그리고 경로 앞에 세상에서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관념의 장벽을 세운다.

‘멈춰!’

그러나 유천의 힘 또한 개념의 영역. 그리고 둘 사이의 차이는 우연히 다가온 깨달음이란 기적으로 메꿀 수 없다.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안 돼!!’

유경하는 자신에게만 들리는 장벽들이 부서져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말이다.

‘아...’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찰나의 내기는 막이 내리고.

콰아아아아앙­­!!

들이닥친 천재지변에 호수를 둘러싼 숲은 붕괴되었고 그 아름다운 경관은 흙먼지로 뒤덮였다.

“겨, 경하야!!!”

“미, 미친...”

“저게 말이 돼...?”

유천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절규와 경악음을 들으며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설마 그런 방식으로 살아남을 줄은 나도 몰랐네.”

“뭐...?”

당연히 유경하가 죽었을 거라 여겼던 화룡길드 팀원 중 이강우는 주저앉아 절규하다가 들려온 말에 무심코 묻고는 그녀가 서 있던 장소를 쳐다봤다.

그리고 가라앉는 먼지 사이로 서 있는 자그마한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으어어엉­!”

“겨, 경하야 괜찮은 거냐?!”

그들은 저런 무지막지한 공격을 정면에서 받고도 그녀가 살아남았다는 것에 놀라움과 기쁨, 안도감을 안고 달려갔다.

“어...? 경하야...?”

“너...?”

“에헤헤...다행이에요. 우리 이걸로 살 수 있어요...”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너...”

그러나 거기서 본 유경하의 모습에 그들은 멍하니 입을 닫았다. 유천은 그 광경을 잠시 본 후 자신이 데려온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렌, 엘테론”

““예””

“약속은 지켜야지. 저놈들 데려가서 훈련시켜.”

“강도는 어디까지로 설정하면 되겠습니까?”

“최대로 해.”

“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괜찮아. 저 여자가 있는 이상 쉽게 안 죽을 테니 뭐...따라다닐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 손해배상과 관련된 일은 나중에 내가 지연씨나 티보치나에게 직접 말할 테니 저들은 너희가 데리고 가서 훈련시켜. 죽어도 책임은 묻지 않을 테니.”

엘테론의 말을 무시한 채 유천은 양하연을 데리고 그대로 호텔을 떠났다.

어어어엉­­!!

겨, 경하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테론은 슬픔 섞인 괴음이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거기서 보인 광경에 이채를 띄웠다.

“과연...이런 말이셨군...”

“헤헤...저는 괜찮아요...전부 살았잖아요?”

“하지만...하지만­­!! 너 눈이­­!!”

광인처럼 울부짖는 화룡길드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웃는 단발머리의 여자. 유경하의 두 눈에는... 보여야 할 동공이 사라져 공허하게 비어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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