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75화 (75/116)

〈 75화 〉 변화(4)

* * *

그것은 어떠한 기척도 소리도 없이, 원래 이 자리에 있었다는 듯 갑자기 존재했다.

어미가 자식을 말리듯 부드럽게 다독이는 말투였지만 유라는 입을 열지 못하고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으며 숨도 쉬지 못했다.

뚜벅뚜벅...

거대한 존재감이나 내리누르는 힘은 없다. 아니 그걸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괴수의 시체를 밟는 구두 소리는 선명히 유라의 귀에 들려온다.

‘뭐야...이건...?’

그 기이한 괴리감에 유라는 발끝부터 칙칙한 감정이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타고 올라 몸을 잠식함을 느꼈다.

그녀가 누구인가? 하이랭커 천궁 유라. 중앙세계를 뒤집어 탈탈 털어도 그녀만 한 강자를 보기 힘들다. 하지만 보기 힘들다는 거지 없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깨닫는다. 이 뒤에 있는 존재인지.

실제로 아르벨라는 유라 자신도 몇 번 본적 없는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지?’

생각한다. 이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괴물이 누구인지.

스으윽...스으윽...

구두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치마를 끄는 소리. 기다란 드레스. 하지만 이런 더러운 시체 위에서도 거기에 어떠한 질척임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주문이 각인된 드레스. 일개 하위계급은 볼 수도 없는 고급품이다.

상대는 여성, 그것도 귀족계급의 여성이다. 그리고 떠올렸다. 아르벨라를 긴장하게 수 있는 자들은 하이랭커 그중에서도 TOP 10이라고 불리는 열 명 정도뿐이다. 여성은 거기서도 단 두 명이라는 걸. 그 중 한 명은 자신의 주군.

‘설마...’

“머리를 열심히 굴리시네요. 귀엽게.”

뒤에 있던 무언가는 어느새 천천히 다가와 유라의 어깨를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훑었다.

“두려워 말아요. 전 당신 같은 아름다운 레이디를 해칠 생각이 없답니다.”

여전히 모성애를 느끼게 할 자상한 목소리였지만 유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몸을 떨었다. 그럴 수밖에. 몰랐다면 모를까. 상대가 누군지 알아버렸다. 그리고 납득했다. 어떻게 이 자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고,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지.

차원과 차원 사이의 간격을 베었다.

기척과 존재감 자체를 베었다.

아르벨라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려는 유라의 마음, 의지. 그 자체를 베었다.

“적당히 해 할망구.”

으적...

아르벨라가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소리 아닌 소리가 들려오며 무언가 깨져나가고 유라는 빼앗긴 몸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허억...허억...”

털썩 주저앉은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녀는 감히 엿볼 수도 없는 경지였지만, 방금 어떤 종류의 대결이 펼쳐졌는지 알 수는 있었다. 심상을 넘어선 개념의 충돌.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분명 이 세상은 무언가 뒤틀렸을 것이다.

‘미,미쳤어...’

엿볼 수도 없지만, 봐서도 안 된다. 고작 유라가 지닌 정신세계로 저걸 목도했다가는 그대로 폐인이 되어버리리라.

“할망구라니 여전히 격에 안 맞게 입이 천박한 건 여전하군요. 당신.”

“그럼 씨발 300년 산 여자를 할망구라고 하지 뭐라고 하리?”

“엘프들에게 300년은 젊은 나이에 불과하지요. 저는 그들보다 오래 살 테니까. 아직 청춘이랍니다.”

“지랄하시네. 아주.”

유라는 자신을 지나쳐 아르벨라의 맞은편에 앉는 여인을 떨리는 눈으로 쳐다봤다. 황금을 수놓은 듯한 금색의 풍성한 머리, 마헬제국 귀족을 상징하는 화려한 선이 새겨진 푸른 색 드레스.

거기에 검집도 없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날이 빠지고 녹슨 장검은 부조화 그 자체였지만 그녀의 존재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귀하신 검궁(??)주께서 이곳에는 무슨 볼일이지?”

이제 확실해 졌다. 본 건 처음이지만 마헬 제국의 여자 귀족 중 이만한 존재는 오로지 하나뿐.

“카트레나 론 다브디엘라”

랭킹 4위 중천(中?)의 검 카트레나 론 다브디엘라. 제국 연합의 수장이자 13 위원회 8석인 마헬 제국의 황제조차 고개 숙이는 다브디엘라 대공 가의 주인.

그리고 모든 소드마스터들의 성역(??)이라고 불리는 검궁의 주인이 머리색과 같은 황금빛 눈을 부드럽게 접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지구로 갈 수 없습니다.”

자애로운 미소와는 달리 단호한 어조에 아르벨라는 표정을 구겼다.

“당신이 뭔데?”

“이건 저 한 명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천칭(??)도 백선(白?)도 그리고...더원(The One)도 동의한 내용이지요.”

“뭐...?”

랭킹 3위 천칭의 수호자, 시간의 탑주 자이에르바.

랭킹 2위 백선 선무(??) 여학천.

그리고...

랭킹 1위 더원 중앙위원회 최고위원장 아드릭센 사르게노코프.

그 오래된 괴물들이 고작 그런 외곽차원을 방문하는 걸 왜 막는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이 신분을 드러내놓고 갈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늙은 것들이 단체로 노망이 났나?’

“아 오해가 있으면 안 되지요. 당신이 지구로 가는 걸 경계한 게 아닙니다. 정확히는 우리, TOP 5 중 누구도 지구라는 차원에 개입하는 걸 막기 위한 겁니다.”

카트레나는 아르벨라의 마음을 읽었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오랜 선대의 되먹지 못한 욕심과 죄악이 원죄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를 괴롭혀왔어요. 맹약과 이곳 절대 방위선은 그 원죄의 결과물이고 말이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할망구.”

“음 잠시만요. 저 레이디는 들어서는 안 되는 내용이라...”

“아니.”

쿠구구구궁...

카트레나가 공간을 잘라내어 완전한 밀폐공간을 만들어내려는 걸 읽은 아르벨라가 사납게 웃으며 살기를 내뿜자 세상이 검게 일그러지며 발아래 괴수의 시체는 녹색 피를 뿌리며 점차 으깨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그쪽이 함부로 내 영역을 침범한지라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 그러니 그냥 할 말만 지껄이고 꺼져 아니면 여기서 둘 중 하나는 죽든가 응?”

감히 허락도 받지 않고 기어들어와 놓고 뻔뻔하게 거기서도 당당히 힘을 쓰겠다? 아르벨라는 이 여자가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꼴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흐음...당신과 싸우는 것도 상당히 즐거울 거 같긴 하지만...”

죽음을 형상화한 것만 같은 검은 살기를 정면에서 받으면서도 카트레나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누구보다 강자였고 누구보다 이질적이었다.

암살자로 온 소드마스터를 손에 쥔 식칼로 목을 자른 그날부터 마헬 제국의 모두로부터 경외를 받기 시작한 것이 1년. 그리고 중앙세계의 소드마스터의 상징인 망령들이 머무는 검의 무덤을 부수고 스스로가 검의 상징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년이 걸렸다.

그 이후 전장을 떠돌며 자신을 상대할 적을 찾아다닌 수십 년의 세월 이후, 전장에는 적은커녕 자신이 모습만 드러내도 고개를 숙이는 추종자들만이 존재했다.

그 이후 도전자를 받기 위해 만든 검궁은 오히려 하나의 성지로 취급을 받으며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로 득실거렸다.

씁쓸한 마음을 숨기고자 치장하고 꾸미며 레이디로서의 취미에 몰두해봤지만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검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수백 년을 고독하게 지내던 그때. 한 여자가 나타났다. 아르벨라 반 엑시르. 스무 살의 나이 하이랭커인 위원회 1 기사단장의 두 눈을 뽑아버리는 파격적인 등장 이후 수많은 네임드 괴수와 빌런들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정점으로는 아직도 화제가 되고 있는 베렌듀크의 몰살을 완수한 후 기존 기득권을 부수고 절대자의 자리에 오른 여인.

‘정말...좋네요...’

앞에 있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를 쳐다봤다.

싸우고 싶다.

전쟁도 좋고 전투도 좋다.

그저 이 여자와 서로 심상과 개념을 부딪치며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펼치고 싶었다.

이 여자라면 자신의 광기를 받는 걸 넘어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음...그래...안 되죠. 역시 안 되는 거겠죠? 지금은 할 게 있으니까. 우선 참지요.”

카트레나는 오랜만에 숨을 쉬듯 뛰는 심장과 광기를 억누르고 웃었다.

‘참아야죠...참아야하고 말고요...’

“저는 입을 열어 나누는 대화를 좋아하지만...당신 말대로 제가 무례를 저질렀으니, 그럼 원칙대로 갈까요?”

“그래 빨리 내놓고 사라져.”

카트레나가 머리를 톡톡 두드리자 희멀건 실 같은 것이 흘러나와 아르벨라에게로 향했다.

머리로 전달된 압축된 정보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던 아르벨라는 인상을 쓴 후 고개를 휙 돌려 카트레나를 노려봤다.

“너희 미쳤군...맹약을...”

“쉿­ 거기까지. 이건 일단 우리 다섯만의 비밀이에요. 아직 확실히 정해진 계획도 아니고요.”

뒤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유라가 들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이건 뭐야? 지구에 있다는 이질의 재능...? 이거는 정확한 거야?”

“백선이 한 말이니까 뭐...”

“그럼 정확하겠네.”

그 영감탱이가 관측하지 않은 것은 있을지 몰라도 관측할 수 없는 건 없을 테니까.

‘혹시 이 이질의 재능을 지닌 자가 그분이 아닐까...?’

아르벨라 자신과 카트레나가 지닌, 한 영역에서 절대적인 존재가 될 것임을 천명 받는, 재능을 넘어선 무언가.

그것이 결코 흔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카트레나가 지구에 있다고 말한 그 존재가 자신의 신이지 않을까 추측했다.

‘잘하면...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겠어.’

아르벨라는 새어나오려는 설렘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에는 꽤 많은 세력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그리고 누군지 모를 그자는 그것들을 집어삼키며 우리가 있는 영역까지 성장하겠죠. 저나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전사의 성장은 자신과 타인의 피 값으로 이루어진다. 아르벨라와 카트레나가 태생적인 괴물이라도 그 강함에 경험이 차지하는 부분은 결코 적지 않다.

“거기에...저희는 기대하고 있어요.”

카트레나의 황금빛 눈 깊숙한 곳에서 붉은 살의가 피어오른다.

“쥐새끼처럼 숨어버린 원죄와 맹약의 근원들. 모든 죄를 우리에게 떠넘기고 뒤에서 여전히 개수작을 부리는 쓰레기들이 드러나기를 말이죠.”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거야 할매.”

“당신은 알고 계신가요? 이 중앙세계는 멸망이 예정된 세상이라는 걸? 그리고 맹약은 그걸 미루기 위한 임시조치에 불과하죠.”

“그게...무슨 소리야?”

“후후...당신에게는 그자들이 접근해 오지 않았나 보군요.”

“헛소리하지 말고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멸망이 예정되어 있다니... 회귀 전 자신의 신을 찾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은 아르벨라는 그저 외차원 괴수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 세상이 멸망한 걸로 알고 있었다. 허나 거기에는 그녀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나 보다.

‘쯧...회귀할 줄 알았다면...’

“그놈들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제가 어렸을 때 자신들의 일원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 그리고 당연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의 가입을 거부하자 그때부터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 당시 살아있던 제 부모님과 동생들이 모조리 죽었다는 것 말고는요.”

“......”

카트레나의 담담한 말투에서는 의무에 가까운 증오가 서려 있었다.

“눈이 뒤집힌 제가 놈들을 추적해가며 하나하나 부수자 감당이 안 됐는지 어느 순간부터 싹 사라지더군요. 그야말로 귀신처럼 흔적 하나 안 남기고 말이죠.”

그리고 그날을 기점으로 카트레나라는 이름의 검귀가 중앙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머나먼 과거를 아련히 회상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이 세상에 내린 뿌린 어둠은 일개 빌런 조직하고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깊어요. 그러니 아르벨라양도 조심하도록 하세요. 놈들은 분명 당신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놈들의 이름은?”

그렇게 떡밥만 뿌리고 가면 되나?

카트레나는 돌아가려는 발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음...저도 이름은 몰랐죠.”

“과거형이네?”

“네 지금은 알고 있으니까요. 더원 그자가 말해주더라고요. 자신이 위원회를 만든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놈들을 죽이는 거라고 하면서 말이죠. 이번 계획도 결국 그것의 일환이에요.”

‘더원이라...’

아르벨라는 눈앞의 카트레나를 포함해 TOP 4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회귀 전 그녀가 본격적으로 절대자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이미 그들은 행방불명이 된 상태였으니까.

‘지금은 대강 예상이 가네.’

아마 그때도 지금 카트레나가 전한 계획처럼 자기들끼리 맹약을 깨고 외차원으로 향했을 거다. 그리고 그건 지금 말하려는 집단과도 관계가 있겠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

"네 건방지게도 스스로 없어진 창조주를 대신해 신이 되겠다는 어리석은 욕심을 부린 버러지들의 이름이에요.”

역시나 전생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저를 포함한 네 명은 놈들의 오래된 그늘을 지우고 진정한 세상으로 나아가기로 했어요. 그러니...”

카트레나는 아르벨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정도의 존재가 손을 내민다는 건 그리 가벼운 의미가 담긴 행위는 아니었다.

“당신도 저희와 함께 해줬으면 좋겠어요.”

“......”

‘어쩔까?’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아르벨라 그녀도 맹약의 진의를 깨달았을 때 그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실상은 더욱 더러운 사정이 끼어있었고 거기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전에 확인해야 한다.’

“그건 지구에 갔다 와서 생각해볼게.”

“...지금까지 제 말은 뭐로 들었던 걸까요?”

“가서 조용히 그 자가 누군지 알아보고만 올게. 당신들은 위치가 위치인 만큼 움직이지 못하잖아. 반면에 나는 시간이 남게 되었고 거기에 당신도 궁금하지 않아? 그가 누군지?”

“흠...”

카트레나의 제안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르벨라는 그전에 자신의 신을 확인해야 했다. 자신과 같은 이질의 재능을 지닌 존재가 정말로 그분인지 맞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를.

“저도 그자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뭐...당신이 얌전히 다녀오기만 한다면야...”

“그치?”

“대신 난동을 피우시면 안 됩니다. 이번 계획은 저희의 오랜 소망에서 비롯된 일 그걸 망치면...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아요?”

지나가듯 가볍게 말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가는 아무리 아르벨라라도 죽게 될 거라는 건 그녀도 카트레나도 알고 있었다.

“뭐...기억해둘게.”

“그럼 그런 걸로 하고 세 분에게는 제가 말씀드리죠. 제 이름으로 당신을 보장하는 만큼...아시죠?”

“그래 빚은 꼭 갚을게.”

“네 제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시기를 바라며...불청객인 저는 이만 떠나도록 하죠.”

‘이제 곧...황홀할 정도의 전쟁이 벌어지겠어요.’

그리고 오래된 원한 또한 갚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상념 하며 걷는 카트레나의 등을 가만히 쳐다보던 아르벨라가 입을 열었다.

“이봐 할망구.”

“네?”

“싸우고 싶으면 나중에 시간 날 때 찾아와.”

“......”

“숨긴다고 애쓰던데 그래 봤자 다 보여. 아까도 이 제안만 아니었으면 칼 휘두르려고 했지?”

아무리 억눌렀다고 하지만 카트레나의 눈에 서린 광기를 비슷한 경지에 있는 아르벨라가 그것도 회귀자인 그녀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나도 나보다 위 순위 랭커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하고 싶기도 하니까.”

전생에서는 카트레나와 붙어보지 못했다. 그전에 사라졌으니. 그러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절대자로 있던 때 이전 시대의 정점의 실력을.

“나중에 시간이랑 장소만 맞춰보자고 어차피 당신도 검궁에서 심심할 거...”

“하하하하하하하!!!”

카가가가각­­­!!!

카트레나는 지금까지 레이디로서 가꿔진 모습이 가짜라는 듯 예리한 샛노란 마력을 내뿜어 하늘을 덮은 흑(?)을 몰아내며 광인처럼 웃었다.

“아하하하...당신은 참 재밌어요.”

너무나도 오랜만이다. 이런 대등한 입장에서의 도전제안은. 그리고 자신을 읽을 수 있는, 나이 차가 별로 안 나는(?) 상대의 존재는 오래도록 식어있던 그녀의 가슴을 데웠다.

“그래요. 시간을 내도록 하죠. 그러니 꼭 싸우도록 해요.”

모든 일이 끝난 후 자신이 살아있다면 그때는 손에 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일개 검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그날이 오면... 그때 서로 죽여보도록 해요.’

천형처럼 짊어진 광기는 죽음 이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카트레나는 그 말을 끝으로 손으로 휘둘렀고, 서걱 소리와 함께 절대 방위선에서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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