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74화 (74/116)

〈 74화 〉 변화(3)

* * *

약육강식인 중앙세계.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말하자면 누구나 첫손에 꼽는 절대방위선(?????). 그곳은 33개의 거대 차원들과 이 순간에도 폭발하는 수백 개의 던전들이 얽혀 실시간으로 차원지도가 변화한다.

무슨 말이냐면,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한 초목이 한 발짝 잘못 내디디면 용암대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그렇기에 리브레스의 중앙탑에 존재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상정보체이자, 아티팩트와 고대의 마도 기술이 합쳐져 만들어진 ‘아크리온’의 능력의 3할을 오로지 절대방위선의 차원지도 작성에 할애할 정도.

허나 거기서도 좌표가 바뀌지 않는 15개의 구역이 있다. 변하지 않기에 전진기지로 삼기 최적의 구역인 이곳들은 항상 괴수들과의 끝없는 고지전이 치러지는 절대방위선에서도 지옥이라 할 만한 곳이었다.

그 불변위(不??) 구역 중 한 곳. 얼마 전까지 괴수들이 차지하고 있던 12구역은 본래 수많은 산과 밀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쿠구구구궁...

허나 초록빛 땅은 그 색을 잃고 있었다. 드높은 수많은 산은 모조리 깎여나가고 땅에 새겨진 상흔들은 붉은 용암을 토해냈다.

빛마저 두려워 떠나고, 점차 검게 칠해지며 부서져 가는 세상 속 유일하게 존재하는 산맥 꼭대기에서 붉은 머리를 한 경국지색(?國之色)의 미인이 반쯤 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붉은 눈은 마치 별을 담은 것 같이 반짝이며 멸망의 흔적들을 쏟아내는 하늘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이름 높은 화가들이 하나의 명화(名?)로 담고 싶은 장면이었다.

격렬한 전투로 온몸이 흙먼지투성이인 건 오히려 영감의 조미료. 짜증스러운 그러면서도 일견 초탈한 것처럼 보이는 눈은 모습은 마치 세상을 지키지 못한 용사를 보는 듯했다.

“이런 개 시부랄 좆 같은 새끼!! 존나게 안 뒤지네!!”

하지만 저 걸쭉한 입담을 듣는 순간 그들은 떠올렸던 상(?)을 잃고 주화입마에 들게 되리라.

“주군. 제발...”

“아! 왜 또 이년아!”

등에 커다란 활을 메고 있는 여인, 붉은 머리의 여인과 같이 온몸이 엉망이 된 천궁(??) 유라는 죽은 눈으로 자신의 주군을 쳐다봤다.

‘저,저 천박한 입만이라도 제발 다물었으면...!!’

자신의 주군인 무신(??) 아르벨라 반 엑시르. 지닌 무력이나 권력, 명예, 외모는 기인들이 넘치는 중앙세계에서도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그녀였지만, 유라는 항상 천박한 행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저것 때문에 생겨난 정적들을 떠올리는 것만 해도 비서이자 부관인 그녀 입장에서는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아니 몸마저 함부로 굴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행실이나 언행이 굴러먹은 용병 같았지만, 자신의 주군은 이상할 정도로 순결에 한해서는 요조숙녀와 같이 철저했다.

“그래서 이 새끼 이름이 뭐라고?”

아르벨라는 스윽 상체를 세워 땅을 아니.

갈기갈기 찢겨 짙은 황록색 피를 강처럼 흘리는.

산맥만한 괴수의 동체를 발로 탕탕 두드리며 유라에게 물었다.

“네임드 ‘빅대디’라고 하네요.”

“그거 네임드 정보 관리하는 놈들 누구야?”

“위원회 직속차원 리브레스 중앙관측원입니다.”

“그럼 씨발 그 새끼들 모가지를 전부 괴수 아가리에 처박아야겠네.”

아무리 녀석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고해도 달랑 사진 하나와 마력수치만 넘겨주다니.

그나마 있는 정보라고는 놈은 애벌레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덩치가 수km에 달한다는 것. 등에 솟아있는 수십 개의 팔이 공격수단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중앙관측원 놈들은 반만 맞추고 반은 틀렸다. 녀석의 지형만 한 몸뚱어리와 그 위에 솟아있는 거대한 팔들도 문제였지만 더 짜증 나는 건 그 체내에 은닉해있던 기생괴수 수십만 개체가 튀어나왔다는 거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놈들은 주둥이로 마력포를 쏴대며 네임드 빅대디의 유일한 약점이라 여겨던 대공사격을 감행했다.

그 때문에 아르벨라의 부유섬이 일부 부서지고 그녀의 개인 사병부대인 흑경의 정예들 수십이 죽거나 다쳤다.

“그 잡것들이 조사만 똑바로 했어도!!”

이따위 허술한 정보 때문에 입지 않아도 될 피해를 입은 것에 아르벨라는 분노했다.

“열 받으신 건 이해합니다만...그렇게 따지자면 최초로 책임을 지셔야 하는 건 주군 아닙니까? 그러게 왜 혼자 돌격하셨어요?”

“......”

아르벨라는 할 말이 없어 가늘게 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유라의 눈을 쓰윽 피했다.

“하아...제 눈 피하지 마시고 말씀해주시죠. 도대체 뭔데요? 본래 6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할 작전을 이렇게 보지 않아도 될 피해를 보면서까지 이틀로 시간을 단축해버린 이유를 말해달라고요.”

“아니...그러길래 나 혼자 간다니까...”

아르벨라는 계속해서 길어지는 전투에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지구에 가서 자신의 신을 만나고 싶은데. 이딴 좆같은 괴수새끼들이 자신의 앞을 막는다는 생각에 튀어나오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라고 외친 후 혼자 튀어 나간 것이다.

“주군! 정말 왜 그러세요?!”

유라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번 일 처리는 아르벨라와 어울리지 않게 허술했다. 작전도 없이 마력수치가 네임드 상위에서 최상위에 걸치는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혼자 돌격하다니. 잘못해서 그녀가 크게 다치기라도 했다가는...

‘아직 베렌듀크의 흔적도 지워지지 않았어.’

위원회의 일각이자 수천 년 용사가문의 뿌리는 깊다. 본가와 직계를 쓸어버렸다고 그 영향력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거기에 놓쳐버린 직계 중 하나, 그것도 어린 후계자, 지금은 다 컸을 후계자가 어딘지 모를 곳에서 시기를 기다리고 있을 마당에 아르벨라가 빈틈을 드러내면 안 된다.

“진짜 다 아시면서 저 답답해 뒈지는 꼴 보고 싶으세욧?!”

“어,어...? 너 맨날 나보고 험한 말 쓰지 말라고...”

아르벨라는 항상 예의 발랐던 직속비서이자 부관의 상스러운 언행에 당황했다. 전생에서도 천궁(??) 유라는 어느 때나 침착한 걸로 유명했으니까.

“지금 그게 중요해욧?!”

“......미안”

아르벨라도 알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무모하게 행동했는지 이 구역을 차지하고 있던 괴수는 가진 마력만을 보면 레전드라고 불리는 네임드와 동등한 급의 괴수.

그런데 정보조차 없는 상대를 향해 홀로 뛰어든 행동은 분명 지휘관으로서 잘못된 행동이었다. 자신의 신을 만날 생각에 이성을 잃어버렸다. 회귀 후 철저히 계획에 따라 행동했던 그녀가 감정에 따라 저지른 최초의 실수로 잃지 않아도 될 부하들을 잃었다.

아르벨라는 한순간의 실수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았기에 실수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 대응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그녀의 영민한 머리는 어떻게 해야 완벽해야 할 자신의 실수로 발생한 미묘한 균열을 봉합할지 떠올렸다.

“미안해. 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다.”

태도를 고치고 진중하게 사과했지만, 사실 그녀는 그렇게 미안하지 않았다. 전쟁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죽음이 발생하기 마련. 거기에 흑경이라는 조직 또한 아르벨라와 그녀의 신을 위한 적당한 방패막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건 유라에 대한 테스트. 흑경의 이인자인 그녀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조직의 수장이 아무리 잘못한 게 있어도 충성스러운 부하는 쓴소리를 할 수는 있어도 그 허물을 덮을줄 알아야 한다. 즉 만약 유라가 여기서 타박을 이어나간다면...

‘유라 넌 꽤 마음에 들었어. 그러니 마음에 드는 대답을 바란다.’

그녀는 회귀자. 버려야할 걸 버리는 데에 망설이지 않는다.

“하아...아르벨라님 저희는 죄송하다는 말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아르벨라가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그녀의 차갑게 식은 눈을 보지 못한 유라는 아르벨라가 위원회의 일각에 오르고 나서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이름을 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저희에게 고개를 숙이면 안 됩니다. 흑경의 누구도 그걸 바라지 않을 거고요. 오히려 이 자리에 간부급 인원이 있었다면 주군의 고개를 숙이게 한 죄로 제 목을 치려고 했을 겁니다.”

흑경은 13 위원회의 일각이기 이전에 아르벨라의 개인 친위부대이다. 거기에 간부급들은 그녀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 하나하나 모은 최정예 전투 집단이자 그녀를 위해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광신도들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유라도 포함되어있었다.

“다른 인원들은 몰라도 저는 알아요. 주군이 어디에 신경이 팔리셨는지.”

“뭘...”

“지구.”

“......”

“진짜 맞나 보네요. 정말...그런 외곽차원에 무슨 꿀을 발라놓으셨길래...”

그날, 별거 아닌 내용의 보고에 동요하는 아르벨라의 모습에 유라는 지구라는 차원을 신경 써왔다. 특이사항은 없는지 거기서도 그녀에게 해가 될 만한 건 없는지.

특별한 것들은 있었지만, 유라의 눈에 특별해 보이는 건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중앙세계에 특별한 일이 한둘이 벌어지나?

“여기요.”

“정보전송 메모리얼? 갑자기 그걸 왜?”

“제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지구에 대한 정보에요.”

“!!!”

그래서 그 모든 걸 주군인 아르벨라에게 넘겼다. 그녀에게 위험할 만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아르벨라님은 저렇게 시무룩한 모습이랑 어울리지 않아.’

그녀는 언제나 뻔뻔하고 당당 해야 하고 제멋대로여야 한다. 그녀가 저런 모습을 보일 바에는 차라리 욕을 입에 담고 다니는 게 몇 배는 나았다.

“그러니 다시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말아 주세요. 그저 다음부터는 움직이기 전에 미리 말만 해 주세요. 저희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죽음? 어차피 흑경의 모두가 약조하지 않았나?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그녀보다 먼저 명계로 가 있겠다고.

자신들을 현세의 지옥에서 구원해준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흑경(??), 검게 칠한 거울처럼 자신을 바라보지 않겠다고.

그러니 죽은 녀석들도 약조를 마친 것에 기쁘게 죽었으리라.

“그래...”

아르벨라는 유라의 마음을 읽고는 피식 웃었다. 그것은 안도에 찬웃음이었다. 마음에 든 측근을 축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고맙다. 이년아.”

“주군! 아니 제발 그 입 좀...!”

조잘조잘 아르벨라를 혼내기 시작한 유라였지만, 속내를 털어놓은 덕분일까? 그녀는 자신의 주군과 전보다 거리감이 줄어들었음을 느꼈다.

아르벨라는 항상 누구에게나 털털함에도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했으니까.

“휴우~! 속이 다 시원하네요.”

“......독한 년...”

유라는 지긋지긋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르벨라에게 싱긋 웃었다.

“자! 그럼 이제 놀러 갔다 오실까요? 지구, 가고 싶으셨잖아요?”

“그렇긴 한데...그냥 가도 되겠어?”

자신은 13위원회의 10석. 외부의 압박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 전장에서 죽은 건 위원회의 기사들이 아닌 자신의 사병집단이니 뭐라 할 건덕지도 없을 테고.

문제는 이 불변위 구역의 중요성에 맞게 쳐들어오는 괴수들 또한 하나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라는 거다. 흑경의 본대가 아닌 첨병들만으로 이곳을 지킬 수 있을지, 아르벨라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괜한 병력을 잃어 현재의 위상을 잃어선 귀찮아지지 않겠는가?

“제가 누굽니까?”

유라는 당당히 가슴을 폈다.

“주군이 홀로 돌격할 때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놨지요.”

유라는 그녀가 빅대디한테 달려들 때 6개월이 아닌 일주일 이내로 모든 것이 끝날 걸 예상하고 작전부에 이를 통보했다.

“그쪽은 뭐...머리가 깨지고 있겠지만, 어쩔 수 있습니까? 공무원이 까라면 까야지요.

”너...말이 좀 저렴해졌다?“

”이게 다 누구한테 배운 거겠습니까?“

아마 곧 10위 이하의 중앙기사단의 본대가 이곳에 올 거다. 그러면 흑경의 나머지 인원들은 그대로 인수인계하고 빠져나오면 끝난다.

“그러니 저랑 같이 놀러 나 가시죠. 6개월 통째로 놀지는 못해도 대강 3개월은 놀고먹을 수 있을 겁니다. 아! 거기 메모리얼에도 담겨있지만, 지구는 꽤 즐길 만한 문화가 풍부하더군요. 저도 무모한 주군 따라 싸우느라 삭신이 쑤시니 거기서 여독이라도 풀...”

“안 됩니다.”

그때 유라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