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체벌(3)
* * *
“그...지연씨...지연씨가 왜 맞아야.”
“그야 제가 잘못했으니까요...”
정신없이 일렁이는 눈. 만화나 애니였다면 회오리치듯 빙글빙글 돌고 있지 않을까 싶은, 그 혼돈에 찬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좆됐군...’
유천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자신이 또다시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걸 말이다.
‘뭐지? 이번에는 도대체 뭘 잘못 건든 거지?’
예전 그 대련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오해의 여지가 있었으니까.
호두호수에서의 일도...그래 이도경에게 들은 것도 있으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번에는 무슨 일로 이 폭탄 같은 여자의 뇌관에 불이 붙었단 말인가?
“그, 그러니까...저를 쫓아내지 말아 주세요...저 이제 여기가 아니면...”
‘이건 또 뭔 말이야...’
내가 뭘 했다고 이 토끼처럼 부들거리는 여자는 저런 망상을 했다는 말인가?
“아니...제가 왜 지연씨를 쫓아냅니까? 지연씨는 잘못한 게 없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유천의 진심이었다. 잘못이라면 단장이면서 싸우는 것 말고는 할 줄 모르는 자신이지. 그 역할을 대신했을 뿐인 이지연이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일도 잘 풀리게 되지 않았는가? 설령 변수가 발생한다고 해도 랭커인 양하연과 유르힘까지 있다.
최근 유천이 상대한 자들이 각 세력의 정예들이라서 그렇지. 절대 방위선을 가지 않는 이상 랭커는 그렇게 흔한 존재들이 아니다.
“저는...말도 없이 그런 일을 저질렀고...그, 그리고 단장님이 전투를 벌이면서 벌어온 공금을 멋대로 썼고요...이건 어디를 가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요!”
이지연은 불안하면서도 어딘가 애절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으로 떨리는 손으로 유천의 팔을 붙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대로 넘어가면 날개의 조직원들은 유천 자신이 아닌 이지연의 말을 더 우선할 테지. 흔히 먹혔다고 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상관있나...?’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실세를 차지한 하급자가 상급자를 개무시 할 때 일어나는 일이지.
날개의 일원들이 유천에게 고기 반죽이 되고 싶지 않은 이상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지연이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성격 또한 아니었고.
“거, 거기에 이대로 넘어가면 조직의 위상도 서지 않아요...저, 저는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해요...그, 그러니까! 자,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그런 웃음을 받을 자격이 없단 말이에요!”
‘허미...시펄...그런 거였냐...’
이제는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이지연은 지금 잘못을 저지르고도 유천이 오히려 친절히 대하자 더욱 불안한 것이었다.
그래서 쫓겨나는 게 아닌가라며 저렇게 망상이 터져버린 거겠지. 이지연의 맨탈이 유천과 관련한 부분에서만큼은 쿠크다스만도 못하다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즉, 이지연은 조직의 위상을 거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불안감의 해소 같은,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유천에게 처벌을 받고 싶어 한다는 거다.
‘그래...내키지는 않지만...앞으로도 지연씨가 안정적으로 날개를 운영하려면 그럴 필요가 있겠지. 그런데...’
“그 벌이...굳이 맞는 거여야 합니까...?”
유천은 손에 쥔 길쭉하고 큼지막한 주걱을 기괴망측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이걸로 볼기짝이라도 때리라는 건가?
무슨 성인들의 집단에서 무슨 그런 일차원적이고 유아적인 처벌이란 말인가? 아니 요즘은 부모라도 자신의 아이를 때리면서 가르치지 않는다.
“굳이 벌을 받아야 안심이 된다면 차라리...아...”
감봉이나, 면직을 떠올린 유천은 깨달았다. 이건 불가능하다는 걸.
무슨 계약서를 쓴 것이 아니었고, 날개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이지연에게 감봉은 의미가 없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그런 명목상의 처벌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면직은 안 된다. 이지연이 아니면 대신 맡을 사람은 티보치나 뿐인데, 유천은 아직 그를 믿지 못한다. 같은 맥락으로 강등도 불가능하다.
정말 때리는 것 말고는 없다고...?
유천은 고개를 내려 이지연을 쳐다봤다. 가볍다. 거기에 간신히 가슴까지 오는 키. 일반인보다는 강하겠지만,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약한 몸.
‘돌아버리겠군...’
이 토끼 같은 여자의 엉덩이를 때리는 걸 상상하니 머리가 아찔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하체가 피가 쏠림을 느꼈다. 자신의 가학심을 부추기는 여자에게 성적 흥분을 느낀 것이다.
‘안 돼 미친놈아...’
노예도 아니고 소중한 동료다. 진지하게 상대해주지도 못할망정, 그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지연씨가 제정신이 아닌 이상 나라도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 해...’
유천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지연씨...”
“네...?”
“정말 저한테 맞으시겠습니까? 이걸로 제게 맞으면 그냥 아프다로 끝나지 않을 건데요?”
다행(?)히도 권능과 공허로 유천의 육체는 약해진 상태. 거기에 힘 조절이 익숙해진 만큼 죽이지 않고 때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곤장과 다를 바 없는 대형 주걱으로 안 아프게 후려칠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건 벌이니까요...아파야하는 게 당연해요.”
“...그럼 알겠습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다.
‘그래...내가 원한 게 아니야...기어코 원한 건 지연씨다. 여기에 사심은 없어...’
유천은 그렇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괴롭게 할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지식인지 경험담인지 모를 것이 유천의 머리에 들어있었다.
‘그때였던가...?’
유천은 과거 어느 날을 떠올렸다. 그날은 일하던 가게를 일찍 닫아 같이 일하던 친한 형님과 둘이서 포차를 갔던 날이었다.
‘얌마 유천아?’
‘응? 네?’
주말이라 그런지 포차는 과도할 정도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딱 같은 테이블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술이 좀 돼서 그런지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가게 형님이 개소리를 내뱉었다.
‘너 여자 때려봤냐?’
‘형...그런 쓰레기였어요...?’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친한 형이었지만, 갑자기 저런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자 유천은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새끼야 그런 거 말고!’
술이 떡이 됐다고 해서 그 경멸에 찬 눈빛을 모르지는 않았는지 당황하며 손을 저은 후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그거 할 때 여자 때려본 적 있냐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고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왔다갔다하며 묻는 말에 유천은 더욱 인상을 구겼다.
‘아니 시발 지금 저 동정이라고 놀립니까?’
‘응? 뭐야? 크크큭...너 아다새끼였냐?’
‘진짜...뒤질 때까지 처맞아 볼래요?’
‘워워...진정하고 좀 들어봐 임마.’
유천이 테이블에 있는 술병을 말아쥐자, 양손을 내밀며 말린 후 고개를 슬쩍 앞으로 내밀고 아슬아슬하게 들릴 정도로 말했다.
‘여자들은 말이야...’
그는 안 그래도 얍삽해 보였던 눈을 더욱 좁히며 무언가를 때리는 손목스냅을 하며 웃었다.
‘크큭...이걸로 궁둥짝 처맞으면 환장한다고 병신아.’
‘...저 진짜 화냅니다...아니 그걸 할 때 맞는 걸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뭘 믿고 저런 일반화를 한단 말인가?
그는 유천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뒷목을 부여잡았다.
‘아오... 이 새끼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야! 시발 내가 자지를 걸고 장담한다고!’
유천은 그 말에 표정을 구겼다.
‘아니 썅 더럽게 진짜!’
그때부터 이어진 장장 30분간의 경험담. 쓰잘데기 없었지만, 그 형이 워낙 말을 잘해 유천은 그 내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여기서 이딴 쓸모없는 지식이 도움이 될 날이 올 줄이야...
‘거짓말은 아니었을 거다.’
유천이 복권에 당첨돼 가게를 그만두고 난 후. 오랜만에 찾아간 가게에서 사장님에게 형은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 유부녀를 꼬셔 모텔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에 남편한테 두들겨 맞고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그러니 여자 후리는 솜씨만큼은 구라가 아니었을 거다.
‘뭐라고 했지? 아! 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했었지.’
연기. 그는 SM은 서로 간의 역할극이라고 했었다. 그래야 그 역할에 몰입한다고, 고통을 괴롭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이다.
유천은 잠시 눈을 감고 서로 간의 역할을 생각해봤다.
‘우선...여기서 지연씨는 절대 을이다.’
연기는 아니지만, 역할로 따지자면 이지연은 잘못을 저질러 육체적인 벌을 받는, 가련하게 벌벌 떠는 하급자.
그렇다면 자신이 취해야 할 역할은 부하의 실수에 차갑고 냉정하게 분노해서 처벌하려는 상급자. 동시에 절대 갑임을 인지하고 비열하게 육체적인 처벌을 내리는 뱀 같은 자여야 한다.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유천의 눈에서 당혹감은 사라지고 은은하게 분노하는 시린 빛이 맴돌았다.
“이지연씨”
“으읏...네...?”
낮게 깔린 목소리. 약간의 적의마저 섞인 눈빛. 비정해 보이는 분위기까지. 갑자기 돌변한 유천의 모습에 이지연은 몸을 움츠렸다.
시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마음을 억지로 내리누른 채 주걱으로 침대를 가리켰다.
“가서 엎드리세요.”
*
“이, 이렇게 하면 되나요...?”
“어...”
유천은 냉정한 상사의 모습을 연기하는 것조차 잊고 이지연을 멍하니 쳐다봤다.
쭉 뻗어진 팔. 바짝 들어 올린 굴곡진 둔부. 그 모습은 마치 고양이가 기지개를 피는 것 같았다.
거기에 빳빳하게 정돈되어있어야 할 하얀 정장 블라우스 셔츠는 중력을 타고 골반 위까지 올라가 맨살을 보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블라우스를 단정하게 고정해줄 정장치마가 침대 밑에 떨어져 있었으니 당연하지 않나?
골반까지 올라온 검은 스타킹. 그 야릇한 둔부는 속된 말로 뒤에서 박기 딱 알맞은 각도로 유천에게 향하고 있었다.
눈이 자연스럽게 점점 그 중심으로 향했다. 실크 재질의 검은 팬티. 그리고 그 사이, 좀 더 짙은 곳에는 일자로 꾹 다문...
‘홀리 쉣...’
더 이상 쳐다봤다가는 자신이 어떻게 될 거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니...정말 벌 받고 싶어 하는 거 맞아...?’
유천은 이지연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합당한 의심이었다.
그녀가 ‘저를 혼내주세요.’라고 했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저를 따먹어 주세요.’라는 암묵적인 신호지 않나?
‘하지만 아니겠지...’
“다, 단장님? 왜 그렇게 가만히...”
불안한 음색. 순진무구한 눈빛.
저 여자는 자신의 모습이 남자에게 어떤 자극을 끼치는지 상상도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런 미인이 야동에서 볼 법한 오피스 레이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안 꼴릴 수 있을까?
“지연씨...”
최대한 연기를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네?”
“...어째서...치마를...벗으신 겁니까...?”
이지연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치마는 찢어지면 곤란하니까요...”
시발 존나게 합리적인 말이군.
스타킹이나 팬티는 찢어지면 버리고 가릴 수 있지만, 치마는 그럴 수 없다.
‘나도 벌을 받는 건가?’
이런 걸 보고도 참으라는 건 유천한테도 고문이다. 안 그래도 강렬해진 성욕은 한 번 튀어나오면 발정한 개새끼 마냥 통제가 안 된다.
지금도 뇌를 지배하려는 하반신은 당장에라도 저걸 찢어버린 후 따뜻한 고기구멍에 자신을 박아 넣어, 저 음란한 암컷에게 자신의 죄를 칭하게 하라고 있었다.
“후우...”
“단장님...?”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강간이다. 저 순진하고 아픈 아가씨에게 또 하나의 상처를 줄 수 없을뿐더러, 자신에게 딸을 맡긴 이도경을 볼 면목도 없다.
유천은 가슴 속의 짐승에게 목줄을 채운 후, 주걱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망할...신이시여...’
스타킹 너머로부터 바디워시와 여성의 페로몬이 섞인 야한 장미향이 흘러나왔다.
건강하고 좋은 암컷. 본능이 그리 평했다. 결국,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지가 우람하게 곤두섰다.
품이 큰 잠옷이 아니었다면, 이지연으로부터 사각이 아니었다면 곧바로 걸렸을 것이다.
“으읏...!”
주걱이 닿자 이지연의 엉덩이가 바르르 떨렸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이성이 꺼지기 전에 빠르게 때리고 그녀를 내보내야 했다.
“다섯 대. 딱 다섯 대로 끝내겠습니다.”
그 말에 이지연의 머리가 찰랑찰랑 좌우로 흔들렸다.
“부, 부족해요...여, 열대 맞을게요.”
‘아니 이 미친 여자가...’
내가 안 부족하단 말이다!!
‘저를 엉망진창으로 범해주세요.’라는 환청이 들렸지만 맨탈을 부여잡고 최대한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열대로 하겠습니다.”
힘이 덜 실리도록 짧게 잡은 주걱을 위로 들며 가게 형님의 경험담을 떠올렸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아래에서 위로 당기듯 때린다.’
곡선으로 때려야 힘이 분산되고, 엉덩이는 윗부분보다 아래가 지방이 두꺼우므로 적당한 아픔을 주면서도 후유증을 줄이려면 저렇게 하라고 들었다.
‘제발 이 정도로 만족해라.’
설마 정말 뼈가 부러지고 피가 터지는 그런 매질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
거기까지는 아니기를 바라며 유천은 주걱을 휘둘렀다.
찰싹!
“아읏...!!”
날카롭지만 야릇한 신음이 이지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나”
‘괜찮겠지...?’
냉정하게 말했지만, 걱정을 한 채 이지연을 살폈다.
최대한 덜 아프게 때렸다. 하지만 휘두른 사람이 유천이다. 어딘가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었다.
이지연은 얼굴을 침대에 박은 채 이불을 손이 하얘질 정도로 부여잡고 있었다.
"으으읏..."
그 신음소리에 혹시 맞은 부위가 문제가 생겼을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시발...’
마치 남성을 유혹하듯 실룩거리는 둔부.
매질로 올이 나간 스타킹.
그 사이로 보이는 팬티와 붉은 속살.
그 음란한 모습에 알 수 없는 열기가 몸 안에 차올라 자지가 더욱 단단해졌다.
“단장님...”
착각일까? 눈물을 글썽거리며 유천을 부르는 이지연의 얼굴빛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계, 계속 때려주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