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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이 마법이다-64화 (64/116)

〈 64화 〉 체벌(2)

* * *

부상을 입은 채 잠이 든 킬리언을 숙소에 눕히고, 마력 봉인구로 포박시킨 카렌과 오크 기사는 티보치나와 부하들이 데리고 지하 감옥으로 보냈다.

그 후 이지연과 단둘이 남았을 때 유천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지연씨.”

“예?”

“그... 보스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저 약간 구닥다리 같으면서도 오글거리는 보스라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럼 어떤 호칭이 좋으신지요?”

유천의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는 그녀는 차분한 안색으로 물었다.

‘호칭이라...’

호칭은 중요하다. 그 단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니까.

유천은 팔짱을 낀 채 천장을 노려봤다.

길드장은 패스 우리는 길드가 아니니까. 그러면 사장님? 아니 날개에 어울리지 않아. 그럼 대장? 이것도 아니야 용병 느낌이 나잖아.

그렇게 잠시간 고민을 한 후 그나마 적당한 단어를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그냥 단장이라고 부르시죠.”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으며 깔끔하다. 유천은 이것이 그나마 날개의 정체성에 맞는 호칭이라고 생각했다.

“네 그럼 모두에게 그렇게 부르도록 말해두겠습니다. 단장님.”

‘그럼 이건 정리가 되었네.’

중요하지만 오래도록 고민할 것은 아니었기에 쉽게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다음으로 할 이야기는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호칭은 여기까지 하고...이제 진짜 할 얘기를 해봅시다.”

유천의 입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본론에 나른한 고양이 같았던 이지연의 눈매가 움찔 떨렸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지금 당장에라도 터질 수 있는 문제라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직접 설명해 드리는 것보다 일단 직접 보시는 게 빠르실 거예요.”

“이게 뭡니까?”

이지연이 건넨 서류철 안에는 세 장의 서류가 있었다.

“오시기 전에 자잘하고 복잡한 것들은 죄다 빼고 핵심만 추려 간략히 정리한 거예요.”

사락...

이지연의 말에 유천은 세 장의 보고서에 적혀 있는 내용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요약한 내용 중에서도 중요한 것들은 형광펜으로 그어져 있었으니까.

후우...

전부 읽은 유천은 보고서를 책상에 내려놓고 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진짜 핵심은 황금새가 아니라 날개의 일원들에게 외부 신분을 부여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거네요.”

유천도 몇 번 이지연과 얘기 나눴던 주제다. 정보보호를 협회에만 맡긴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허나 적어도 2개 분기는 지나서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이번을 그 기회로 잡은 것이다.

“서울을 지켰다는 네임벨류를 관문지기들과 유르힘에게 줄 좋은 기회입니다. 거기에 적절한 신분도 쥐여줄 수 있겠지요.”

내세울 수 있는 신분은 행동의 자유를 부여한다. 그리고 한국을 넘어 중앙세계로까지 뻗어 나가려면 그것은 필수였다.

“네...플러스로 소속 길드만 있다면...더욱 완전하고요.”

“그래서 이 사설경비업체 ‘발토(Valto)’입니까?”

유천은 보고서 상단에 적혀있는 아마 새로이 창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드 이름을 손으로 두드렸다.

“네 거기에 단순히 지구의 일반 길드로 등록한 것이 아니라, 용병 길드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카르발디 군도에 소속될 수 있도록 처리했습니다.”

“그럼...확인도 어렵고 신생 길드치고는 신뢰도도 낮지 않겠네요.”

즉, 발토는 사설경비업체라지만 실상은 용병길드라는 거다. 게다가 중앙세계의 카르발디 군도에 등록되었기 때문에 지구에서 세부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지연은 관문지기들과 유르힘에게 ‘날개’가 아닌 신생 용병 길드 ‘발토’의 일원으로서 서울을 습격한 빌런들을 토벌하라고 한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하기 같아 보이지만 그들이 당당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둘은 명백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외부 경비업체를 불러들인 것은 협회가 될 거고.’

협회는 ‘서울을 습격한 빌런단체를 쓰러트린 외부 길드를 섭외한 것은 협회다.’ 라는 명분을 거부할 수 없다.

최대의 국가기관인 만큼 그들은 적이 많으니까. 그렇게 사설경비업체로 ‘발토’는 서울에 사는 모든 이들의 환영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 이번에 협회가 나한테 큰 빚을 하나 졌지.’

몽키. 해인사를 가는 길에 그 재앙과 같은 괴수를 토벌한 빚도 이번 일을 겸해서 갚으라고 하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을 거다.

‘근데...의문이란 말이야...’

곰곰이 생각하던 유천은 고개를 들어 이지연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그런데 애초에 저희가 용병 길드를 설립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용병길드 설립은 주식시장에 회사를 상장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던전 봉쇄, 괴수 토벌, 전쟁 등의 다양한 의뢰 실적이 있어야 하고, 그 실적을 들고 카르발디 군도의 지배자인 용병국가 ‘카뮨’의 행정부서에 제출한 후, 허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유천이 알기에는 우리에게는 내세울 만한 실적도, 허가를 받을 시간도 없었다.

‘아니... 한 가지 방법이 있군.’

“설마...보증을 받은 겁니까...?”

“네 여기."

기다렸다는 듯 이지연이 내민 석 장의 스크롤에는 카뮨의 상징인 사자가 그려진 국기를 바탕으로, 발토를 보증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지연 그녀가 이런 걸로 장난질을 칠 성격이 아니고, 그랬다가는 중앙세계 모든 용병의 공적이 되니 거짓은 아닐 터.

"카르발디 군도의 3개 길드 에란쉘, 가필드, 적란(赤?). 그들에게서 받아왔습니다. 그거라면 실적평가 없이 설립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이걸 이렇게 쉽게 내어줬단 말입니까...?”

TOP 100안에 드는 대형 용병길드 중 셋 이상의 인증을 받는 것.

복잡한 용병길드 설립 절차를 모조리 건너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가.’

에란쉘, 가필드 그리고 적란은 유천도 알 정도로 덩치가 큰 길드들이었다. 그들이 뭘 믿고 아무런 실적도 없는 신생 길드를 보증한단 말인가?

“거기 가장 보고서 가장 위에 적힌 길드장의 이름을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이지연의 말에 첫 번째 페이지 맨 위쪽에 적혀있는 길드장의 이름을 보고 유천은 눈을 크게 떴다.

길드장: 양하연

그 밑으로 보이는 화려한 활동 이력. 거기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스칼렛 등급...’

금속을 넘어 랭커만이 받을 수 있다는 색(色). 양하연은 그 중, 아래에서 두 번째에 속하는 스칼렛을 받은 용병이었다.

“사실 저희에게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방식의 용병 길드 설립은 막대한 돈이 들어가지만 거둬들인 베렌듀크의 재산으로 충당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름값, 즉 신뢰라는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았죠.”

항상 목숨을 거는 용병들에게 신뢰는 돈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오로지 시간과 업적으로만 이룩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하연씨께서 이름을 빌려 주셨습니다. 에란쉘, 가필드, 적란 이 세 길드는 그 이름을 보고 보증해 준 것이고요.”

“......”

‘스칼렛 등급만을 본 것은 아닐 거다.’

스칼렛 등급도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저런 보증을 받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분명 그녀는 이들과 여러 번 의뢰를 함께한 경험이 있었겠지. 거기서 분명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아...”

‘너무 큰 것을 받았어...’

신뢰. 그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 알고 있는 유천은 가슴이 묵직해짐을 느껴 한숨을 내뱉었다.

양하연. 그녀에게 지금까지 받은 것도 언젠가 이자까지 쳐서 돌려주고 싶었는데. 이것까지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

‘아니다 있군...’

며칠 전 베렌듀크를 없애버린 날 그때 분명 그녀는 자신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어 보였다.

‘아마...그거겠지...’

양하연과 관련된 줄거리를 진행하면 나오는 필수적으로 나오는 가족의 원수, 흑막.

그 스토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그 원수가 누군지 모를 테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어.’

유천은 그들과 관련된 정보를 떠올리고 머릿속으로 계산한 후 판단을 내렸다.

‘대략...이자까지 해서 갚을 수 있겠네.’

양하연 덕분에 중앙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시점이 크면 1년 짧으면 6개월의 시간이 줄었다.

이정도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녀의 원수의 팔다리를 찢어 바치는 것은 해줄 수 있었다.

“단둘이서 대화를 나눠봐야겠군...”

“네?”

“아, 아닙니다.”

이제 모든 것의 전말을 안 유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지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살포시 웃었다.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연씨.”

이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란 말인가? 혼자서 해낸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걸 통솔한 것은 그녀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경할 만한 여자였다.

“네...그게 무슨...”

허나 그런 유천의 생각은 모른 채,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움찔거리는 이지연의 파란 눈빛이 요동치고 있었다.

“저...처벌하시는 게 아닌가요...”

그녀는 유천이 오기 전까지 어떠한 모욕도, 처벌도 받을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녀의 사고로는 그것이 당연했다. 결과가 어떻든 자신이 유천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이런 일을 진행한 것은 사실이니까.

“하하!! 농담도 심하십니다. 제가 왜 지연씨를 처벌합니까?”

“아니...그...”

손을 꼼지락거리며 우물쭈물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이지연의 모습이 의아했지만 유천은 그저 ‘자신이 화를 낼까 봐. 걱정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지...'

유천 자신이었다면 지지부진했을 일을 단박에 처리했다.

그게 비록 자신의 허가를 받지 않은 일이라지만, 조직을 말아먹는 게 아닌 이상 보고를 안 한다고 실망하거나 화를 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조직관리는 그녀가 대부분 책임지고 있었으니까. 그 정도의 재량은 얼마든지 인정해줄 생각이었다.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시죠. 보시다시피...제 꼴이 말이 아닌지라...”

유천은 민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꼴을 내려다봤다.

며칠 동안 밖에서 노숙하며 괴수들을 쳐 죽여, 그 꼴은 영 말이 아니었다.

이지연 그녀가 마법으로 피는 지워줬다고 해도, 야상 사이에서 올라오는 채취는 정말...말로 표현하기도 싫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지연씨도 서울에 간 인원들로부터 연락을 받을 사람만 남겨두고 좀 쉬세요.”

지금은 저녁. 안건수가 황금새 본관 건물에 없을, 이 시간에 잔당들이 거사를 치르지는 않을 거다. 적어도 오늘 하루 정도는 푹 쉬어도 되겠지.

유천은 자신의 말에도 아무 말 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지연을 보지 못한 채 등을 돌려 숙소로 돌아갔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

유천이 떠나고 홀로 남은 이지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초조하게 서 있는 그녀의 손은 다한증이라도 걸린 마냥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어째서...”

그녀는 유천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입장의 차이에서 나오는 괴리였다.

그녀에게는 한낱 회식을 위한 공금 사용도 윗사람에게 승인을 받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그런데 자신은 그와 비교도 안 되는 자금을 써서 허가도 없이 대형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생각해...’

이지연은 유천의 의도를 알기 위해 이곳에서 그가 했던 말들을 낱낱이 떠올려봤다

‘여기까지는 문제없어...’

업무와 관련된 대화는 별 특별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원활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말들에 있었다.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연씨.’

‘하하!! 농담도 심하십니다. 제가 왜 지연씨를 처벌합니까?’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시죠. 보시다시피...제 꼴이 말이 아닌지라...’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지연씨도 서울에 간 인원들로부터 연락을 받을 사람만 남겨두고 좀 쉬세요.'

“아...”

유천이 별 의미도 없이 했던 말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재조립되었고, 그의 따뜻했던 미소는 싸늘하게 바뀌었다.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연씨. 더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하하!! 농담도 심하십니다. 제가 왜 지연씨를 처벌합니까? 어차피 떠나실 분인데.

하아...이제 피곤하군요.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당신 후임자에게 들어보도록 하죠.

그럼 ... 대리인만 두고 이만 돌아가서 쉬세요. 아! 내일부터 안 나오셔도 됩니다.

“싫어...”

이어갈수록 고조되는 망상에 이지연의 얇고 길쭉한 예쁜 손이 갈 길을 잃은 것 마냥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쫓겨나기 싫어...”

지금까지의 이지적인 모습은 어디 갔는지 그녀는 길 잃은 아이처럼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 같은 행동을 해서인지, 불현듯 어렸을 적 자신이 잘못했을 때 어떻게 혼이 났는지를 떠올렸다.

“그, 그래...그거야...”

그리고 적당한 물건이 있던 장소를 떠올린 이지연은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나갔다.

이성을 잃어가는 그녀의 행동은 그렇게, 점점 극단적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

“윽...젠장. 역시 멀쩡하지는 않았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유천은 몸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통증에 인상을 썼다.

최대한 티는 안 냈지만, 권능과 공허의 폭주로 유천 몸 안쪽에는 제법 유의미한 상처가 나 있었다.

“내일이면 낫겠지.”

하지만 별걱정은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이 지닌 시간회귀 급 육체 복원력을 떠올린다면 이건 그저 근육통에 불과했다.

몸을 닦은 후 욱신거리고 나른한 몸을 억지로 이끌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유천은 그대로 침대에 풀썩 몸을 뉘었다.

“흐으아아...쓰벌 존나 피곤해...”

하루 만에 신수를 만나 다시없을 기연과 고통을 동시에 얻고, 흉성의 랭커 놈들이 쳐들어왔다더니 거기에 아는 얼굴이 있고, 또 무슨 황금새니 베렌듀크의 잔당이니...

판타지, 액션, 느와르 장르의 영화들을 하루 만에 동시에 소화하는 느낌이랄까...

약간의 긴장마저 사라진 몸이 이완되며 눈이 점차 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체의 리듬에 맞춰 정신도 같이 몽롱해졌다.

‘이제 좀 편하게 잘 수...’

콰앙!

“으어억­! 뭐야?!”

잠이 들려는 찰나 누군가 문을 부수듯이 들어왔다.

‘어떤 새끼가...!’

오랜만에 제대로 취하는 숙면을 방해받아 화가 난 유천은 들어온 자가 누구든 곱게 보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 지연씨...?”

그것도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바뀌는 법. 불과 30분 전에 마주하고 있던 여자가 문 앞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자, 유천은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다!’

“무슨 일입니까?!”

유천은 정신을 바짝 차린 후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향했다.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 이성적이고 차분한 이지연이 저렇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이, 이거요!”

“네...?”

이지연이 마력으로 변화된 예쁜 파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품에 안고 있던 길쭉한 물건을 자신에게 건넸다.

'이건...뭐지?'

유천은 뜬금없이 받은 물건을 이리저리 돌리며 관찰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비장하게 건네기에 무슨 대단한 물건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물건에 맞는 이름은 유천이 알기에는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주걱...?”

그것도 일반 가정집이 아닌, 학교나 군대의 주방에서나 쓰일 것 같은 대형 주걱이었다.

‘이건...도대체 무슨 의미지...? 평소에 하는 일도 없으니 주방에서 밥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그...이걸 왜 제게...?”

주시나요?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그녀가 물이 고여 반짝이는 눈으로 유천의 덥석 붙잡고는 상상도 못한, 아니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해왔다.

“그, 그걸로 저를 때려주세요!”

“......네?”

이 가끔 상상도 못한 행동을 하는 여자의 말에, 잠시 주걱과 그녀를 돌아가며 쳐다본 유천은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오늘 찍을 영화 장르가 하나 더 남은 것 같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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