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63화 (63/116)

〈 63화 〉 체벌

* * *

토이박스의 결계 안, 유천은 카렌을 제외한 흉성의 맴버 둘을 상대로 공허와 엮인 불을 실험하고 있었다.

“실패했군...”

그러나 오크를 상대로 암막을 제거하는 것에 성공해 두 번째 또한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용인족을 상대로 한 실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뭐가 문제지...?’

유천은 권능의 컨트롤 실패로 서서히 육체가 붕괴되고 있는 용인족 멜데이아를 내려다보며 곰곰이 지금까지와 무슨 차이가 있나 복기했다.

‘하나 다른 것이 있어.’

이 용인족의 몸에 불이 뿌리내리게 하는 것까지는 카렌과 오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의지를 보내는 과정에서 불과 공허의 구조체의 균형을 흔드는 어떤 외부 반발이 있었다.

‘체내 마력은 얌전했다. 움직임은...관계가 없을 거 같군...’

이 흰 머리 용인족은 기절한 상태였기에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거기에 만약 몸이 움직여서 문제가 되었다면 진작에 카렌부터 죽었을 것이니 이것이 원인은 아니었다.

‘그럼 종족 자체가 문제인가?’

용인족은 창조주가 만든 최초의 생명인 드래곤의 후예. 유천은 이들에게 존재하는 드래곤으로부터 내려온 정체 모를 어떠한 인자가 반발하여 권능이 흔들린 것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어쨌든 지금으로는 알 수 없겠어.’

드라고니아의 용인족이나, 거인의 후예인 거인족을 납치해 연구해보지 않는 이상 더는 알 수 없었다.

“그것보다...슬슬 나도 위험하겠어.”

이제는 상반신의 절반을 소멸한 멜데이아를 가만히 관찰할 때가 아니었다.

공허와 권능. 통제를 벗어나 충돌하는 두 힘이 유천의 내 외부를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천의 몸이 이치를 벗어난 최고 경도의 내구를 지니지 않았다면 멜데이아보다 먼저 소멸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시전자인 유천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으으...”

간격을 둔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렌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고오오...

도시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거대한 힘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천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지고 시간이 미세하게 틀어지는 광경은 그 이상으로 압도적이었다.

카렌은 저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는 짐작했다.

가까이 갔다가는 저기 천천히 도자기 깨지듯 부스러지고 있는 멜데이아와 같은 꼴이 되리라는 것과, 그가 아닌 자신이 저 꼴이 될 수도 있을 뻔했다는 걸 말이다.

그녀는 깨달았다. 저자는 자신의 목숨을 이미 인간 이하의 것으로 대하고 있었다는 걸.

‘도망쳐야 해...’

카렌은 자신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편안하게 수면을 취하고 있는 킬리언을 무의식적으로 쳐다봤다.

본래는 유천이 안고 있었지만, 카렌을 이용한 첫 번째 실험 후 이 위험한 일을 킬리언을 안은 채 행했다는 걸 깨달은 유천은 두 번째 실험부터는 킬리언을 평평한 바닥에 눕혀두었다.

‘저 여자를 인질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그녀가 보기에 다정하게 대화하던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저 여자의 목숨을 대가로 보내달라고 한다면...

“야”

“네, 넷!”

'언제?!!'

하지만 그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렸다.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힘을 갈무리한 유천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거, 걸렸나...’

유천의 가라앉아 있는 눈빛을 본 카렌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불의 농도는 고정되어있지 않았어. 그때그때 유동성을 띤다. 거기에 순환과 역순환을 통해 일어나는 공명을 균일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카렌에게는 다행히도 킬리언을 안아 들어 올리는 유천은 아까의 감각을 최대한 머릿속에 새기느라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 다행이다...’

유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카렌을 보지도 않은 채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건 언제쯤 가능할지 예상이 안 가네...’

그 불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초고속의 연산력, 불과 공허에 대한 초월적인 직관, 깊은 심상, 마나 조율의 이해도 등 하나로 묶어 깨달음이라고 칭해지는 것이 필요했다.

후우...

‘돌아가서 화염계통 마법서나 파이로 키네시스 교본 같은 것들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어.’

그뿐 아니라 전류계통이 주력이지만 뛰어난 마법사인 이지연에게도 자문을 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넌 저 오크 데리고 따라와.”

유천은 멜데이아와 달리 암막의 가호를 제거하는 것에 성공한 엘테론을 가리켰다.

“네...”

덩치 차이로 엘테론을 등에 짊어지듯 업은 카렌은 이제 신체 거의 모든 부위가 소멸해버린 멜데이아를 흘끗 쳐다봤다.

‘잘 가세요. 선배...’

카렌은 그의 영혼이 명계에서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어떠한 사연을 지니고 흉성에 가입했든 지금껏 이번 지령에 비견하는 악업들을 저질러 왔을 테니까.

하지만 전사로서의 그는 그녀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조차 저렇게 허망하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에 일말의 동정심과 자신도 저렇게 죽지 않겠느냐는 두려움을 느꼈다.

“뭘 하나? 빨리 안 따라오고.”

“죄, 죄송합니다!”

카렌은 그렇게 아주 약간의 조의를 담아 고개를 한 차례 숙인 후 그 두려움의 대상인 유천을 향해 발을 옮겼다.

*

토이박스를 수거해 결계를 거두어들인 유천은 토이박스의 발생 위치인 빌딩에서 내려와 어딘가로 향했다.

‘평소보다 시끄러워.’

우중충하고 기분 나쁜 고요함을 풍기던 지금까지의 인천의 분위기와는 달리 지금은 시장통 같은 열기를 띠고 있었다.

‘역시 나 때문인가...’

원인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태양이 어쩌느니, 재앙이 도래했다느니 등의 소리를 들으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었다.

‘아니 그거뿐만은 아닌가?’

주변에서 힐끔거리는 시선 대부분은 카렌과 기절한 엘테론, 그리고 유천이 품에 안고 있는 킬리언을 향하고 있었다.

킬리언 같은 경우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었지만 뒤의 둘은 달랐다.

‘지구에서는 아직도 신기한가?’

중앙세계와 연결된 후 수인과 오크는 이제는 소설 속 존재가 아니었지만, 아직 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삼류 악역 엑스트라처럼 귀찮게 접근하는 자들은 없었다.

피를 흘리고 있는 거나 다친 일행을 부축하고 모양새는 누가 봐도 유천의 일행은 괴수를 사냥하고 돌아온 각성자들이었다.

거기에 인간과 외형이 다른 수인과 오크라는 건 넷 중 적어도 둘은 중앙세계 출신이라는 의미.

사람 모가지 날리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말 그대로 탈지구급 강자가 있을 수 있는데도 다가올 간댕이 부은 용자가 당연히 있을 리 없다.

당연히 카렌이 동요하는 일도 없었다. 지구에 아직 인간 이외의 지성체가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거기에 혼자서 1분 안에 썰어버릴 수 있는 약자들의 시선을 받는다고 그녀가 두려워하겠는가?

그렇게 주변의 웅성거림이나 시선을 무시한 채 걸어, 인기척조차 사라진 곳에 도착한 유천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 근처에 있단 말이지?’

전기마저 나간 네온사인과 녹슨 간판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끝에 ‘유성 철물전기’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저기군.’

목적지를 발견한 그는 곧바로 정체 모를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는 녹슨 셔터 옆. 찌그러져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긴 어딘가요...”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따라오던 카렌은 십 년 이상은 관리를 안 한 듯 먼지로 뒤덮인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경계하듯 물었다.

‘이곳 어딘가에 있을 텐데...’

유천은 그 말을 무시하고는 무언가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저기 있네.”

녹슨 도구들 사이로 미세하게 보이는 기둥에 그려진 붉은색의 주술 진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이 주술 진은 처음 폴른을 찾아왔을 때 봤던 통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상대가 보낸 마력구조를 읽어내 등록 여부를 파악한 후,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날개가 지금처럼 비밀을 잘 지키고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마력구조를 조작할 수 있는 천재들은 지구에도 꽤 존재하니까.

그래서 양하연은 거기에 은밀성과 어디에도 섞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장점인 정령마법까지 주술 진에 엮어버렸다.

그로인해 주술진은 이제는 마력뿐만 아니라 상대의 기질까지 읽어 판단하는 일종의 최첨단 인공지능 보안장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반격기능까지 있다고 했지?’

당연히 이 이것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외부 비밀 요원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외부의 마력 조작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는 순간 주술진은 정령마법진으로 전환되어 포격하기 때문이다.

‘과연 미래의 하이랭커.’

결국, 양하연의 그런 도움으로 날개는 정말 이름만 아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비밀 정보단체가 되었다.

허나 유천은 조직 운영을 위해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표면적으로는 날개의 수장인 만큼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유천은 그대로 주술진에 손을 올린 후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붉은 빛을 띠며 얕은 구동 음을 내던 주술 진이 금고 비밀번호를 맞추는 것처럼 복잡한 문양들이 이리저리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퉁...

두꺼운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회전하던 문양들이 일제히 멈추고 좌우로 갈라지더니 그 사이로 붉은 포탈이 나타났다.

입구가 열린 것을 확인한 유천은 카렌에게 손짓했다.

“이리와.”

“아... 네.”

그녀가 자신의 옆에 선 것을 힐끗 보고 유천은 고개를 까딱했다.

“먼저 들어가.”

“네?”

“네가 도망치면 곤란하니까 먼저 들어가라고.”

유천이 기억하는 이 말괄량이는 지금은 얌전하게 있지만, 자신이 사라지면 높은 확률로 이곳에서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인천에 이 여자를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그런 귀찮은 일이 발생하는 것은 유천으로서는 사절이었다.

“그...알겠습니다...”

‘집을 나오면 안 됐어!!’

그렇게 뒤늦은 후회를 한 카렌은 침을 꿀꺽 삼킨 후 긴장한 모습으로 포탈을 노려봤다.

이 뒤에 있는 곳에는 카렌 자신의 아군이라고 할 만한 자들은 단 하나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유천의 어떠한 항변도 받지 않겠다는 싸늘한 눈빛에 그녀는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귀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발을 내디뎠다.

완전히 그녀의 몸이 포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유천도 포탈에 발을 들였다.

탁­

잠시간 발이 공중에 뜬 기분을 느낀 후 도착한 곳은 유천에게도 익숙한 공동이었다.

양쪽으로는 깔끔하게 정돈된 철제 서류 정리함. 거기에 앞에는 모던하고 깔끔한 올 블랙 테이블.

지휘부. 이 인천 지하에 개미굴처럼 퍼진 날개의 시설 중에서도 가장 중추 시설에 도착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보스”

“고생하셨어요. 주인님.”

그리고 이 공간에서 업무수행이 허락된 두 여자, 이지연과 티보치나가 아직도 듣기 어색한 두 단어를 꺼내며 공손하게 고개 숙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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