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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이 마법이다-60화 (60/116)

〈 60화 〉 흉성(4)

* * *

­쯧...

킬리언이 상정한 것 이상으로 적들이 강했다.

날아간 오크 기사를 봤다. 분명 보이지도 않았을 것인데 죽으라고 한 퍼부은 공격을 모두 피하거나 막았다.

피를 흘리며 꼬꾸라진 백색 머리의 남자를 봤다. 이 자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인 공격을 전부 흘려 넘겼다.

거기에 반격까지. 마지막 공격도 스스로 희생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쓰러져 있지는 않았으리라.

저 둘은 육체의 강함이나 힘의 크기를 넘어선 기술과 그걸 활용하는 전투의 업이 너무도 뛰어났다. 킬리언 본인을 뛰어넘을 정도로.

괴수였던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삶 또한 투쟁의 역사였는데 그 이상의 업을 쌓으려면 도대체 어떠한 수라(??)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말인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카렌이라는 여자를 쳐다봤다.

‘저 여자도 만만치 않다.’

기교, 판단력, 노련함, 정신력 등 전투수행력은 둘과 비교해서 한참 부족하다. 거기에 속도가 특기인 자신과 상성이 겹쳐서 가장 만만한 상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고작 한두 번의 죽음을 경험한 거로 자세가 달라지고, 부딪칠 때마다 칼날이 예리하게 들어온다.

재능의 정도만 따지면 킬리언 자신과 대등하다.

그렇다 해도 실력 차는 엄청나 상대가 안 되어야 했지만, 문제는 지금 그녀의 내부기관들이 큰 부상을 입은 상태라는 거다.

그녀의 내구가 압도적이라서 움직이고 있지, 아니었다면 저 둘처럼 피를 토하며 쓰러져있었을 것이다.

즉, 자신은 약해졌고 앞의 여자는 강해졌다는 거다.

“핫!”

서로 주변을 맴돌며 간격을 재던 때 카렌이 먼저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킬리언 또한 주먹을 뻗었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 여전히 강력한 힘이었지만, 킬리언은 인상을 쓰고 카렌은 이채를 번뜩인다.

‘읽힌다...’

‘이제 보여!’

본래는 불가능한 상황. 그러나 부상으로 제 실력을 내지 못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카렌의 안력에도 읽히기 시작했다.

채채챙­!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일순간에 수십 번 폐허에 울려 퍼진다. 은발과 백발, 자색과 황색 눈이 회색 도시 곳곳에서 부딪치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어지간한 각성자라면 인지 불가한 가속의 세계.

­큭!

허나 그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나, 격렬한 움직임으로 킬리언 몸 내부의 균열이 낫기도 전에 벌어져 덧나고 있었다.

둘, 카렌의 재능과 투쟁의 업이 겹쳐 그녀의 검을 더 예리하게, 날카롭게, 유연하게 만들고 있었다.

‘약점...보인다...’

결국 그녀의 눈은 본래는 없었어야 할 갑주의 미세한 틈새를 포착했다. 그리고...

촤악­!

­망할...

재빨리 수십 미터 뒤로 물러난 킬리언이 왼팔을 내려다봤다. 베였다. 갑주의 사이 미세하게 비치는 속살이 길게 찢어졌다.

고개를 들어 ‘적’을 쳐다봤다. 딱 적당히 달아오른 모습. 호흡은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따라잡혔군...’

킬리언은 부상으로 약해졌고 카렌은 실시간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끝에 서로의 속도는 동등해졌다

속도전을 중요시하는 것은 같았지만 킬리언이 속도에서 나온 폭발력에 집중하는 반면 카렌은 미묘한 섬세함에 집중한다.

둘 중 누가 더 낫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의 카렌은 킬리언에게 상흔을 남길 수 있지만, 킬리언은 공격은 닿지 않는다는 것.

‘저번에 본 소설 같군...’

인천에 있을 때 소설 하나를 읽은 적이 있었다. ‘가랜드 일대기’ 중앙세계에서 지구로 넘어온 이 소설에 별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정의의 용사가 지옥의 마왕을 쓰러뜨려 세상의 평화를 지키는 흔하디흔한 이야기.

킬리언이 거기서 보고 흥미를 느낀 것은 보잘것없던 용사 가랜드가 마왕의 힘을 잡아먹고 성장하여 결국 그 힘으로 마왕을 쓰러뜨리는 이야기의 흐름.

한심했다. 뭐 하러 성장할 시간을 준단 말인가? 시작부터 전력으로 찍어 누르면 됐을 텐데.

‘내가 그 마왕 같네...’

하지만 지금에 와서 혹시 그 마왕도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력을 내면 죽일 수 있다. 그럴 수 없을 뿐이지. 그런데 그 덕분에 눈앞의 적이 강해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다.

피식...

­그렇다고 네년이 용사는 아니지만...

헛웃음 내뱉는 킬리언을 보자 카렌이 미간을 좁혔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닥치고 덤벼. 이제 죽일 수 있을 거 같으니까.”

그녀의 날카로운 예기를 띠는 검기가 킬리언을 겨눴다.

­그래...죽여보지...

이대로라면 자신이 패배한다. 이길 방법은 하나뿐 몸에 무리가 가더라도 일격에 힘을 집중해 이 년을 죽인다.

우웅...

마기를 압축시킨다.

찌릿­!

‘큭...’

고작 전력의 10% 정도밖에 안 되는 마기에 유리처럼 갈라진 육체가 그러다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괜찮다.’

고작 일격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마지막인가...’

카렌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술 사이로 핏줄기를 흘리는 킬리언을 보고 짐작했다. 이것이 마지막 충돌이 될 거라는 것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등을 돌리는 순간 저 여자는 순식간에 다가와 심장을 부술 것이다.

꾸욱...

그렇다면 정면으로 부딪친다. 처음의 그 압도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할 수 있다. 모든 감각을 끌어올리고 이성으로 예측한다.

‘저 몸 상태로 움직임에 페이크를 넣기는 힘들어.’

그렇다면 정면뿐이다.

‘아니 한계를 두면 안 돼.’

서로 간에 마지막이다. 목숨이 걸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결국, 의미 없는 가위바위보다.

결국 남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부딪치는 것뿐.

콰아앙­!

카렌이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킬리언이 땅을 박찼다. 희미한 은색 선이 일순간에 그녀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역시 정면이라 판단하고 몸을 비틀려는 그때, 인영이 땅 밑으로 가라앉듯 사라졌다.

‘어디?!’

카렌의 왼쪽 관자놀이가 짜릿했다.

살기(??).

그것이 느껴졌다. 감각의 확장으로 느려진 시간 속에서 눈동자만을 돌렸다. 보랏빛 기운이 실린 찌르기가 대기를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늦었다...!’

완전히 피하기에는 늦었지만, 최대한 몸에 회전을 넣는다. 치명상을 입겠지만 일단 죽지는 않...

크윽...!

그때 카렌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킬리언의 찌르기가 아주 미세하게 틀어졌다.

촤악­!

그렇게 안구를 날려버릴 수 있었을 수기(手?)의 참격이 약간의 틀어짐으로 카렌의 이마와 앞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상황이 역전되었다. 갑주가 덮이지 않은 킬리언의 상체가 드러났고 카렌의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끝이다!’

카렌은 360도 회전하는 상태 그대로 한 발짝 킬리언의 안으로 파고들어 회전력을 실은 채 아래에서 위로 칼을 그었다.

촤악­!

킬리언의 오른쪽 하복부부터 왼쪽 어깨까지 기다란 실선에서 피가 솟구쳤다.

털썩...

결국 그녀는 힘이 빠져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졌군...’

본래 이 정도의 상처로는 끄떡없었겠지만, 내상으로 상한 육체는 그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쿨럭...

“하아...하아...내가 이겼어...”

얼굴의 반쪽이 피에 범벅이 된 채 카렌은 쓰러져 기침하는 킬리언에게 승리를 선포했다.

­......

킬리언은 피를 뚝뚝 흘리며 아무 말 없이 주저앉은 채 땅만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냥 쓸까...?’

사실 지금이라도 이길 수 있었다. 생체갑주를 완전히 착용한다면.

‘그랬다가는 전부 죽이겠지...’

그러나 그랬다가는 마성에 잠식당한 자신의 손에 인천이 부서질 것이다.

지금 인천에 유천이 없는 이상, 이지연도...티보치나도...이 자리에 없는 양하연과 몇몇을 제외한 날개 전부가 자신의 손에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유천이 죽일 거야...’

자신의 본모습은 ‘네임드 트라피오’ 그것이 드러난 이상 유천에게 자신을 죽이지 않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슬퍼하겠네...’

이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익숙하다고 스스로 세뇌하지만 킬리언은 안다. 아직 그는 괴로워하고 있다고.

강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단단하지 않은 그 남자는 분명 자신을 죽이고 슬퍼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마계에 있어야 했나...’

사실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알고 있었다. 내차원과 외차원간의 그 더러운 ‘맹약’을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어기고 있음을.

거기에 종의 시초로서 가져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는 것 또한 말이다.

허나 유천에게 느낀 순간의 끌림은 충동적으로 그것을 어기게 하였다.

‘지금의 나는 유천을 사랑하는 걸까?’

모르겠다. 최초의 끌림 또한 아마 강한 수컷을 향해 발정한 암컷의 짐승 같은 욕구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 자신의 특성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킬리언의 본질은 괴수에 좀 더 가깝다.

그렇기에 사랑이 뭔지는 모른다. 그래도...

‘나중에 사랑이란 걸 할 수 있다면...그와 해보고 싶었는데...’

멍하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단검을 든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적을 쳐다본다.

솔직히 억울하기는 하다. 본 실력이었다면 순식간에 죽일 수 있는 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뭐가 어쨌든 자신은 패배자고 이 여자는 승리자였다.

그녀의 검에 넘실거리는 샛노란 검기를 보던 킬리언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자신의 영혼은 명계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겠지. 모든 걸 잊겠지만...

‘그때는 부디 인간으로 태어나 그대를 만나기를...’

“이제 죽어...”

킬리언의 목에 칼날이 떨어지려는 찰나...

콰지지지직­!!

“뭐...?”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결계의 천장이 찢겨나갔다.

“말도...안 돼...”

거울 세계의 결계는 외부에서 부술 수 없다. 오로지 새겨진 법진의 코드를 해석해서 들어오거나, ‘토이박스’를 가지고 있는 자가 결계를 해체하는 방법뿐이다.

저렇게 힘에 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거다.

쿠웅...!

유리처럼 깨진 틈 사이로 넘실거리는 황금빛과 함께 무언가가 추락하듯 내려왔다.

“아...아...”

덜덜...

그것을 목도하자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우려는 야수의 본능이 꼬리 내린다.

고개가 자연스럽게 숙여진다. 심장은 천천히 굳어가고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끄윽...꺼억...뭐, 뭐야...”

압도(??).

기세를 내뿜는 것도 아닌데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짓눌린다.

하지만 하나는 알 거 같다. 그 무언가가 지금 고요히 분노하고 있다는 건 말이다.

구구구구궁...

마력도 뭣도 아니다. 그저 내려온 무언가의 감정에 회색 도시 전체가 진동한다.

화르륵...

동시에 주변 공간이 황금빛에 뒤덮인다. 그리고 그건 카렌 자신의 몸 또한 덮었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전혀 뜨겁지 않은 불이었으니까.

그러나 카렌의 노란 눈은 공포에 잠식되었다.

‘주, 죽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느껴진다. 이 불은 단 하나의 오더에 모든 것을 불태우는 심판자다.

그리고 그 교수대에 카렌 자신이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포에 짓눌려진 머리를 간신히 들어 올려 무언가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

그 자다. 선배들과 자신을 싸움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정체 모를 힘의 괴물.

그 무기물처럼 가라앉은 눈빛을 보는 순간 카렌의 눈에서 두려움이 섞인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어, 엄마...”

지금의 그녀는 전사가 아니라 그저 악몽에 몸부림치며 부모를 찾는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 악몽의 당사자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로지 주저앉아 있는 은발 여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이 다가오지 않자 의아함에 눈을 뜬 킬리언의 눈에는 황금이 넘실거리는 세상이 보였다.

그리고 눈을 돌려 그 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쳐다봤다.

­아...

그곳에는 아까부터 계속 생각하던 존재가 서 있었다.

고통조차 잊고 그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꿈은 아니었다.

서큐버스 선생 덕분에 꿈과 현실의 구분 정도는 쉽게 되었으니까.

곧 그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상체를 숙여 등과 다리를 받쳐 들고 자신을 조심히 안아 들었다.

괜히 가슴이 간질거린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얼굴이 가까이 보인다. 여러 할 말이 머리를 떠돌지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잘생겼다는 생각은 일종의 깃대처럼 박혔다.

“음...킬리.”

꾹 닫혀 있던 입술이 천천히 열리더니 그가 항상 부르는 애칭이 들려왔다.

“너한테 할 말은 많지만...”

그는 무언가 화가 난 것 같으면서도 안도감이 느껴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 말에...

두근­!

괴수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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