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58화 (58/116)

〈 58화 〉 흉성(2)

* * *

무거운 긴장감과 고요한 살기가 몰아치는 옥상.

으드득...

“넌 뭐야...?”

카렌은 킬리언을 노려봤다.

상대는 최소한의 전투태세를 취하지도 않고 있었다. 무기도 빼앗겼으면서 말이다.

“거기선 들어왔어야 했어...”

인식의 선율이 흐트러진 빈틈. 저런 강자가 그것을 포착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최소 치명상. 그러나 공격당하지 않았다.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적으로도 취급되지 못한 이 상황이 그녀는 치욕적이었다.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굴욕이었다. 전투가문 오스텐의 직계로서의 프라이드가 뭉개졌다.

그러나 킬리언은 여전히 퉁명스러운 표정이었다.

­사냥감을 물어뜯을 절호의 기회를 내가 놓칠 리가 있나?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못한 것이지. 너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말이다...

“뭐...?”

카렌은 킬리언의 눈이 향한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예리한 수기(手?)를 실은 채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이고 있는 멜데이아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엘테론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글레이브를 주워들고 상대를 겨누고 있었으니까. 노련하고 냉정한 대처.

아마 자신이 당황하는 틈에 그들은 이미 대비를 했을 것이다.

이 여자가 자신의 목을 따러 오지 않은 것도 그랬다가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걸 깨달아서겠지.

“큭!”

부끄러웠다. 이미 이들은 몇 수 앞선 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카렌 본인이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처음으로 자신 이상의 강자와 목숨이 걸린 전투를 치르는 카렌은 그때야 자신이 오만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책은 나중에. 지금은 진정하고 적을 봐라 카렌.”

차분히 입을 여는 엘테론을 쳐다봤다. 말만 선배라고 했지 사실 자신은 이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동등한 경지에 올라 속으로 약간 얕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을 추월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가문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렸으니까.

하지만 이들에게는 수치상으로는 알 수 없는 생사의 간극에 선 경험이 있었다.

‘이거구나...’

깨달았다. 자신이 이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시스템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투쟁의 역사.

“죄송합니다...”

카렌은 존경을 담아 사과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흔들림으로 인해 선배들의 방해가 되고 있단 것을 깨닫고 금방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 모습을 눈만 돌려 잠시 본 엘테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재의 성장은 그런 것이지...”

카렌은 그 순간에 느낀 죽음 하나로 범인(凡人)이라면 수년은 걸렸을 정신적 성장을 이룩했다.

과연 저것이야말로 한 영역의 정점, 하이랭커에 도달할 재능이겠지.

그리고 그건 킬리언 또한 깨달았다.

‘만만치 않군.’

카렌의 성장으로 저 삼인방의 부족했던 균형이 완전해졌다.

난이도가 올랐다. 거기에 더해 어디선가 본 듯한 거슬림에 킬리언은 눈을 얇게 뜨고 삼인방을 노려봤다.

­그 이목구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이질감...그렇군. 과거에 본 적이 있다. 흉성이라고 하였던가?

그녀가 네임드 트라피오로서 활동하던 시절. 27군주의 시험에 들기 위해 투입된 절대방위선에서 마주친 괴인집단 흉성.

시답잖은 것은 잘 기억하지 않는 그녀의 머리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이너 집단이었다. 그 이유는...

­괴수, 인간 가리지 않고 죽여 대는 모습이 인상적인 녀석들이었지.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천외천(?外?)들의 전장에서 아군을 죽이는 모습이 그녀의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5대 빌런단체라고 불린다지. 그런 놈들이 왜 이런 곳에 있나?

“그건 당신이 할 말이 아닌 거 같군.”

멜데이아는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마력에서 느껴지는 칙칙한 폭력성 다른 놈들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마족.”

­......

‘마족?’

카렌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킬리언의 미간이 구겨진 것을 보면 의미가 없지는 않을 텐데...

‘돌아가서 생각하자...’

카렌이 마족에 대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할 때, 멜데이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째서 맹약을 어기고 내차원에 있나? 그것도 그냥 마족이 아니군. 완전한 인간형. 탈피자. 귀중한 종의 시초를 군주들이 놓아주었단 말인가?”

­......처음이군. 그걸 알아보는 녀석은 지금까지 없었는데 말이야.

지금까지 킬리언 자신의 힘을 보고 마족이라는 걸 알아낸 자는 이 자가 처음이었다.

STM이 측정하는 것도 포탈의 마나량을 알아내는 것이지 마기를 읽어내는 위성이 아니었다. 즉 킬리언이 지닌 것이 마기인지 알아낼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러나 이 자는 감만으로 킬리언이 마족임을 알아차렸다. 생각지도 못한 것에 일이 꼬였음을 직감했다.

그 당혹감을 읽어낸 멜데이아가 비웃었다.

“나 같이 오래된 전쟁용병들이 알아챌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이렇게 정체를 들키지 않았나?”

­어쩔 수 없군...

마족이 비밀인 이유를 아는 것은 둘째 치고 놈들을 놓칠 수 없는 이유가 생겼다.

킬리언은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는 이지연에게 나오기 전에 받은 각설탕만 한 딱딱한 것을 꺼냈다.

“그건?!”

킬리언의 손에 들린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큐브를 본 멜데이아가 경악성을 토했다. 저건 마족이 가지고 있을 리 없는 거였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너희를 보내줄 수 없다.

킬리언의 존재로 인해 유천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녀는 그에게 끌림을 느껴 따라온 거지 방해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우우웅...

그녀는 그 조그마한 상자에 마기를 주입했다. 마기 또한 마나의 일종. 상자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졌다.

토이 박스(Toy Box) 작동.

리브레스의 역작 중 하나가 그녀의 손에서 발동되었다. 착착 소리를 내며 분해된 큐브조각들이 퍼져 나가 복잡한 문양을 그리며 결계 펼쳤다.

그러자 세계는 색을 잃었다.

“이건...거울세계군... 말로만 들어봤지 직접 본 것은 처음이야.”

엘테론이 회색이 된 세상을 보며 입을 열었다. 거울세계. 현계의 정반대에 위치한 복제된 세상.

현계의 피해를 없애기 위해 만든 리브레스의 마도구다. 하지만 단가가 높고 제작기간이 길어 상당히 귀한 물건이었다. 엘테론 본인도 처음 봤으니까.

콰아앙­!

킬리언은 결계가 쳐지자마자 땅을 박찼다.

일단 결계로 발을 묶었지만, 적들은 강했다. 3 대 1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명이라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셋 중 가장 약하며 암살자 타입으로 보이는 카렌을 먼저 노렸다.

파앙­!

순식간에 카렌의 앞까지 다가온 킬리언은 주먹을 내질렀다.

‘피해야 한다!’

내질러진 그녀의 주먹은 그야말로 광속(光?). 막아도 죽는다.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체와 상체의 각도를 확인한 그녀는 예측 후 피했다.

“큭!”

궤도를 예측해 고개를 돌렸음에도 머리를 스친 풍압에도 균형이 흔들렸다.

“뒤져!”

허나 그녀는 균형이 흔들렸음에도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킬리언의 겨드랑이를 베어나갔다.

“기습을 좋아하시는군.”

그와 동시에 엘테론과 멜데이아의 검기와 권기가 각각 킬리언의 허리와 후두부로 향했다.

이대로라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었다. 정답은 정면. 짐승 같은 감으로 순식간에 답을 도출해낸 그녀는 뻗었던 주먹을 펴 카렌의 목덜미를 잡아 상체로 밀었다.

촤악­

타점은 빗나갔지만, 상처를 입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정도의 강자들을 상대하려면 희생은 감수해야 했다.

“큭! 이거 놔!”

휙!

상체가 뒤로 넘어가는 중에도 단검을 돌려 역수로 쥔 카렌이 킬리언의 양 눈을 찢기 위해 횡으로 휘둘렀다.

­느리다.

충분히 빨랐지만, 그녀에게는 부족했다.

쾅!

킬리언과 카렌의 마빡이 강하게 부딪쳤다.

“윽!”

뇌진탕. 흔들린 카렌의 검은 은발 몇 가닥만을 갈랐다. 킬리언이 허리를 돌리며 뒤에서 뿜어지는 두 살기를 향해 그녀를 집어 던졌다.

“흐읍!”

자신에게 날아오는 카렌을 본 엘테론은 내지르던 글레이브를 비틀고 그녀를 받았다.

지금!

콰앙!

둘을 죽일 기회가 왔다. 킬리언이 발을 박찼다. 마기를 손바닥에 압축한다. 일점 격파. 둘의 심장을 동시에 부순다.

‘쯧...’

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둘을 죽이는 대신 자신의 머리도 터져 죽는다.

팡­!

손을 비틀어 옆에서 날아오는 바람이 담은 풍권(風?)을 쳐냈다.

파바바박­!!

그리고 이어지는 난타. 한 짐승과 무도가의 전투가 이어졌다.

두두두두...

잔상만이 간신히 보이는 전투에 옥상은 부서지고 건물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어라

[신기루 개(?) ­ 권역(??)]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이형환위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보법이었던 신기루가 그녀의 주먹으로 구현되었다.

흐릿해진 주먹의 폭격이 멜데이아의 삼면을 감았다. 말 그대로 주먹의 영역.

‘보이지 않는다.’

저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수백 개의 팔이 있지 않은 이상 저건 봤다고 해선 안 되었다.

하나하나가 실체를 가진 힘의 덩어리. 막을 수도 없다. 하나라도 닿는 순간 폭격에 편육이 된다. 움직일 공간도 없다.

‘허나, 이 정도로 날 죽일 수 없다.’

무(?)는 힘과 속도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발끝의 방향 무릎의 각도, 허리의 근육, 어깨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예측한다.

‘흘린다.’

해일은 막을 수 없어도 폭포를 비틀 수는 있었다.

[유수(??)]

하나하나를 예측하지만 막는 것은 냉철한 이성이 아닌 그가 쌓아온 무도의 본능.

스으윽...

양손을 들어 올린다. 개체가 아닌 영역을 휘장을 걷듯이 옆으로 부드럽게 밀어낸다.

콰과과광!!

비틀리고 흘려진 권역(??)이 그의 후방을 부쉈다.

콰르릉...!

마기가 실린 주먹의 폭격에 옥상은 가루가 되었고, 결국 그 힘에 아슬아슬하던 건물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넷 중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고작 콘크리트와 철근의 파편에 깔려 죽는 하수는 이 자리에 없다.

쾅!

팡!

쉬익!

그때부터 이어진 삼대 일의 공간전투. 무너지는 건물에서 벗어난 검보라색과 다른 세 가지 빛살이 충돌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인천을 부수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상위 랭커급들 간의 전투. 도시 하나 정도는 하루 안에 철거시키는 힘들이었다.

비틀...

그때 뇌진탕의 영향이 남아있었는지 벽면을 타던 카렌의 발목이 살짝 젖히며 무릎이 흔들렸다.

그것을 포착한 킬리언이 눈을 번뜩 뜨며 달려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이런...’

허나 여전히 침착하게 가라 앉아 있는 노란 야수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함정이란 걸.

“공간전투는 내 특기야”

그때 카렌의 허리춤에서 나온 꼬리가 휘어진 철근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녀는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날아올랐다.

쾅!

결국 빗나가 애꿎은 건물만을 부순 킬리언의 주먹이 철근에 휩싸였다. 빼내는 데 전혀 문제는 없다. 이것이 함정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온다...’

쉬익­!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무지막지한 살기가 실린 마력다발들이 그녀의 전신을 덮쳤다.

이거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보랏빛 안광은 여전히 침착했다.

‘어쩔 수 없군...’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이었지만, 힘을 아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생체장갑 한정개방]

카카카캉­!!

킬리언은 상체만 돌려 왼팔에 돋아난 생체장갑을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둘러 쳐냈다.

“큭!”

“이익!”

“흡!”

자신들의 마력이 모조리 튕겨 나가자 흉성의 삼인방은 그대로 경계를 하며 뒤로 물러났다.

일시적으로 흐름이 끊긴 전투 현장. 멜데이아는 반탄력에 떨리는 손을 내려다봤다.

“...그게 그대가 지닌 특성인가 보군...”

몇 번 마족들과 부딪쳐본 그도 처음 본 것이었다. 몸에서 갑옷이 돋아나다니. 아마 탈피자라서 그런 것이리라.

­크르르...

그러나 벽에서 오른팔을 꺼낸 킬리언은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근 두 달가량의 시간 그녀 또한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단점이자 강점인 생체갑주.

그것을 의지대로 활용하는 훈련을 해왔다. 그 결과가 지금 한정개방 형태였다.

­크르르...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이게 미완성인 가장 큰 이유인 마성(??)이 그녀의 머리를 잠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꺼져라...이건 내 힘이다...’

이것은 탈피자들의 영원한 숙제. 괴수로서의, 짐승으로서의 본성을 이겨내고 고유한 특성을 장악해야 완전한 하나의 종이 될 수 있다.

주먹을 비틀어 쥔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은 또...왜 저래...?

카렌은 그녀의 검게 물든 횐자를 본 후 흠칫 한 발짝 물러났다. 팔을 내려다봤다.

모든 솜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온도가 내려간 것 같았다.

그렇게 느낀 건 카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검게 물든 흰자를 본 이 자리의 모두는 공간이 차갑게 식어감을 느꼈다.

“...또 한 번 생사의 경계군...”

쿵쿵쿵...

오크기사 엘테론의 심장이 발작하듯 뛰었다.

‘절대방위선도 아닌 곳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이야...’

더 이상 제압이고 뭐고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한다. 그곳에서 언제나 그러했듯...

“......”

카렌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말을 할 정신까지 죄다 끌어모아 집중한 채 양손의 단검을 꾸욱 감아쥐었다.

스윽...

킬리언의 손가락이 멜데이아를 향했다. 그리고 상대에게는 선언하듯, 스스로에게는 다짐하듯 입을 열었다.

­팔다리만 찢은 채 살려 데려가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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