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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이 마법이다-56화 (56/116)

〈 56화 〉 신수(2)

* * *

수십만 마리의 불개미들이 핏줄을 근육을 물어뜯는 것 같았다. 그 고통은 차마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고통은 짧았다. 그리고 그보다 괴로운 것이 찾아왔다.

우우웁­!!

가려움. 시간 회귀에 가까운 육체의 수복력으로 인해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는 동안 느껴지는 그 감각은 일순간이었지만 이대로 회복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품게 하였다.

그렇다고 간질 수도 없었다. 저 빌어먹을 나무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게 묶어놨었으니까.

그렇다고 저 나무가 단단하게 자신을 조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유천의 힘을 ‘강탈’하고 있었다. 덕분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결국 다른 방향으로 가려움을 해소하지 못했던 유천은 온전히 그 감각을 느끼고 있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늑대 신수의 능력이 과연 신이라 할 만했다는 것이었다.

고작 10여 분 만에 권능의 씨앗을 유천의 마력기관에 심었으니까. 인간의 몸에 신의 힘을 박아 넣는 것이다.

가축을 지성체로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과정임은 분명했다.

“끄으으...하아...하아...”

「고생했다네.」

물론 엿 같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난 지금도 환상통과 같은 게 몸을 간질이고 있었다.

술이 이렇게나 마시고 싶은 날이 또 있었을까 싶었다.

‘시발 머리도 띵하네...’

유천은 고통으로 멀어지는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몸이 포박된 채로 화상과 재생을 반복 당했다. 과정만 보면 고문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무릎 꿇은 채 고개만 들어 늑대를 쳐다봤다.

‘쓰벌 저 털들부터 죄다 쥐어뜯고 싶네.’

이 과정이 분신 체로 작업하기에는 꽤 고됐는지 우리의 늑대 신수님은 입을 쩍 벌린 채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상대가 기연을 준 은인이지만 그럼에도 저렇게 편한 모습으로 드러누워서 갸르릉 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속이 꼬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 나른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늑대가 손짓만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면 일단 개 좆 같은 늑대 새끼라고 욕부터...

「음 개 좆 같은 늑대라...이 몸이 그렇게 작지는 않다만」

머리를 울리는 소리에 유천은 움찔거리며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는 늑대...님을 쳐다봤다.

“......혹시 제가 입으로 말했습니까...?”

당연히 입으로 열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상상만 한 거지.

그렇지만 차라리 입으로 말했다고 해줬으면 싶었다. 그러면 ‘제가 미쳤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그랜절이라도 박을 수 있으니까. 한 번 정도는 용서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입으로 내뱉은 기억이 없던 유천은 식은땀을 흘렸다.

「음? 아니 그냥 그대의 정신에서 들려왔네만? 강렬한 사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들려서 말일세. 그래도 제법 신기했네. 참 다양한 욕이 존재하더군. 수십만 년 정도 살면서 이렇게 많은 욕은 처음 들어봤네.」

참고로 이 몸은 어미가 없다네. 라며 늑대 신수는 태연히 말하며 뒷발로 귀를 긁었다.

유천의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사신의 낫이 목에 걸쳐진 느낌이었다.

깨달음을 얻었다. 목숨을 잃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유천은 도무지 열리지 않는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을 읽을 수 있으시면서 굳이 왜 대화를...”

「대화는 중요한 것이지. 단순한 사고(??)의 교환이 아닌 의념의 동조에 가까워지는 길이니 말일세. 그렇기에 난 상대의 정신을 읽지 않는다네.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게 아니면 말이야.」

“......”

「그리고 그런 거로 분노해서 너를 죽이지 않을 테니 머리를 박을 필요도 없다네. 네 잘못도 아니지 않은가?」

“...드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태연한 우리 너그러운 신수님의 모습에 살려달라며 머리를 박을 자세를 취할 준비를 하던 유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이 몰려왔다가 사라져서 그런지 어느새 환상 통은 사라져 있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권능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주도록 하지. 이제 패스가 거의 막혀가니 말일세.」

다른 신수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유천에게 권능의 씨앗을 넘겨주는 늑대 신수에게 모든 힘을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씨앗을 심은 시점에서 이미 아티팩트의 힘은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드래곤, 거인 일곱 괴수 그리고 우리 여섯 신수들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힘. 그것이 권능, 세상 모든 힘의 원초라네.」

마법, 주술, 성법, 무공, 초능력 등 심지어 시스템의 가호마저도 권능을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단다. 그 아득한 힘이 자신의 마력 기관에 심겨있다는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권능을 다루는 데에 가장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 거 같은가?」

그 물음에 유천은 바닥을 노려보며 고민했다.

필수적인 것이라...

무언가를 다루기 위해서는 학습하고 그것을 반복하여 몸에 배도록 숙달해야 한다. 하지만 늑대가 말한 필수적인 것은 이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이전 학습할 지식조차 없는, 최초의 때에 가장 필요한 것...

“상상력입니까...?”

무력을 예로 생각해보았다.

마법은 정신세계에 새긴 술식을 구현하여 법칙을 편집하고 초능력은 구성한 형(?)에 힘을 담는다.

모두 학습과 숙련이 필요한 것들이지만 만약 학습할 자료도 없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나?

그 다음을 예상하는 이미지. 그것이 가장 뚜렷한 자야말로 다음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지.

유천은 그걸 하나의 단어로 말하자면 상상력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권능은 원초의 힘. 그보다 더 전으로 돌아가 보아라.」

유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이전? 뭐가 있지?

눈을 감았다. 더 높은 경지를 달성하는 것은 무인, 마법사 가리지 않는 결정적인 소망이다. 그런데 그 이전이 뭐가 있단 말인가?

왜 그런 걸 알아야...잠시만...왜?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것에 투덜거리던 유천의 머리에 한 단어가 번뜩 빛이 들었다.

왜, 영어로는 why라는 단어가 말이다.

왜 더 높은 경지를 바라는가? 돈, 권력, 명예를 위해

왜 더 높은 경지를 바라는가? 강력한 힘을 위해

왜 더 높은 경지를 바라는가? 진리를 손에 넣기 위해

왜 더 높은 경지를 바라는가? 생존을 위해

이것 외에도 수십 가지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틀어 목적이라고 한다.

「그래 다른 말로는 계기, 동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지.」

화르륵...

늑대의 앙증맞은 발이 바닥을 두드리자 목재 바닥에서 하얀 불길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장경판전 전체를 뒤덮은 화염은 모든 걸 태워버릴 정도로 강렬했지만 일말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서늘한 순백의 이불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포근한 느낌이었다.

「나의 불은 명계를 지탱하는 영토. 그 영토는 모든 업을 불사르는 호토(?)의 땅이기도 하지만 얼어 부스러지는 동토(??)의 땅이기도 하다네.」

“신기하네요...”

그 광경은 실로 모순적이었다. 차가운 불이라니. 실제로 반투명한 우윳빛 화염 안을 통해 보인 목재 바닥은 멀쩡했다.

「나와 같은 존재들은 태어날 때부터 권능을 지니고 있었지. 그렇기에 힘을 다루는 것에 아무런 궁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네.」

사람은 걸을 때 힘의 배분, 발목과 무릎의 각도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걷지 않는다.

그리고 늑대 신수에게는 불이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그런 자연스러운 영역이다.

「하지만 그대는 우리와 다르지. 땅을 기던 생물에게 날개가 돋았다고 곧바로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겠나?」

“......그럼 학습과 반복 숙달이 답이 아닙니까?”

갓 태어난 새가 어떻게 하늘을 날겠나? 계속해서, 끊임없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이지. 그럼 권능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그다음의 이야기일세. 일단 알에서부터 깨어나야지. 그것을 위해 목적을 정해야 한다네.」

“목적을 정하지 않으면 권능은 움직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렇다. 권능은 존재 이유를 규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

늑대 신수에게 명계의 수호와 영혼의 순환이라는 목적이 있듯이 창조주가 낳은 태초의 존재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천명이 정해져 있었다.

‘목적이라...’

유천은 허리를 숙여 불을 만져봤다. 서늘하면서도 차가운 질감이 느껴졌다. 불에 감촉이라니. 권능이란 이런 법칙도 초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마 신수의 마음에 따라 이 서늘한 부드러움은 절대영도의 날카로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화륵...

「흠...이제 시간이 없군...」

백염이 사그라졌다. 신수의 의지가 아닌 것으로 보아 더는 권능을 다룰 힘이 없다는 의미.

거기에 아티팩트의 힘이 거의 소모가 된 것인지, 늑대를 포함한 신수들의 분신 체에 조금씩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었겠지만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오로지 귀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으니까.

「자 그럼 자네의 목적은 무엇인가?」

“......”

목적 어찌 보면 쉬운 말이었다. 어디 합격하겠다. 시험 점수를 잘 받겠다와 같은 것도 목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다. 신수는 삶을 관통하는 숙제, 운명과 같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말하지 않았나? 존재 이유, 천명(??)이라고 말이다.

유천은 고민했다. 존재 이유? 자신은 도를 깨우치기 위한 구도자도 아니고,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도 아니다.

그런 답도 없는 문제를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다.

태어났기에 살았고, 이곳에 와서도 살기 위해 살고 있다. 유천 자신에게는 살아가는 데에 거창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필요 없었다. 이 신수님은 친절히 이미 정답을 알려줬다.

생존(??)

멸망한다고 하지 않았나? 유천은 죽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 배를 곪지 않기 위해 파리가 낀 썩은 고기도 뜯어봤다. 스스로가 지닌 생의 의지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거기다 이 초월적 존재들은 멸망을 막기 위한 희망이 이레귤러인 자신뿐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것 말고 다른 사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렇지 목적에 굳이 어떤 거창한 역사는 없어도 되네.」

크르릉...거리는 늑대의 웃음 섞인 목 울음 소리를 들으며 유천은 눈을 감았다. 씨앗을 틔우기 위해서.

목적은 나의 삶.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멸망하지 않은 세계.

그러니 불이 필요하다.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놈들을,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것들을 재로 만들어버릴 겁화(?火)가 필요했다.

우우우웅...

유천의 오륜성이 울렸다. 마력이 아니었다. 세상의 법칙 외에 존재하는, 형이상학적인 불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나(?)’를 토양 삼아 싹을 트기 시작함을 느꼈다.

그러나 유천은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좁혔다.

이걸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저것은 이대로 내버려두면 자라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

「불은 장작이 필요하지. 나는 불의 영토를 위해 육(?)을 내놓았다. 그대는 무엇을 내놓겠는가?」

대가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정신에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했다. 무엇을 장작 삼을 것인가? 업조차 태우는 불이다. 굳이 실존하는 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유천은 한 가지를 떠올렸다. 자신이 가진 가장 화려한 장작을.

[오행기관]

이 세상에 온 후 지금까지 자신의 육체를 억눌러왔던 마력의 흐름을 틀었다.

유천의 힘을 막고 있던 봉인이 풀림과 동시에 거대한 힘이 육체에 실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본래의 자신.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본디 오행기관은 육신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나약한 육신을 일시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심법이다. 그저 유천이 용도를 비틀어서 쓰고 있었을 뿐이다.

‘벌써 이럴 일이 올 줄은 몰랐군.’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 이걸로 자신을 강화할 일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 힘이었으니까.

‘증폭시킨다.’

하지만 권능의 씨앗에게 최고의 먹이를 주기 위해 유천은 이를 악물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부풀렸다.

쿠구구구궁...

지금까지 억제를 위해 육체에 역천(??)하듯 흐르던 마력이 제대로 된 방향성을 찾자 아득한 힘이 몸에 담긴다.

「과연...거인에도 닿을 힘이구나.」

늑대 신수는 유천을 보고 ‘호오...’하며 감탄했다.

마력은 형(?)과 색을 지녔기에 명확하다. 그렇기에 외재성을 지닌다. 표출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거다.

허나 힘은 다르다. 형태도 색도 없는 이 애매한 것은 외부로 나오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런 물리력이란 이름의 힘이 아지랑이와 같은 명확한 형을 지닌 채 유천의 몸 밖으로 넘실거리며 공간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힘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 대륙을 들어 옮긴 거인에 닿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허황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런 파괴적인 힘을 전력으로 끌어올린 이유를.

「그것이 네 장작인 게냐? 재미있구나.」

태우려는 장작은 물리력. 저 넘쳐흐르는 물리력을 바치려는 것이다.

유천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마력기관에서 자란 불의 싹에 집중했다.

‘와라.’

네가 잡아먹을 먹이가 준비되어 있다. 나와서 먹어라.

우우우웅...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섯 마력 기관으로부터 나온 불이 혈관, 뼈, 신경, 마력회로를 타고 흐르며 유천이 마련한 ‘힘’을 잡아먹었다.

유천의 복부를 중심으로 황금빛 실선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뜨겁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이 불은 유천의 삶을 위한 힘. 이것이 유천의 몸을 태우는 건 그가 스스로 삶을 버렸을 때이리라.

불이 어깨를 넘어 팔을 타고 손까지 도달했을 때.

화르륵­!

유천의 양손에 황금이 피어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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