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55화 (55/116)

〈 55화 〉 신수

* * *

유천은 주변을 멍하니 둘러봤다. 정신이 덜 깬 건가? 아니면 내가 아직 꿈속에 있는 건가?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섯 동식물을 보며 무슨 이런 조합이 있나 생각했다.

식물이 내려다보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저 공중에 두둥실 떠 있는 목련이나, 뿌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앙상한 나무에서 시선이 느껴진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너흰 뭐냐?”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들. 그래도 예상이 전혀 안 가는 건 아니다.

흑색 새끼 늑대.

자색 앙상한 나무.

녹색 나비.

황색 들소.

남색 매.

백색 목련.

이 녀석들이 내 몸속에 들어온 구체와 상관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이렇게 1:1로 색이 일치하는데 상관없는 게 더 이상하다.

유천의 물음에 다른 녀석들을 대변하듯 검은 새끼 늑대가 앞으로 다가왔다.

유천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녀석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몸이 긴장감에 굳었다.

‘무슨 존재감이...’

품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덩치와 달리 늑대에게서 품격과 위압감이 느껴졌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

자세히 보니 하나같이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은 작고 귀여운 외형임에도 그들의 분위기는 세상을 관조하는 절대자 같았다.

‘정령인가...?’

정령왕급 정령들은 하나 같이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어 현세에 불려 나오기 위해 부피를 줄인다. 당연히 그 존재감은 여전하다. 이들이 딱 그러했다.

‘아니다 다르다.’

발밑까지 다가온 새끼 늑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고작 정령왕 따위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령왕이라면 유천이 일대일로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늑대를 인지하자, 유천의 육체가 도망가라고 소리 지르듯 떨려오고 정신은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굴종하고 있었다.

‘시발...이게 뭐야...’

거기에 그 존재감은 이 녀석이 아닌 저 눈 뒤편,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조그마한 육체는 일종의 분신 체에 불과한 것이었다.

‘뭐지 이놈들은?’

유천은 정면대결에서만큼은 어지간한 하이랭커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 자신을 실체 하지 않은 존재감으로 제압하는 존재가 단순한 축생일 리가 없다.

“설마...”

유천의 머릿속에 예상이 가는 존재가 떠올랐다. 곧바로 상태창에서 가호 부분을 확인했다.

[육도(1차 계약)]

육도(??),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 후에 업에 맞게 보내지는 여섯 세계를 의미한다. 하필 유천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 또한 여섯이다.

거기에 우연인지 라스트 레거시의 창조신화에 등장하는 명계의 존재 또한 여섯이다.

유천은 식은땀을 흘렸다.

‘도대체 뭘 데려온 거냐...’

본체는 아니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들이 정말 그들이라면, 만약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살아남는 것조차 힘들다.

「이상하군. 너는 마치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같구나?」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음에도 늑대의 눈으로부터 의사가 머릿속에 박혀 들어왔다.

“명계의 여섯 신수...”

신은 세상을 창조할 때 세 개의 차원을 만들었다. 중앙세계가 존재하는 내차원, 마계라 불리는 외차원 그리고 영혼의 순환을 담당하는 명계.

창조주는 그 세 개의 차원에 최초의 생명을 만들었다.

내차원에는 드래곤과 거인, 외차원에는 일곱 괴수 그리고 명계에는 여섯 신수를 말이다...

「오호라... 정말로 알고 있군?」

‘이런 시발...’

유천은 반신반의했던 거물이 진짜로 등장하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드래곤들은 태초의 세상에서 나약한 생명이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차원을 분화시켰다. 내차원이 중앙세계와 여러 차원으로 나뉜 이유가 그것이다.

거인들은 드래곤이 분화시킨 차원에 땅을 떼어내서 옮기고 그 땅에 걸맞은 생명을 빚었다. 예를 들면 인간과 같은 지성체부터 곤충, 짐승 같은 생물들까지 말이다.

일곱 괴수가 뿌린 신체의 조각이 외차원의 모든 생명의 기원이 되었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여섯 신수는 내차원과 외차원에 탄생한 생명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근본을 찾듯이 명계로 돌아오는 영혼의 업을 씻어내고 윤회전생시키는 메커니즘을 만들었다.

창조주가 없어진 세상, 그들은 신(?)이다.

갑자기 등장한 엔드스펙급 최종 보스와 같은 자들의 등장에 유천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고작 아티팩트 따위가 당신들 같은 존재들을 불러왔다는 겁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팔만대장경? 굉장한 아티팩트다. 하지만 정도가 있다.

상상계의 백색마왕을 불러들이는 것에도 티보치나는 상당한 대가를 바쳤다.

그런데 상상계 자체를 홀로 부술 수 있는 존재들을 그것도 여섯이나 강림을 시키고, 뭔지 모를 계약을 성립시켰다?

아티팩트를 잘 몰라도 선을 한참 넘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늑대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그럴 리가 있느냐? 아티팩트는 계기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너에게 관심이 있어서다.」

“...영광입니다만...고작 저따위의 필멸자에게 무슨 대단한 것이 있다고...”

위가 아파왔다. 중앙세계의 세력들의 눈을 피하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그보다 답도 없는 자들의 관심을 샀다는 것에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지 말라.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니까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늑대가 유천의 주변을 돌며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에 자연스럽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용과 거인 그리고 일곱 괴수를 제외한 모든 영혼은 우리가 관리한다. 하지만 그대는 이상하더구나.」

크르릉...

늑대의 목에서 심연에서부터 끌어올려 지는 울음이 들려왔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거기서 유천은 아주 약간의 감정적인 동요를 느꼈다.

자신의 무엇이 이 오래되고 위대한 존재에게 그런 감정을 품게 한다는 말인가? 유천은 눈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특이성을.

‘가장 큰 것은 두 가지...’

우선 하나는 3차 초월. 유천이 지닌 강대한 힘이었다.

‘기각.’

그 가정은금방버렸다. 3차 초월이다 뭐다 해도 이 태어났을 때부터 완전한 자들에게 자신은 그저 조금 독특한 생물에 불과할 것이니까.

‘그럼 하나뿐...’

「네 영혼은 우리가 불어넣고 관리하던 것이 아니더군...」

“......”

유천의 눈이 떨렸지만 금방 진정되었다. 예상하고 대비하지 못했다면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그럴 거 같더라...’

유천의 영혼은 이곳과 관련이 없는 곳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영혼을 관장하는 자들에게 그런 것을 아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유천의 주변을 맴돌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던 늑대가 다시 정면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창조주께서는 이 세상을 버리고 자취를 감추셨다. 그런데 아득한 시간이 지나 우리 앞에 네가 나타났지. 영혼을 관장하는 우리가 모르는 영혼이라...그분이 관계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는 일이지. 」

“......”

‘창조주...’

영혼을 관장하는 존재들 앞에 처음 보는 영혼이 나타났다.

그것에 창조주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논리는 아니었다.

유천도 자신을 불러온 것이 어떤 초월적인 존재일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아티팩트의 요청에 따라 너와 계약을 했다. 그건 오로지 우리들의 의사였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유천은 자신이 이곳에 소환된 것이 창조주의 개입이라는 것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윤회라는 막중한 책무를 감당하느라 바쁜 이들이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만한 존재 값을 지닌 자들이 이 까마득한 차원 너머로 분신 체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라도 적지 않은 힘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계약까지 감행했다.

수없이 긴 세월을 살아온 이 신과 같은 자들이 창조주가 불렀다고는 하지만 유천이라는 존재에게 그 정도의 힘을 쏟아 부을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유천의 물음에 그는 꼬리로 다리를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일단 목이 아프구나. 그러니 서 있지 말고 앉게나.」

“아 네”

유천은 그때야 자신이 아직 그를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찌 보면 무례한 모습. 그는 곧바로 목재 바닥에 양반다리로 주저앉았다.

「음 이제야 보기 편하구나. 그럼 계속 이어서 말하도록 하지.」

유천이 앉자. 그는 크와앙 소리를 내며 하품을 하고 편하게 꼬리를 감아 누웠다. 이렇게 보면 영락없이 귀여운 새끼 늑대 같았다.

격식 없는 모습 같았지만, 아득한 세월을 살았다고 생각하니 또 자연스럽게 보였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상은 결국 멸망한다. 창조주가 사라진 세상에서 그건 당연한 결말이다.」

“네...?”

‘처음부터 결론이 이상합니다만...’

어차피 사라질 세상이라면 자신에게 관심을 줄 필요가 있나? 그냥 사과나무나 심으면 될 것이지.

「네가 없었다면 말이다.」

“...제가 창조주가 불러온 사람이라서입니까?”

「정확히는 네가 새로운 영혼이라서다. 이 세계가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한 이유도 결국 창조주가 없는 윤회시스템은 불완전하다는 것에서 나오니까.」

간략히 말하면 영혼에도 엔트로피가 존재한다는 거였다. 즉, 사막 한가운데 고여 있는 호수는 결국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 비틀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도 그리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유천이 이곳으로 불려 오기 전에는 말이다.

「우리는 천천히 죽어가는 것보다 어떻게 될지 모를 새로운 것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공간의 부름에 응답하였고 그대와 계약을 맺었지.」

그 말에 유천은 주변을 둘러봤다. 해인사를 감싸고 있던 신비로운 힘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깔끔했던 건물들은 낡은 모습으로 돌아왔고 새파랬던 나뭇잎들은 시들고 있었다.

아마 이 신적 존재들을 호출하는 것만으로 거의 대부분의 힘을 사용한 듯 보였다.

“그래서 계약이란 건 뭡니까? 아니 1차는 무엇입니까?”

계약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령 계약과 같다고 생각하기에는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거기에 유천은 계약에 1차 같은 것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었다.

「1차는 이 아티팩트가 가진 힘으로 뚫은 패스로 맺은 가장 기초적인 계약이라네. 본래는 그것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네.」

“......”

그냥 호출만 한 줄 알았더니 이곳은 유천과 6대 신수 간에 본래는 불가능해야 할 계약을 맺게 해준 모양이다. 예상 이상으로 대단한 아티팩트였다.

「이건 일회용 계약이라네. 잠시 우리가 분신체들을 소환할 수 있게 해주는 정도뿐. 힘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깨질 계약이지. 하지만 무의미하지는 않다네. 당연히 2차도 존재하니까 말이야.」

저 분신체들은 일회적인 소환이었나 보다. 아쉬웠다. 저 정도의 힘을 정령처럼 부릴 수 있었으면 지금 당장 중앙세계로 가 미래에 위협이 되는 세력들을 깡그리 뽑아버리는 건데.

화르륵...

유천이 시답잖은 생각을 할 때 조그마한 검은 구슬이 늑대의 머리 위에 피어났다.

모든 빛을 흡수하는 암흑 같은 모습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것은 불이라고.

그리고 저기에 담겨 있는 힘은 세상을 불태울 정도로 강력하고 위험하다는 것도 말이다.

「이 불은 나만의 권능이니라.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서는 너희의 가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지만 그런 것들과 비교하면 안 될 게다.」

불의 정점. 모든 화염에 대해 상위호환의 권능이었다.

「이것을 네게 심을 게다. 그러면 너와 나 사이에 2차 계약이 완료되는 게지. 아 물론 이대로 심을 수는 없다네. 그랬다가는 그대로 타죽을 테니 말이다.」

검은 구슬의 빛이 점차 옅어지더니 압도적인 기운이 사그라들고 어느새 따스해 보이는 노란 구슬로 바뀌었다. 그것이 두둥실 떠서 유천의 입 앞까지 날아왔다.

「삼켜라. 그러면 권능의 씨앗이 네 몸에 심어질 것이다.」

“혹시...부작용 같은 것이 있습니까?”

권능. 유천도 아는 영역이 아니지만 적어도 스킬이나 가호와 같은 시스템의 영역을 벗어난 신에 가까운 힘이라는 건 알 것 같았다.

아르벨라에게 태생부터 주박처럼 박혀 있는 ‘일곱별의 저주’와 유사한 종류의 것이겠지.

그런 것을 받는데 아무런 대가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유천의 말에 늑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린 태초의 신수들. 필멸자가 권능이 아닌 그 씨앗이라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순식간에 죽겠지.」

“...저도 필멸자입니다만.”

이 미친 늑대야.

유천은 나보고 죽으라는 거냐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서 놀라운 게지. 내 친우들의 권능은 지금의 너로는 받을 수 없겠지만, 아주 기적적으로 나의 힘과 궁합이 맞다.」

유천의 철신(??)의 마력이 지닌 무거움과 서늘함은 불을 달래줄 수 있다.

거기에 다섯 마력 기관은 씨앗을 심기 최고의 토양이, 강인한 육체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화로(火)가 되어줄 것이다.

「마치 내 힘을 받을 운명을 타고난 것 같구나.」

“......”

「그러니 잔말 말고 삼키거라. 너라면 죽지 않을 게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에 흠칫 놀랐지만, 신적 존재라는 말은 일종의 치트키 같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허나 한 가지 의구심만은 지울 수 없었다.

“만약 제가 나쁜 놈이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유천이 이런 힘을 받고 패악을 저지르고 다니면, 그러다 멸망을 앞당기는 요소가 되면 어쩌려고 이런 힘을 퍼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천의 질문에 늑대의 눈에는 오히려 즐겁다는 기색이 담겨있었다.

「뭐 별거 있겠나? 그럼 이 세상과 함께 죽는 게지.」

이미 자신과 친우들은 셀 수도 없는 시간을 살아오며 생과 사를 조율해왔다. 그런 자신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한,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를 통쾌하게 비웃으리라.

“...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꿀꺽...

유천은 늑대를 가만히 보다 구슬을 들고 그대로 삼켰다. 이것은 아티팩트가 맺어준 기연이었다. 별다른 대가도 없는데 굳이 거부할 이유를...

“이게 뭡니까...?”

그때 지금까지 뒤에서 가만히 있던 앙상한 나무의 모습을 한 신수의 뿌리가 스르륵 다가와 유천의 팔다리를 묶었다. 그것은 유천의 힘으로도 꿈쩍하지 않았다.

늑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 부작용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잖은가? 난동을 피우면 힘을 유도하는 데에 방해가 되어서 말일세.」

“그게 무슨...크으윽...!!”

갑자기 목부터 시작해서 온몸의 혈관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받아본 최악의 고통을 겪고 깨어난 게 금방인데 그건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죽을 만큼 아플 거긴 한데...뭐 죽진 않으니 잘 견뎌보게나.」

“이이!! 미친! 크아아아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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