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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이 마법이다-53화 (53/116)

〈 53화 〉 아티팩트(4)

* * *

유천은 몽키와 어미가 죽자 도망치는 그 새끼들도 모조리 죽인 후,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놈이 등장했을 때는 빨리 토벌해야 한다는 생각에 떠올리지 못했지만, 이만성의 반응을 보면 아마 몽키가 아니라 S등급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어미가 S등급에 그 새끼들도 B등급 괴수는 되어 보였는데 STM이 그걸 감지하지 못했다?

몽키가 은신형 괴수가 아닌데도? 누군가 개입을 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나…?”

유천은 괴수들을 도륙할 때 누군가 쳐다보던 시선이 느껴졌던 걸 떠올렸다.

당연히 흘려 넘겼다. 마치 지하주차장에서 흠칫하고 뒤를 돌아볼 때 같은 기분에 불과했었으니까.

“아니어야 할 건데….”

검은 선자들, 마사크레, 베렌듀크 벌써 이 뭐 만한 땅과 관련된 거대 세력들이 이 정도다. 여기서 더 뭐가 추가된다면 골치 아프게 된다.

유천은 더는 귀찮은 놈들이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며 해인사를 향했다.

*

속리산 어느 봉우리 세 명의 수상한 자들이 그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수상한가?

첫째 일단 이 위험지대로 등산을 오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다.

두 번째로는 그들이 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귀가 달린 검은 머리 여성 수인, 이마에 조그마한 뿔이 달린 하얀 머리 남성 용인족, 거기에 아예 인간과 다른 거구의 대머리 오크까지.

유천이라면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조합에 아르페부터 꺼내 들고 봤을 것이다.

그중 축 처진 강아지 귀를 가진 수인 여성이 이마에 손을 올리고 상체를 살짝 숙이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북슬북슬하면서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머리, 배꼽이 훤히 드러난 크롭티와 반바지 거기에 활동성이 좋아 보이는 군용부츠를 신은 여자의 패션은 얼핏 엉망인 것처럼 보였지만 시원한 외모가 그걸 조화롭게 만들었다.

그녀의 눈이 향한 곳에는 몽키를 전부 죽이고 나와 걷고 있는 유천이 있었다.

태생적으로 감각 스탯이 높은 수인족답게 보일만 한 거리가 아님에도 확실히 포착하고 있었다.

“선배님들…. 저놈 저거 뭐 하는 놈일까요?”

그녀는 30분도 안 된 과거를 기억하고는 경탄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휙 고개를 돌려 선배라고 부른 용인족을 쳐다봤다.

“멜데이아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뭘 말이냐 카렌?”

용인족 멜데이아는 젊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세월에 침전된 깊은 눈을 하고 있었다.

용인족에게 시간과 무력이 비례한다는 걸 고려하면 필히 강자일 것이다.

“에이~ 제가 뭘 물어본 건지 아시면서 그러시네~”

그러나 카렌의 부드러운 말투와는 달리 복슬복슬한 머리 사이로 비치는 샛노란 눈에 담긴 야성은 그녀 또한 만만치 않음을 증명했다.

“용인족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냐고요.”

멜데이아는 드라고니아 화이트 일족 출신으로 동족을 살해하고 쫓겨난 용인족이었다.

카렌은 용인족들이라면 타고나는 ‘역린의 감’이 수인인 자신과 같은 것을 느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꼈기를 바랐다. 그래야 회피한다는 선택을 할 테니까.

“첫 번째 지령이 저놈 때문에 무산되었지만…. 피하는 게 낫겠군.”

다행히 멜데이아는 싸우지 않겠다고 했다. 그 또한 자신과 같은 공포를 느꼈겠지. 카렌은 그다음 거구의 오크 기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마지막으로 엘테론 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무를 받은 멤버들이 만장일치로 불가(?)를 택하지 않으면 상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만약 그가 전투하기를 택한다면 꼼짝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뮬락제국 황실 기사 출신이었던 엘테론은 그녀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흐음….”

엘테론이 본 유천의 검술은 형편없었다. 아니 쓰레기였다.

근본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때그때 대응하는 본능적인 박자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막무가내.

그러나 강했다. 역사와 시간 그리고 천재들이 시체를 쌓아가며 만들어낸 기예가 아니다.

그보다는 힘이라는 관념의 실체, 원초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엘테론은 자신을 포함한 셋과 유천과의 전투를 잠시간 머릿속으로 그려본 후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겠군….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그 결과는 열에 아홉은 전원 말살이었다. 아직 두 번째 임무가 남았는데 고작 하나에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휴우~ 다행이네요. 설마 저 괴물하고 싸우자고 할까 봐 긴장했는데.”

카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괴수들을 찢어발기는 힘의 파동에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만약 이 고지식한 선배들이 놈을 죽이자고 했다면 유서부터 작성해야 했을 거다.

거기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고 할까요…. 이 첫 번째 지령…. 영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자네는 언행을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

“그렇지만…. 이런 일을 하려고 저는 흉성(??)에 들어온 게 아니었단 말이에요….”

멜데이아의 타박에 카렌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5대 빌런단체 ‘흉성’은 다른 단체에 비해 규율이 거의 없었다.

자유! 가문 원로들의 압박 아래에서 전사이자 후계자로 자라왔던 카렌은 그에 홀린 듯 가문을 등지고 흉성의 문을 두드렸다.

흉성이 지닌 암막은 정체 또한 가려주기에 정체를 걸릴 일도 없었다. 완전한 자유! 이제 숨어서 한동안 먹고 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가 없는 자유는 없듯 흉성의 멤버들은 1년에 한 번 정점인 8성(?)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그리고 카렌은 이번에 처음으로 임무를 받았다.

“이번에 환상이 모조리 깨져버렸달까요…? 역시 빌런은 빌런이다?”

처음으로 받아 본 지령서에 카렌은 인상을 구겼다. 몽키 그 역겨운 괴수를 최소 한 달간 이 땅에 숨겨놓으란 것이었기 때문이다.

목적은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알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한 그 괴수가 시간이 지나면 어떤 재앙이 될지 알면서 내린 명령에 그때서야 카렌은 자신이 어떤 집단에 들어온 지 깨달았다.

흉성이 상대적으로 악명이 덜해 착각한 것이다. 중앙세계 5대 빌런단체라는 이름은 그냥 붙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성정이었다면 이딴 대학살을 유도하라는 명령을 내린 흉성에서 벗어나 진작 튀었어야 정상이었지만….

“거기까지 해라 이것은 마르바렉님이 직접 하명하신 지령이다. 더 이상의 불평은 용납할 수 없다.”

“네…. 알고 있어요….”

흉성의 1성(?)이자 정점인 마르바렉의 명령을 무시하고 튄다면 그녀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문도 박살 나겠지.

그녀가 가문에서 나온 것은 자신을 말 잘 듣는 인형으로 만들려고 하는 원로들이 싫어서였지 남아 있는 식솔들은 소중했다.

“그래도 뭐가 어쨌든 이건 끝난 거죠?”

그래서 카렌은 저 괴물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이딴 임무를 거부할 명분을 만들어 준 것 아닌가?

“...그래 보고만 올리고 장소를 옮기지….”

멜데이아와 엘테론은 대놓고 좋아하는 카렌이 탐탁지 않았지만, 그녀의 은밀성과 정보 수집력이 이런 임무에 자신들보다 더욱 필요했다.

분위기를 흩트리면 곤란하니 정신교육 돌아가서 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두 남자의 불만 가득한 눈빛을 보지 못한 카렌은 두 번째 지령서를 펼쳤다.

“어디 보자…. 이건 4성(?) 마빈님의 명령이네요…. 실종된 흉성의 예비 병사들을 찾아라….”

흉성은 8성과 카렌같이 멤버로 들어오는 소수의 강자 그리고 그 아래의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흑마법사인 마빈은 흉성의 쓸만한 병사를 발굴하는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제법 잘 자란 병력이 실종되었으니 찾으라는 것이 두 번째 지령의 요점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각시탈이라고. 제법 유명한 빌런이네요.”

놈의 과거 행적을 읽어 내린 카렌은 인상을 썼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맞았어….’

그녀는 이번 일만 끝내고 흉성을 탈퇴해 그냥 가문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로들이 땍땍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지만 이런 찝찝한 일은 더는 사절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나?”

엘테론의 말에 카렌은 지령서를 빠르게 훑어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를 찾았다.

“음…. 일단 인천이라는 도시로 가보죠.”

흉성을 시작으로 유천이 뿌린 인과의 고리들이 슬슬 엮여오기 시작했다.

*

카렌 일행이 인천으로 떠났을 때 유천은 해인사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일주문 앞에 와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에 정말 그런 것이 있다고?”

썩어서 반쯤 쓰러진 입구는 굵직한 덩굴들이 타고 올라 사람이 들어갈 통로 역할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도대체 카이안 그놈은 여기에 무슨 호기심을 느껴 들어갔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평범한 폐허였다.

“그래 들어가 보자.”

귀신이 나올 거 같은 음침함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생각해보니 지금 와서 귀신 따위를 무서워하는 것도 우스웠다.

돌무더기가 된 계단을 올라 덩굴들을 찢고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똑같은데?”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자 양옆으로는 노랗게 죽은 나무들과 이리저리 부서지고 융기된 길이 보였다. 놈이 말한 멀쩡한 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 설마 구라친….”

두두두….

구라친거냐고 말하려던 유천의 발밑을 중심으로 부서진 바닥이 시간이 되돌아가듯 평평해지고 있었다.

점점 그 범위가 넓어져 죽은 나무들도 되살아났다. 수백 년은 살았을 거목들이 일순간에 자라난 것이다.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유천의 후각에 점차 절의 향내가 잡혔다. 차분히 둘러봤다.

칙칙했던 하늘에는 깨끗한 뭉게구름이 흐르고 있었고, 부서지고 썩어가던 사찰은 정갈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정말…. 판타지 세계에 온 거라는 실감이 드는군….”

어렸을 때 본 마법사 영화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그건 연출이고 이건 실제니까.

카이안의 말대로 해인사는 우리들이 있는 곳과는 다른 동떨어진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이 세계가 해인사 그 자체였다.

“나를 반기는 것 같군….”

시원하면서도 향긋한 바람이 양옆에서 불어오고 위에서는 적당하게 따스한 햇볕이 그를 비췄다. 유천은 이 사찰이 자신을 반기고 있다고 느꼈다.

휘이이잉~

양옆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유천의 등을 떠밀었다. 마치 안으로 들어오라고 이끄는 것 같았다.

그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걸었다.

뚜벅뚜벅….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정말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풍경들, 향긋한 내음, 고요하지만 외롭다기보단 평화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모든 속세를 버리고 이곳에서 멍하니 하늘만 보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벌려놓은 일들이 많았다. 그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혐오스러운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에 시간이 날 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데려오면 좋을 거 같았다.

유천이 상념에 빠진 상황에도 바람은 계속해서 그를 안으로 인도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석탑과 지금까지 본 건축물 중 가장 웅장해 보이는 대웅전이 보이는 데도 바람은 유천에게 계속 들어가라 하고 있었다.

“여긴...”

그 뒤 대웅전보다 웅장함은 적어보였지만 훨씬 넓어 보이는 목재 건축물이 보였다. 그곳에서 따스하게 좌중을 포옹하는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설마...여기가 장경판전...?”

유천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곳이 해인사의 모든 신비의 근원이라고 말이다.

끼익...

유천의 눈앞 나무로 된 문이 열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허...”

오래된 나무의 향이 유천을 덮쳤다. 마치 잘 관리된 고풍스러운 도서관 같았다. 책 대신 목판이지만 말이다.

더는 유천을 인도하는 바람은 없었다. 여기로 자신을 데려오는 것으로 역할을 끝마친 듯하다.

삼단 높이로 선반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꽂혀있는 목판들을 둘러보았다. 잘못 만졌다가 부서질까 손대기에는 조심스러웠다.

그게 아니더라도 뭐랄까? 손대면 때가 탈 거 같은 그런….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때...

띠링­!

“띠링...?”

주변 분위기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전자음이 유천의 귓가에 들렸다. 외부에서 들린 건…. 아니었다.

“...상태창...?”

띠링­!

[성혼들이 당신에게 가호를 내리길 바랍니다.]

[조건은 이 땅의 수호.]

[받으시겠습니까?]

[Yes / No]

“이런 가호는 또 처음 보네...”

짧고 간결했지만, 그 내용은 유천에게 적지 않은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창조주가 사라진 세상에서 시스템은 그 무엇도 개입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절대성을 지닌 법칙이다.

그리고 가호란 시스템이 각성자의 업적에 따라 일방적으로 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천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아티팩트란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건가…?”

그러나 저 짧은 문장은 팔만대장경이 시스템에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 법칙을 뒤트는 힘에 유천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러니까 위원회에서 기를 쓰고 아티팩트들을 봉인하려는 거겠지.’

“받아야겠지…?”

이 땅을 지키는 거야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그게 부담스러워서 받지 않는 짓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받는다.”

어차피 선택은 두 가지뿐 받는다와 받지 않는다. 이 땅을 지켜온 아티팩트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리는 없다. 유천은 담담하게 선택했다.

구구구궁...

장경판전 아니 해인사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든 목판에서 목련 향과 신성한 빛이 흘러나왔다.

해인사를 가득 채울 정도로 나온 빛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대단하군...”

장엄한 힘이 물결을 그렸다. 유천은 상상해 보았다. 저것이 살의를 품는다면 과연 자신이라도 멀쩡할 수 있을까?

‘대비를 해야겠어...’

유천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긴장시키고 있을 때, 합쳐진 빛이 여섯 갈래로 나뉘어 구체를 이루었다.

흑(?), 자(?), 녹(?), 황(?), 남(?), 백(白)

총 여섯 가지의 색을 띤 구체에서 신성함이 사라지고 각자 다른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유천을 축으로 돌며 그의 몸을 툭툭 두드렸다.

‘경계를 풀라는 건가…?’

그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힘에 반사적으로 긴장하고 있던 유천은 구체에서 해를 끼치려는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 몸을 이완시켰다. 그러자마자 여섯 색상의 구체들이 순식간에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받아들인 힘. 유천은 그저 나타날 반응에 대비하며 주먹을 쥐었다.

고요히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는 몸을 훑었다.

‘음…. 아무렇지…!’

두근­!

“큭­!”

유천이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려던 순간, 심장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무언가 지지고 있는 느낌. 백색마왕을 상대할 때 느꼈던 아픔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씨발... 아프면 아프다고…! 크으윽­!!”

치이이익...

저 고기를 태우는 소리는 귀가 아니라 유천의 정신에서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힘은 자신이 지닌 회복력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낙인을 혼과 심장 둘 모두에 새기고 있다는 것을.

털썩­!

“크으으…!”

유천은 주저앉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떨었다.

.

.

.

.

“허억...허억...”

띠링­!

억겁과 같은 1분이 흐른 후 더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쯤 되어서 짜증나게 경쾌한 전자음이 머릿속에 울렸다.

[특수가호......]

‘썩을...읽어야 하는...’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고 시스템을 열었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유천은 풀썩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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