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아티팩트(2)
* * *
카이안은 정착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던 과거를 떠올렸다.
아직 어렸기에 가문의 재건보다는 생존을 택해야 했던 때라 유르힘과 안정적인 은신처를 찾아다녔고, 그러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한반도로 넘어왔었다.
주변의 눈을 속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유르힘은 그때도 강자였고, 기상천외한 마법을 다루는 마녀 네블라 또한 함께 했었으니까.
‘뭐...지금은 죽어버렸지만...’
그 또라이 같은 성향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가신이라고, 눈앞에 팔짱을 낀 유천이라는 재앙에 찢겨 죽은 그녀를 생각하면 제법 씁쓸하기는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일단 눈앞 괴물의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베렌듀크를 위해서 말이다...
“적당한 은신처를 찾아 돌아다닐 때 합천이라고 불렸다던가? 아무튼, 거기서 우연히 어떤 사찰을 발견했소.”
겉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쓸쓸히 먼지와 재만 뒤덮인 곳이었다. 하지만 카이안은 거기에 왠지 모를 호기심을 느껴 안으로 들어갔고 눈을 의심했다.
“그 사찰, 해인사 안은 마치 홀로 독립된 세계처럼 보였소.”
외부에서 볼 때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폐허의 모습이었던 것과는 달리 막상 안으로 들어간 그곳은 깔끔하게 관리되어 향긋한 풀 내음과 절 특유의 향내를 풍기고 있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마치 무릉도원 같았다.
“같은 세상에 있으면서도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 같은, 한 번도 보지 못한 특이성에 흥미를 느껴 우리는 그곳을 조사했고, 그 원인이 되는 장소를 찾았지.”
“장경판전?”
아까 팔만대장경이라고 한 것이 떠오른 유천이 물었다.
“그렇소.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공간. 그곳이 모든 특이성의 중심이었지.”
“그게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유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만대장경, 다른 말로는 재조대장경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고려 고종 23년부터 38년까지 몽골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피지배 지배계층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의 응원을 받은 승려들이 만들어낸 8만여 장의 대장경이다.
유천도 더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한국의 대단한 국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홀로 독립된 차원을 만들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만한 사연을 지닌 유물이 팔만대장경만 있을 리는 없지 않나?
“대단한 유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소. 애초에 그건 뭐라 정하기 모호하지.”
“그럼?”
“흑마법사나 생명을 재료로 하는 주술사의 의식용 예장 단검에는 깊은 원한이 서리고 그 성질이 변하기도 하지. 아티팩트 또한 이와 비슷하오. 마나가 선택하는 것은 유물의 역사적 가치나 사연이 아닌 깊은 감정이나 의지 같은 것이요.”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고 흐른다. 그것은 감정이나 의지 또한 마찬가지.
그런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의 흐름을 견디고도 남을 정도로 강렬한 사념이 물건에 깃들어 있을 경우, 중앙세계와 연결이 되어 마나가 차원에 흘러들어와 깃들면 아티팩트가 된다. 그 물건의 내구가 견뎌줬을 때 말이다.
즉,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돈이 되면 모든 탐험을 개의치 않는 보물 사냥꾼들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면 말 다한 것이다.
“그래서 경악하였지 그곳에 있는 목판본들이 전부 아티팩트가 되어있었으니 말이오.”
“뭐...?”
“정확히는 그 8만여 개의 아티팩트들이 모여 해인사라는 거대하고도 위대한 마스터피스를 이루고 있었지.”
한 두 개라면 모를까 거기에 있는 것들이 모조리 아티팩트가 되었다는 말에 유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거기다 그것들이 하나를 이루고 있다니...유천은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할지 쉬이 짐작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걸 지금까지 가만히 뒀지?”
팔만대장경이 어떤 사념이 담긴 아티팩트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중앙세계에서도 쉬이 볼 수 없는 힘일 것이다.
그럼에도 카이안이 그걸 손대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가문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인데도 말이다.
“손대지 않은 게 아니오...손댈 수 없었던 것이지...”
카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유산은 이미 오로지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작동 중이었던 것이었소. 감히 손을 대려 하면 그것은 나와 수하들을 죽였겠지.”
“목표?”
“해인사, 정확히는 목판본 하나하나에 공통적으로 한 가지 절대적인 오더가 내려져 있었소. 아니 오더라는 말은 잘못되었군. 소망이라고 해야 할 것이오. 그건.”
거기에 담겨 있는 소망은 수호(??), 고려를 넘어 조선 그다음 한(韓)까지 이 땅의 핏줄을 지키고 싶다는 숭고한 집념이었다.
미지수 그 자체인 힘이 지구도 인류도 아닌 한반도만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지금까지 이 땅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몇 번이나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일으켰소.”
“그런 적이 있다고?”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일어났다면, 분명 폴른의 정보에도 있었을 것인데, 유천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소. 한 가지 예를 들면...북한산 던전 폭발 사건...... 그게 정말 운이 좋았던 일이라고만 생각하시오?”
“......그럼 아니란 거야?”
유천은 눈을 찡그렸다.
그럼 24개의 던전이 동시 발생 후 자기들끼리 자멸해 연쇄 폭발한 사건이 팔만대장경의 힘에 의해 일어났다는 말인가?
“그렇소. 리브레스 교수회 던전학 수석교수 아우츠 박사의 논문을 보면 실질적으로 3개 이상의 던전이 한데 모여 자멸할 가능성은 없다고 하오.”
“......”
고작 플레이어에 불과했던 유천은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라스트 레거시의 설정을 좋아한다고 해도 거기에 있는 논문들까지 섭렵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근거는...?”
“그 논문에 따르면 던전끼리 자멸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오. 첫째로 그 둘이 인접한 공간에 있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마나 밀도가 완전히 같아야 하지.”
“이때 마나 밀도가 완전히 동등하다는 건 정말 최대로 봤을 때 소수점 두 자리까지 같아야 한다고 하오.”
‘최대가 만분의 일이라는 건가...? 말도 안 되는군...’
“그 논문의 예로 들면 두 개의 던전이 인접했을 때를 가정하고 서로 자멸할 확률은 최대를 따져도 일 억분의 일이오. 그런데 2개도 아니고 24개의 던전의 밀도가 동일해서 서로 자폭한다? 한 번 그 경우의 수를 계산해 보시겠소?”
‘만의 24승분의 일이라... 그건 이미 확률이 아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군...”
“그렇지 그건 이미 행운이 아니라 필연이오.”
즉, 카이안의 주장은 아티팩트가 된 팔만대장경이 한반도의 살아있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조작을 가해 던전들을 한곳에 모아 폭발시켰다는 것이다.
‘이상하긴 하네...’
그 던전들에서 뭐가 튀어나올지는 모르지만, 24개의 던전이 일시에 아웃 브레이크 했다면 한반도의 존망을 건 싸움을 해야 한 건 분명했다.
허나 그것들이 북한산과 함께 폭사하면서 재산상의 피해를 제외한 어떠한 희생도 남기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뿐이 아니...”
“그만, 네가 팔만대장경을 칭송하는 이유는 알겠어.”
눈에 보이는 형이하학적 현상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운명을 뒤트는 힘.
13위원회가 알았다가는 기겁하며 지구 전체를 통제구역으로 지정해버릴 정도로 엄청난 거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이것과 네가 한국을 흔들려고 한 거랑은 뭔 상관이냐?”
팔만대장경도 흥미롭고 대단한 건 알겠지만, 유천은 우선 카이안의 목적을 알 수 없는 움직임부터 듣기로 했다.
“세상의 흐름조차 뒤집어 민족을 지키는 힘......우린 거기에 매료되어 여명에 뿌리를 틀고 연구를 진행했소.”
카이안이 여명에 뿌리를 튼 이유도 합천에 있는 해인사와 가장 가까운 대도시가 대구여서였다.
“그리고 연구 끝에 한 가지 가정을 내렸소. 그 사찰은 이 땅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 후 위기라고 판단할 시, 그에 맞는 대응책을 내놓고, 실행하는 고도의 인공지능 사상정보체일 것이라고 말이오.”
카이안은 북한산 던전 폭발 같은 큰일이 아니더라도 기적의 흔적을 한반도에서 여럿 발견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이것이 한반도 내에서의 일만큼은 모두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말이다.
“거기서 우린 한 가지 힌트를 얻었소.”
“무슨 힌트?”
“한반도의 모든 일에 대응할 수 있으면 어째서 남한은 멀쩡한데 과거 북한은 멸망했을까?”
‘그것도 그러네?’
설마 아티팩트가 북한의 인간들은 중국의 하수인이므로 더는 한 민족이 아니라는 그런 판단을 내렸을 것 같지는 않았다.
“북한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아시오?”
“걔네는 자멸했잖아.”
폴른의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읽어낸 과거 북한은 각성자들이 생기자 혼란이 생기고 그 사이 군벌세력이 수뇌부를 죽이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공석이 된 정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지네들끼리 싸우다 결국 핵폭탄을 터뜨려 멸망했다.
‘병신 같은 놈들이지.’
유천은 그 기록을 봤을 때 권력에 집어삼켜 진 자들의 말로라고 생각하며 반면교사 삼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지 그들은 자멸했소. 그리고 우린 그걸로 확인할 수 있었소. 이 땅을 지키는 유산이 완전무결하지 않다고 말이오...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지......”
카이안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그 강력한 유산에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 입을 열려다가 눈을 감았다.
‘이걸 말해야 하는가...?’
그는 망설였다. 이것에 대해 말하면 카이안 자신이 생각해도 악질이라고 생각할 만한 행동을 유천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그가 자신을 살려둘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말을 안 해도 죽는 건 마찬가지인가...?’
거짓말도 소용없었다. 노예계약을 맺은 후에 거짓이 들통 난다면 명분을 얻은 유천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다.
“뭐야? 왜 얘기하다가 말아? 약점이 뭔데?”
갑자기 입을 멈춘 카이안을 향해 유천은 인상을 구겼다.
‘어쩔 수 없군...’
결국 카이안은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떨리는 입을 열었다.
“그것은......바로......지켜야 할 존재들끼리의 내분...... 팔만대장경은 거기에 대응할 수 없었소. 일종의 오류였지... 그리고 오류가 존재한다면...그 틈을 노려 장악할 수 있지 않을까...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소...”
“내분...? 잠깐...너 이 새끼 설마...!”
“크윽!”
그 말을 들은 유천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바뀌며 눈에서 살기가 폭사 되자 카이안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무시하고 유천은 자신이 잘못 생각해봤는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저 새끼 말대로라면 아티팩트가 된 해인사의 역할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생존...거기다가 놈이 마치 한국에서 길드와 협회를 흔들어 내전을 일으키기 딱 좋은 구도로 만든 것을 대입하면...’
“하...! 내가 오해한 게 아니었네? 이거 완전 악마 같은 새끼들 아냐?”
“......부정하지는 않겠소...”
유천은 이제 완전히 알았다. 카이안의 행보에 목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었지.
‘그니까 이 또라이 새끼는 지금 한민족끼리 분쟁을 일으켜 아티팩트의 존재의 근간을 흔들어 빈틈을 드러냈을 때 그걸 장악하려고 했다?’
유천은 카이안이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가만히 노려봤다.
‘와...시발 진짜 중앙세계 출신답게 미쳐있는 놈이었네 진짜...’
개인의 목적을 위해 수십 수백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천은 저것이 충분히 중앙세계 권력자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시발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유천은 웃었다. 이건 일종의 비즈니스였다.
“오...! 역시 당신 같은 강자라면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소.”
유천이 표정을 풀고 웃자, 카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놈도 나한테서 얻을 것이 있다는 것이겠지...’
결국 놈도 베렌듀크의 후계자인 자신에게 얻을 게 있다는 것이었다.
강자는 대우받는 세상에서 지배하는 자에 가까운 유천이 감정적인 선택이 아닌 이익을 택할 거라는 자신의 도박이 맞아떨어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시발놈이 이해는 무슨...’
물론 유천이 생각하는 비즈니스는 카이안의 생각과 달랐다.
유천이 웃어주며 관대한 척을 한 이유는 놈에게서 뜯어먹을 것이 많았기 때문인 것까지는 카이안의 생각이 맞았다 하지만...
‘계약 주재자? 시발 그놈이 백색마왕보다 좆 같을까?’
유천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계약 주재자를 박살 내고 카이안 또한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고 하나도 넘겨주지 않는다. 그것이 유천이 생각한 비즈니스였던 것이다.
‘뿌리까지 죄다 뜯어먹고 그때 죽여주마.’
웃고 있는 유천의 눈동자가 시린 빛을 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