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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이 마법이다-47화 (47/116)

〈 47화 〉 여명(6)

* * *

콰과광­!

‘무식한 힘이군.’

카이안은 유르힘과 킬리언의 싸움을 냉정하게 바라봤다.

‘시간이 지나면 유르힘이 이기겠어.’

신체능력이나 반응속도는 분명 킬리언이 더 높았다. 하지만 충분히 유르힘이 적응할 수 있는 정도.

그의 검술이나 예지에 가까운 직감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카이안은 분석했다.

“문제는 이쪽이다...”

저쪽이 충분히 적응 가능한 상대라면 이쪽은 그렇지 않았다.

결전기급의 기술도 아닌 일반적인 아니 그 이하인 조잡한 베기로 이곳을 초토화 시킨 괴물이 눈앞에 있었다.

만약 그때 유르힘이 본능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가지 않았다면 이곳의 모두가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테지.

“음...기사님은 저 괴물 여자와 싸우느라 바쁜 거 같아 묻지 못하겠고...그쪽 도련님께서는 어찌하실 겁니까?”

“뭘 말이냐 천한 것아.”

“귀족분이시군...아 베렌듀크의 후계자라 하셨던가? 귀족이 아니라 황족이나 다름없는 분이셨구려 허허...”

“......비아냥거리지 말라 그 목을 날려버리기 전에 말이다.”

“허허허...그럴 수 있겠습니까?”

로먼은 카이안을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비웃으며 유천에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 괴물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쪽들만으로 살아남을 수나 있으시겠소?”

“......”

로먼이 가리킨 곳에 있는 유천은 킬리언의 싸움을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었다.

‘시건방진 놈...’

빠드득...

마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유천의 태도에 카이안은 굴욕감을 느꼈다.

“이보시오 도련님 지금은 그런 감정 소모할 상황이 아니오. 어떻게 할지 빨리 작전을 짜야지.”

“......천박한 용병놈이......”

고귀한 베렌듀크의 후계자인 자신이 일개 용병놈과 말을 섞어야 하는 이 상황이 참으로 비참했지만 일단 지금은 놈의 말대로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네놈이 생각하는 방법은 뭐냐?”

“일단 방향성을 잡아야지 않겠소? 싸울 것이냐...항복할 것이냐...말이오...”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항복은 없다.”

“후우......그럼 싸우는 방법밖에 없겠구려...그럼 일단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소.”

로먼의 말은 이러했다.

놈에게는 스스로 건 제약이 있다. 결계를 부수지 않기 위한 힘의 조절, 그리고 카이안의 생존이라는 제약 말이다. 거기에 맞춰 전투를 질질 끌어간다.

그러다 놈의 긴장감이 풀리는 때에 기동력이 빠른 병력 넷을 전후좌우로 치고 들어가 급소를 일제히 찔러 죽인다고 말이다.

그걸 들은 카이안은 생각했다.

‘허술하기 짝이 없군...’

도저히 전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놈이 자신을 죽이지 않기 위해, 그리고 티보치나가 친 결계를 부수지 않기 위해 힘을 조절하는 것을 믿고 싸우겠다니...

이곳이 무슨 룰이 있는 링 위 인줄 안단 말인가?

하지만...그 따위 방법 말고는 카이안의 머리로도 어떻게 할 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 은발 여자를 어떻게 하는 건...”

대가문의 후계자로서 제안하기에는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저도 그것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도련님...정말 모르는 것이오...?”

“......내가 실언했군...”

‘놈이 정한 판에서 놈을 죽여야 한다.’

카이안은 오만하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더 이상 이곳은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 전장이 아니다.

놈의 광검(??)이 이 공간을 어떻게 찢었는지 목도한 이상, 그리고 그 당사자가 스스로의 힘을 제약하기로 한 이상 이곳은 명확한 규칙이 존재하는 체스판이 되었다.

‘단순하고도 어려운 게임이군...’

규칙은 간단했다. 우린 오로지 유천 저 자만 상대하면 된다.

그 규칙을 거부할 수 없다.

만약 저 연인으로 보이는 여자나 티보치나를 어떻게 하려고 한다면 저 자는 스스로에게 건 목줄을 전부 끊어버리고 판을 부술 것이다. 그러면 남은 것은 몰살뿐이다.

그 둘은 이 데스게임의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오. 놈은 분명 공격에 대응했소. 분명 상처를 입기는 한다는 것 아니겠소.”

‘그렇겠지.’

유천은 분명 에드윈의 공격에 급하게 대응했으며, 유르힘의 공격은 그의 동료 여자가 직접 나서서 막았다.

‘저 말도 안 되는 공격력에 비해 저 육체의 방어능력에는 어느 정도 하자가 존재할 것이 분명할 터다.’

오해였지만,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직접 유천의 몸에 칼침을 박아본 것은 아니지 않나?

“도련님......슬슬 준비해야겠소...”

로먼의 목소리가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악마가 슬슬 이쪽에 신경을 쓰려는 것 같으니 말이오...”

유천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킬리언에게서 나머지 인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계획을 제대로 짤 시간도 없군...’

“네놈의 계획대로 하지...”

본래의 그라면 용병이 세운 계획 따위를 따르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규격외의 강함이 그의 오만함을 밟아 뭉개버렸으니까.

“알겠소 그럼...패릭슨!”

“네 팀장님 전원 준비 마쳤습니다!”

“그럼 1단계를 시행해라!”

“네! 이놈들아! 저 괴물을 묶어!”

““네!””

부팀장인 패릭슨의 휘하에 있는 마법사와 주술사들이 진작 메모라이즈 시켜놨던 마법과 주술을 일제히 발동시켰다.

[스웜프 타임!]

[그래비티 존!]

[소한형 주술식 – 봉계(?)]

유천의 대지가 흐물흐물해지며 발을 삼키고 동시에 위에서 몇 배는 거대해진 대기의 압력이 그를 늪 안으로 짓눌렀다.

끼부루에엑­­!

그리고 유천의 머리 위로 거대한 닭의 머리가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녀석은 닭과 같은 조류가 아니다.

놈들은 아니 놈은 조류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한 개체의 오버 마인드의 통솔을 받는 수천만 구속형 촉수의 군집체.

즉, 오로지 상대를 묶기 위해 태어난 봉인 생명체이다.

까루붸에엑­­!!

봉계가 소리를 지르자 주둥이에서 수천수만의 촉수들이 내려와 유천의 몸을 휘감았다.

마지막으로...

“네블라!”

“네 주군!”

[ (17 비석의 저주)]

쿠구궁...

마녀의 마법이 유천의 전 방향을 덮는다. 열일곱 개의 불길한 글이 새겨진 보랏빛 비석들이 유천을 중심으로 솟구쳤다.

우우우웅...

그 후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마력 파동을 뿌리며 17개의 저주로 오로지 하나를 압박한다.

랭커급 강자들이 온갖 억제기들을 퍼붓는 모습은 도저히 한 인간이 아닌 초거대 괴수를 상대하는 듯했다.

“1단계가 끝났다! 놈을 중심으로 돌며 공격을 퍼부어라!”

하지만 이 도시 하나를 녹일 정도의 힘의 결집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뒈져라!!!”

[거화(巨火) 11형(?) ­ 브레스]

패릭슨의 양손에 압축되어있던 화염의 구체가 목표를 향해 용의 숨결로 발출되었다.

화르르륵­­!!

콰과광­­!

대지와 공기층마저 녹이며 나아가 정확히 유천이 있는 곳을 타격했다.

쉬이익­!

그 후 곧바로 유르힘의 부관 급 기사 다섯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군대의 제식 동작보다 정확한 호흡과 동작으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클라디우스 융합 검기 – 오랑비(五??)]

채채채챙­­!

하나로 합일된 검기의 발톱이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대지의 일점을 강타했다. 정확히 패릭슨의 브레스가 타격한 지점이었다.

마녀의 내부를 봉인하는 비석의 특성 상 빠져나오지 못하는 검기와 화염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 그 자체. 하지만...

“아직 장담 못하오...”

“알고 있다.”

그들은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저 괴물이 마사크레의 봉쇄를 아무 피해도 없이 부수고 나왔다는 것을.

“그럼 다음으로는...”

“아...아아...!!”

그때 비석들을 통제하고 있던 네블라가 망연자실하게 그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 나와...!!”

“네블라! 뭔 소리...”

“나, 나와요!! 아, 안 돼!! 깨진다!!”

쩌저적...

빠르게 회전하고 있던 보랏빛 비석들에서 불길한 파열음이 들려오고, 그 후...

콰과과과광­­­!!!

거대한 폭격음과 함께 비석들은 부서지고 화염은 하늘로 솟아올라 결계에 부딪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터벅터벅...

““......””

타다닥 장작 타는 소리만 들리는 공터에 붉게 달아오른 대검을 든 인영의 발걸음 소리만이 들려왔다.

“우웁...우웨에에엑!!”

마력의 반동으로 피를 토하는 마녀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신경 쓸 수 없었다.

“이...이, 이런...시발...”

로먼의 안색이 파래진다. 카이안조차 식은땀을 흘렸다. 그 자리의 모두가 한 발자국 물러난다.

아마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래도록 악몽에 시달리겠지.

흉측해서, 끔찍해서 아니다. 전쟁꾼들인 이들이 그런 것에 두려워할 리는 없다. 그저...

“다 타버렸군.”

저 목소리가...너무도 평온해 보여서다...

입고 있던 양복은 모조리 타버렸다.

그 안에 받쳐 입은 5000도 이상의 열에서 견딜 수 있다는 SRB 마테리얼 슈트는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오른손의 아르페는 보구급 명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끼리릭... 쇠울음을 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허나 그 당사자는...

“제법 따뜻했어.”

따뜻하다니...용암 속에서 수련한다는 드라고니아의 레드 일족도 저걸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허세 일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로먼이 빠르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저 지옥 구덩이에서...저리도 멀쩡하다고...?”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화상의 흔적은 없다. 전혀 달아오른 흔적 또한 없고, 머리끝 하나 타지 않았다.

죽었을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저런 멀쩡한 모습을 생각하지 않았다.

‘항복하세요. 제 주인님은...괴물...재액(災?)이에요...다가오면 그저...굽히고 지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카이안의 머리에서 유르힘이 전해주었던 티보치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티보치나... 네 말이...맞았군...”

저건 아르벨라 아니 그녀를 포함한 중앙세계에 존재하는 다섯 초월자들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18살의 나이에 흑경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20살에 위원회 전(?) 제 1 기사단장의 두 눈을 뽑은 무신(??) 아르벨라 반 엑시르.

검은커녕 식칼 한 번 잡아본 적 없던 마헬 제국의 일개 자작가의 여식으로서, 그것도 열 살의 나이에 소드마스터의 목을 잘라낸 중천(中?)의 검 카트레나 론 다브디엘라.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실수로 탄생한, 아니 신이 낳은 것이 맞을까?

애초에 신이 되기 위해 태어난 자들이 아닐까 싶은 괴물들. 고유천, 저 자도 그것들과 같은 존재였다.

“다 했으면 이제 내 차례네?”

두두두두...

“젠장! 전투 준비!”

그저 앞으로 뛰기 위해 상체를 숙인 것에 불과함에도 땅이 울린다.

“흩어져라! 결코 놈의 정면에 서지 마라!”

평타임에도 클라렛급 던전 보스의 광역기 수준의 위력이 나온다. 닿는 즉시 즉사다. 아까와 같은 행운은 더 이상 없다.

콰아아앙­!

유천이 땅을 박찼다. 대지와 소리의 층을 밀어내며 도달한 곳은...

“이런 젠장!”

“패릭슨!”

마사크레의 부팀장 패릭슨의 측면이었다. 자세는 뻔했다.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사선을 그어올 것이다.

본래라면 피했을 테지만 저건 못 피한다. 공간 째로 압살 당한다.

[거화(巨火) 3형(?) ­ 진홍의 창]

혹시나 싶어 준비했던 자신의 최대 공격기를 순식간에 투척했다.

‘밀어낸다!’

이것으로 죽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벗어날 공간만 만들어내면 된다.

다행히 놈은 빠른 속도로 움직인 것으로 인해 균형이 무너져 오른발로만 땅을 지탱하고 있었다.

‘살 수 있다!’

이번 의뢰를 마지막으로 동생의 빚을 갚을 수 있다!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려면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5m 길이의 불의 창이 엄청난 속도로 유천의 복부에 닿았다.

‘됐ㄷ...’

사선(??) 베기

촤아아악­! 콰과과광!!

‘어째서...?’

상체가 소멸된 채 점차 사라져가는 의식 속 천천히 흘러가는 시선에 땅바닥에 발가락이 박힌 유천의 발이 보였다.

‘말도 안 돼...고작 발가락으로...’

자신의 최고 공격을 오로지 발가락의 힘만으로 버틴 채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손...’

자신의 동생의 이름을 떠올리던 패릭슨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네가 가장 짜증났어.”

사우나도 오래 있지 못하는 유천의 입장에서는 저 불을 쓰는 초능력자의 공격이 가장 답답하게 거슬렸다.

“일단은...용병놈들부터 치우자.”

쇄애액...콰아앙­!

유천은 잔상을 남긴 후 소닉붐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마사크레의 용병들을 죽여 갔다.

“크아악!”

횡(?) 베기

촤아악­!

검사인 자에론이 검 째로 썰렸다.

“아, 안 돼! 으아악!”

종(?) 베기

콰아앙!

주술사인 메로안이 좌우로 갈라진다.

“사, 살려­!”

사선(??) 베기

콰과광­!

마법사인 노판은 방어술식과 지팡이 째로 터져나갔다.

일격일살, 어느 누구도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유천은 인지조차 힘든 고속으로 다가가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전열을 가다듬지 못한 모든 용병들을 하나 둘 다양한 방식으로 베어버렸다.

털썩...

“이, 이게...”

자에론, 노판, 메로안, 에단, 포드, 로안, 이반......

로먼은 전투를 대비하는 것도 포기하고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 자신의 팀원들이 하나 둘씩 절망 속에 죽어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봤다.

인간으로선 쓰레기에 가까운 녀석들이었다. 마사크레에서 정예 용병이란 그런 의미니까.

하지만 놈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는 인간이었다. 가혹한 전쟁터에서도 저렇게 삶이 무가치하지 않았다.

허...허허허...!

어린 아이 개미 으깨듯 죽어가는 팀원들을 황망히 쳐다보던 그가 고개를 숙이고 실성한 듯 웃었다.

“내가 착각했군...”

로먼과 카이안은 착각했다. 이곳은 유천이 정한 체스판이 아니었다. 그저 처형장이었다.

그를 적대한 순간, 아니 이곳에 그가 나타난 순간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저벅저벅...

끈적한 발걸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피에 절어 쩌억 쩌억 달라붙는 그런 소리가.

“넌 왜 도망 안가냐?”

여상한 어조, 그 목소리에 무심코 어릴 적 국경지대에서 같은 전쟁고아 놈들끼리 술래잡기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몇 안 되는 좋은 기억이었다.

‘주마등인가...?’

무거운 고개를 들어올렸다. 피 칠갑을 한 재앙이 눈에 들어온다. 로먼은 텅 비어버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저기 구석에서 모여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는 카이안의 일행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체조차 남지 않았다. 인식표도 남지 않았겠지...모든 게... 무가치했다.

‘의미 없군...’

저 카이안 일행도 의미가 없었다. 개미들끼리 집개를 벌리며 위협을 한다고 어떤 인간이 두려워하겠나? 보거라. 이 자는 신경조차 안 쓰고 있지 않나?

고개를 원점으로 돌렸다. 로먼은 인간의 형상을 한 재앙을 향해 힘없이 입을 열었다.

“......죽음을 어찌 생각하시오?”

“죽으면 죽는 거지 뭔 개소리야?”

“흐흐...그 말이 맞소... 뒈지면 그냥 뒈진거지...”

유천은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표정을 보고 로먼은 해탈한 듯 웃었다.

용병생활을 하는 동안 어차피 언제나 죽음을 각오했다.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을 뿐이지.

‘누구도 보험금은 타지 못하겠군...’

아마 이탈 처리될 거다. 그게 마사크레의 처리방식이었으니... 뭐... 상관없었다. 어차피 챙길 사람도 없었으니...

지금은 그저...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명계의 고리를 타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그건 또 무슨 저주냐?”

“그냥...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윤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오.”

지금 중앙세계는 아슬아슬하게 터지기 직전의 화약고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이런 존재의 등장은 끄트머리만 남은 도화선에 불을 지피는 게 되겠지.

‘또 다시 아비규환이 된 세상에서 태어나고 싶지는 않군...’

시체 구더기를 주워 먹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유천에게 목을 들이밀었다.

“깔끔하게 죽여주시오...시체라도 남겼으면 싶군...”

“그래...잘 가라.”

촤아악­!

‘다음 생에는... 평화롭게 양치기나 하며 살았으면...’

로먼은 꺼져가는 눈빛으로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툭...털썩...

유천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피를 쏟아내는 로먼의 몸을 가만히 내려다본 후 몸을 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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