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35화 (35/116)

〈 35화 〉 백색마왕(2)

* * *

주령의식은 주술사의 금기다.

본래 주술사는 상상계의 존재와 계약을 맺어 그 힘을 빌려온다. 거기서 주술의 주체는 주술사이다.

즉 상상계의 존재가 현세에 나오려고 해도 주술사의 의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다. 그것이 주술에서 가장 당연시 되는 원칙이다.

하지만 주령의식은 다르다. 주령의식에서는 주술사는 일종의 통로다.

상상계와 현계를 직접 연결시켜주는 역할로, 소환체는 주술사의 힘으로 완전한 힘을 현계에 구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면 그저 주술사가 어느 정도 후유증을 가지는 주술의 일종이었겠지. 금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주령의식이 금기인 이유는 주술사에게 가장 당연시 되는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즉 주술사가 소환체와 맺은 계약을 맺은 시점에서 절대 갑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 상상계의 존재들은 현세에 살아가는 자들의 소망에 의해 탄생한 자들이다. 그래서 놈들은 언제나 현세를 갈망한다.

즉, 만약 소환체가 주술사의 역량을 훨씬 능가하는 존재라면 그들은 억지로 통로를 구상하여 세상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컥...커걱...어, 어째서...”

“보스!!”

주령의식, 주령의식을 통한 소환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젊은 고위주술사의 오만함, 주술사와 소환체의 격의 차이, 소환체의 본능. 그 모든 것들이 지금과 같은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빌어먹을...”

유천은 공중에 뜬 채 눈을 뒤집고 있는 티보치나와 그녀의 배를 뚫고 나온 것을 봤다.

얇은 팔. 그 위로 징그러울 정도로 솟구친 핏줄. 기괴할 정도로 하얗고 기다란 팔까지. 이 엿 같은 상황에 유천은 이를 갈았다.

‘젠장! 고위주술사랑 백색마왕이 주령의식을 치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알았어야 했는데!’

아마 놈은 저 편에서 유천과 티보치나의 대화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자신이 나올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강제로 통로를 연 것이었다.

“킬리언!”

­왜 그러나 유천?

“빨리 이 공방에서 나가.”

­저건 어떻게 하려는 건가 그럼?

“...내가 상대할 거야...”

­괜찮겠나...? 유천 그대도 강하지만...저건 그대 못지않게 위험해 보인다만...

“......위험한 거 맞아.”

­그럼 지금 다 나오기 전에 죽이면 안 되나?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티보치나와 백색마왕은 이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 둘은 지금 상상계와 현계 그 사이에 존재한다. 유천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없는 것을 부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킬리언 지금 당장 지상으로 올라가서 지연씨와 하연씨에게 인천에서 최대한 멀어지라고 해줘.”

주술사를 플레이해본 유천은 저 백색마왕이 어떤 존재인지 안다. 그리고 저걸 제때 제압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도 말이다.

‘저 놈이랑 몇몇 놈들이 주령의식으로 소환된 걸로 인해 중앙세계 멸망 엔딩을 몇 단계 앞당긴 적이 있어...’

물론 그때보다는 상황이 낫다. 그때는 주령의식을 치룬 주술사가 대주술사였다는 점과 아직 때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킬리! 빨리 올라가!”

­...죽으면 용서 안 해...

단 둘이 있지 않으면 해주지 않는 말투와 원망 섞인 눈동자를 보니 유천은 웃음이 나왔다.

“살아서 돌아갈 테니까 올라가서 대피해”

­알았어...

그렇게 킬리언이 문밖으로 나가는 걸 지켜볼 때 뒤에서 툭 소리가 났다.

그곳에는 기절한 채 둥둥 떠 있는 티보치나와 황망한 표정을 지은 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빌런들 그리고 백색 거체가 8개의 날개를 편 채 서있었다.

2m는 넘을 큰 키, 살점하나 없는 얇은 신체와 기과할 정도로 긴 팔다리 , 그에 비해 큼지막한 손과 발. 얼굴에는 눈코입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다.

‘백색마왕...’

모니터 너머로 본 괴물이 유천의 눈앞에 강림했다.

“유천 공! 저게 도대체...!”

“야 쓰레기들!!”

유천은 데이브를 무시하고 공방에 있는 빌런들에게 입을 열었다.

“뒈지기 싫으면 너희도 킬리언 따라서 나가!”

“그래도 되겠소...?”

유천은 이놈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서 먼지처럼 죽는 것보다 노예로 부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일단 살리기로 했다.

“킬리언 잘 따라다녀. 명심해 도망가면 이 나라 빌런새끼들 죄다 찢어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 찾아낸다.”

“...명심하겠소.”

“그래 그리고 거기 너! 하프엘프!”

유천은 티보치나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카야를 불렀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래 거기서 그 지랄한다고 네 주인 안 깨어나니까 쟤들 따라서 꺼져”

“방법은 있는 겁니까?”

“저 새끼 때려잡으면 돼.”

유천은 강제로 통로를 연 여파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백색마왕을 가리키며 말했다.

“니들 하나도 도움 안 되니까 얼른 꺼지라고 알았어?”

“...주인님을 부탁합니다.”

“지랄 말고 사라져. 아 그리고 저기 저 사람들도 데려가 만약 한명이라도 죽으면 너흰 스무 명이 죽는다.”

유천은 희미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협회 공작원이 든 포대를 가리키고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꺼져.”

“예 무운을...”

유천의 힘을 봐서 인지, 아니면 저 하얀 괴물의 불길함을 읽어서 인지 빌런들은 유천의 말에 얌전히 킬리언을 따라 사라졌다.

빌런들도 전부 사라지고 유천과 백색마왕 단 둘이 남은 그때.

­우우우우......

백색마왕이 천장을 보며 현계에 소환된 환희의 환호를 내질렀다.

“시발 입도 없는 새끼가 어떻게 소리 낸대?”

유천은 시답잖은 말을 하고 피식 웃었다. 그렇게 긴장이 풀리고 녀석을 노려봤다.

‘첫 번째 페이즈를 잘 막아야 한다.’

백색마왕의 첫 번째 페이즈에는 놈의 몸을 중심으로 해서 백색 구형이 생겨난다. 점점 커지는 그 구체는 닿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소멸시킨다.

그런데 그 구형이 얼마나 커졌냐에 따라 녀석의 힘이 정해지 진다.

즉 저게 확장하는 걸 막지 않으면 답도 없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저걸 막으려면 최상위의 랭커나 하이랭커 같이 2차 초월을 달성한 자들이 몇 명이나 달라붙어야 한다.

그 이하는 무용지물 그저 녀석의 먹이가 될 뿐이다.

‘온다!’

날개를 접고 쭈그려 앉은 녀석으로부터 백색 구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구우우우...

점점 커지는 구체. 거기에 닿는 모든 것이 백색으로 물들며 어떠한 소리도 없이 소멸해갔다.

유천은 지금 상태로는 놈을 쓰러트릴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을 억죄어온 족쇄를 풀어버리기로 했다.

[오행기관 해제]

유천은 오행기관을 멈춰 지금까지 유천을 억누르던 마력들을 흩어졌다.

유천의 심장, 혈관, 뼈, 근육 모든 부위에 가공할 힘이 돌아오고 있었다.

“크윽­!”

나비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본래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 같은 기분 좋음에 유천의 입에서 신음이 삐져나왔다.

세상이 다시 솜뭉치로 변한 느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불완전한 것처럼 느껴지는 괴리감.

그 모든 것을 느끼며 감았던 눈을 뜨고 코앞까지 다가온 구체에 주먹을 내질렀다.

­­­­­!!!

둘 사이의 모든 공간의 층을 부수고 파형(??)을 만들며 나아간 유천의 주먹과 부딪친 구체에서 언어로 정의가 불가능한 거대한 굉음과 파동이 터지며 지하 지금까지 버텨온 공방이 갈려나갔다.

지하 수백 미터 아래에 위치한 공방. 그곳을 간신히 지탱해오던 주술진들도 일순간에 소멸하고 천장이 무너졌다.

누가 봐도 깔려죽을 위기였지만 공방에 맴도는 유천의 가공할 힘들이 그 모든 걸 갈아서 먼지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만약 이 공간에 누군가 남아있었다면 랭커라도 순식간에 소멸했을 재앙이 공방 내부에 몰아쳤지만 놀랍게도 백색구체는 멀쩡했다.

유천이 이곳에 소환된 이후 가장 강하게 내지른 일격이었음에도 말이다. 유천은 자신의 주먹을 쳐다봤다.

치이익...

소멸은 하지 않았지만, 유천의 주먹에서 그을림의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가 처음 입은 상처였다.

“너도 멀쩡한 건 아니구만 그래도.”

하지만 녀석도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은 건 아닌지 저 모든 걸 지우는 백색 구체는 확장을 멈추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나랑 놀자 이 괴물새끼야.”

콰아아아앙!!

유천은 온몸에 힘을 준 채 웃으며 백색마왕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

“음?”

티보치나의 공방이 있는 공간을 은폐하며 통제하고 있던 양하연은 지하에서 올라오는 인기척들을 느끼고 미간을 좁혔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에 윈디를 보내 관찰하자, 어느 폐건물 벽에서 킬리언과 백여 명의 인물들이 나타난 것을 확인하고 이지연에게 말을 건넸다.

“지연씨, 킬리언씨와 백여 명의 정체 모를 인물들이 나타났어요.”

“정체 모를 인물들이요...? 설마...”

“네...빌런들인 것 같아요.”

양하연은 유천이 있던 공방에서 느껴본 마력들이 다수 지상에 나타난 것에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도대체...킬리언씨가 왜 유천씨랑 안 있고 저 자들이랑 있는 거죠...?”

­그건 내가 설명하지.

!!!!!!

빌런들에게 뭐라 말을 건넨 후 사라진 킬리언은 순식간에 양하연과 이지연의 뒤에 나타났다.

‘어느 사이에!’

자신 또한 랭커임에도 뒤가 잡힌 것에 놀란 양하연은 그때 강원도에서 킬리언이 전력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유천씨 말고 왜 빌런들하고 같이 올라왔는지 말인가요?”

놀라고 있는 양하연 대신 이지연이 킬리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 일단 짧게 설명하지.

.

.

.

킬리언이 밑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한 후 둘은 아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니까...저 포대에 뭐가 들었다고요...? 제가 잘못 들었나요...?”

­협회의 공작원이 있더군. 보는 건 음...추천하지 않지.

쾅!!

“이 씹어버릴 빌런놈들이!!!”

감정이 돌아온 여파인지 아니면 빌런을 혐오해서인지 이지연은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후우...열 받기는 하지만 치료할 수 있다니까 일단 당장 중요한 것부터 얘기해야겠네요. 주령의식에 백색마왕이라고요?”

­그래 굉장히 위험한 것이 나오더군. 유천이 당장 도망가라고 했다.

“하아...지연씨? 시민들 대피는요?”

“후우...후우... 네...완료했어요. 이제 남은 건 저희랑 협회원들밖에 안 남았어요.”

어느 정도 진정한 이지연이 양하연의 물음에 답했다.

“하아...지연씨 이도경 국장님은 어디쯤이시래요?”

“지금 거의 다 왔을 거예요”

현재 이도경은 이만성에게 이야기를 들은 후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럼 킬리언씨랑 지연씨와 함께 셋과 협회원 그리고 저 빌런새끼들을 데리고 인천을 떠나세요.”

“네? 떠나라니요?”

중앙세계에 있었던 양하연은 애석하게도 주령의식과 백색마왕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예상할 수도 있었다.

‘인천이 아니 그걸 넘어 한반도가 작살날 수도 있어...’

유천이 초월적으로 강하다고는 하지만 백색마왕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 그 두 괴수의 싸움이 어떤 여파를 만들지 모른다.

‘거기까지는 안 가기를 기도해야지...’

“지연씨 지금 여유롭게 설명할 시간 없으니 엄청 위험한 게 튀어나올 거란 거만 알고 당장 국장님과 연락하고 떠나세요. 킬리언씨 저 빌런놈들 인솔 부탁드립니다.”

­그대는 어떻게 할 거지?

“결계도 있으니 최대한 버텨본 후에 저도 떠날 거예요. 저도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양하연은 일단 인천 전역에 깔린 결계를 전부 방어로 돌려 최대한 새어나올 힘을 억눌러보고자 했다.

“그럼 이제...”

쿠구구구구궁......

양하연이 빨리 떠나라고 하려고 하는 그때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는 힘이 지하로부터 땅을 타고 올라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공방에서 새어나온 유천의 주먹으로부터 나온 물리력의 덩어리였다.

‘온다!’

양하연은 그 파멸적인 힘을 막기 위해 모든 결계의 힘을 폐교로 집중시키며 소리쳤다.

“지연씨! 얼른 가세요!”

“...무사히 돌아오세요.”

이지연은 양하연의 결의에 찬 녹색 눈을 한 번 보고는 등을 돌렸다.

쿠구구구궁....

‘살아서 돌아갈 수 있기를...’

양하연은 결계의 힘으로 최대한 힘을 흩어버리고도 여전히 거대한 힘이 거의 지상에 다가온 것을 느끼며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