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9)
* * *
털썩...
머리가 사라진 시체가 기울어져 땅에 뉘었다. 현실성 없이 멍하니 그 장면을 보던 '검은선자들'의 신도들의 눈깔이 뒤집어졌다.
“네놈!! 이단 악마새끼가 감히 주교님을!”
“창조주의 대리자에게 감히!”
‘이것저것 생각해 봤지만 이놈을 여기서 죽이는 것이 더 낫다.’
유천은 듀블랑을 죽이고 나서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냉철하게 생각하고 나서 오빌을 죽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결코 그가 빌런 새끼 주제에 건방떠는 것이 싫어서 죽인 것이 아니었다.
‘뭐...조금은 있지만...’
실제로도 놈이 살아서 검은선자들의 본단으로 돌아가면 유천은 곤란해진다.
만약 오빌이 돌아가서 유천에 대한 걸 성자에게 단순히 열렬한 신자가 있었다고만 보고하겠나? 분명 자신이 본 것을 상세히 설명할 것이다. 검강을 맨 몸으로 맞아도 멀쩡했다. 엄청 강한 존재다. 꼭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등등
그런 말을 들으면 분명 놈들은 유천을 끌어들이기 위해 주교가 아닌 대주교 이상의 거물급 인사를 그에게 보낼 것이다.
거기서 끝난다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은원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저 중앙세계에서 그들과 적대관계에 있는 세력들, 예를 들면 신성 연합에서도 그 움직임을 읽어내 지구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걸 알아낸 또 다른 여러 거대 세력들 또한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는 빌어먹을 연쇄 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유천이 중앙세계에 알려지게 되는 꼴이 된다. 그럴 바에는 미지의 누군가에 의해 주교가 죽었다라고 여긴 검은선자들의 조사단이 오는 것이 백배는 나았다.
‘다른 곳은 괜찮다. 놈들은 주교가 인천에서 죽은 걸 알고 있을 테니 이곳으로 오겠지. 그럼 그때 내가 상대하면 된다.’
“죽어라 이단!”
유천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남은 잔당들이 그를 덮쳤다. 유천의 정면에서 검은 성력이 실린 메이스가 날아왔다. 이성이 돌아온 유천은 더 이상 무식하게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제대로 자세를 잡고 제대로 주먹을 지른다.’
유천은 킬리언에게 배운 대로 자세를 잡았다. 왼발은 30도 각도 전면으로 어깨 넓이만큼 벌린 채 무릎을 살짝 굽힌다. 왼손은 턱에서 앞으로 20cm정도 띄우고 오른손은 턱 옆에 갖다 댄다.
‘나는 이것만 할 줄 알면 된다니...’
킬리언식 투법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유천은 실제로는 거창한 것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유천아 너는 나처럼 싸울 필요 없어.’
‘응? 무슨 소리야?’
이만성이 빌려준 개인 훈련장에서 유천이 킬리언에게 킬리언식 투법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 지 삼일 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는 본인이 사용하는 투법을 예를 들어 강원도에서 보여준 ‘신기루’ 같은 기술은 알려주지 않고 오로지 자세잡기, 천천히 주먹 뻗기, 자세를 유지한 채 움직이기 같은 아이도 할 만한 기초적인 자세만을 가르쳐줬다.
삼일 동안 그것만 해서 지루해진 유천은 옆에서 빠르고 화려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따라해 보려고 할 때 킬리언이 그것을 막았다.
‘말 그대로야 넌...나처럼 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너는 내가 가르쳐 준 것만 제대로 해도 충분해’
‘그거 완전 애기들도 할 수 있는 기초적인 거 아냐...?’
‘맞아 서서 달릴 수만 있는 아기들이라도 할 수 있는 기초적인 것 하지만 네게는 얘기가 달라.’
‘그...알아듣게 설명해줄래?’
‘하아...짜증나...’
한숨을 쉬는 킬리언을 보고 유천은 순간 덜컹했다.
‘왜, 왜 그래...? 혹시 가르쳐주기 싫어서 그러는...’
‘그게 아니라! 네가 부러워서! 어?! 부러워서 그런다!!’
킬리언은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유천이 너는 나처럼 거창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기술이 왜 있는지 알아?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해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기술이야. 그리고 그건 지금의 유천 너에게는 필요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킬리언의 눈빛은 억울하고도 부러워보였다.
‘유천아 너에게는 남을 현혹시킬 화려한 것이 필요 없어. 그저 상대가 인지하지 못할 속도로 후려갈기면 돼. 그리고 공격을 피할 회피기도 필요하지 않아 정면으로 부딪치면 네가 아니라 상대가 박살날 거야. 방어? 그건 당연히 필요 없지 무기 째로 상대를 압살할 수 있을 거니까.’
‘그러니 지금 당장 너한테 필요한 것은 어떤 대단한 기술이 아니야. 넘쳐흐르는 힘의 통제. 힘에 조종당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이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것. 그게 우선이야. 너도 알고 있잖아?’
‘어...응...’
킬리언의 말이 맞다. 유천은 본인의 힘에 항상 이리저리 흔들렸지 제대로 통제한 적은 거의 없다. 그게 안 돼서 오행기관으로 육신을 억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애초에 지금 상태로는 그런 기술을 쓸 수도 없잖아.’
저 말도 맞다. 안 그래도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인데 신기루 같은 폭발적인 속도를 내는 기술을 썼다가는 육신에 비해 한없이 낮은 감각 스탯이 움직임을 통제하지 못하고 같은 편을 죽이는 대형 사고를 저지를 수도 있었다.
결국 유천의 성장에 필요한 것은 육신을 지금처럼 소심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본래의 힘의 절반도 못 쓰는 상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다.
‘그러니까 네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자세로 힘을 집중시키고 육신을 완벽하게 다루는 것. 그리고 이너들이 가지고 있는 상태창의 스탯을 최대한 균일화 하는 것. 그것뿐이야 화려하고! 섬세한! 기술은 그 후! 그리고 사실 그 정도만 해도 네 상대는 세상에 거의 없어. 그러니 내가 알려준 것만 해 알았어?!’
‘어...알았어...’
마누라에게 바가지 긁힌 남편 꼴이 되고 나서 유천은 닥치고 킬리언이 알려준 자세를 유지한 채로 힘을 사용하는 것만을 훈련했다.
어차피 상태창의 스탯은 지금 이 몸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쭉쭉 올라서 관련 훈련은 필요하지 않았다.
스킬로 등록된 ‘킬리언식 투법’ 또한 다른 것을 가르쳐주지 않고 오로지 좀 더 자세를 지키는 것만을 보조해준 것을 보면 그녀의 말이 맞는 거 같았다.
실제로 유천은 1주일 사이 스킬과 킬리언의 도움으로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몸을 다루는 것이 익숙해졌고 주먹을 휘둘러도 재앙이 불어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걸 본 킬리언은 육체도 사긴데 천재이기까지 하다며 탄식을 뱉기도 했었다.
‘왼쪽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그 너머로 힘을 전달한다.’
날아오는 메이스를 보며 배운 대로 몸을 움직였다. 지금 유천이 하려고하는 것은 간단한 ‘잽’이었다. 어깨를 돌려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거대한 힘을 통제하지 못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힘을 더 뺀다.’
정신을 집중시킨 어깨로부터 마치 고오오오... 소리를 내는 거대하고 불가해할 정도의 힘이 근육과 뼈를 타고 전달되는 것을 느낀 유천은 최대한 힘을 뺐다. 그럼에도 강대한 힘이지만 전달됐지만 이것이 한계였다.
‘간결하게 뻗고 회수한다.’
잽
콰아앙!!
그 짧은 거리 수차례의 소닉붐을 만들며 나아간 유천의 주먹과 메이스가 부딪쳤다.
“크아아악!!”
항거 불가능한 힘에 메이스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걸 들고 있던 신도는 수류탄 파편처럼 날아온 쇳조각과 충격파에 몸이 걸레가 된 채 날아갔다.
압도적인 광경이었지만 눈이 돌아간 광신도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창조주의 대리자인 나! 에단이 널 처단한다!”
왼쪽에서 할버드를 든 신도가 수직으로 베어들자 발가락 끝에 힘을 살짝 줘서 녀석의 품에 파고든다. 유천의 자세는 배운 대로 완벽하게 기존의 폼을 유지하고 있었다.
“뭣?!”
마치 단거리 블링크라도 한 것 같이 유천은 할버드가 내려찍히는 곳에서 벗어나 신도의 품안에 파고들었다. 항시 느끼고 있는 [공간안]이 정확한 위치로 유천을 인도해준 것이다.
주먹질만을 배웠지만 그것만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 유천은 왼손을 핀 다음 목에 수도를 날렸다. 에단이라는 신도는 촥! 소리와 함께 목이 날아갔다.
“창조주시여! 악마를 죽일 힘을!”
두 번째 신도를 죽였을 때쯤 합동 기도문을 외우고 있던 나머지 신도들은 마지막 문장을 뱉었다.
[랜드 오브 테라]
천장에서 검은 빛이 내려와 땅에 스며들어 유천과 나머지 신도들을 감쌌다.
독선적이기 그지없는 검은 선자들의 성력답게 [랜드 오브 테라]는 자신들에게는 축복을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주를 부여하는 일종의 버프기다.
모든 면에서 강화된 신도들이 아까보다 훨씬 빠르게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유천이 검은 성력에 저주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딴 게 나한테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주교도 아닌 고작 신도들의 합동 영창 따위로 내린 저주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천의 몸 안의 마력을 회전시키는 오행기관이 그에게 훨씬 위험했다.
폈던 왼손을 그러모아 쥔다. 본래 권법가의 최대 약점은 다수와의 싸움에서 약하다는 것이지만 그건 유천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본래의 자세로 돌아온 왼손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다섯 차례 공간을 타격했다.
쾅!
빈 공간을 타격하는 것 같은 충돌음에는 유천의 요새 부수기의 묘리가 담겨있었다. 신속에 가까운 속도로 다섯 번 타격된 공간이 물결치며 전방으로 흘러나갔다. 공간의 파도를 처음 맞이한 신도의 몸이 펑! 하고 폭발했다.
“이게 뭔...!”
그 모습을 경악에 차 보던 나머지 신도들도 그 공간의 물결이 몸을 통과해 지나가자 퍼버벅! 소리를 내며 육편이 되어 공방을 시뻘겋게 수놓았다.
쿠구구궁...
그러고도 남은 파동은 공방 전체를 한차례 뒤흔들고 나서야 사라졌다.
“후우...”
듀블랑과는 싸운 것이 아닌 그냥 처형을 한 느낌이라면 비록 그보다 훨씬 약했지만 신도들과의 싸움은 킬리언에게 배운 대로 온전히 힘을 통제한 채 제대로 싸운 느낌이어서 뭔가 만족스러웠다.
너무 상대가 약했던 거 같지만... 잘했다 유천
“고마워. 킬리”
실제로 킬리언도 칭찬해주지 않았는가? 이대로 점점 더 힘을 늘려가면 언젠가는 완벽하게 이 몸을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유천은 씨익 웃으면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나머지 빌런들에게 다가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