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5)
* * *
“...이 씨발새끼가...”
그의 어미가 창녀는 아니지만 애비에게 강간당한 하녀였고 그로인해 형제들에게 무시당한 건 듀블랑의 역린이었다.
‘오 찍었는데 맞았나봐?’
듀블랑의 눈빛이 시퍼렇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유천은 그냥 찍은 패드립이 제대로 그의 상처를 후볐음을 깨달았다.
“내말이 맞나보네? 불쌍한 놈 니 뼈는 나중에 니 애미 무덤 앞에 뿌려줄게 창녀 무덤을 만들어 줬을지는 모르겠지만.”
“...티보치나 이놈은 내가 데려간다.”
“...나중에 목숨만 살려놔요.”
새파랗게 타오르는 그의 눈빛을 보면 이성이 남아있는지 의심이 되기는 하지만 그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유천이 듀블랑의 역린을 건드린 시점에서 의뢰의 영역을 넘었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듀블랑이 그를 살려두길 바랄 수밖에.’
“일단 그 하찮은 가호부터 깨주마.”
[시동]
휘이이이익...!!
마력을 투입해 발동시킨 아르페에서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보영의 [백귀야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함.
티보치나가 방벽형 주술식을 발동하지 않았다면 공방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이익! 저 미친놈이!’
각시탈 다음으로 듀블랑까지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티보치나는 이를 갈았다.
“듀블랑! 내가 죽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닥쳐라 모르면 가만히 있거라. 이 정도는 되어야 이놈의 가호가 깨진다.”
듀블랑은 개자식이지만 그렇다고 멍청이는 아니었다.
‘저 놈들이 약해빠지긴 했지만 분명 아무 방비 없이 맞고도 멀쩡한 것들은 아니었다.’
각시탈의 [백귀야행] 그리고 폴른의 암살자들의 공세는 자신 또한 쉽게 파훼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맨몸으로 맞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저 가호는 한정된 시간이 지나거나, 일정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깨지는 것일 거다.’
듀블랑은 그 두 가지가 저 가호의 조건이라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저 시간을 기다리려고 했지만 유천의 도발에 생각이 바뀌었다.
‘직접 박살내주지.’
여전히 가호를 믿고 무방비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에 으르렁거렸다.
“이 거만한 것아 가호 하나를 믿고 설치기에는 세상이 넓다는 걸 보여주지.”
그는 그대로 검을 내려찍었다. 인성과 자질은 관계가 없다는 듯 완벽한 자세였다.
거대한 몸에 걸 맞는 힘, 대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속도. 폭풍을 만들어 내는 마력.
거기에 그 모든 걸 한 점에 담아내는 어지간한 검사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검의 경지까지.
콰과과광!!
그 광격(光?)이 만든 파동은 공방에 새겨진 방벽형 주술식의 5%를 분쇄했다.
티보치나의 주술식이 중앙세계 소도시의 성벽과 맞먹는 걸 생각하면 고작 칼질에서 나온 파동만으로 소도시 성벽의 20분의 1일 날려먹은 것이다.
그걸 본 티보치나가 분노했다.
“끄득! 저 미친놈이 뭐? 저걸로 안 죽어? 듀블랑 저 개자식이...”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찢어발겨져 흔적도 찾을 수 없겠지.
티보치나는 먼지투성이가 된 공방을 보며 듀블랑을 데려온 것을 후회했다.
“그분께 알려 드려야겠어 저 놈은 통제가 되지 않...”
“너... 뭐냐...?”
먼지 속에서 듀블랑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예상을 넘어선 것을 본 당혹스러움이었다.
“그 말도 이제 지겨워. 이제 궁금해 니들이 언제까지 나를 그렇게 무시할까 말이야.”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모두가 죽었을 거라고 여긴 유천의 목소리 또한 흘러나왔다.
먼지가 흩어지고 보인 것은 유천의 손아귀 사이에 있는 지이잉... 하고 떨리는 폭풍이 잡혀 있었다. 유천은 자신의 오른손에 쥔 검을 한 번 쳐다본 후 놓고 밀어냈다.
“한 번 더 해봐.”
“이...망할 놈이...”
듀블랑은 방금의 기억을 되새겼다. 자세, 힘, 마력, 기술 그 모든 건 완벽한 하나를 그렸다. 가호를 깨기에는 충분했다. 산을 가를 수 있는 일격이었다.
그 정도의 힘이었으면 앞의 건방진 놈의 어깨를 잘라내는 데에 충분한 힘이라고 여겼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어깨에 닿기 직전 찰나의 순간 녀석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멈춘 세계에서 홀로 움직이는 것 같은 속도로 다가와 아르페를 붙잡았고, 검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췄다.
발생한 충격파는 관성을 억지로 비튼 부산물에 불과했다.
“어때? 아직도 가호라고 생각해?”
유천은 입꼬리를 올려 듀블랑을 비웃었다.
“이 미친 것이!”
‘이건 이상하다!’
만약 이번에도 유천이 맞고 버텼으면 듀블랑은 그 가호의 대단함에 놀라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경악하지는 않았을 거다.
터무니없는 속도 그리고 힘.
세상에 홀로 움직이는 것처럼 다가오는 속도 그리고 산을 베어버리는 일격을 전혀 물러나지 않고 한 손으로 잡아내는 힘. 고작 가호 하나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모습이었다.
‘설마...가호가 아니라고...?’
말도 안 된다!
[바힐라의 검]
이를 빠득 물고 듀블랑은 검기에 화염 속성을 부여해주는 가호를 움직였다.
바힐라의 검, 강력하고 힘의 제한은 없었지만 그걸 버티는 육신이 조건인 가호였다.
최대로 화염이 그의 몸에서부터 검으로 그리고 폭풍으로 옮겨갔고 열풍에 땅이 녹아내렸다. 그 강력한 불길에 듀블랑의 몸에 진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멀쩡한 유천은 팔을 늘어뜨린 채 듀블랑을 비웃고 있었다.
끄득!
“감히 나를 무시해?!!”
더욱 거대해진 힘의 흐름을 통제해야 했다. 벗어나려는 힘을 이를 악물고 억지로 끼워 맞춘다. 마치 불의 신이 내리는 천벌과 같은 공격이 유천의 머리로 향했다.
콰아아아앙!!
화염의 충격파가 공간을 밀어냈다. 그로 인해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었지만 듀블랑은 더 이상 주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초조함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그가 무시했던 각시탈의 이보영이 했던 생각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젠장...’
손잡이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 그가 노린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멈춘 채 나아가지 못하고 떨리는 검. 연기가 듀블랑의 눈을 가려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가 아르페를 비틀어 쥐고 있었다.
“고민했어. 너희가 어떻게 해야 나를 두려워할지 어떻게 하면 살고 싶어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게 만들지 말이야.”
뜨거운 연기에 숨조차 쉬기 힘든 곳에서 여전히 여유로운 유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놈!! 그 입 닥쳐라!!”
[파할의 굳건한 뿌리]
가호의 힘으로 땅과 발을 강제로 고정시킨다.
더 이상 하체의 균형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움직이지 못한다는 조건에 의해 발목이 빠지직!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대신 더욱 강한 힘을 집중시켜 유천의 손과 머리를 통째로 양단하기 위해 눌러 찍었다.
끄드득...
“고민이 끝났어. 어떻게 해야 너희가 덜덜 떨지 알았거든.”
하지만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아르페만 부서질 듯 떨릴 뿐이었다. 서서히 화염이 걷혀 보이는 유천의 눈을 본다.
흠칫!
여유롭게 비웃고 있는 입꼬리와는 다르다.
냉혹(?) 비정(??) 악의(??).
그를 처참하게 죽이고 싶어 하는 살의에 몸이 떨린다.
‘내가 겁을 먹었다고...?’
‘그럴 리 없다! 나는 팔라투에 검가의 서자. 하이랭커에 오를 것이라고 여겨졌던 강자다! 이딴 차원에서 저런 듣도 보도 못한 놈한테 겁을 먹을 리 없단 말이다!’
“어때 이제 좀 겁이 나나?”
듀블랑의 속마음을 읽어낸 유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 입! 닥치란 말이다!!!!”
그 소리를 듣고 이성을 잃은 듀블랑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모든 걸 쏟기로 마음먹었다.
[베롬의 힘]
가호로 육체가 팽창한다. 조건은 이것 또한 버틸 수 있는 육신.
[팔라투에식(?) 결전기(?) ‘쓰러지지 않는 투쟁’ ]
심장이 거칠게 뛰고 마력의 흐름이 더욱 빨라진다. 듀블랑의 세상이 느려지고 오감이 예민해진다.
인위적으로 경지를 한 단계 높이는 연계기다.
영구적인 후유증 때문에 실전에서는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연구 단계에 있던 기술이었다.
쓰러지지 않는 투쟁으로 모든 마력과 감각을 인위적으로 증폭시킨다.
베롬의 힘으로 그걸 받아낼 그릇을 만들어낸다.
스탯 상에서는 표시가 안 되지만 그 남자는 아마 이걸로 한 단계를 더 초월한 힘을 발휘할 거라고 감탄했었다.
듀블랑의 거대해진 육체는 증기를 내뿜고, 혈관이 터질 것처럼 도드라진다.
육신 스탯을 1차 초월하여 랭커로 등록되었던 듀블랑이었다.
그 남자의 말이 맞다면 지금 그의 육신 스탯은 2차 초월에 도달한 상태.
그 대가로 영구적인 후유증을 가지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녀석을 죽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듀블랑은 어깨를 비틀어 유천의 손아귀에서 검을 빼냈다.
“호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듀블랑이 유천의 힘에 저항하는 것에 탄성을 내뱉었다.
‘각성기 같은 건가? 저 정도면 2차 초월정도는 되겠는데?’
손아귀에서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는 것에 유천은 그리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2차 초월이라...방심하면 안 되겠군...’
힘의 크기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녀석의 무(?)의 경지는 유천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듀블랑이 뒤로 물러나 팔을 들어 검을 정수리 위 일직선상에 놓는다.
‘이거라면 놈을 죽일 수 있다!’
그 남자가 준 무공서 중 본래 상태로는 불가능한, 2차 초월을 한 지금으로만 가능한 최강의 일격을 준비했다.
팔라투에 검가에서도 몇 번 본 적 없는, 최상승의 무공 파월(?月)의 일곱 식(?)의 첫 번째 식을 구현한다.
두 번째부터는 따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지만 이것만큼은 2차 초월 상태라면 억지로 따라할 수 있었다.
검으로부터 아까보다 훨씬 거대해진 화염의 폭풍이 일어난다. 뒤에서 티보치나가 뭐라 소리치는 것 같지만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앞의 유천을 죽이기 위해 집중한다.
뭉툭한 태풍의 칼날을 예리하게 다진다. 파월(?月)의 첫 번째식(?) 단천(??)은 다른 여섯과는 다르게 검강으로 나아가기 위한 식이다.
하지만 그 경지 근처까지 가보지도 못한 듀블랑은 강제로 높힌 육체의 격을 통해 억지로 그걸 구현하려고 했다.
기이이익...
“크윽!!”
의(?)가 담기지 않은 억지로 만든 검강이 부서질 듯 요동친다. 그걸 일시적으로 격을 넘은 육체로 억지로 붙잡았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듀블랑의 핏줄과 근육이 터져나가고 입에서는 선혈이 흘렀다.
“검강...?”
눈앞에 화염의 폭풍이 5m가 넘는 검의 형상을 이루진 것을 본 유천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 채 작게 입을 열었다.
검강, 형(?)을 담는 검기를 넘어 의(?)를 담아내는 경지에 도달해야만 가능한 실질적인 검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검강은 단순히 검기를 압축시킨 것이 아니다. 의(?)를 제대로 구현한 검강은 수백km 떨어진 상대를 베어낼 수도 있고 영혼을 가를 수도 있다.
‘내 본캐에 비하면 저건 조잡하군.’
3차 초월 전 ‘그녀’의 검강은 말 그대로 행성을 토막 쳤었다.
그에 비해 다행히도 듀블랑이 만들어낸 검강은 그저 검기를 압축한 의(?)가 전혀 담겨있지 않은 1차원적인 형태다.
제대로 된 것이라면 모를까 저걸로는 유천의 피부정도만 간신히 가를 수 있다.
‘그래도 저게 제대로 터지면 난리가 난다.’
조잡해도 검강은 검강.
저게 제대로 터지면 지상에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양하연과 이지연 그리고 협회에서 이만성이 행하고 인천에 대한 정보 은폐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 그걸 떠나 인천이 무사할 거 같지 않았다.
“죽어라!!!”
[단천(??)]
유천이 고민하는 사이 듀블랑은 파월(?月)의 첫 번째 식 단천(??), 하늘은 못 갈라도 하늘의 구름을 가를 수 있다는 기술을 억지로나마 구현했다.
‘무조건 죽여야 한다!’
듀블랑은 더 이상 티보치나와 한 약속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고. 그런 필사의 공포를 그는 느끼고 있었다.
주변 모든 공간을 불태우며 내려오는 검강을 보고 유천은 혀를 찼다.
“쯧...저건 좀 아플 거 같은데...”
그냥 튕겨내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빌런들을 잔인하게 대하고 있지만 유천은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그랬다가는 계획의 성공을 떠나 인천의 무고한 사람들 또한 죽어나갈 것이고 그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모든 걸 무(無)로 만들고 있는 저 검강을 향해 유천은 양팔을 활짝 폈다.
‘전부 받아낸다.’
유천은 검강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모두 자신의 몸으로 받아낼 작정이었다. 단순무식하기 짝이 없는 거인족도 하지 않을 미친 행동이었다.
그렇게 유천의 가슴팍에 듀블랑의 검강이 박히고.
!!
거대한 충격음이 공방을 덮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