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28화 (28/116)

〈 28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4)

* * *

뚝...뚝...

““......””

귀신의 소용돌이가 사라지고 나서 공방 안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렸다.

듀블랑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갔다. 죽었어야 할 그놈은 살아있었다. 여기까지는 오히려 좋은 일 옆의 이년을 즐길 때 관객이 생겼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악의의 폭풍 속에서 상의만 뜯겨져 날아간 유천의 이상적인 근육을 지닌 몸은 갓 씻고 나온 것처럼 멀쩡했다. 거기에...

“잘모해써여...히이익! 안 되여!! 아파! 아파여! 제발! 사, 살려주세여!!”

“좀만 더 참아봐 아직 해볼 게 남았어.”

그의 오른손에는 여전히 탈을 쓴 여자가 들려있었다. 놈은 왼손을 천천히 뻗어 그 여자의 손을 잡았다. 마치 연인의 손을 잡는 것처럼 부드럽게. 그러나...

빠그그극­!!!

“히그그그갸갸갸아아악!!!! 아파!!!! 제발!!!! 이제 그만! 그에에엑!!!”

놈이 잡은 손에서 으깨지고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근육과 핏줄이 터지고 부스러진 뼈와 인대가 놈의 손아귀 사이로 삐져나온다.

그 손은 반죽이 되었다. 밀가루가 아닌 피와 뼈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손가락이 꺾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왼쪽은 더 심각했다. 손끝부터 어깨까지 이미 그렇게 되었으니까. 고위각성자가 아니라면 쇼크로 진작 죽었을 것이다.

“너희들은 거기서 기다려 이거 다음에는 너희 차례야. 킬리언 도망가는 놈이 있으면 산 채로 잡아와.”

­알겠다.

유천은 손을 넘어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그건 선고였다. 사형수에게 내리는 집행자의 목소리였다. 그게 너의 운명이라는 듯.

빠득­!

저 미친새끼가...

그 말에 사방에서 살기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이곳의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무시당해본적 없는 포식자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도망치지 말라고 한 것에 큰 치욕을 느꼈다.

“하­! 고작 한 놈 그 꼴로 만들어 놓고 기고만장하는 꼴인가요?”

티보치나가 팔짱을 낀 채 헛웃음을 지었다.

“뭐 잘됐네요. 살아있어서 죽으면 제 분이...”

“야 걸레년아”

“...방금 뭐라고 했나요?”

“아가리 닫고 있어 쓰레기년아 넌 제일 마지막이야.”

“이 새끼가...드디어 미쳤구나...”

유천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행한 폭언에 그녀는 평소의 존댓말을 버리고 욕설을 내뱉었다.

“카야! 뭐하는 거예요! 내가 저딴 놈한테 저런 말을 들어야 해요?! 저놈 사지를 잘라 내 앞에 데려와요.”

“네 보스.”

카야는 그녀의 명에 유천에게 달려갔다.

‘팔부터 잘라 주마.’

그녀는 반고(?古)의 암살자 집단 절각(??)의 일원이었던 만큼 빨랐고, 은밀했다. 순식간에 유천의 등을 점한 후 허리춤의 칼을 역수로 쥐고 순식간에 그의 오른팔을 베기 위해 검기가 실린 칼을 발도 했다.

검기(??), 검에 마력을 담는 것을 넘어 형(?)을 새기는 단계에 도달한 검사만이 쓸 수 있는, 검을 제대로 수련하는 자들 중에서도 간신히 1할만이 도달한다는 재능의 산물이다.

챙­!

“큭­?!”

그런 검기가 실린 칼날이 피륙에 닿아 부서졌다. 그 반동에 카야의 오른손 아귀가 찢겨 나갔다.

순간의 경악에 나온 빈틈. 그녀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유천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그에엑­! 소리 지르는 이보영을 차분히 으깨고 있었다.

“아직 너희 차례 아니야. 기다려.”

아이 달래듯 여상한 어조. 상황에 맞지 않는 느긋함이 이질감을 가져왔다.

“크윽­! 놈을 쳐라!”

상대가 자신을 명백히 무시하고 있음을 깨달은 카야는 굴욕감을 느끼며 흑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녀에게 교육 받은 흑의를 입은 폴른의 암살자 오십이 유천의 주변을 빠르게 돌며 빈틈에 칼을 집어넣었다.

채채채채챙­!

도저히 쇠와 사람의 육신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천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보영의 양쪽 팔을 쥐어 짠 유천은 실성한 채 웃고 있는 그녀를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 다리로 손을 뻗었다.

‘저 개자식이...!’

카야는 여전히 무시하는 그를 보며 이를 갈았다.

“급소를 노려라! 죽지만 않으면 된다!”

채채채챙­!

발등, 연골, 눈, 척추, 동맥, 겨드랑이 등등 느긋하게 이보영의 발가락부터 으깨기 시작하는 유천이 죽지 않을 만한 모든 급소를 공격했다.

하지만 멀쩡한 모습. 그걸 본 카야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무슨 수작을 부린지는 모르겠지만 저게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유천의 모습이 어떠한 수작을 부린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걸 봤을 때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단련한다고 해도 혈관을, 안구를 단련할 수는 없는 거니까.

칼날의 폭풍은 더욱 거세어졌다. 무시하는 유천에 암살자들 또한 열 받았는지 공격은 더 거리낌 없어졌다. 그 모습은 마치 그림자의 폭풍. 한 명을 제외한 이 자리의 모든 자들은 유천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

“흐히히힉­! 이히히힛!”

......

오 분 정도 지나 유천이 그녀의 오른쪽 다리 전체를 으깼을 때, 공방에는 이보영의 실성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공격을 하고 있던 암살자들 또한 거친 숨을 내쉬며 물러났다.

지쳐서가 아니다. 더 이상 공격할 무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손에는 단검의 자루만이 쥐어져 있었다.

“이건 이제 글렀군.”

......

유천은 꿇고 있던 무릎을 세워 느긋하게 일어났다.

이상하다. 여기 있는 모두에게 든 생각이었다. 주술사의 음침한 공방은 심리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며 그곳에 모여 있는 백여 명의 빌런들은 하나같이 흉포한 기세를 뿌리고 있었다.

아군이라도 긴장되는 상황. 그런데 적이라면 설령 하이랭커 그 절대자(??者)들도 근육을 수축시키며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꽤 오래 걸렸나? 다음부터는 좀 빠르게 해야겠어.”

......

물고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낚싯대를 보고 있는 노인. 그 느긋함과 평온함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무언가 바뀌었다. 처음의 그 어설픈 연기로도 가릴 수 없었던 나약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음소리.

누군가 아니 여기 있는 자들 모두가 깨달았다. 바뀐 것이 아니다. 저것이야 말로 인간성 뒤에 숨어있던 놈의 본성이라고. 놈은 물고기를 기다리는 노인이 아니다. 잘못 생각했다. 저 느긋함과 평온함은 타고난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지랄하는군.”

하지만 포식자는 이곳에도 있었다. 사자처럼 뻗친 금발 남자 듀블랑 팔라투에. 한때 하이랭커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던 극강의 검사이자 중앙세계 10대 검가(?家)인 팔라투에 검가의 서자였던 빌런. 그 또한 타고난 포식자였다.

킬리언의 어깨에 얹은 손을 내리고 등에 맨 거대한 대검을 뽑았다. 길이 1m 90cm, 폭 37cm. 유려한 선이 그려져 있는 그 검의 이름은 ‘아르페’.

엘프들의 신화에 나오는 태풍의 신의 이름이다. 과거 팔라투에 검가의 가주가 이그드라실의 엘프 대전사를 죽이고 빼앗아 가문의 보물로 삼은 무기였다. 듀블랑은 빌런으로 지정되자마자 그걸 들고 검가에서 도망쳤다.

아르페는 마력 폭풍을 일으키는 시동(??)형 병기로 듀블랑의 거대한 힘을 일격에 집중시키는 그의 대검술과 궁합이 잘 맞았다.

검을 찾기 위해 추적해온 검가의 수많은 검사들과 현상금을 노린 랭커들을 피해 도주의 삶을 살던 그는 자신을 버린 검가에 대한 복수를 도와주겠다는 그 남자를 따라 이 지구까지 온 것이다.

남자는 듀블랑에게 가문의 검술서들과 영약을 주며 그 날이 올 때까지 숨어서 힘을 기르라고 했다.

그의 재능과 최상급이라고 할 만한 검술서 거기에 쉬이 볼 수 없는 영약까지. 검가에서도 받지 못한 최고의 지원을 받아 급격히 성장한 그는 이제 일격으로 산을 가를 수도 있었다.

“병신 같은 놈들아 정신 차리거라!”

각시탈이나 폴른의 암살자와 같이 지구 출신의 빌런들이 위축된 모습에 한심스러워 듀블랑은 소리 질렀다.

“저딴 퍼포먼스에 속아 넘어가다니 빌런이라는 이름을 떼거라 머저리들.”

“퍼, 퍼포먼스?”

“저, 저게 퍼포먼스라고?”

“후, 보모라도 된 것 같군. 저건 가호다!”

‘멀쩡하게 살아남은 건 그것 때문이겠지.’

‘바벨의 재앙’이 막을 내리고 모든 차원의 언어가 통합된 후 나타난 시스템 즉, 상태창이 내리는 힘 그걸 가호라고 부른다.

스킬과 다르게 어떠한 이해도 필요 없이 사용하겠다는 의지만 가지면 자동 발동되는 그것은 평범한 것부터 이도경의 [낙일] 같이 불합리한 가호들도 존재했다.

마력이 실린 칼날이 안구를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간다?

그런 이치에 벗어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호뿐이다. 그것이 듀블랑의 결론이었다.

‘대신 그런 것에는 일정 조건이 필요하지.’

이도경의 [낙일]이 2배의 데미지 증폭을 위해 5km라는 거리가 필요한 것처럼 강한 가호에는 그만한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다.

‘아마 놈의 가호는 한정된 시간 동안 무적상태에 돌입하게 해주는 그런 종류의 가호일 것이다.’

육체능력? 제법 뛰어나지만 사람을 쥐어짜는 것 정도는 듀블랑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전투수행능력? 딱 봐도 놈은 제대로 싸워본 경험이 없다.

‘제법 강한 힘과 가호 그걸 믿고 잔혹성을 연기하는 속 빈 강정이다.’

듀블랑은 그렇게 유천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병신 지구놈들 저딴 것에 쫄아 가지고 멍하니 쳐다보고나 있다니.’

보아하니 관문지기들과 검은 선자들 그리고 티보치나는 듀블랑과 같은 생각인 듯 오히려 놈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지만. 지구 태생 놈들은 경악한 모습으로 한심하게 떨고 있었다.

생각이 마친 것과 동시에 듀블랑은 유천의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앞에 섰다.

“아가야 그딴 연기가 이딴 시골차원의 송사리들에게나 통하지 나와 같은 중앙세계 출신에게도 통할 거라 생각하느냐?”

“연기?”

‘이것들이 뭔 말을 하는 거지?’

자신보고 연기를 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유천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하하하!! 제법 좋은 가호를 지녔나보네요. 근데 그런 비장의 수를 그런 아무 의미도 없는 곳에 쓰면 어떻게 하니? 이 병신아”

“네놈이 그런다고 우리가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했는가? 웃기는군. 중앙세계에는 그보다 더한 가호도 많다. 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것아.”

듀블랑의 말을 받은 티보치나와 관문지기들 중 하나가 유천의 멍청한 행동에 경멸하듯 쳐다보며 말했다.

“뭐야...그럼 저 새끼가 우리를 농락한 거라고?”

“이런 씨발놈이!”

“......”

유천의 모습에 위축되어있던 지구출신의 빌런들인 폴른과 각시탈은 그 말에 자신들이 느낀 불길함이 모두 연기였던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갈았다.

“......”

“보아하니 한정된 시간 동안 너를 무적상태로 만드는 가호인거 같은데... 그런 것에는 그만한 조건이 필요하지. 자! 너의 시간은 얼만큼 남았느냐? 응?”

“가호...가호...하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연기를 한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유천은 가호라는 말에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저들이 왜 아직도 저런 얕보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지도 말이다.

“뭐라고 지껄이는 게냐?”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뭐?”

“너 왜 계속 우리 킬리한테 찝쩍거리냐?”

“흐흐흐...너 같은 놈한테 안 어울리는 여자더군. 제법 앙탈도 부리기도 하고 꽤나 자극적으로 즐길 수 있겠더군. 나중에 네놈도 관람하게 해주...”

“아 너도 그렇게 태어났나?”

“뭐...?”

“니 애비가 남자있는 여자 강간해서 태어난 게 너냐고?”

“......”

“하는 꼬라지에 비해 고상한 말투가 익숙해 보이는데 어디 가문 출신인가봐? 그럼 이야기 뻔하네. 애비에게 강간당한 창녀에게서 태어난 서자가 삐뚤어져서 집을 나와 빌런이 되었다. 어때 니 인생을 내가 한마디로 설명 잘 한 거 같은데 마음에는 좀 들어?”

“.........”

유천의 단련된 패드립에 공방은 침묵에 잠겼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