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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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유천의 말에 싸늘해진 공방은 마치 삼류 연극 극장 같이 고요했고, 오로지 말없이 문 앞으로 다가가는 킬리언의 발소리만이 들렸다. 어느 누구의 공감도 이해도 받지 못하는 분위기. 그러나 그것도 잠시.
흐, 흐하하하하하!!
키키킥!!, 저놈 저거 맛이 가버렸네 아주
팔다리가 뜯기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데? 하하하!
마귀놈이 정신을 놓아버렸구려 허허허!
웃기는군. 공포에 미쳐버렸나?
흐흐흐... 저년은 또 뭐냐? 진짜 문을 막으려고 하는 건가? 븅신년이 크크큭...
거의 동시에 욕설 섞인 비웃음이 흘러나온다. 눈빛을 싸늘하게 굳히며 경멸을 하는 자가 있었다. 누군가는 재밌다는 듯 박장대소 하는 자도 있고, 날개 뜯긴 잠자리를 관찰하는 동네 꼬마처럼 잔혹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지금의 유천의 눈동자 아래 깊숙한 곳에서 검게 물든 살의가 깨어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누군가 그에게 접근했다. 아까 유천을 가지고 놀겠다던 각시탈을 쓴 두 여자 중 언니라는 자였다.
“하하하! 아이고 우리 귀염둥이~ 그렇게 화나쪄여~?”
다가와서 유천의 볼을 손으로 톡톡 두드린다. 유천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너 우리가 누군지는 아니~?”
그녀는 고개를 밑에서 위로 삐뚜름한 모습으로 유천을 조롱했다.
“이 누나는 너 같은 건방진 새끼가 함부로 입을 놀릴 레벨이 아니란다.”
유천의 볼을 두드리며 조롱하는 각시탈 여자를 보고 그 일행들이 킥킥거리며 유천을 비웃는다.
같잖다. 유천의 결론이었다. 자신을 피식자로 여기는 버러지 빌런놈들의 언행이 너무도 같잖았다.
“아까처럼 지껄여보...응? 뭐하는 거야?”
유천은 천천히 여자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크큭! 왜 누나 목 졸라 죽여 보려고? 한번 해...커억!”
유천은 그 여자의 목을 가볍게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가볍다 그리고 약하다. 그게 내린 결론이었다.
“크윽! 이게!”
목을 강하게 잡지 않았다. 아직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유천은 놈들을 쉽게 죽일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여기에 있는 놈들이 공포에 덜덜 떨지, 저 주제도 모르는 오만함을 짓밟을지 고민했다.
퍽! 퍽!
유천의 손에 목이 잡힌 여자는 들어 올려 진 채 발로 배를 걷어찬다. 킬리언의 공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처참한 수준.
“이, 이게...”
“어이 보영이 적당히 놀아 그게 뭐냐 꼴사납게. 크큭...”
“아, 아니야 이, 이건...”
이름이 보영인가 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년에게 공포와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유천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보영은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각성자로 치면 S+등급인 자신이다. 그런데 목을 쥔 손목을 비틀어도 전력으로 배를 걷어차도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떨리는 눈꼬리를 내려 유천을 쳐다봤다.
‘아...아...!!’
오랜 빌런 생활로 사람의 악의라던가 욕망과 같은 감정에 민감한 이보영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유천의 악의가, 상대를 절망에 빠뜨리겠다는, 어떻게 해야 고통스러울지 고민하는 그 악마와 같은 마음이 또렷하게 보였다.
‘이, 이대로 있으면 죽어!’
이보영은 리더의 허락도 없이 스킬을 발동했다.
[백귀야행(???行)!]
“저, 저년 지금 뭐하는 거야?!”
“언니 미쳤어?!”
동료들이 뭐라고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놈을 죽이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일단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백귀야행(???行)]
각시탈 전원이 익히고 있는 금기마법이다. 본인이 죽인 혼을 수집하여 길들여 귀신으로 만들어 군단으로 이용하는 일종의 흑마법이다.
‘백귀야행이라...’
‘라스트 레거시’ 고인물인 유천도 알고 있는 마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악독한 마법인지도 말이다. 중앙세계 5대 빌런 단체 ‘흉성’이 주로 사용하는 걸 봤는데 지구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보영의 등 뒤에서 회색빛 칼바람들이 휘이익! 소리를 내며 몰아치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보이는 고통에 찬 얼굴들. 백귀야행의 희생양이 된, 지금은 귀신이 되어 버린 영혼들이었다.
심지어 성인이 아닌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힘의 순수성을 위해서 아이들의 혼까지 갈아버린 거겠지.
저 흑마법은 빌어먹게도 순백의 영혼일수록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
즉 어린 영혼들이 가장 좋은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유천은 저들이 어린 아이까지 죽인 건 알았지만, 저들이 힘의 순수성을 위해 8년 전 각시탈 사태를 일으킨 것은 알 수 없었다.
‘지연씨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이놈들은 쓰레기입니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닥치고 너희도 공격해!”
‘그러니 지금부터 이것들을 인간취급 하지 않겠습니다.’
“이보영 너 미쳤어!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
“대장!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여?! 이 새끼 이상하다고!”
“이보영!!”
유천이 점점 짙은 회색이 되어가는 칼바람을 보고 있을 때 각시탈의 리더는 허락도 없이 자신들의 성명절기와도 같은 마법을 사용하는 이보영을 보고 소리쳤다.
“그만둬라! 그놈을 죽이면 안 돼!”
그런 계약이었다. 놈을 가지고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지만 목숨줄은 붙여서 데려가야 했다. 그런데 저 망할 부하년이 말을 듣지 않자 리더는 이를 갈았다.
“이 병신 같은 년이! 의뢰자가 죽이지 말란 말 못 들었냐?”
이보영은 리더의 말을 무시했다. 주변의 다른 빌런들이 자신들을 비웃는 것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목이 잡힌 채 내려다 본 곳에 놈의 눈이 보인다.
‘주, 죽여야 해! 아니면 내가 죽어!’
눈동자 저 심연 같은 곳에서 검은 악의(??)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은 유천이 가만히 있지만 저게 모두 올라오면 자신이 무슨 꼴을 당할지 이보영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가! 가서 저 새끼를 죽여!’
자신이 가진 수백의 귀신들을 꺼낸 그녀는 그들에게 유천을 죽이라고 명했다. 절망과 고통에 찬 귀신들은 유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천과 이보영을 둘러싸고 기기긱! 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귀신들은 공방에 소형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저 병신 같은 년이...’
악기(??)의 태풍. 놈이 귀신들에 잘게 찢겨 죽었을 거라 생각한 각시탈의 리더는 이보영에게 이를 갈았다. 자신들이 빌런이라도 음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룰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저년은 그 룰을 어겼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저 년을 넘겨야겠다.’
음지에서 묻히지 않기 위해 리더는 이보영을 팔아넘기기로 했다. 팔려간 후 어떤 꼴을 당할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그도 자신의 목숨이 우선인 빌런이었다.
“이봐요! 내가 저놈을 죽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유천의 주제 모르는 발언을 듣고 기가 막혀 놈이 어떤 추한 꼴을 당할지 지켜보던 티보치나가 이보영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놀라서 달려왔다.
‘이 새끼들이 감히...’
자신을 나락으로 보내려고 한 저놈은 저렇게 쉽게 죽어서는 안됐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각시탈놈들이 기어코 사고를 쳤다.
“미안하군...대신 우린 한 푼도 받지 않겠다. 거기에 이보영 저년을 내놓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다.”
“흥! 지금 일이 그딴 걸로 해결될 거라고 여겨요?”
폴른의 수장인 자신이 직접 주관했고 이들을 고용했다. 그런데 거기서 고용한 용병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모두의 비웃음을 살 일이었다.
‘이 년이...’
무려 S+등급의 빌런을 바치겠다고 했음에도 티보치나가 물러서지 않자 리더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럼...뭐...야 저건...?”
말을 하다 말고 각시탈의 리더는 백귀야행이 펼쳐진 곳을 보며 눈을 떨었다.
“뭔가요 그딴 조잡한 연기로 지금...”
그 모습에 티보치나 또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듀블랑은 불쾌했다.
본래 그는 유천이라는 놈이 보는 앞에서 저 여자를 범할 생각에 흥분해 있었다. 그래서 저 여자가 문으로 가는 것을 내버려뒀다.
본인이 주제도 모르고 스스로 잘났다는 듯 설치는 년놈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건 그의 성적 취향에 좋은 조미료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런데 저 병신 같은 탈을 쓴 놈들이 사고를 쳤다.
공방 안을 휩쓸고 있는 회색 회오리 안에 든 유천이 살아있을리 없다고 생각한 그는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쯧... 한심한 것들 감히 내 즐거움을 없애다니 마음 같아서는 전부 죽여 버리고 싶군. 그런데 네년은 왜 가만히 있느냐? 저기 네 애인이 죽어가고 있는데?”
......
분명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생각한 듀블랑은 문 앞을 지키며 여전히 무덤덤한 눈으로 애인이 죽어가는 곳을 보고 있는 킬리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틀린 건가? 흠 그럴 리 없는데.’
그는 남녀 간의 감정의 교류를 잘 읽어냈다. 남자 앞에서 그 애인을 강간하는 걸 즐기는 그의 변태적인 경험으로 축적된 감이었다.
“쯧...그게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저 놈은 이미 죽었을 것인데.”
저 곳에서 느껴지는 힘은 과거 랭커였던, 하이랭커의 자질을 가졌다는 자신이 봐도 제법 강했다. 제법 한 수가 있어보였지만 그래봤자 벌레 수준의 놈이 버틸 수준은 아니었다.
“흐... 뭐 그래도 네년을 보고 있으면 한번 정도는 그냥 즐겨도 괜찮을 거 같구나. 흐흐흐...”
듀블랑은 팔짱을 낀 채 서있는 킬리언에게 다가가며 입술을 핥았다. 중앙세계에서도 거의 보지 못한 극상의 미인이었다. 이 정도면 관객 없이 가지고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거 같았다.
“자 그럼 전부 끝난 거 같으니 우리는 이딴 곳 말고 아늑한 곳으로...응?”
꾸욱...
킬리언의 옆으로 다가간 듀블랑은 그녀의 어깨를 당겨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년이...어디서 앙탈을...”
닥치고 가만히 있어라.
턱을 들었을 때도, 옆에서 말을 걸 때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악기(??)의 태풍을 쳐다보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뭐? 방금 나한테 한 말이냐?”
저 놈도 그렇더니 이년도 상황 파악을 못하는 것 같았다. 감히 자신에게 명령을 한 것에 듀블랑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이내 실실 웃었다.
“흐흐...그래 나중에 그 얼굴이 어떻게...”
좀 닥쳐주지 않겠나?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입에서 썩은 내가 너무 심하군.
도를 넘은 앙탈에 듀블랑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그냥 이 자리에서 치욕을 주마.’
“...생각이 바뀌었다. 이 자리에서 네년을...”
......
‘뭐지?’
그의 민감한 감이 공기가 바뀐 것을 느꼈다.
조용하다. 바람 소리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던 공방이 조용해졌다. 시끄럽게 신을 찾는 또라이 광신도 놈들도 자기 부하 관리도 못한 병신도, 그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티보치나 년도 모두가 침묵한 채 한 방향을 보고 있었다.
듀블랑 또한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눈을 향했다.
“저게 무슨...”
거기에는 생각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너 뭐야...”
“......”
“너 대체 뭐냐고!!!”
이보영이 만든 백귀야행의 회오리 속 이보영은 여전히 멀쩡한 유천을 향해 소리 질렀다.
“왜! 왜 안 죽는 건데!!!”
‘말도 안 돼!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키기기긱....
귀신들이 그를 할퀴고, 찌르고 물고 베고 긁었다. 하지만 흠집도 나지 않았다. 그것들이 저 뜨고 있는 안구를 찔렀지만 튕겨져 나왔다.
코와 입으로 그리고 귀로 들여보내 내장을 진창으로 만들고 뇌를 곤죽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다. 여전히 그의 냉혹한 눈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키기기긱....
쇠를 긁는 기분 나쁜 소리. 들려오는 소리는 도저히 피륙을 찢는 소리가 아니었다.
‘시, 싫어...’
점점 가까워온다. 유천의 눈에서 기어 나오는 검은 살의가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잔혹한 예감이 든다. 상상하지 못한,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거라는 참혹함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을 해봤어...”
“아...”
악마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야 너희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을까?”
처음 봤을 때보다 검은 눈동자. 그곳에서는 심연에서 올라온 살의가 타오른다.
“똑같이 팔다리를 뽑을까? 아니야 그런 1차원적인 폭력으로는 너희 같은 놈들은 두려워하지 않아.”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해야 깔끔하게 뼈를 발라낼지 고민하는 백정의 눈빛.
“모르겠더라, 그러니 일단 너로 시험해보려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눈빛과 말의 내용과는 달리 말투는 마치 연인에게 무엇을 먹을지 묻는 다정함이 깃들어있었다. 그 괴리감에 이보영의 몸은 덜덜 떨렸다. 저항을 포기한 팔다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다리사이에서는 물이 떨어진다.
“사, 살려줘...”
“음? 무슨 소리야? 내가 너를 왜 죽이니? 여기 있는 놈들 아무도 그냥 죽일 생각이 난 없어.”
“흐윽...제발 살려줘...”
“일단 오늘 내가 본 걸로 복습부터 해볼게 죽지마? 알았지?”
“시,시,싫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