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24화 (24/116)

〈 24화 〉 이지연의 마음?

* * *

‘내가 무슨 짓을...’

숙소로 돌아온 이지연은 유천의 테스트가 끝나고 울어버린 걸 떠올렸다.

‘내가...운거야...?’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에 울어본 적이 없던 그녀는 자신이 울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생존반응이었다. 살아가는 이유가 부서진 반동에 무의식이 살아남기 위해 지금껏 봉인되어 있던 감정을 개방시킨 것이었다.

‘이게 뭐야...?’

둑이 무너져 버린 것처럼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감정들이 그녀의 가슴속에 흘러 들어왔다.

유천에게 자신의 마법이 도발 당했다는 분노

그 도발대로 정말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한 굴욕감과 그로 인한 서러움

이 나이에 아이처럼 펑펑 운 것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는 혼란까지.

항상 침착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10살짜리 아이나 다름없었다.

“그...괜찮으십니까...?”

이지연은 안절부절 못하고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서 있는 유천을 바라봤다

“......”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수치심과 분노가 느껴져 지금 입을 열었다가는 내가 괜찮아 보여?! 라고 소리 지를 것 같아 꾹 다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

‘얄미워 때려주고 싶어...’

이지연은 저 얼굴이 시퍼래 지도록 패고 싶었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마법으로 아주 진하게 확인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하연과 킬리언이 유천에게 물었다.

“유천씨...혹시 의도한 거예요...?”

­유천,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알았지만 도발에도 재능이 있었군.

“......”

‘시발...’

유천은 양하연의 경멸하는 얼굴과 킬리언의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왜 그랬을까 한탄했다.

‘아니 그래서 폴른 이것들은 도대체 언제 연락이...!’

유천은 이 싸늘한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편지 답장이 오길 바라는 찰나

딩동...

!!!

‘왔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뛰쳐나간 유천은 문을 열고 상대를 봤다.

깔끔한 얼굴에 누구나 입고 있을 회사원 양복을 입은 평범한 남자였다.

“고유천씨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이거 받으시죠.”

“이건 뭡니까?”

남자는 평범해 보이는 봉투를 유천에게 건넸다.

“3일 뒤 정오 거기에 적혀있는 장소로 오십시오. 그러면 당신을 데리러 사람이 갈 겁니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떠난 남자를 보던 그는 일행에게 돌아왔다.

“뭐라고 했어요?”

아까의 일은 접어둔 채 프로다운 모습으로 돌아온 이지연에게 봉투를 건넸다.

“3일 뒤 정오 여기에 적힌 장소로 오면 사람이 올 거라는 군요. ”

“16번 구역이라...음침한 곳으로 불렀군요. 외부로부터의 시야도 굉장히 좁은 곳이군요. 습격을 받기에 좋은 위치에요.”

편지에 적힌 곳은 예전 그 부랑자가 있는 장소였다.

이지연의 목소리는 여상하면서도 잔잔하며 진지했다. 다행히도 아까의 일은 잊은...

“하지만 무식하게 단단한 유천씨한테는 아무 문제없는 일이니 패스합시다.”

“......”

아니었나보다...

이지연은 인형 같은 눈에 뭔지 모를 감정을 담은 채 유천을 쳐다보고 있었다.

“크흠, 어쨌든 그때를 대비해서 작전을 짜보지요.”

감사하게도 양하연이 다시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전환했다.

‘감사합니다. 하연씨.’

자신을 살려준 양하연에게 유천이 인사를 건네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지?’

­복잡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군.

“응?”

양하연을 보고 의아해 하던 찰나 이런 작전 얘기에 관심이 없었던 킬리언이 입을 열었다.

“킬리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 킬리라고 안 하면 안 되겠나?!

정을 나눈 이후부터 유천은 그녀를 정겹게 부르고 싶어 ‘언’자를 빼고 킬리라고 불렀다. 물론 그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워했지만.

“아 알았으니까 무슨 말이냐니까?”

­이익­! 흥! 말 그대로다.

그녀는 유천을 쳐다봤다.

­그대와 내가 다 쓸어버린다. 도망치는 놈들을 이 둘이 잡는다. 어차피 싸운다는 결론이 나있는 이상 복잡한 이야기는 필요 없지.

“맞는 말이네요. 유천씨”

“네, 네!”

저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저 귀신같은 눈빛이 무서워 유천은 움찔했다.

“유천씨가 직접, 아주, 자세히 저한테 보여주신 게 있으니까 뭐 조심하라는 말은 안 할게요. 알아서 잘 살아남으시겠지.”

“......”

‘조심하라고는 해주시지...’

“대신 폴른의 수장은 놓치면 우리가 잡아도 되니까. 절대 죽이면 안 돼요. 아셨어요?”

이번 작전의 핵심은 음지의 정보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관리하는 수장을 잡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었다.

“네...알겠습니다.”

“다행히도 유천씨가 강해서 일이 쉬워졌네요. 감사해요.”

“......”

‘감사한 게 맞을까?’

“그러면 하연씨”

“네?”

“저희는 나가서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결계를 치도록 해요. 랭커이신 하연씨에 비해 제가 부족한 게 많겠지만.”

“아! 너무 그렇게 겸손하실 필요는 없어요. 사실 굉장하셨어요. 저는 누구처럼 힘자랑하며 다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랍니다.”

“네...감사합니다.”

역시 사람끼리 친해지는 데에는 누구를 까는 것이 최고인가 보다.

지금까지 둘 사이에 별 접점도 없었는데, 양하연이 유천을 갈구자 급속도로 둘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 느낌이었다.

“그럼 저희는 갔다 오겠습니다.”

“......”

­......

양하연과 이지연이 나가고 조용해진 방. 낯선 공간이어서 그런지 항상 붙어 있었음에도 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유천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 게.

“어? 그, 그래”

아니 정확히는 유천만 어색했다. 스마트 폰을 신기하다는 듯 만지작거리던 킬리언은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에 들어갔다.

“허우야...”

마치 동정 커플이 처음 모텔에 갔을 때 느끼는 긴장감을 느끼던 그는 킬리언이 화장실에 들어가자 고여 있던 숨을 내뱉었다.

“이상하게 긴장되네...”

소파에 등을 푹 기대 천장을 바라보던 그는 아까 그녀의 말투와 인천으로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히죽거렸다.

‘그때 귀여웠지...’

뜨거운 첫 날을 보낸 후 킬리언은 단둘이서만 있을 땐 평상시의 어디 기사 같은 말투가 아닌, 부끄러워하면서도 일반적인 여성의 말투를 썼다.

그래서 섹스 후에 유천은 물었다. 왜 항상 민망해 하면서도 둘이 있을 때는 그런 말투를 쓰는 건지.

­유, 유천이한테는 여자로 보이고 싶으니까...그래서...꺄악!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와 지금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갭에 첫째 날처럼 유천은 이성을 잃었다.

­유, 유천아! 지, 지금은 안, 하읏­!

침대에 걸터 앉아있던 그녀를 밀어 넘어뜨리고 그대로 양 발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브이자로 벌려 곧게 들어 올려 진 다리 사이로 보이는 킬리언의 핑크빛 보지를 그녀가 손으로 가렸지만 손가락 그사이로 꿀렁이며 나오는 정액이 보였다.

­그, 그렇게 보지 마, 말아줄래?

처음 밑도 끝도 없이 자지를 물던 여장부는 사라지고 부끄럼 많은 요조숙녀가 나타났다.

­앗­!

그대로 가리던 손을 들어 올려 만세 자세로 고정시킨 후 어깨로 두 다리를 걸쳤다.

­아...아... 이 자세 부, 부끄럽으아앙­!!

찔꺽...

유천은 그녀의 허리를 약간 들어 올려 굴곡위의 자세 그대로 자지를 박았다.

­아아앙...! 기, 깊어!! 흐앙...아앙...

퍽­! 퍽­! 퍽­!

‘그때 쩔었는데...’

그 이후그녀의 입에서 ‘흐으아앙...사, 흐읏­! 살려주세여어엇...!’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했던 기억을 떠올라 유천의 하반신이 묵직해졌다.

‘하이고...짐승새끼...’

강력한 육신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놀러 온 것이 아님에도 조금만 야릇한 상상을 하면 상황을 가리지 않고 세우는 자신의 자지가 유천은 한 번씩 무서웠다.

딸칵­

그때 화장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렀다. 앉아있던 유천은 그녀에게서 하반신을 가리기 위해 재빨리 상체를 숙였다.

타박­타박­

‘어?’

맨발이 땅에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숙소에서 들릴 리 없는 소리였다.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발소리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어?”

매끈하게 뻗은 맨발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린다. 탄탄한 종아리, 하얀 전신 타월, 비단결 같은 은빛 머리칼 마지막으로는 살짝 붉은 보석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어, 어때? 저걸로 찾아보니까 남자들은 이런 거 좋아하는 거 같던데...마음에 들어...?

“......”

탁자 위의 스마트 폰에는 그녀가 입고 있는 전신 타월과 비슷한 것을 입고 있는 모델이 보였다.

‘저걸 보고 있던 거구나.’

아마 저걸 보고 숙소에 비슷한 게 있어서 그를 위해 입어준 것이리라.

­그...부끄러우니까 말 좀 해줄래...?

그 말에 유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그녀에게 향했다.

­어? 왜, 왜?

“우리 킬리가 예뻐서 못 참겠어서”

­그게 무슨 꺄앙­!

유천은 그녀에게 다가가 다리와 등을 받쳐 안아 들었다.

“둘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어때?”

­으, 으응...

유천은 품 안에서 몸을 부르르 떠는 킬리언을 보며 싱긋 웃고 그대로 침실로 향했다.

*

이지연

남들은 다들 어른스럽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아이에 가까운 여자다. 그녀가 가진 차가움과 냉정함은 스스로의 방어기제.

실제로는 어머니가 죽었을 때의 그 악몽, 꾹꾹 눌러둔 그것이 올라와 자신을 괴롭힐까봐, 마치 그림자가 무서워 옷장에 숨은 아이와 같다.

‘이게 다 네 아빠 때문이란다.’

‘네 엄마가 이렇게 되는 건 다 네 아빠 때문이란다.’

‘내 눈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나도 그렇게 해도 되겠지?’

하지만 지금 의도치 않게 되살아난 감정들이 기억을 자극해서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안대를 쓴 중년 여자. 내 어머니를 살해한 빌런. 기억이 난다. 나를 묶어두고 내 눈앞에서 어머니를 고문한 여자. 비명이 머리를 울린다. 죽여버릴거야. 아빠 어디 갔어? 왜 엄마를 죽게 내버려뒀어? 우리보다 용병일이 더 중요했던 거야? 아빠가 싫어!

잊고 있던, 잊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정이 머리에 박힌다. 고통 슬픔 원망 분노 부정적인 것들이 떠오른다. 그런데...그렇게 고통스럽지 않다. 마치 오래된 동화를 보는 것처럼.

“너무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마세요.”

“네...?”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이지연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 사람이 지연씨를 모욕하려고 그런 게 아닐 거예요.”

양하연의 말에 이지연은 유천을 떠올렸다. 잘 생긴 외모. 예의 바른 품행. 제법 말이 통할 정도의 머리. 초월적인 무력.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허당인 부분까지.

사실 이지연은 양하연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남자가 싫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울거나 짜증낸 건 갑자기 가슴을 채우는 무언가에 당황한 반응에 가까웠다. 채워진 지금은 그냥 원래 있어야 할 것이 들어온 느낌이다.

‘나는 좋아했던 걸까...?’

손가락이 부르트고 목이 갈라지고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마법을 파고들었다. 빌런들을 조사했다. 언젠가 놈들을 쓸어버릴 계획을 짜보기도 했다. 이 모든 걸 지금까지는 좋아서 한다고 나에게는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모르겠어...’

마법? 좋아한다. 빌런? 전부 죽이고 싶다. 비어있던 걸 받아들인 지금은? 여전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걸 버리면서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최면에서 깨어난 느낌. 어린 시절부터의 관성으로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 풀리는 최면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 계기가 되었다.

그의 행동을 떠올려봤다. 자신에게 굴욕을 준 테스트. 아마 현장지휘관으로써의 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물론 마법사로서의 나를 위하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나서 펑펑 울어버린 내 앞에 비 맞은 처량한 강아지마냥 끙끙거리던 것이 생각난다. 그토록 강한 사람이 그런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다.

함께 걷고 있는 양하연을 쳐다봤다. 방에서는 같이 갈구더니 나와서는 그 남자를 옹호해준다. 감정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보인다. 이 여자가 그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킬리언 그 마족 여인과는 그렇고 그런 관계처럼 보이던데. 참 나쁜 남자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둘이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돌아가고 싶단 충동이 든다.

강렬한 감정을 들게 한 상대에게 뇌가 착각에 빠져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나도 그런 경우인가? 아까까지 별 생각이 없던 양하연과 킬리언 둘 다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

“무슨 할 말 있으세요?”

내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양하연이 물었다.

“아뇨... 그냥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네? 뭘 말이에요?”

“유천씨 저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오래 안 봐도 알 거 같던데요?”

사실 아까 마치 자신이 더 그에 대해 잘 안다는 투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다.

감정의 착각이라도 무슨 상관일까? 지금은 좋은데. 나중 일은 나중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웃는 얼굴로 양하연에게 말했다.

무언가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그녀를 두고 나는 후련히 걸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