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이지연의 수난
* * *
“푸웁! 쿨룩! 쿨룩!”
저 당당한 모습으로 지연을 도발하는 유천의 싸가지 없는 모습에 양하연은 마시던 물을 뱉을 뻔한 걸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저런 이미지였던가...?’
처음 봤을 때 이성적이고 예의바른 모습은 어디가고 저 눈치 없이 세상 싸가지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유천을 보며 참 여러 가지 면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양하연은 생각했다.
‘그나저나 나는 왜 따라오려고 한 거지?’
유천과 킬리언이 인천으로 간다는 말에 킬리언의 마기를 막으려면 자신도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따라왔다.
그러나 그건 정령술식을 몸에 새겨주면 1달은 해결될 것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따라온 자신이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으......그런 걸 봐서 그래...’
양하연은 침대에 누울 때마다 생각나는 킬리언과 유천의 섹스 장면이 떠올랐다.
땀에 젖은 유천의 등은 세상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 거 같이 든든해 보였고, 피스톤 질을 하는 유천의 허리를 떠올리면 다리사이가 저릿했다.
‘야동을 봐도 안 그랬는데...’
섹스 혐오하던 자신이 성에 눈을 떴나 싶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동을 봤는데 5분을 보다가 역겨워서 껐다.
‘그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근 1주일동안 그렇게 간신히 잠들고 다음날이면 항상 팬티가 축축해져있었다.
매일 아침 그런 자신을 보며 스스로가 이런 변태였는지 자괴감에 빠져있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매일 고통스러운데...’
지금까지 자신의 이미지는 어디 갔는지 매일 끓어오르는 성욕 때문에 이렇게 자괴감을 느끼며 보냈는데, 가해자(?)인 저 둘이 멀쩡한 것이 분했다.
인천으로 출발하기 전에도 그랬다. 무언가 둘이서만 달달해 보이는 분위기. 그 모습이 정말 짜증나고 눈꼴셨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기는 해...’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걸로 탓하고 있는 건 안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그걸 본 본인 잘못이라는 걸.
하지만 정말로 둘만 뭔가 달달한 분위기를 내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방해하고 싶었다.
‘한심해...’
스스로의 한심함을 자책하며 양하연은 한숨을 쉬었다.
양하연이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서 우울해 하고 있을 때 유천의 도발에 이지연의 관자노리에 핏줄이 솟구쳤다.
“...나오세요. 후회하게 해드리겠습니다.”
*
호텔 인근의 빈 공터 유천과 이지연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정말로 공격하면 됩니까?”
“네 마음껏 하십시오!”
“......후회하실 겁니다.”
심상세계에 구현한 마법식을 언어나 손짓을 통해 외부로 구축하는 것이 마법이다.
유천의 의도되지 않은 도발에 평소에 마법에 큰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던 지연은 불쾌했다. 그래서 곧바로 자신이 쓸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위계와 파괴력이 높은 마법식을 심상세계에 구현했다.
[라이트닝 스피어]
언어를 통해 외부로 구축된 4위계 전(?)속성 마법 [라이트닝 스피어]가 파지직 소리와 함께 지연의 옆에 나타났다. 어지간한 괴수도 이걸 맞고 구워져 버린 것을 떠올린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묻기로 했다.
“진짜로 해도 됩니까?”
“네 하세요. 마음껏. 그 정도로는 그을려지지도 않습니다!”
빠드득!
유천은 자신이 충분히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발언이었지만, 누가 봐도 그건 도발이었다.
‘재수 없어...’
점점 눈에 열기가 차오르는 걸 느끼며 지연은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걸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꾸 눈치 없이 도발하는 유천을 보고 저 사람이 이걸 맞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출]
창과 유천을 이은 통로를 상상하고 구축된 마법을 사출시켰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는 파동. 이지연은 아무리 상대가 도발했다고 하지만 사람한테 쏠 마법이 아닌 것을 쐈나 싶어 아차 했다.
“음...간지럽지도 않네요.”
그때 손짓으로 먼지를 날려버리고 나타난 유천은 정말 생체기 하나 없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
4위계마법이다. 5위계부터는 랭커 취급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유천은 천상계 바로 아래 정도의 마법을 직격으로 맞았으면서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지연의 표정이나 얼굴빛은 이해 안 가는 현상에 약간 구겨져 있었고,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에 눈꼬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작전에 정신이 팔린 유천은 아까 망설이고 묻던 이지연의 모습을 보고 아직 자신이 믿음을 덜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과감하게 공격할 수 있게 하게 해야 해.’
그렇게 생각한 유천은 자신이 끄떡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말했다.
“지연씨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 정도로는 제 몸은 간지럽지도 않아요. 하하하!”
“......저 미친 인간이...”
양하연은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마법사들의 자존심이 어떠한지 아는 그녀로서는 유천이 한 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옆에 있던 킬리언조차 ‘도발하는 능력이 뛰어나군.’이라고 말한 걸 생각하면 말이 필요 없었다.
으드득!
처음에 그 감정이 없어 보이던 사람이 맞는지, 지연의 표정은 점점 살벌해져갔다.
“......그럼 이것도 한 번 맞아보시죠.”
처음으로 느껴보는 분노라는 감정이었지만, 뛰어난 마법사답게 지연은 눈을 감고 심상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집중해...’
이번의 마법은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 오만한 콧대를 눌러주려면 성공시켜야 했다.
그녀의 심상세계 속 스스로 발현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위계의 마법 [라이트닝 스피어]를 6개가 구현되었다.
그녀가 가진 재능 [트리플 코어]와 [사고가속]의 시너지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라이트닝 스피어 6중 동시 발현]
심상세계 속 구현된 마법이 언어를 타고 세상에 구축되었다.
“오호...대단하군요...”
유천의 도발에 경악하던 양하연이 이지연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양하연이 랭커인 만큼 저런 게 가능한 마법사는 많이 봤다.
하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위계의 마법을 6중으로 동시 발현하는 건 거의 보지 못한 재능이었다.
‘과연 한국에서 나올 다음 랭커로 기대 받는 이유가 있군요.’
[압축]
뇌창에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진 마력구조체가 모이고 뒤틀린다.
덜덜 떨리는 뇌창. 식은땀을 흘리며 통제하던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이다음으로 이어질 마법을 구축했다.
[나선창]
[나선창], 지금까지의 마법과 스킬은 모두 이 마법을 발현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위계로 따지면 4.5위계. 4위계에서 거의 끝에 도달한 마법사가 구축할 수 있는 일종의 궁극기다.
그 파괴력은 5위계에 한 없이 근접한다.
그렇게 6개의 뇌창이 그녀의 앞으로 모여 나선형으로 꼬아진다.
빠지직!
하지만 이곳저곳 균열이 생긴 걸 보면 완벽하지는 않다.
사실 말이 좋아 4.5위계지 4위계 마법사가 5위계의 파괴력을 따라하고 싶은 욕망에 만든 실패작이다.
“저것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양하연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4위계의 끝에 도달해야 가능한 것을 아직 중간 정도밖에 위치하지 않은 그녀가 성공한 것에. 하지만...
흥, 저런 걸로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었다면 유천은 내 손에 죽었겠지.
심드렁한 킬리언의 말에 양하연 또한 끄덕였다. 지연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격을 넘지 못했다.
격을 뛰어넘은 괴물들의 전력을 맨몸으로 받고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는데, 고작 저런 공격으로 가능할 리 없었다.
‘그녀가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양하연은 저 재능 넘치는 그녀가 이번 일로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식은땀을 흘리며 마법을 구축한 이지연은 눈을 뜨고 유천을 바라봤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정말로 쏴도 됩니까...?”
‘아직 내가 불안한가 보군.’
지연이 한 말은 자신에게 한 도발을 취소하라는 의미지만, 유천은 혹시나 그녀가 자신을 죽이게 될까봐 불안해하고 있는 줄 알고 말했다
“예 쏘셔도 됩니다. 그걸 로는 제 몸에 생체기도 못 냅니다! 하하하!”
으득!
‘응 뭔 소리지?’
그녀에게서 이빨을 가는 소리가 났지만, 유천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
“예 쏘셔도 됩니다. 그런 걸로는 제 몸에 생체기도 못 냅니다! 하하하!”
‘저 새끼가 진짜...’
으득!
계속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는 유천을 속으로 욕한 그녀는 자신의 마법을 바라봤다.
‘성공했어...’
실제로 성공한 거는 처음이었다. 도경의 과보호로 인해 별다른 갈등 없이 살아왔던 그녀다. 허나 그의 품을 벗어난 지금 의도하지 않았다지만 유천의 도발로 인해 처음으로 심정충격을 받았다. 이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 있는 일
거기서 나온 필사적인 분노가 원동력이 되어 지연은 오랜 시간 정체되어 있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은 아니지만 이만성과 이도경의 의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이걸 진짜로 쏴도 된다고...?’
처음 성공한 마법에 기뻤지만, 지대공 미사일 이상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을 이것을 정말 쏴도 되는지 주변을 봤다.
‘왜 저런 눈빛으로...?’
이곳을 외부로부터 [격리]하고 있는 양하연은 유천을 말리기는커녕 자신을 안쓰럽게 보는 표정이었고, 그 옆의 마족여인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심드렁하게 보고 있었다.
‘짜증나...’
어머니가 살해당한 후 그녀의 가슴에는 두 가지만이 남아있었다. 빌런에 대한 증오, 마법에 대한 자부심.
그러나 밑도 끝도 없는 유천의 도발, 거기에 실제로도 멀쩡한 모습. 거기에 마치 우물 안 개구리를 보는 눈빛들까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인생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마음에 안 들어’
처음 맞이하는 자극적인 경험들로 지금껏 잠겨있던 감정의 문이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특히 저 새끼... 저 새끼가 제일 마음에 안 들어’
본인이 의도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부심을 계속 모욕하는 그가 지연은 정말 짜증났다.
한 번 상대를 씹기 시작하자 이제는 자연스럽게 속으로 욕을 하는 이지연은 눈앞의 남자에게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악감점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도 몰라’
이제는 [나선창]을 통제하기도 힘든 상황. 이성적으로는 마법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한 방은 먹여야 겠어...’
저 당당한 눈빛을 한 번은 일그러뜨려야 잠이 올 거 같았다.
[사출!]
오늘 처음 느껴보는 분노에 몸을 맡기고, 유천에게 창을 던졌다.
콰과광!
아까보다 훨씬 커다란 파동은 땅에 거미줄을 새길 정도로 강력했다.
“허억...허억...”
‘이 정도면 됐겠지...?’
자신 보다 훨씬 강한 양하연의 반응을 보면 저 남자가 이 정도의 공격에 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저 오만한 남자가 조금은 식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과하게 할 거야...’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지연은 삶의 원동력이나 다름없는 자부심을 훼손당했다.
‘그리고 경고해줘야지.’
다시는 그런 무례한 발언을 하지 못하게 경고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음...역시 아무렇지 않네요. 지연씨? 이걸로 증명은 되었습니까?”
지연은 걱정이 무색하게 어깨를 툭툭 털며 나오며 기어코 한 마디 하는 유천을 보며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
“음...역시 아무렇지 않네요. 지연씨? 이걸로 증명은 되었습니까?”
‘그래도 대단하긴 하네.’
랭커가 아님에도 그 마법은 이만성의 주먹질보다 약간 약한 정도는 되었다. 꽤나 뛰어난 재능이었다.
‘이 정도면 불안해하지 않겠지?’
누가 봐도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거기서 자신은 멀쩡한 모습을 보였다. 충분히 증명을 다한 모습. 그녀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아마 저 고개 숙이고 몸을 떨고 있는 건 예상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제 작전에 조금도 걸리는 게 없다고 생각한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자 지연씨 보시다시피 제 몸은 멀쩡합니다. 이걸로 이제 의심은 안 하시겠...”
“흑...”
“지연씨...? 갑자기 왜 그러...”
“흑...흐윽...”
“......”
검은 생머리의 차분한 미인, 그게 유천이 가지고 있는 이지연에 대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가 눈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자, 유천은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주변을 돌아보다 다시 앞을 바라봤다.
‘지금 보고 있는 게 맞군.’
저기 있는 하연씨가 왜 나를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하고 있는지, 우리 킬리는 왜 자신을 감탄스럽게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흐윽...흐엉... 이 나쁜 새끼야...”
지금 이지연은 고개를 숙인 채 굉장히 서럽게 울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도경도 보지 못한 딸의 눈물을 고작 며칠을 함께 해온 유천이 보고야 말았다. 정확히는 그 본인이 울린 거지만.
‘엿 됐다...’
유천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뭐? 내 마법으로는 네 몸에 흠집하나 못 낸다고? 나쁜 새끼...흑...”
“......”
‘망할...’
그 말에 유천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스스로의 마법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다. 스스로의 삶 전체를 투영할 정도로.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데 확실한 테스트를 진행한답시고 유천은 그 자부심을 개박살 내버린 것이다.
거기에 유천은 몰랐지만, 이지연은 그 어느 마법사보다 그것이 더욱 소중했다. 그녀의 삶을 관통할 정도로.
“이 나쁜 새끼... 그런 이쑤시개로는 간지럽지도 않다고?”
“그, 그런 말까지는...”
“흐어엉...”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