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인천(3)
* * *
“이거... 진짠가요?”
정보단체 폴른의 수장 티보치나라고 불리는 여인이 한 편지를 흔들며 말했다.
“데라듐 조각이 들어있는 걸 보면 거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짜도 아니겠죠.”
“......”
네임드의 정보를 넘기겠다는 고유천이라는 이름으로 보내진 이 편지에는 그 증거로 데라듐 조각이 들어있었다.
“이 고유천이라는 놈 뭐하는 놈이에요?”
“나이는 24 태생은 서울의 효은고아원 각성을 한 지는 17살에 각성하고 현재는 협회 별정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나옵니다.”
“협회 별정직이라면 정찰부대? 한 마디로 정찰 나갔다가 네임드가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는 걸 목격했다... 이 말이네요?”
“일단......그렇습니다만...”
“하! 나를 아주 병신으로 알고 있나보네요. 협회 놈들”
협회 소속의 정찰부대, 카룬(KARUN)이라고 불리는 곳은 일종의 레인저 부대다.
고위험 지대를 홀로 들어가 정찰임무를 하는 그들은 협회 내에서도 개개인의 무력은 최정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폴른에서도 많은 자본과 인력을 들여서 그들의 정보를 수집, 관리한다.
“이만성에게 광적으로 충성하는 놈들이 그놈들인데, 그중에 하나가 이런 특급정보를 넘긴다?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우리를 아주 개병신으로 보는 게 맞네요. 아니 이정도면 도발인 건가요? 한 판 붙자고?”
까득!
이를 가는 티보치나의 몸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후우, 도대체 뭘 믿고 이런 도발을 한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네요. 이 고유천이라는 놈 내가 직접 만나봐야겠어요.”
“보스! 위험합니다!”
“그러면요? 이딴 도발을 피하자고요? 감히 저보고 이런 시골차원의 좆만 한 땅덩어리의 단체에게 고개를 숙이라고요?! 음지의 쓰레기 놈들한테 아주 죽여 달라고 하지 왜요?!”
쾅!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터뜨린 티보치나의 기세에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이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큭! 죄송합니다!”
부하는 그 기세를 간신히 흘리며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노려보다가 다시 힘을 갈무리했다.
“후우...아니에요. 제가 잠시 이성을 잃었던 거 같군요. 하지만 이놈을 직접 만난다는 걸 취소할 생각은 없어요.”
“......”
“아직 불안한 모양이네요. 좋아요. 카야”
“네 보스”
“듀블랑에게 전하세요. 일 좀 하나 맡기고 싶다고 말이에요.”
“듀블랑님 말씀이십니까...?”
“네, 그 개자식이요.”
듀블랑, 대구의 여명을 암중에서 지배하는 남자가 티보치나에게 부탁해서 음지에 숨겨놓은 중앙세계의 빌런이다.
과거 랭커의 자리에 오른 검사이자 이대로 가면 50년 내에 하이랭커에 도달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천재였던 남자다.
문제는 그 자질과는 다르게 그에게 변태 같은 취미가 있었는데,바로 남편 앞에서 아내를 강간하며 희열을 얻는 쓰레기라는 거다.
결국 그 행동이 위원회에 걸려 빌런으로 등록된 천하의 개자식이었다.
그 취미는 지구에 와서도 고쳐지지 않아 폴른에서 건드려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부부나 연인의 정보를 넘기는 것으로 간신히 통제하고 있었다.
“그 개자식한테 전해요. 그동안 잘 쉬었으니까 일 좀 하라고요. 의뢰 내용은 경호. 어때요 카야? 이정도면 안심하겠어요?”
“......그분께 말씀 안 드려도 되겠습니까?”
듀블랑은 여명의 그 ‘남자’의 암검(??)이다. 카야는 보스가 그를 마음대로 이용하려다 그의 눈을 벗어날까 걱정되었다.
“그분께는 사람을 직접 보낼 거니까 신경 쓰지 마요.”
“네...알겠습니다.”
“아참 고유천이라는 놈 지금 인천에 와있나요?”
“네 17번 테이블이 위치한 호텔에서 일행 셋과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일행 셋이요? 누군지 알아봤어요?”
“두 명은 정체를 숨기고 있었고, 한 명은 은발의 여인이라고 합니다.”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요. 정체가 뭐냐고요?”
“......죄송합니다. 그 셋이 여자라는 것과 정체를 숨기는 방식이 [미러링]과 유사한 걸로 보아 마법사, 정령사, 주술사 이 셋 중 적어도 하나가 포함되어있다는 것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하! 그러니까 상대는 우리를 아는데 우리는 저 놈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네요? 제 말이 맞아요? 카야?”
“죄송합니다...”
딱딱...
‘뭔가 불길해.’
뛰어난 주술사이자 정보 집단의 수장인 티보치나의 감이 요동친다.
자신의 수하들과 전 랭커 듀블랑까지 동원하는데도 끈적한 무언가가 자신을 감싸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놈들이 시간은 얼마나 준다고 해요?”
“3일을 넘기면 다른 곳에 갈 거라고 합니다.”
“끝까지 가보자 이거네요.”
까득!
선은 저놈들이 먼저 넘었다. 여기서 저걸 받지 않으면 자신은 음지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러니 이제 자신도 선을 넘어야 했다.
“카야...지금 당장 그분에게 사람을 보내세요.”
“보스?”
“가서 듀블랑 고용 건에 관해 허락 받아오라고 하세요. 네임드 관련 사안은 그분도 중요시 여기고 계시니 허락해주실 거예요. 그리고 저희가 가진 것 좀 털어야겠네요.”
“듀블랑 님 말고도 더 필요하시다는 겁니까?”
“네 이번 일 불길하네요. 확실히 해야겠어요. 각시탈 잔당들하고 지구에 남은 ‘검은 선자들’도 불러오세요.”
“...진심이십니까...?”
한국 최악의 테러집단의 잔당과 중앙세계에서도 세력이 있는 빌런집단을 불러들이겠다는 말에 카야는 자신의 주인에게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어지간히도 놀라운 일인가보네요. 당신이 저에게 질문을 던질 정도면.”
“죄송합니다...”
“아니요. 충분히 놀랄 만해요. 그런데 아직 하나 더 남았어요.”
“어떤...?”
“주령(?)의식을 치룰 거예요.”
“보스 그건 안 됩니다!”
상상계(???), 지성체들의 온갖 상상들이 구현화 된 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실존하지 않는 세계다.
이론적으로는 주술사의 주력과 정신력 그리고 정당한 대가를 치루면 말도 안 되는 무엇이라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주술은 현계가 아닌 상상계의 법칙을 따르기에 현계에 짓눌려 생각보다 그 힘이 크지가 않다.
하지만 주령의식을 할 경우는 다르다. 주술사의 영육(?)을 통로로 하여 나오는 무언가는 상상계의 힘을 고스란히 현계에서 구현한다.
하지만 조금만 삐끗하면 주술사가 현계에 배재당해 세상에서 소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의식이었다.
“백색 마왕을 부를 거예요.”
“보스...진짜로 죽습니다...”
백색 마왕, 옛날 어떤 미친 빌런이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소망으로 도시 하나를 인신공양을 했고, 그 악념들이 모여서 탄생한 상상계의 괴물이다.
대주술사정도는 되어야 간신히 힘을 빌릴 수 있는 그런 괴물을 강림시키다니, 고위 주술사인 그녀가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다.
“너무 걱정 말아요. 최후의 수단이니까.”
“왜...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카야의 의문에 티보치나는 웃으며 답했다.
“나의 그분께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그 분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카야는 어느 누구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보스만의 안주인 내조가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이정도면 확실하겠죠?”
“너무...과잉 전력입니다...”
폴른의 전력, 듀블랑, 각시탈, 검은 선자들에 마지막으로 백색 마왕이라니.
“거기에 공방으로 부르실 생각 아니십니까?”
“맞아요.”
고위주술사의 공방이 어지간한 대마법사의 공방보다 더 지독한 걸 생각하면 카야는 아무리 봐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자...준비는 끝났어요. 제가 주령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정보상 일은 하위 조직원들에게만 맡기고 당신은 제가 말한 일을 최우선으로 하세요. 3일, 그 건방진 놈들한테 3일 뒤에 보자고 전해요. 테이블은 당연히 0번, 제 공방이고요. 알았죠?”
“네...알겠습니다.”
*
그 시각 폴른이 자신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대비를 하고 있는줄 모르는 유천의 일행들은 옛 인청시청 주변 숙소에서 머물며 이지연의 주도하에 작전을 짜고 있었다.
“유천씨랑 킬리언씨는 그냥 거기 있는 쓰레기들 다 죽이고, 티보치나만 잡으면 됩니다. 총 32개 구역에 대한 방비라던가 구획 봉쇄 같은 것들은 저와 하연씨가 할 겁니다.”
“......”
사실 유천의 입장에서는 작전이랄 것도 없었다...
첩보 같은 것을 상상하고 온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00X이 아닌 존X을 찍으라는 말에 아연하게 쳐다봤다.
처음의 단정하고 예의바른 차가운 미인은 어디가고 지금의 지연은 제2의 킬리언이었다.
호오... 제법 나랑 마음이 맞는군. 인간여자
“제 이름은 이지연입니다. 킬리언씨”
역시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걸 좋아하는 킬리언은 이지연에게 호감을 표했다.
“아니... 그...지연씨?”
“네?”
“그...뭐냐...뭐 어떤 모습을 연기해야한다. 어떠한 협상을 거쳐야 한다. 뭐 그런 거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어차피 저쪽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이게 함정인 것을. 이게 함정인 걸 모르면 티보치나는 정보 단체 수장이라는 자리에 안 맞는 자라는 거겠죠.”
“......아니 함정인 거 뻔히 아는데 그쪽 수장이 나온다고요?”
“예 나옵니다. 아니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누가 봐도 함정인데도 나온다고 말하는 이만성과 이지연이 유천은 도저히 이해가지 않았다.
“그렇게...확신하시는 이유는요...?”
“만약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티보치나가 이런 특급정보를 거래하는 자리에 안 나타났다? 그렇게 되면 이런 소문이 음지에 퍼지게 될 겁니다. ‘폴른의 수장은 지레짐작만으로 겁을 먹고 숨는 병신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본인도 알 겁니다. 그렇게 될 거라는 걸.”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걸 감수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굴욕은 받겠지만 그 정도로 최대의 정보단체가 무너질 거라고 유천은 생각하지 않았다.
“......협회장님이 어지간하면 말하지 말아달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된 이상 말씀드려야겠군요.”
“그게 무슨...?”
“유천씨 협회는 당신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허술하게 처리했습니다. 누가 봐도 수상하게 말이죠.”
‘이...개 같은 영감탱이가...’
이유를 끝까지 말 안하더니 이래서였구나...
‘빠득! 두고 봅시다... 영감탱이...’
“후우... 그래서요?”
이만성은 나중에 다지기로 하고 일단은 지연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만약 유천 씨라면 약해빠진 놈이 당신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겁니까?”
“아.......”
‘무슨 말인지 알겠군.’
“이곳 음지에서는 그걸 살려두면 호구 취급으로 매장당합니다. 지금 상황도 유사합니다. 협회가 허술한 정보 가지고 정보단체에게 시비를 건 것이 그런 거지요. 저들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음지에서 매장당하고 싶지 않으면.”
‘......하루만 다지려, 아니 대련을 하려고 했는데, 7일로 늘여야겠어.’
이만성은 이제 보니 애초에 온건한 방법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전쟁을 생각하고 유천을 보낸 것이었다.
‘으드득! 진짜 기대하고 있으십쇼. 영감님’
문제는 없지만 이만성에게 속은 것에 열 받은 유천은 이를 갈았다.
“그 전에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 갈던 유천에게 이지연이 말을 걸었다.
“네? 어떤 걸 말입니까?”
“국장님과 협회장님으로부터 당신이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라는 건 들었습니다. 허나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
“상대는 주술사입니다. 그것도 고위 주술사로 추정되는 존재. 예상이 맞다면 그 여자는 유천씨를 자신의 공방으로 안내할 겁니다.”
‘고위 주술사의 공방이라...’
철저히 준비된 주술사의 공방이라면 랭커라도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 고위 주술사의 공방이라면? 랭커 두셋이라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지연은 분명히 그가 얼마나 강한지 말로만 들었지 보거나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작전의 전제 조건인 유천의 강함을 확인해야했다.
“음......”
‘어떻게 확인시켜주지?’
대결? 성립도 안 된다. 듣기로는 양하연 다음 한국의 랭커가 될 거라고 한다지만,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다.
힘을 보여준다? 인천이 난리가 날 수도 있다. 그러니 이것도 안 된다.
양하연과 대련을 한다? 그녀는 전위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타입이 아니다.
킬리언? 철원이 어찌 됐는지 생각해봐라.
‘그거 밖에 없겠다.’
유천은 지연이 자신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지연씨”
“네?”
“저는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
“저의 어디를 어떻게 공격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만약 제 몸에 피 한 방울 아니, 생체기 하나라도 낸다면 이 작전 없던 걸로 하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천의 말에 지연의 낯빛이 굳어졌다.
마법에 대한 자부심이 삶의 가장 큰 부분인 그녀에게 저 말은 네 삶의 가치는 나에 비해 한 없이 떨어진다는 말과 같이 들렸다.
하지만 유천은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 그녀를 설득하기로 했다.
“음... 하연씨나 킬리언 같은 경우는 제 능력을 알지만 지연씨는 모르시니까 직접 제가 이번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시는 것이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네”
이번 작전 현장 지휘관 역할인 그녀가 당연히 유천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야 했고 그걸 본인이 직접 확인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그는 이 방식이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지연씨도 납득하겠지.’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던 유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제대로 보여줘야 해 아니면 작전 도중에 그녀가 망설일 수도 있어.’
이곳에서 현장 지휘관 역할을 맡은 그녀가 자신을 못 믿고 망설이다가 실패하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유천은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자 보여드리겠습니다. 무엇이든 하셔도 됩니다. 지연씨가 뭘 해도 흠집 하나 안 나는 걸 증명해드리겠습니다.”
빠직!
이 자리에서 본인만 모르는 도발을 유천은 해버리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