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인천(2)
* * *
“피곤하군...”
“형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강원도에 나타난 네임드 때문에 세계연합으로부터 며칠에 걸쳐 압박에 시달린 이만성은 의자에 축 늘어졌다.
“빌어먹을 승냥이놈들 꼬투리만 잡으면 지랄이야 아주.”
“중화연맹 말씀하시는 겁니까?”
중화연맹, 괴수들의 침략으로 인해 국내 치안력을 상실한 중국은 47개로 쪼개졌다.
그렇게 자신들만의 춘추전국 시대를 이어가던 중, 중앙세계에서 돌아온 현 연맹의장 류청을 비롯한 3명의 랭커들이 주도하여 만든 군사 동맹이 중화연맹이다.
“문제가 되는 게 위쪽 짱깨들 말고도 있지 않나? 정신병자 천황국 놈들...”
이만성이 말하는 곳은 옛 일본의 땅, 지금은 천황국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4면이 바다인 일본은 태평양으로부터 건너온 해양괴수들의 무시무시한 공세 속에 무너져갔다.
그때 중앙세계에서 돌아온 일본 왕실의 적손인 랭커 야마토가 힘과 명분 둘 모두를 등에 업고 일본을 다시 하나로 묶고 천황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또라이놈들... 언제적 군국주의냐...”
문제는 나라와 신민들을 지키려면 내륙으로 향해야 한다며, 옛 자기네들 땅이었던 한반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조그마한 땅에 비해 기형적으로 랭커가 많았기에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 하는 결과를 나았을 지도 모른다.
이번 네임드가 나왔다는 말에는 아무 말도 없더니 사라졌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한국을 믿을 수 없다.
그러니 자국의 각성자들을 한국 각성자 협회에 파견하겠다는 개소리에 기가 빨린 이만성이었다.
“맞다 지연이는 어떻게 했는가?”
그딴 시답잖은 머리 아픈 이야기를 뒤로 넘기고 이도경에게 그녀의 딸이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네임드 문제가 예상치 못하게 해결되었으므로 이지연이 중앙세계로 넘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강원도로 떠나기 전에 미리 연락해서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마법을 연구하고 있든가 아니면 훈련을 하고 있겠지요.”
일이 어떻게 된 것이든 이지연은 3팀장자리에서 잘린 백수 신세다. 하지만 그 성격에 뒹굴 거리지는 않을 테니 수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음... 지연이가 할 일이 없다면, 시키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시키고 싶은 일 말씀입니까...?”
이만성은 고민하다 말했다.
“이번에 유천군이 곧 인천으로 가지 않나?”
“네 그렇...설마...?”
“그곳이 어찌 돌아가는 지 아는 사람이 한명 필요하다네. 지연이라면...잘 알고 있을 거로 아는데 아닌가?”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딸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이도경은 그녀가 그런 위험한 곳에 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녀의 의사를 떠나서 말이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도경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지연이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일세.”
“......그건”
어머니를 잃고 폐인이 된 이지연은 우연찮은 계기로 마법을 접하게 되었다.
스스로가 마법에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이지연은 마법을 연구해 그 힘으로 빌런들을 죽이고자 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또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경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빌런을 죽이기 위한 도구였던 마법이 시간이 지나 또 다른 목적으로 바뀌어 그녀의 자부심이자 또 다른 삶의 이유로 남았다.
즉 지금의 그녀에게는 빌런에 대한 증오, 그리고 마법만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홀로 개척할 경지가 아닌 건 도경이 자네 또한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뛰어난 재능과 열정으로 4위계에서 중간까지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5위계부터 랭커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실전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정신적 각성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거기에 그것뿐만이 아니지.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증오심. 그 한은 스스로가 풀어야 한다는 것 알고 있지 않나?”
이도경은 저 말이 틀린 것 하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분명 이번 유천의 인천 투입 건에 자신의 딸이 간다면 좋은 기회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네...언제까지 그 아이를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발목을 잡을 겐가?”
“...!!!”
“자넨 처음부터 그랬지 그 아이가 빌런을 잡아 죽이고 싶어서 협회의 문을 두드리고 싶어했을 때 그걸 막아섰지.”
과거 어머니를 살해한 빌런이라는 족속들을 증오한 이지연은 협회로 가서 빌런들을 잡는 일을 하고 싶어 했지만, 이도경이 막아 관측기구로 오게 되었다.
“통제된 상황 속에서 괴수를 죽이는 일로 그 아이의 한이 풀릴 거라고 생각하는가? 정신 차리게.”
꾸욱...
이도경은 이만성의 말에 ‘형님이 제 딸에 대해 저보다 아십니까? 제 딸은 제가 압니다.’ 이렇게 반박하고 싶었다.
‘할 수가 없군...’
하지만 이도경은 이만성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이만성이 하는 말은 아비에게 딸의 살인을 종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경이 제발 정신 차리게 자네 계속 그렇게 억지로 껴안고만 있으면 지연이는 말라 죽을게야.”
“......”
하지만 이만성이 실제로 하고자 하는 말은 빌런을 제물로 삼아 자신의 딸을 살리라는 것이었다.
“빌런에게 쌓인 한을 풀지도 못하고, 마법 또한 나아가지 못해 계속 그 상태가 유지되면 지연이에게는 살 이유가 없다네.”
“......”
‘내가... 너무 과보호하려는 건가...’
이만성의 다그침에 지금까지 자신이 딸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그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었던 게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았다.
‘그렇군... 나는 그 아이를 방해하고 있었어...’
빌런들을 상대하고 싶어서 협회에 가려는 그녀를 막고 관측기구에 들이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괴수 토벌을 하도록 시켰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오는 걸 배제해서 그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해 버렸다.
‘여전히 나는 어리석구나...’
항상 감정이 옅은 이지연을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오히려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은 이도경의 얼굴은 10년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지연이를 보내지요...”
이도경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기를 빌며 자신의 딸을 인천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래 잘 생각했네...”
지금도 빌런들이 있는 인천으로 지연이 갈 생각에 두려움에 몸이 떨리지만 더 이상 자신의 괴로움을 위해 딸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유천이 그와 킬리언양이 있다네. 너무 위험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도록 하지.”
‘고유천...’
이도경은 그의 불가해한 힘을 생각하고, 일단 안심하기로 했다.
“네...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4명이 가는 걸로 하면 되겠군.”
“네? 네 명이요? 한명은 누굽니까?”
“응? 못 들었나? 하연양도 그를 따라가겠다고 했다네. 물론 외부에 알리지 않고 말이야.”
“그녀가 어째서...?”
“유천 그가 인천을 간다니까 자신도 동행하겠다고 하더군. 킬리언 그녀의 마기를 숨기기 위해서라던데... 어쨌든 랭커 한 명이 더 추가되면 좋은 일 아니겠나?”
이도경은 1주일 뒤에 가는 인원을 생각해봤다. 고유천, 킬리언, 양하연 그리고 딸 이지연까지.
“하하... 정말로 안심해도 되겠군요.”
“그럼~ 아무렴 내 딸 같기도 한 아이를 사지로 보내려고 했겠나? 허허 이 친구가 나를 뭐로 보고”
과잉전력이다. 음지에 아무리 숨겨진 전력이 있을 수 있다고 해도, 전자의 두 명 중 하나만 있어도 말살이다.
유천에게 인천의 음지가 필요하고 밝혀지면 안 돼서 그렇지. 오로지 부수는 것이 목적이었으면 지금처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인천에 관한 자료들 정리하고 지연이도 준비시키시게. 투입은 1주일 뒤로 하세나.”
*
1주일 후 인천으로 출발하는 당일
“저희 두 명이서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허허 미안하네. 미리 말 해주고 싶었네만. 자네가 영 전화를 받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유천은 근 1주일 동안 폰도 보지 않고, 두 가지만을 해왔다. 일단 수련, 하루 12시간을 킬리언에게 힘을 다루는 수련을 받은 결과 아래와 같은 성장을 이루었다.
‘상태창’
이름: 고유천
종족: 인간
재능: 공간안(C+), 오륜성(B), 철신(A), 사고 가속(CC+)
가호: 없음
스킬: 요새 부수기(C), 오행기관(BB)(심법), 제공(B+), 킬리언식 투법(C)
스탯
육신: 0.55초월(3차)
감각: 52.24
정신: 54.17
마나: 58.37
마일리지: 237,564p
말도 안 되는 스탯 상승, 재능의 영향도 있겠지만, 육신 스탯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스탯들이 버프 받은 거 마냥 높아졌다.
재능과 스킬들의 등급도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저 킬리언식 투법, 저것을 그녀에게서 전수받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일리지 상점을 뒤졌고, 7백만 포인트에 판매하고 있는 걸 바로 구입했다.
그녀에게 직접 배우는 것에 스킬 효과도 같이 누리기 위해서였고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천재 취급을 받았지만, 반은 맞는 말이어서 조용히 있었다.
이제는 주먹을 휘둘러도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을 수준까지 도달했다. 사람을 때리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12시간 중 4시간을 밥을 먹거나 수면을 취했다. 그리고 남은 8시간은...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섹스를 하며 보냈다. 한 번 눈이 맞은 아주 건강한 남녀가 한 집에 있으면 할 것이 그것밖에 없지 않나?
덕분에 유천과 킬리언은 서로에 대해 여러가지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유천은 자신과 같이 가는 맴버 중 한 명에게 의문을 품었다.
“근데...양하연씨는 왜 따라오시려는 겁니까?”
“기억 안 나세요? 제가 킬리언양의 마기를 은폐하기로 한 거? 협회의 영향력이 안 미치는 곳에 가는데 따라가는 건 당연한 거 아녜요?”
“아...네...”
“흥!”
‘왜 저러지...?’
평상시에도 차갑기로 유명한 양하연이지만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거기에 신경질까지 난 것 같았다.
“양하연씨야 그렇다 치고... 저 분은 누구...?”
“인천에서 여러분을 대신해 현장 지휘관 역할을 맡은 이지연이라고 합니다.”
양하연이 차가운 사람이라면, 이지연은 인형 같았다. 외모뿐만 아니라 감정도 말이다.
‘저런 사람들은 보통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 많던데...’
상처 받은 아이가 많은 고아원 출신인 유천은 이지연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지연이는 국가기관 각성자로 일 해온 만큼 인천에 대해 빠삭하니 도움이 될 걸세 실력도 뛰어나고 동시에 도경이 딸인 만큼 그대들에 대한 비밀이 누설되지는 않을 걸세”
“제 딸아이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겠습니다.”
이만성의 말에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안다는 것에 찝찝했지만 이도경의 딸이라는 말에 그녀에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했다.
“고유천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지연입니다.”
악수를 하고 마지막으로 킬리언을 쳐다봤다.
“킬리 너는 준비 다 됐어?”
바, 밖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마라! 흥! 그리고 준비할 것도 없다.
‘쟤는 또 왜 심통난 거야?’
아까 이지연과 악수하는 걸 빤히 보고 있던데. 설마...
‘설마 쟤 지금 질투하는 건가?’
그날 눈이 맞은 후부터 매일 뜨거운 밤을 보내면서 점점 여성스럽게 변하는 킬리언이었다. 훈련할 때도 가슴을 쳐다보면, 손으로 가린다던가. 빤히 쳐다보면 얼굴을 붉힌다던가. 지금처럼 질투를 한다던가.
“저렇게 귀여운 애가 처음에는 어찌 그렇게 딱딱했대?”
아마 외차원이 저런 모습으로 살아갈 환경이 안 되었겠지.
지금도 봐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고개를 휙휙 돌리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고작 1주일 사이 철면피 야만전사에서 새색시가 된 킬리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귀여웠다.
“크흠...!! 유천씨?”
“네?”
“이제 준비 끝났으면 출발하도록 하시죠.”
“아, 알겠습니다.”
얼굴을 붉힌 채 귀를 파닥거리는 양하연을 유천은 알쏭달쏭하게 쳐다봤다. 게임 속에서 엘프가 감정의 진폭이 커지면 귀를 파닥거린다는 걸 아는 유천은 이 상황이 그럴 상황인가 의아했기 때문이다.
“허...설마...? 허허허! 청춘이구만 청춘이야...”
“협회장님...? 쓸데없는 말 하지마시고 이제 슬슬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아, 알겠네...”
무언가를 깨달은 듯 이만성이 웃다가 양하연의 싸늘한 반응에 식은땀을 흘렸다.
“크,크흠... 거창한 계획은 없네. 인천의 음지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중 하나를 빼앗는 게 우리의 목표네.”
지하시장부터 불법의뢰소, 투기장까지 음지에는 여러 가지 불법적인 시설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협회에서 그곳을 정리할 수 없는 이유는.
“정부 고위 간부, 국회의원 길드까지 그곳은 빌어먹을 이권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네. 그래서 우리는 건들 수 없어. 하지만... 그대들은 다르지.”
유천과 킬리언의 존재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다. 양하연이나 이지연은 정체를 숨긴 채 보조만 하고, 둘이 그곳을 뒤집어 버리고 장악한다면, 동맹관계인 이만성 또한 음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무작정 가서 이곳저곳 건들면 되는 겁니까?”
“아니, 그래서는 안 되네. 그렇게 하다가는 벌집을 쑤신 것 마냥 사방에서 놀라 튀어 오르겠지. 나는 음지를 뒤엎고 싶은 거지 한국을 개판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네.”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그것도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자가 음지를 건들면 그곳에 기반과 자본을 마련한 한국의 주요인사들 또한 흔들릴 것이고, 잘못하면 이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중요한 부위를 빠르고 섬세하게 차지한다. 그것이 우리 계획이라네. 유천군과 킬리언양은 빠르게 그곳을 제압만 해주면 될 걸세. 섬세한 일 처리는 여기 지연이가 해결해 줄게야. 그렇게 된다면 음지는 숨지 못하고 오히려 그대들을 찾아올 것이야.”
음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부분만 일점 타격해서 점령한다. 그것이 이만성의 계획이었다.
“그 지점이 어디입니까?”
음지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지점 그곳이 어딘지 유천은 물었다.
이만성은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보랏빛 꽃문양의 실링이 왁싱되어 있는 편지를 건넸다.
“답은 간단하네. 정보, 그걸 다루는 집단 그들이 음지의 중심이라네.”
“이 편지와 그게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음지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단체 이름은 ‘폴른’ 그리고 그곳의 수장을 사람들은 티보치나라고 부른다네. 여기 왁싱 되어 있는 그 꽃의 이름이지. 우리는 그들을 추적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아낼 수 없었다네.”
협회에서는 그들의 존재를 알고, 그들을 캐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투입된 요원들만 실종되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나마 알아낸 것이라고는 그 티보치나가 주술사일 것으로 추정되는 점과 여자라는 점 그리고 그녀를 직접 만나기 위한 방법 정도가 된다네.”
이만성은 책상에 올려진 편지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이 편지, 이것이 그 유일한 방법일세. 여기에 어떤 정보를 사거나 팔겠다는 것을 적고 정해진 장소에 가져다 놓으면 그들은 그걸 확인한 후 판단한다네. 만약 그 내용이 폴른의 수장이 적접 처리해야 하는 사안이라면 만날 수 있지.”
거기까지 말한 후 이만성은 유천을 강인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여기에는 유천 자네의 이름으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글이 써져있네.”
“......그게 무슨”
말도 없이 자신을 써먹으려고 한 것에 유천의 표정이 언짢아졌음에도 이만성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킬리언양의 무기를 증거로 해서 네임드가 어떻게 됐는지 그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글이 여기에 적혀있네. 이 정도의 정보라면 티보치나도 직접 올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강요는 아닐세. 다른 방식을 원한다면 그대가 직접 이 편지를 찢게나. 조금 돌아가겠지만 다른 방식도 계획되어 있다네.”
“......”
‘효과적이긴 하겠군.’
특급정보 그를 이용해서 수장을 끌어낸다. 분명히 효과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 너무 도박 아닙니까? 그쪽 수장이 안 나오면 어쩌려고요?”
눈앞의 편지는 양날의 검이다. 수장을 유인할 수도 있겠지만, 유천이 수상하다는 걸 알고 안 나올 수도 있다.
‘협회에서 내 정보를 어떻게 조작했는지 모르지만 그 정도의 정보단체의 수장이라면 내가 수상하다는 걸 파악할 거야.’
협회에서 공을 들여 공작들도 지금껏 실패해오지 않았나?
‘그런 수상한 놈이 특급 정보를 제공하는데 당연히 이상하다고 여기지’
“아니, 분명 그 자는 자네가 수상해도 직접 만나러 올 걸세.”
“근거는요...?”
“크흠... 그건 인천에 대한 세부적인 사안은 지연이에게 듣게나. 이 아이가 그곳 생리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알 테니.”
‘왜 지금 말 안 해주는 거지?’
이만성의 수상한 행동에 눈을 좁히고 노려봤지만, 저 능글맞은 영감탱이는 벌써 포커페이스에 들어갔다.
‘망할 노친네...’
정말 첩자를 투입할 생각이라면 이런 있어 보이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작전을 짜지 않는다. 이 영감탱이 말대로 그쪽 수장이 온다고 해도 거기에는 필히 함정이 있을 거라는 전재로 짠 거다.
그래 문제는 없다. 놈들이 전력을 동원한 함정을 파더라도 킬리언과 나 둘 중 하나만 있어도 그 함정들 전부를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 아주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영감님...언제 저랑 대련 한 번 하시죠...”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아니지...’
“자네...나를 죽이려고 그러시는가?”
유천의 말에 이만성은 포커페이스를 무너뜨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허허... 웃었다.
“에이~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십니까? 저 이제 힘 조절 잘합니다. 부족한 후배 각성자에게 깨달음을 주시죠?”
“크, 크흠! 그러고 싶긴 한데 내가 워낙 바빠서 말일세... 그 각성자들에게 들어오는 항의라던가 누구 신변처리 문제라던가 등등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몸이라서 말이야.”
‘능글맞은 영감탱이... 처음 이미지는 안 이랬는데.’
유천과 킬리언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돌려 말하는 이만성이 얄미웠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다음에 기회를 노려보기로 했다.
“후우... 영감님에게 놀아나는 느낌이긴 하지만 확실히 효과적이네요. 그 작전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장 이것 이상의 방법이 떠오르진 않았기에 유천은 이 작전을 받아들였다.
‘어쨌든 해야 할 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유천은 열 받기야 하지만 그냥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투입시키는 영감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오오!! 그래 잘 생각했네! 솔직히 그 무식하기 짝이 없는 몸뚱아리가 고작 함정에 빠진다고 생채기 하나 나겠나!”
“아니 이 영감탱이가 진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