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19화 (19/116)

〈 19화 〉 인천

* * *

“한밤중에 무슨 일이 있던 건가...?”

“하하하하...”

“......죄송합니다.”

유천은 킬리언과 격렬한 섹스 후 박살난 침대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찾아온 이만성과 이도경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

“음...아니네. 젊은 남녀 둘이 한집에 있는데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괜찮겠나?”

“......”

“내가 뭘 말하는지는...알고 있겠지?”

“네...알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서로 눈이 맞아서 침대에서 뒹굴었지만, 그녀는 외차원의 존재다. 즉 내 눈에는 예뻐 보일지라도, 남들에게는 괴수 그것도 네임드급 괴수다.

지금 나와 킬리언의 사이의 앞길은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험난할 거다.

“제가 감수하겠습니다. 이 문제는.”

하지만, 모쏠의 고집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녀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실제로 그녀가 일을 저질렀으면 모를까 내 손에서 해결이 됐다. 생체장갑만 입지 않으면, 그녀는 사회생활이 조금 부족한 매력적인 여인이다.

“그렇게까지 얘기한다면 말리지 않겠네. 그대 말대로 선입견만 안 가지면 그녀는 충분히 대화가 되는 존재라는 걸 직접 확인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유천은 고개를 숙이고 감사함을 표했다. 실제로도 감사하기도 했다. 어쨌든 저들은 리스크를 지고 있는 거니까.

‘공짜는 아니지만.’

이제부터 그에 관해 협상을 해야 한다.

“그럼 이야기나 나눠볼까?”

“네”

“그때도 한 이야기지만, 일단 그녀가 이곳에 있는 건 알다시피 부담이 굉장히 크지. 하지만 그걸 감수할 가치가 있어. 랭커 이상의 전력과 그리고...그보다 강한 존재를 아군으로 둘 수 있다는 거지. 그렇지 않나?”

“......”

‘과연...이미 저울을 쟀군.’

아마 그는 아까의 문답을 통해 그녀의 가치를 더욱 높였을 거다. 그녀와 정을 나눈 ‘나’라는 전력을 끌어들이려면 그녀를 배제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아까의 물음도 내가 그녀에게 정을 가지고 있나 아니면 그냥 하룻밤의 꿈인가를 알아보려고 한 거겠지’

고지식해 보였는데 능구렁이 같은 면모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외차원에 대한 정보 이것도 상당히 중요하지... 보아하니 위험한 부분도 있는 거 같지만 말이야.”

외차원 마족에 관한 이야기는 오래도록 어지간한 랭커조차 모른다. 무언가 거대한 세력에 의한 정보가 통제되고 있다는 말이다.

잘못 건들면 지구라는 차원이 날아갈 수도 있지만, 어차피 시골 깡촌 차원. 중앙세계의 거대 세력이 이곳에 관심을 표할 리는 없다.

“자잘한 사안들도 있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저 두 가지네. 다만 이것은 여기 도경이랑 나 이만성과의 계약이네. 협회장과 국장과의 협의가 아니라네. 납득하는가?”

공식 집단에서 괴수를 스카우트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 마디로 이만성은 우리를 일종의 비밀병기로 고용하겠다는 말이었다.

“무력제공과 외차원 정보제공... 네 그렇게 하시죠. 대신 개인적인 원한과 같은 사연으로 저희의 힘을 이용하시면...”

“그럴 일은 없다고 맹세하겠네. 그리고 자네가 안하겠다고 하면 누가 막겠나. 허허”

“네 그럼...”

“그래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해보게.”

처음에는 지구를 중앙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건 지금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킬리언은 갈 수 없다.’

그녀의 입장 상 지구에 혼자 둘 수는 없다. 내가 중앙세계에서 데리고 다니거나 외차원으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현재 둘 다 가능하지 않다.

중앙세계는 지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 세력들의 각축장. 그곳에서는 아무리 정체를 숨겨도 금방 들킬 것이다.

외차원으로 돌아가는 일 또한 중앙세계에서 이룰 수 있으니 이것도 불가능한 건 마찬가지.

한 마디로 그녀를 죽일 것이 아니라면, 내가 데리고 지구에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이곳에서 힘을 쌓아야 한다. 누구도 쉽게 건들 수 없는 절대적인 무력을.’

지구 정도의 인프라로 세력은 쌓을 수 없다. 중앙세계에서도 먹힐 세력을 쌓으려면 그곳으로 가야한다. 그러면 남은 것은 하나 무력뿐이다.

3차 초월의 육신을 완벽하게 다룬다면, 마족이라는 존재를 숨기려는 세력도 쉽게 건들지 못할 것이라고 유천은 생각했다.

“수련을 할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대 정도 되는 자가 수련이 필요한가?”

“알다시피 저는 저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었습니다. 저는 지금 제대로 제 육신의 힘을 다루지 못합니다.”

유천은 기억상실이라는 설정을 이용하기로 했다.

“최대한 사람들이 모를 장소를 주십시오. 거기서 힘을 쌓고 중앙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음...한국을 아예 떠날 생각인가?”

“아닙니다. 기반은 이곳에 둘 생각입니다.”

중앙세계의 다른 세력들과 마찬가지로 유천도 본원차원에 기반을 두고 중앙세계로 뻗어나갈 계획이었다.

“음...몰래 힘을 쌓기 괜찮은 장소라면... 한국에는 딱 한 곳이 있네”

“어디입니까?”

“인천, 음지가 있는 곳이라네.”

빌런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린 인천에는 음지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협회의 통제를 벗어난 그곳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이만성이 쓸어버리려고 해도 건들기 힘든 곳이었다.

“그곳에서 음지를 차지하게 유천군의 정보에 대해서는 우리가 철저히 은폐 시키겠네”

이만성은 유천이 이곳에 기반을 마련할 생각이라면 음지를 내어줄 생각이었다.

만약 그곳을 유천이 차지한다면, 유천은 숨어서 힘을 기를 수 있었고, 그는 인천지역에 대한 통제를 되찾을 수 있었다. 서로에게 좋은 상황. 유천 또한 괜찮다고 생각하고 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뚜벅뚜벅...

인천, 빌런들의 도시답게 보수 안 된 낡아빠진 건물들과 싸구려 네온사인. 거기에 기분 나쁜 축축함과 음침함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그곳에서도 더 음침한 골목을 검은 일색의 남자가 걷고 있다.

“어이 거기”

“?”

남자가 걷는 길을 누군가 막아섰다.

“이 뒤로는 길이 없어 저어~기로 돌아가셔.”

꾀죄죄한 몰골, 한 손에는 녹슨 대거를 들고 있다. 뒷골목 부랑자 같은 자의 등장에도 남자의 눈은 처음과 같은 냉담한 빛을 띠고 있었다.

.

“폴른인가?”

“...뭔 소리야? 정보상을 왜 여기서 찾고 지랄이여?”

비열한 표정을 지은 채 무기를 건들건들거리고 있었지만, 남자의 눈에는 미약하게 움찔거리는 것이 다 보였다.

‘제대로 왔군.’

“티보치나에게 내려가서 전해라 일이 있어서 왔다고.”

남자는 부랑자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스윽­

“......너 누구야?”

비열한 눈빛을 하던 아까 그 부랑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갑게 변한 인상. 제법 강렬한 기운을 뿌리는 부랑자는 남자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물었다.

“그녀에게 전해라 그대의 틸란드시아가 보낸 일이라고.”

“뭔 개소리...!”

우우웅...

“!!!”

자신의 보스를 언급하는 놈이 하는 영문 모를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려던 부랑자는 갑자기 보스 직통 통신부적이 울리는 것에 동공이 커졌다.

“......”

“뭐하나 받지 않고”

남자를 잠시 노려본 후 그것을 관자노리에 댔다. 1분 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남자를 쳐다봤다.

“...대단한 사람이 보내셨나 보군... 내려가시오.”

부랑자가 벽에 피를 뿌리고 어떠한 조작을 하니 아무것도 없는 곳에 문이 나타났다.

그 아래로 보이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내려간 끝에는 생각보다 깔끔한 주술사들의 공방이 나왔다.

그 가운데 앉아있는 붉은 프릴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부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 분이 보내신 사람인가요?”

옷과 같은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렇다.”

“그분은 왜 직접 안 오셨죠? 그게 안 되면 제가 직접 대구로 갔을 텐데”

“......”

‘정신 나간 년’

그녀의 눈빛에서는 광기가 느껴진다. 주군이 과거에 구해준 은혜를 사랑으로 여기면서 한 번씩 안주인 행세를 하려는 행태가 혐오스러웠다. 도움이 안 됐으면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여러가지로 바쁘시다. 주군께 할 말이 있으면 나갈 때 말해라 말씀드릴테니.”

“그러죠.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죠?”

하지만 상대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여자도 마찬가지인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황금새의 음지, 투기장 그쪽 식재료 납품을 그대가 하고 있지?”

“네 맞아요. 근데 그게 중요한 일인가요?”

“거기서 몰래 사육하는 괴수들 음식까지 그대들이 납품하는 거 맞나?”

“네네 맞다고요. 그래서 그게 왜요”

남자는 굳이 주군이 하시는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아 무시하고 성령수를 건넸다.

“그곳으로 넘어가는 모든 식재료에 이걸 물에 희석시킨 후에 뿌려라 뭔지는 묻지 말고”

“...그분의 일에 중요한 일인가요.”

“매우 중요하다.”

남자는 주군의 일이라면 무슨 관심이라도 사려는 저 여자가 과연 하라는 대로 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명령이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또 뭐 있나요?”

“대전에 풍로(風?)가 있다고 정보를 흘려라. 전국각지로 등급은...금 등급이면 충분하겠군.”

“금 등급 전국 각지라... 그 비용이 얼마나...”

뗑그랑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데라듐...? 이걸 어떻게...아니 네임드인가요?”

‘그래도 정보단체의 수장이라는 건가?’

데라듐, 원래 외차원에서만 나는 금속으로 유천과 싸운 후 부서진 킬리언의 무기 파편을 남자의 수하가 강원도에서 구해온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네임드와 관련된 극비를 유추해냈다.

“그래”

“데라듐을 소지한 네임드라 꽤나 높은 위치의 괴수였나 보군요. 그런 괴수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요?”

“죽은 걸로 추정된다.”

“그런 놈을 죽인 괴물이 지구에 있다고요?”

“모른다. 그러니까 알아봐야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현재 남자의 수하들이 그와 관련된 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네임드를 쓰러뜨린 누군지 모를 존재,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는 몸을 돌렸다.

“소문은 지금부터 내고 오늘부터 15일후 그걸 식재료에 뿌려라. 부디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그쪽이 말 안 해도 내가 그분에게 피해를 입힐 리가 없잖아요.”

“그럼...”

“그분께 보고 싶다고 전해줘요.”

‘지랄하는군.’

“......알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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