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힘이 마법이다-16화 (16/116)

〈 16화 〉 도시 입성

* * *

14화

슥슥­

대구 여명 길드의 어느 숨겨진 안가. 천장 크리스탈로 만든 샹들리에, 커다란 고급 원목 테이블, 이 공간에서 숨만 쉬어도 돈이 들지 않을까 싶은 화려한 장식들까지.

안전가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사치스러운 공간이었다.

“실패했다?”

거대한 테이블, 거기에 홀로 앉아 스테이크를 써는 남자는 마치 내가 이곳의 주인이라는 듯, 이 화려한 공간에 전혀 어색함이 보이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그런 완전무결해 보이는 공간에 안 어울리는 자가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이유는?”

“저, 저희 쪽 간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유는 모른다?”

그는 공포에 질린 채 변명을 하는 걸 쳐다보지 않고 무심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주,죽을죄를 졌습니다!”

쿵쿵­!

바닥을 부수겠다는 심정으로 머리를 박는 후줄근한 자에게 남자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피를 흘리면서도 머리를 박는 것을 보고 남자는 말했다.

“그만해라”

“흐,흐으으...주,죽을 죄를 졌습니다...”

뚝...뚝...

머리에서 떨어지는 피가 새하얀 대리석 위로 한 방울씩 떨어졌다.

“그래...죽을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나?”

“아, 네! 죄송합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그래? 그러면 죽어야지”

“네,네...? 커억­!”

서걱­!

크,크르르륵...

남자는 그대로 무릎 꿇고 있는 자를 들고 있던 나이프로 목을 그었다.

털썩­!

새하얀 대리석위로 붉은 색이 퍼져나갔다. 남자는 피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선혈이 묻은 나이프로 다시 스테이크를 썰었다.

“이거 치워라”

스스슥...

숨을 공간도 없는 넓은 공간에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자들이 튀어나와 목을 부여잡은 채 쓰러진 시체를 치웠다.

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여전히 식사를 하는 남자의 옆에 묵묵히 서서 묵묵히 대기했다.

“그래서, 정확히 사라진 이유는?”

30여 분간의 식사를 마치고, 와인 한 모금으로 입을 기름진 입을 행군 남자는 냅킨으로 입을 닦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예상가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뭐냐?”

“서울에 계신 듀블랑님의 말씀에 의하면 어느 순간 오싹한 힘을 느꼈답니다. 그 시간이...”

“그 시간이 네임드가 갑자기 사라진 때와 겹친다?”

“예... 아마 정체모를 누군가와 싸우다 죽었을 거로 추정됩니다.”

검은 옷의 우두머리와 남자의 문답의 주제는 네임드, 즉 킬리언이었다. 킬리언과 유천의 싸움과 결과를 모르는 이들은 네임드가 누군가에게 죽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쯧...”

네임드가 정체모를 누군가에 죽었다는 말을 들은 남자의 모습은 언짢아 보였다.

“그리고 이도경과 이만성 그리고 양하연까지 그곳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렇군...”

이도경과 이만성이 자신의 직속 부하 몇 명에게만 언급했음에도 검은 일색인 남자의 부하는 그걸 알고 있었고, 남자 또한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이번 일이 협회에 목줄을 채울 좋은 기회였거늘”

남자는 3대 길드가 협회를 장악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에 불쾌함을 느꼈다.

“주군, 외람되지만... 아까 그 놈을 죽이셔야 하셨습니까?”

“음?”

묵묵히 서 있던, 부하의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이번 일이 실패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유용한 놈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짧은 시간에 만호와 영산, 동양그룹과 협상하고, 협회를 묶을 협의문을 짠 것도 놈이었고요.”

놀랍게도 비참하게 죽은 그 자는 이만성을 한탄하게 만든 그 책사였다. 그 대단한 자가 저렇게 하찮은 죽음을 맞이했다는 걸 이만성이 알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런 뛰어난 자를 남자는 거리낌 없이 죽였다.

“아니 놈은 살았어도 또 다시 실패했을 거다.”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지 의문이 들었지만, 부하는 경청했다. 자신이 모시는 분의 말이 틀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 의문을 읽어낸 남자는 혀를 찼다, 하지만 죽은 그 놈과는 다르게 이 자는 중앙세계에서부터 자신과 모든 일을 함께 해온 수족이었다. 취급이 같을 수 없었다.

‘내가 자리를 비울 일이 있으면, 이 자리를 관리해야 하는 건 이 녀석이다.’

충성심과 인망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아직 위에 서는 자의 마음가짐을 모르는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한 번만 설명해주마. 그런 머리 굴리는 놈들은 공통적인 습관이 있다. 뭐일 거 같으냐?”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쯧... 들어라, 놈들은 무언가를 멋대로 해석하고 판단한다. 하나 물으마. 만약 네가 실패를 한 것을 내가 용서를 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면 어떻게 할 거냐?”

“주군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다음을 철저히 대비했을 겁니다.”

“그래 너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놈은 아니다.”

남자는 와인으로 목을 적신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놈들은 분명 너와 똑같이 말하겠지. 다음에는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다. 자신이 살아난 이유는 유능해서다. 이번 일이 운이 없어서 일어난 것임을 주군도 안다. 그렇게 멋대로 판단하고, 오만해지다가 더 큰 실패를 할 거다. 그게 내가 놈을 죽인 이유다.”

“......”

“결론은 네놈이 내가 없는 사이 이 자리를 관리하면, 머리 굴리는 놈들에게 믿음을 주지 마라. 놈들은 도구다. 쓰다가 고장 나면 폐기처분을 해야 하는 도구. 알아들었나?”

“네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이제 잡설은 됐다. 실패한 것을 수습하기로 하지. 본래의 계획대로 됐다면, 이만성을 묶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이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만성의 생각과는 달리 남자의 원래 계획은 네임드 토벌이 끝난 후 이만성에게 목줄을 채우는 것 뿐 아니라, 이 나라의 길드들까지 갈기갈기 찢어놔서, 아수라장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래서 문혜미를 본래라면, 절대로 못 가게 했을 회의장에 보냈다. 그녀라면 굳이 다른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알아서,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었을 테니까.

그리고 마침내 벌어지는 길드간의 국지전, 그곳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죽음들 그것이 남자의 최종목표였다.

“거기서 네임드가 뜬금없이 죽다니...정말 생각도 못했군.”

그러나, 뜬금없이 죽어버린 네임드 때문에 여명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남자는 황금새라는 적을 만드는 악수를 둔 셈이 되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 번 말해봐라”

“주군... 제 머리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지 잘...”

“네 머리에게 물은 게 아니다. 너의 감에게 물은 거지. 너의 직감은 항상 이성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빈틈을 찌르는 것에 특화되었으니까.”

‘아마 이 녀석이 아니었으면 살아서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지.’

남자는 고개를 돌려 한쪽 무릎을 굽힌 채 고개 숙이고 있는 충성스러운 부하를 바라봤다.

“너의 감이 향하는 곳을 말해봐라. 어디를 어떻게 찌르면, 이 국면을 뒤집을 수 있겠나?”

부하는 눈을 감았다. 생각을 하지 말라하셨기에 머릿속의 모든 걸 비우고 오로지 감이 향하는 곳을 느꼈다.

남자가 조용히 와인을 홀짝인지 어언 10여분 뒤 눈을 뜬 부하의 미간은 고민에 찬 듯 찌푸려져 있었다.

직감이 말한 세 가지 중 하나가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내가 고민할 것이 아니다. 결정은 오로지 주군의 몫’

결국 결심한 남자는 말했다.

“해원, 그리고 음지입니다. 거기에... 주군께서 가지고 계시는 성령수가 필요합니다......”

“......성령수가 필요하다고?”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태연할 거라 여겼던 남자의 얼굴이 부하의 마지막 말에 구겨지자, 부하는 고개를 숙였다.

‘성령수... 성령수... 성령수라...’

‘성령수’ 헤아리기도 어려운 옛날 창조주가 아직 세상에 남아 강림했을 때의 여파를 극악의 확률로 물이 머금게 된다면 생기는 성수다. 죽지만 않으면, 아니 죽어서 명계를 넘어도 윤회만 하지 않으면 불러들인다는 최상급 성물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고의 영약이기도 하다.

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다. 멸망 전 남자의 가문은 중앙세계에서 이름 높은 곳이었기에, 수백 년 전 딱 혀를 축일 정도의 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하의 직감은 현 상황에 그런 성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부하의 직감은 미래예지가 아니다. 분명히 머릿속에 든 정보를 가지고 직감이 자연스럽게 결론 낼 뿐.

‘해원, 음지, 그리고...성령수’

‘필요한 재료는 알았다. 이제 필요한 건 그걸 조합하는 것 뿐...’

남자는 그 동안 수집하여 머리에 담아둔 정보에 재료들을 넣고 조합했다.

그리고 머리위에 떠 있던 태양이 산 너머로 갈 때까지 부하는 눈을 감고 생각중인 주군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뜬 후,

“좋군... 해 볼만 하겠어.”

남자는 처음으로 웃었다.

*

‘역시 권력이 최고군’

‘각성자 협회장’ 이만성과 ‘마나 관측기구 국장’ 이도경의 도움으로 엄격한 신원 체크가 필요한 서울의 방벽을 프리패스한 유천은 편하게 살려면 권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다 부술 수 있으면 뭐하는가? 그렇게 부수고 남는 거라고는 피에 젓은 잿더미뿐일 것이다.

“어떠신가? 도시에 들어온 기분은?”

“좋군요. 원숭이에서 사람이 된 느낌입니다.”

유천은 이만성의 말에 농담으로 웃으며 받았다. 사람 사는 곳에 들어오니 다시 마음이 넉넉해진 느낌이었다.

“두 분은 여기 계시게. 곧 직원이 와서 머물 곳을 내줄 것이네. 나는 내려가야 한다네. 똥개 훈련한 우리 각성자분들에게 욕을 먹으러 가야하니 이야기는 내일 나누도록 하지.”

그렇게 허허 웃으며 떠난 협회장에게 수고하시라고 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책상에 적힌 명패에는 ‘각성자 협회장 이만성’이라고 적힌 이곳은 협회 빌딩 꼭대기에 있는 이만성의 집무실이었다.

삼면의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서울이 보였다. 묘한 기분이었다. 당연히 있다고 여긴 게 없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북한산은 정말 황당했었지...’

오면서 북한산이 왜 없냐고 물으니 가만히 앉아있는 킬리언을 제외하고, 모두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얼마나 황당했으면, 빌런들의 아지트에서 구출한 여인의 심각한 상태에 얼굴을 굳히던 양하연마저 ‘기억상실이... 거짓말이 아니었나 보네요...’ 라며 황당해 했을까?

‘민망하지만 그걸로 어떻게 보면 믿음을 샀으니 좋은 일인가?’

그들은 그 물음으로 의심하던 내 기억상실 설을 반쯤 확신하는 듯 보였다.

‘아니 근데 산이 폭발해 버린 줄은 몰랐네.’

20년 전 우연히 던전 24개가 북한산 인근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지금처럼 랭커도 없었고, 전력도 지금과 비교하면 한참 약했기에 서울은 난리가 났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서울을 떠났고, 정부와 길드는 힘을 합해 용인부터 부산까지 총 7개의 방어선을 짜 괴수들의 수를 줄이겠다는 작전을 짰다.

근데 웃기게도, 괴수들이 나오기 전에 던전들이 모두 폭발했다. 이유는 던전이 가진 어떠한 특성 때문이었는데. 던전은 세상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특성이 있다. 문제는 인접하는 공간에 다른 던전이 있으면 서로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24개의 던전은 지들끼리 잡아먹으려고 하다가 자멸했고, 자멸하면서 생긴 폭발로 북한산은 없어졌다는 거다.

하지만 그 일로 한국에는 아주 큰 변화가 다방면에서 생겼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인구 밀도의 변화다.

‘서울, 대구, 부산의 인구수가 거의 비슷하다라...’

북한산 폭발이라는 사건이 발생하고, 모두가 원래 자리로 돌아갔으면 상관이 없는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던전이 24개나 연속으로 생겼다는데 누가 가고 싶겠나?

사람 수가 모든 삶의 요소를 좌우하는 만큼 한국에서 수도의 영향력은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히도, 서울에 몰려있는 세 명의 랭커로 인해 간신히 지방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외에 다른 것이라고는 내가 넘어온 저 멀리 뻗어있는 방벽, 그리고 핸드폰, 자동차 로고가 다르다거나 하는 앞의 것에 비해 사소한 것뿐이었다.

그런 차이들이 유천에게 이곳이 꿈이 아닌 이세계라는 것을 확신시켜줬다. 여기가 진짜로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니라는 것에 울적해진 채 멍하니 노을이 지는 밖을 쳐다봤다.

­뭘 그렇게 멍하니 쳐다보고 있나?

유천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투버튼 청바지에, 흰색 블라우스 7만원이면 위아래로 살 수 있는 패션. 하지만 그녀를 보면 패션은 명품이 아닌 그걸 걸치는 사람에 의해 완성된다는 걸 느낀다.

꼰 채로 탁자에 쭉 뻗은 다리, 스판블라우스도 막지 못해 살짝 삐져나온 윗가슴, 그 위로 건강해 보이는 연갈색 피부와, 자수정을 닮은 눈동자와 진한 쌍꺼풀까지.

동굴에서는 차마 자세히 보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은 마족이라는 것을 잊고 울적했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강원도에서는 서로 엉망이고 정신도 없는 상태여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여유가 생기니 보이기 시작했다.

‘시발... 쟤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야...’

유천은 중의적인 의미로 그녀를 보며 속으로 중얼 거렸다.

유천의 붉어진 얼굴을 보던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내가 뭘 또 잘못했나?

“어...? 아니? 왜?”

­근데 왜 그렇게 얼굴이 붉은가? 혹시...

아직 소시민멘탈이 빠지지 않은 유천은 자신이 그녀를 보고 두근거려한다는 것을 걸리지 않을까 긴장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발정났나?

“......”

­음... 하긴 그대도 수컷이었지

“......”

만족스럽게 웃으며 하품하는 킬리언을 보고 유천은 생각했다. 일단 저 빌어먹을 주둥이부터 고치자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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